revolution
우리는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한 시간 넘게 나가있던 적이 네다섯 번 정도였나. 아무튼 루스는 대단히 들떠 기대에 너울대고 있었다. 아니, 혹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것으로도 보였다. 어느샌가부터 첫 날과 달라진 자신 모습을 살피며 내 눈치를 보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마스크형 방독면을 착용하고 길을 나섰다. 이런 날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몰랐기에,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다.
루스는 항상 천문에 대해 해박했다. 14일 뒤 달 모양이 어떨것이라던지, 오늘 왜소행성 몇 번이 흑백으로 나뉘는 모습이 보일것이라던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루스답다고 생각했다.
늘 그렇듯이 루스는 짙은 구름이 걷히고 별이 보이는 날이 올것이라 말했고, 나도 그런 낌새를 느꼈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 날 하늘을 구경하기로 했다.
루스는 마치 데이트 코스를 짜듯이 내게 별이 잘 보이는 위치로 안내했다. K지구 근처, 멀지 않았다. 어쩌면 루스는 이곳 근처를 맴돌다 K지구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대화의 시작은 루스였다.
"보렴, 멋지지 않니? 그 날 만큼은 아니지만, 별이 그때만치 생생히 반짝이는구나."
"그 날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하니? 천체가 뒤바뀌던 날 말이야. 별이 반대로 돌아가고 달이 만개하던 날."
"그 날이군요."
"오늘이, 딱 일 년 되는 날이로구나."
루스는 방독면을 벗었다.
숨 쉬는 것 같았다. 그 오염 투성이 산소 안에서.
"루스? 괜찮아요?"
"아깝지 않니?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해준 이 산소가 말이야. 그저 필터를 거쳐 취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란다."
그녀의 밤하늘 머리칼이 별빛과 동화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기쁨으로 가득 찬 루스는 누가 봐도 새파란 모습이겠지. 이 하늘과 바람을 보아하니 지금은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비록 달은 봉우리로 감추어졌지만 그를 대신하는 별이 있으니 괜찮구나. 적절한 시간이야."
지금의 루스는 하나의 별이라 불러도 마땅할 정도다.
"나, 미련하도록 작은 별에 갇혀 그 날을 떠올리지 못했지만, 너와 함께 있는 동안 떠올려냈단다. 후회되는구나, 하루빨리 마주해야 했는데. 난 너무 긴 시간을 홀로 보냈단다."
루스는 눈을 감았다. 그래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떻니? 이 별의 호흡들이 어떻게 느껴지니?"
"온통 당신이에요, 루스. 별 하나하나 저 검은 공백 하나하나가 모두 당신이네요."
환희에 차 반짝이는 모습이 저 하늘인지, 루스인지. 그날따라 루스의 리본은 단단히 매듭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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