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작업물

월영무야月影無夜.

ㅎㄱ님 커미션 / 정조약용 / 공백 포함 총 20069자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것은 달 없는 밤의 긴긴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一.

망나니가 칼춤을 춘다.

 

그 춤사위가 여상하다. 긴 칼 들고 휘두르며 추는 춤은 더 이상 저세상 떠나 갈 망자를 위한 위로의 춤이 아니다. 사흘째 이어지는 난장에 망나니 또한 지쳤다. 예를 다하지도 않고, 힘을 들이지도 않으며, 그저 의무 다하듯, 힘 빠진 걸음으로 건성건성 걷다, 신호도 없이 휘두른다. 울음소리 멎기도 전에 멍석 위로 사람 머리 하나가 떨어진다. 툭. 꽃이 지듯이. 동백 활짝 피어 통꽃 째로 뚝뚝 떨어지는 날은 지났으나. 지금 조선은 영원한 이월. 서슬 퍼런 추위 같은 죽음이 머리 내어 놓고 기다리라 손짓하는 나날들과 함께한다. 피비린내가 난다. 정약용은 고개를 홱 돌렸다. 구역질나는 잘린 머리에게서 시선을 돌린 것이 아니다. 저기, 대청마루에 서 죄인의 몸뚱아리 쏘아보는 이의 핏발 선 눈으로부터 슬픔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이다. 자신 제외한 그 누구도 볼 리 없는 그 슬픔을.

 

 

“다음 죄인을 불러오라!”

 

 

그러나 보지 않는다 하여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찢어지는 목소리로 주변 이들이 아뢴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약용이 함께 고개를 숙였다. 소리 내어 외친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망나니의 씩씩대는 숨소리가 가라앉고, 붉은 용포가 일어난다.

 

 

“뉘가 말하려 드는가.”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고개 들려 하지 않았다. 참으로 어긋난 자신의 군주를 알고 있는 유일한 신하를 제외하면.

 

 

“희릉 직장은 아뢰어라.”

 

 

그의 군왕이 어수 들어 고개 든 신하에게 삿대질을 한다. 이름 불린 이가 조선의 만인지상을 마주한다. 그 목구멍에 들끓는 모든 원망의 말이 군왕의 얼굴 마주하는 순간 그만 가라앉아버렸다. 머리 잘린 몸뚱아리를 두고서도, 군주의 눈에는 젖은 물기가 가득하다. 약용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신 정약용, 죄인의 참수를 멈추시기를 간곡히 청하옵니다.”

 

“헛소리를 하는구나.”

 

“주상 전하께서는 군자의 덕을 잊으셨사옵니까?”

 

 

제게 향한 삿대질의 끝이 떨리고 있다. 정약용은 다만 알고 있었다. 뉘가 어찌하여 고개 들어 명 짧게 하는 일을 자초하려 드느냐 물었다면 그는 이리 답할 것이다. 나의 군왕께서는 그리 하지 않으셨노라고. 약용은 그리 생각하였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었다.

 

 

“공자께서 군자는 두루 원만하고 편향되지 않으며, 소인은 편향되고 두루 원만하지 못하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하셨습니다. 청컨대 주상께서는 옛 성인의 말씀을 기억하시어…….”

 

“선왕께서 하신 말씀을 답습하는구나.”

 

 

무섭게 따라붙는다. 주상, 이 나라의 왕이자 사도세자 이선李愃의 아들 이산李祘, 그러나 또한 영조 이금李昑의 세손인 이가. 그렇게 말할 때에 이 나라 임금은 꼭 제 할아비와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군주가 아니었으므로. 보고 배울 군주라고는 오로지 그 뿐이었지 않은가. 허니, 아비의 죽음을 묻는 자리에는 또 하나의 그림자가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임금이 대청마루를 내려온다. 그가 버선발로 다가가 신하 정약용의 앞에 섰다. 장마철 축축한 땅에 흰 천이 젖어듬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 앞에 신하는 고개를 조아린다.

 

“고개를 들라.”

 

 

주상이 말한다. 약용은 고개 들어 그 눈을 보았다. 자비가 없다면 이는 군주에 대한 존경 없는 무례함으로 여겨져 그 또한 옥으로 끌려갈지도 모를 터. 그러나 약용에게는 어떠한 확신이 있었다. 이 또한 자신의 군주이시니, 결코 그리 하지 않으시리라. 다만 지금의 당신께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어찌 할 바 모른 채 헤매고 계실 뿐이리라. 그리하여 신하와 군왕이 다른 방식으로 눈을 마주했다. 핏발로 흐려진 눈동자 뒤로 분명히 그는 보았다. 총기 잃지 않은 단단한 눈빛을. 그러나 그 눈이 피비린내로 돌아서는 일은 또 얼마나 쉬운가.

 

 

“답하라. 선왕께서는 내 아비의 목숨이 뒤주에서 시들어 갈 적에도 그리 말씀하셨던가?”

 

“......”

 

“어서 답하지 못할까.”

 

“신이 나기 전 세상일을 감히 알지 못합니다.”

 

 

군주가 고개를 숙여 신하의 눈을 들여다본다. 독한 담배 향이 끼친다.

 

 

“경이 임오년 생이라 하였던가?”

 

“그렇사옵니다.”

 

 

정약용은 아뢰었다. 지근거리에서 군주가 내쉬는 숨소리가 일순 가라앉는다. 주상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임오년, 죽음 있던 해에 태어난 자. 아비가 죽은 일을 문책하며 죄인의 목을 베던 이가, 그 사死와 겹쳐든 생生을 살고 있는 젊은 신하의 고언苦言을 듣는다. 주상의 용안이 일그러진다. 어수가 떨려 든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분명 이리 만나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을 터임에도. 그러나 어찌할 바 없다. 군왕 이산과 신하 정약용의 조선은 바로 지금이었으므로. 숨 한번 몰아 쉰 군주가, 신하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그대가 알지 못하는 일이라 하여 내게 잊으라 하지 말라.”

 

 

붉은 빛 옷깃이 눈앞을 어찔하게 쓸고 지나간다. 세차게 돌아선 주상이 손짓으로 이 판을 모두 물리라 신호한다. 고개 숙인 이들 모두가 게걸음치며 멈칫, 멈칫. 혹여나 그 눈 밖에 날까 두려워 그리 한다. 정약용은 끝끝내 군주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선 채로 굳었다. 이제 그만 퇴청하자 옷깃 잡아당기는 뉘의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되물었다. 어이하여 이리 되었는가?

 

 

 

二.

산祘은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임오년 그 날을. 지독히도 무거워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칠월 그 예리한 볕을. 점차로 흔들리지 않던 거대한 옥獄을. 더 이상 제게 대답을 내어 주지 못하던 아비를. 산 사람을 각진 관 안에 처넣은 채 자물통을 달아 버리고, 칠월 하늘 아래 열기와 고독으로서 파묻어 버린 할아비를.

 

소름 끼치도록 조용한 날이었다. 오로지 햇살만이 시끄럽구나. 어린 날의 산은 그렇게 기억했다. 아비는 옷깃을 부여잡고 울었다 했다. 산 또한 울었다. 그러나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네들의 왕은 돌아섰다. 잔인한 날에.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소리는 묻히고. 할바마마, 부르는 소리 또한 묻히고. 돌아오는 것은 오로지 서슬 퍼렇게 무감각한 침묵 뿐. 저 좁고 단단한 뒤주 안에 죄다 가둬 말려 죽이실 셈인가보다! 산은 몸부림치며 자신을 끌어내는 손길들에게 나를 놓아라 외쳤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아, 그 날에 갇혀 버린 이는 다만 불행한 세자 뿐만이 아니리. 그 안에는 못난 아비가 갇혔다. 슬픈 아들이 갇혔다. 그리하여 그 자식인 한 아이마저 갇혀 버렸다. 지독한 침묵 속에. 아비는 뒤주 속에서 말라가는데, 그 어떤 소리와 몸짓도 그를 그곳에서 꺼낼 수가 없구나.

 

그리하여 임오년 그 날에, 산은 단단히 갇혀 버린 것이다.

 

길고 긴 고요가 이어진다. 모두가 그에 동참한 것처럼 보였다. 임금이 침묵하니 조정이 침묵하고, 그러므로 구중궁궐 안 모든 이들이 침묵해야만 했다. 그 뒤주 안에 정말로 모든 것이 갇히어 죽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종용당한 침묵 속에서 어린 세손은 길고 긴 칠월의 햇볕을 견디어 내야만 했다. 가끔 산은 생각했다. 만일 그날 자신이 함께 뒤주에 갇혔더라면. 그렇게 떠올린다. 그러나 오로지 자식으로서만 생각할 수 있을 뿐. 세손으로서는 결코 그리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것 또한 침묵으로만 남는다. 산은 외로웠다. 말할 수 없어, 생각할 수 없어, 또한 물을 수 없어 사무치게 외로웠다. 몸을 숙여 견디어 내며 삼켜낸 소리가 몸 안에 쌓인다. 그렇게도 쌓이는 것들이 많음에도 산은 허했다. 잃은 것이 결코 돌아올 수 없음을 모두가 안다. 시간이 참으로 가혹하게 흘러갔다. 할아비는 늙어 죽을 몸. 그러니 왕좌에 오르게 되었을 때, 산은 이제 길고 긴 고요를 반드시 깨어내겠다 다짐했다. 그래서 외쳤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 말에 고개 숙인 문무백관이 침묵했다. 울컥, 쌓여있던 소리가 솟구친다. 산은 다시 한 번 외쳤다. 경들은 듣고 있는가?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이제 임금이 된 세손은 묻고 싶었다. 어찌하여 아무도 말하지 않는지. 왜 임오년 그 날 모든 것을 묻어버린 것처럼 구는지. 정말로 그 날에, 모든 것이 다 죽어버렸다 믿는 것인지.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술렁이는 떨림. 저 지리멸렬한 자들! 군주가 된 그 앞에서 뉘가 말하랴? 제 목숨 보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 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생각으로도, 말로도 침묵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이 나라의 만인지상이잖은가. 답 없이 죄여드는 두려움들을 눈으로 보며 군왕이 외친다.

 

 

“지난날 억울하게 목숨 잃은 나의 아비를 생각하니, 심신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되고 슬프다. 하여, 과인은 조정 문무백관 앞에서 선언하노라. 경들은 임오년을 잊지 말라. 잊으려 드는 자는 왕명에 반하려 드는 불충한 이로다!”

 

 

뭇 조정 이들이 고개 숙여 숨을 한 번 쉰다. 답한다. 명 받들겠나이다. 찰나의 머뭇거림을 들었다. 저들은 경사스러운 즉위식 날을 망치지 않으려 저리 답하는구나. 산은 그렇게 여겼다. 눈앞에 도열한 관복들이 소리 내는구나.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로구나. 진실로 소리 내는 이 하나 없는 곳. 이 아홉 겹 담장에 싸여든 궁궐. 그 안에서 왕은 여전히 자신이 침묵 안에 갇혔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제 이 나라 만인지상이 된 산은 기어이 그 침묵을 깨부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주상은 의금부 추국장에서 다시 한 번 말했다. 그 누구도 언급하려 들지 않으며, 또한 그리 하고 싶지 않을 일을 임금 스스로가 끊임없이 불러내는데, 이보다 더한 두려움이 어디 있을까. 그보다 더한 슬픔이 또 어디 있을까. 즉위 첫 해, 셋의 목이 잘려나갔다. 즉위 둘째 해, 다섯의 목이 잘려나가고 열다섯이 유폐되었다. 즉위 셋째 해, 즉위 넷째 해, 다섯 째 해, 조정의 모든 이들이 살얼음판 디디며 입과 눈을 아낀다. 여섯째 해, 일곱 째 해……. 의금부 문은 닫힐 나날이 없으며. 온 조선을 지배하는 말이라고는 단 하나였다. 사도세자의 아들! 임오년 뒤주에 갇혀 목숨 잃은 세자의 그림자가 조선을 뒤덮었다. 불안한 세손 자리를 지켜내고, 즉위하여 암살을 피해 내었으며 밤이 다 새도록 불길 같은 소리를 눌러 내며 수없이 많은 책과 글을 읽어 내었던 이는 명민했다. 어찌 하여야 손에 쥔 칼을 휘둘러야만 하는지, 너무도 교묘히 잘 알았다.

 

그리하여, 충忠의 이름을 빌려 효孝를 말하며 빗발치는 상소들은 오로지 굳은 활자의 탈을 쓴 말들처럼 보인다. 도리. 답습되는 도리. 그렇다면 자신이 세상에게 답을 요구하는 것 또한 자식으로서의 도리이지 않은가. 어떤 것은 효孝이며 어떤 것은 불충不忠인가? 산은 알았다.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틀에 든 것은 이리저리 잘 짜 맞추어 내어 놓기만 하면 되는 일. 영민한 세손에게는 결코 들리지 않았던 말이니 기민한 왕에게 들릴 리가 없는 말들. 목소리 높여 통촉하라 외치는 것들은 관복에 갇힌 놈들의 헛소리일 뿐.

 

입 잃은 자의 마음은 눌러 닫힌 뒤주처럼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토해내었다. 임금이 되어서야 마침내 쌓아 두었던 모든 것들을 긁어내어 묻고 또 물었건만. 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산은 여전히 공허했다. 수십의 목을 잘라도 충분치 않는다. 그 누구도 임오년 그 날의 침묵을 진정으로 깨지 않는구나. 임금은 그렇게 스스로를 그 날에 가둔다. 스스로 불행한 세손으로 남으리라 결정해 버린 것이다. 이 어찌 슬프지 않은가.

 

그리하여 조선은 아주 달라져 버렸다. 달이 빛을 잃은 밤처럼. 그만 아주 어두컴컴해져 버린 것이다. 강河과 내川를 비출 달明月은 없다. 그 달의 주인이 세상으로부터 등 돌려 버린 탓이다. 조선 팔도 산천에 휘도는 것은 달빛 아닌 어둠과 효수된 자들의 팔다리, 머리, 나뉘어진 죽음의 향취들. 증오가 두려움 되어 역병처럼 휘돈다. 임금은 그 안에서 불행하였다. 영영 그럴 셈으로 보였다.

 

 

 

三.

신하는 이곳이 다를 바 없는 조선인 줄로 알았다.

 

자신의 군왕을 먼저 보내고, 초야에 묻혀 생을 마감하였으나 다시 자신의 형제들과 아비를 만나 태어나게 되었을 적에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만일 세상에 이치가 있고 도리가 있다면, 기어이 자신은 다시 주상을 만나야 하리라, 그리 여겼다. 못 다한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낙향한 아비 슬하에서 그는 여전히 귀농歸農이자 삼미三眉였으므로. 이제는 지난 생에 흐릿하다 여기며 길 찾고자 헤매던 주상의 마음을 알고 부응하여 분골쇄신하리라 다짐하였다. 약관 십오 세가 되었을 때 선왕이 승하하자 그는 깨달았다. 이제 자신의 군주를 다시 만나러 갈 때가 되었다고. 지난 생에서 약용은 본디 벼슬자리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주상의 끈질긴 설득으로 조정으로 나아가지 않았던가. 이제는 그분께서 나를 이끌 필요도 없이 그저 그 곁에 서리라 다짐하였다. 버드나무의 자리가 물가이듯이, 신하 정약용의 자리는 군왕의 가장 가까운 곳이 아닌가. 만일 생의 지난한 고통과 시련들이 다를 바 없이 찾아온다면, 제 스스로 조금 더 굳건히 서서 버텨내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이곳은 참으로 다른 조선이었다.

 

새로이 즉위한 주상께서 꺼낸 첫 마디에. 지난 세손 시절 그가 잊지 않은 일들이 뉘에게는 변고처럼 들이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가득 찬 말들이 떠돌았다. 그 떨림을 타고 소문은 장안에 널리 퍼져나갔다. 그러나 약용은 결코 두려워하거나 불안에 떨지 않았다. 그가 아는 군왕께서는 다만 아비를 잊지 않으리라 깊이 다짐하였기에 그리 말씀하셨을 뿐이라 믿었기에. 신하가 아는 군주는 그러하였다. 그러나 뉘가 알았을까. 생의 모든 것이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가 아는 군주는 아주 달라져 버린 이였음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 때에, 지난날 뒤주에서 목숨 잃은 세자의 일에 대하여 다시 꺼내지 말라 단언하였던 일은 어디로 가고. 그제야 신하는 자신의 군주가 아주 달라졌음을 알았다. 즉위 첫 해, 셋의 목이 잘려나갔다. 즉위 둘째 해, 다섯의 목이 잘려나가고 열다섯이 유폐되었다. 즉위 셋째 해, 약용은 아비와 형제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승보시에 응시하고, 합격하였다. 즉위 넷째 해, 다섯 째 해, 조정의 모든 이들이 살얼음판 디디며 입과 눈을 아낄 때에 약용은 글을 읽었다. 여섯째 해, 일곱 째 해……. 의금부 문은 여전히 닫힐 나날이 없으며. 약용은 소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그 해 증광감시에 나온 표제가 무엇이었냐 하니. 자왈 사부모하되 기간이니 견지부종하되 우경불위하며 노이불원이니라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부모를 섬길 때는 은미하게 간해야 한다. 부모님의 뜻이 내 말을 따르지 않음을 보더라도 더욱 공경하여 어기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괴롭더라도 원망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를 논하라. 참으로 직설적이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문제. 약용은 그 안에 담긴 임금의 뜻을 보았다. 아니, 보였다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이리도 달라져 버린 나의 군주이건만, 여전히 내가 아는 이로구나. 그리 느꼈다. 대놓고 논하여라. 이에 대한 나의 식견을 눌러 보아라. 그 단단함. 그러나 서슬 퍼런 눈길을 곁들인 단단함이었으므로. 신하는 탄식했다. 내가 아는 이이지만 어찌하여 모르는 것만 같은가.

 

약용은 일필휘지로 답안을 써내려갔다. 지난 생을 되돌이켜 보건대, 약용은 필히 그 때에 자신의 군주를 만나게 될 것을 알았다.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한 그 옥음이 있잖은가. 고개를 들라, 하였던. 그러나 이때에 약용은 일순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되물었다. 그 용안을 과연 같은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썼다. 군왕에게 채워지지 않을 상실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불행한 것은, 그가 군왕께서 어찌 그 상실을 딛고 나아가셨는지에 대해서 또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하 정약용은 신하 된 도리로 그리 썼다. 임금 또한 어버이노라고, 자신은 어버이께 간할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감히 옳은 답을 내어 놓을 자신이 있노라고. 그리 건방진 답안을 써내려가며 신하는 생각했다. 지금의 당신께서는 노한 얼굴로 나를 마주하면 어찌하나. 그리하여 그 곁에 서게 될 기회도 없이 우리가 아주 갈라져 버린다면 이 조선은 어찌하나.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으리라.

 

그 해 증광감시 장원은 정약용이었다. 약용은 물었다. 어찌하여? 그러나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주상이 직접 거둥하여 장원자에게 상을 내렸다. 신하는 용안을 다시 한 번 마주하였을 때에 드릴 답안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임오년 생 정약용, 전하의 곁에 머무르고자 이리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 말하지는 못하여도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전하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건만.

 

 

“고개를 들라.”

 

 

눈이 마주하는 순간, 임금이 어떤 낯빛을 보였던가. 그 어떤 웃음도 없었다. 그러나 울음도 없었다. 일말의 애증, 아픈 곳 꿰뚫린 자처럼 자신을 쏘아보았다.

 

 

“그대의 문장이 날카롭구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뭇 나이든 조정 대신들보다도 더 과인을 당황케 하였다.”

 

“......”

 

 

껄끄러운 벼 낱알을 삼키듯 그렇게 말씀하시었다. 약용은 도로 고개 숙였다.

 

 

“신은 임오년 생이옵니다.”

 

“......”

 

“아직 어린 소신에게 그리 말씀하여주시니 망극하옵나이다.”

 

 

신하가 아뢰었다. 임금은 미동이 없다. 손짓으로 그를 물린다. 아니, 내친다. 아니, 조금 더 들으려 했다가 그만 견디지 못할 얼굴로. 웃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군주에게서 뒷걸음질 쳐 물러나는 신하. 그런 신하가 물러나고 나서야 눈길로 한 번 그를 좇아 보는 임금. 약용은 알았다. 나의 군주께서는 이제 나를 보면 괴로워하시는구나. 더는 나를 찾기에는 아비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시겠구나. 이제 신하는 갈림길에 서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물가 곁에 머무를 것인가. 혹은 뿌리 내리기 전 그곳을 떠날 것인가. 선택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고개 숙인 채 여전히 임금 앞에 조아린 신하는 잠시간 울음을 삼켰다. 괴로웠다. 알 수 없어 괴로우며, 물을 수 없어 괴로웠다.

 

 

“장원자에게는 한서선 열 권을 내리노라.”

 

 

퍼뜩, 약용이 고개를 들었다. 임금이 옥체를 일으켰다.

 

 

“문장에 재주가 있으니 부디 빈 책 채우기를 즐겨 하고, 자식 된 도리를 일깨웠으니 그와 같은 신하 되기를 바라노라.”

 

 

한서선, 고약한 글자 하나가 그것을 뒤따라온다. 훙薨. 필히 약용이 아주 얼빠진 얼굴로 서 있었던가. 그것을 본 임금이 웃는다. 아, 연못 한 가운데 섬으로 노 저어 귀양 보내실 적의 웃음이었다. 새벽녘 보았던 적이 있던 웃음. 자신이 알던 용안. 그 뒤에 따라오던 글자, 훙薨. 신하는 터져 나오려 하는 비명의 고삐를 눌러 잡고 어금니를 눌러 물었다. 아니 된다. 그리 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곳이 자신의 물가이고, 나는 버드나무이니. 여전히 나는 물가 맑게 하고 뭇 사람들을 위한 재목이다. 꾹꾹 눌러 다듬은 마음으로, 신하는 활짝 웃었다. 당신의 마음을 보여 주여 참으로 감사하노라고, 그리 전하고 싶어서. 웃는 얼굴로 외쳤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신하는 지난 생 군주께서 기쁘실 적 지었던 얼굴을 떠올렸다. 다시 한 번, 버드나무가 생각하였다. 떠나지 않아야겠다고.

 

 

 

四.

임금이 신하를 찾아왔다.

 

야담夜餤. 지난 생에서 약용은 그것을 무척이나 껄끄러워하였다. 그 때에 젊고 또 어린 신하는 그것이 한편으로 두려웠다. 조정에는 승냥이 같은 이들이 가득하고 자신은 든든한 방파제 없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말들을 마주할 것이 뻔하였으므로. 그러나 이제는 어떠한가. 조정에 나서 그는 거칠 것 없이 임금에게 고했다. 이리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백성들을 생각하소서. 주상께서는 부디 그 빛을 만인에게 비추소서. 그 말들 안에는 굳은 심지 하나가 있었다. 당신께는 아직 발하지 못한 빛이 있으며, 능히 해내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지난 날 왕이 자신에게 그리도 자주 말하지 않았던가. 너의 재능을 나는 믿는다. 보답하듯, 아주 달라진 왕 앞에서 이제 주저하지 않았다. 거꾸로 뒤바뀌어 버린 군주와 신하는 들어맞지 않은 수레바퀴처럼 삐걱대기만 했다. 그러나 바른 말 하는 이라 하여, 주위에는 사람이 구름처럼 모였다. 임금의 눈엣가시, 이 세태에 대해 유일하게 말할 용기 가진 자, 정약용. 그리 떠도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약용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들은 자신이 주상의 거칠 것 없는 칼날을 받아내고 있다 여기겠지. 허나 진정으로 신하는 주상의 떠도는 빛을 붙잡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노송老松 마룻바닥이 향기롭고, 봄바람에 실린 붉은 매화 꽃잎은 더더욱 향기로운 날. 각루에 올라앉은 성상의 얼굴. 참으로 좋은 밤이었다. 공기가 그리 차갑지 않은 때. 약용은 마루 위에 무릎 꿇은 채 인사를 먼저 올렸다. 눈앞에 선한 그 붉은 빛 옷. 술잔 건네던 굳은살 박힌 손가락. 그것은 여전하였다. 그 때에, 나이가 들었어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군왕 앞에서 삼미三眉가 되었었다. 지금 그는 무엇인가.

 

 

“들라.”

 

 

붉은 소 송편은 없었다. 유기 술잔에 채워진 것은 삼중소주이며, 옥필통도 보이지 않는다. 같은 틀에 담긴 다른 마음. 어느 것은 채워질 틀도 없이 흘려질 것이다. 약용은 그저 술잔을 받았다. 두어 잔을 연거푸 넘긴다. 독하디 독한 술이다. 취할 참은 아니나, 이전에도 지금에도 주상은 여전히 취하지 않은 자를 집에 보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명이 무엇이라 하였느냐.”

 

 

산祘은 물었다. 열 살. 꼭 그만큼의 나이 차가 나는 어린 신하.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말을 답안에 줄줄 써내었던 이. 군왕 이산은 그 답안을 보고서, 혹여 이 자가 아주 오래 자신을 지켜보았던 것은 아닐까 싶은 착각에 빠졌다. 그럴 리가 없지. 임오년 생이라 당당히 고하는 그 일을 주상은 철없는 패기라 여겼다. 감히 그리 말할 자가 나타났구나. 여전히 모두가 침묵하려 드는데, 스스로 꺼내들었구나. 그리하여 그는 조금의 흥미로움을 느꼈다. 곁에 두었을 때에 어찌할 생각인지. 그것을 보고 싶었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산은 앞에 꿇어앉은 신하의 얼굴을 눈짓했다. 어린 얼굴이다. 그리 하여, 짓궂은 심술 담아. 왕은 신하의 어릴 적 이름을 물었다. 신하가 고개를 든다.

 

 

“귀농歸農이옵니다.”

 

 

정약용이 답했다. 주상이 웃음을 터뜨린다.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름자로다! 그리 말한다. 호탕한 웃음은 여전하나 그 안에 서느런 칼날이 있다.

 

 

“조정에 이미 나아온 자가 어찌 농農을 그리겠느냐.”

 

“소신의 아버님께서 지으신 이름이온데, 이는 신이 태어날 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라 버릴 수가 없사옵니다.”

 

“그래?”

 

 

주상이 술잔을 채운다. 거친 몸짓으로. 권한 술잔을 곧장 입술에 대어 잔을 비운 신하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툭툭 찔러 대는 물음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산은 잠시간, 약이 올랐다. 바위처럼 꿇어 앉아 있는 자가 조정에서는 감히 고개 들어 아무도 하지 않던 말을 내질러 대었으니. 정녕 꺾이지 않을 셈인지 그것이 궁금하였다.

 

 

“그렇다면 답하라. 네 아비는 어찌하여 그리 너를 불렀는가.”

 

 

신하가 감히 고개를 들었다. 산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꼭 이러한 때에, 얌전히 답할 위인은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건방진 위인은 아니었으나. 꼭 그것은 어떠한 도전처럼, 자신을 향한 도발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이 무작정 자신에게 내쏘아 대는 말이 아닌 것을 임금 또한 알았다. 그럼에도, 작금의 대화는 다만 묻고 답함에 한정되지 않았다. 이것은 어찌 보면 사냥과도 다름없음이라고. 임금은 그렇게 느꼈다. 그리 살아 왔으므로. 그리고 주상은 자신의 화살촉으로 반드시 제 눈앞의 사냥감을 잡겠다 생각한 지 오래였다. 질문으로서 그는 활시위를 당겼다.

 

 

“신의 아비는 임오년 일어난 화변禍變에 탄식하며 벼슬자리를 내려놓으셨습니다.”

 

 

헌데, 이는 어찌 된 일인가. 사냥감이라 여긴 것이 고개 들어 그 화살촉을 본다.

 

 

“그 해에 저를 얻으시고, 정쟁과 조정에 마음 두지 말라 이르시며 저를 귀농歸農이라 부르셨나이다.”

 

“이름자대로 살지 않으니, 경의 아비는 참으로 못난 자식을 두었군.”

 

 

활시위 쥔 손이 파르르, 떨리듯. 숨 한번 뒤에 다시 주상이 눈을 들어 격발할 자세를 갖추었다. 위협이다. 이리 하여도 도망치지 않을 셈인가? 그리 묻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맑은 눈은 그 시선을 돌릴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하옵니다. 신은 못난 자식이여 참으로 괴롭습니다.”

 

“아비를 슬프게 하고도 어찌 자식이라 하는가?”

 

“전하께오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다시, 화살촉을 보던 이가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아온다. 상상해 보라. 사냥꾼 앞으로 한 걸음 나아오는 사냥감을. 그렇다면 이것은 사냥이 아니다. 임금은 그 말에 찔려 눈을 부릅떴다. 아니, 찌를 생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상은 아팠다. 때로 어떤 물음들은 칼과 같아, 받아낼 때에도 아픔이 있음이라. 그러나 만인지상의 앞에서 감히 그리 말할이가 뉘 있겠는가. 긴긴 침묵의 세월 속에 주상은 어쩌면 그러한 질문들을 잊었다. 수없이 베인 목 앞에서, 고개 들어 나의 것도 베어 주오 외칠 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산은 알았다. 저 자가 나의 마음을 헤집으려 드는구나. 문득, 그는 두려웠다.

 

 

“내 분명 알지 못하는 일을 논하지 말라 하였을 텐데.”

 

 

왕이 신하에게 명령처럼 말한다. 입을 닫으라고. 그러나 신하 정약용은 그것을 명령으로 듣지 못하였다. 차라리 부탁이리라. 더 이상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 하는. 참으로 기이하게도, 신하는 그 떨림 속에서 자신이 알던 군주를 보았다.

 

 

“주상께서도 아비를 슬프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대가 정녕 죽고 싶은가 보구나.”

 

“아비를 아끼는 마음이 어찌 남의 피로 채워진단 말입니까!”

 

 

신하 또한 눈을 부릅뜬다. 그러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려 든다. 정약용은 묻고 싶었다. 스스로도 헤매고 계심을 잘 알고 계시지 않느냐고. 그는 알았다. 그의 임금에게는 빈 곳이 있음을. 세상 그 뉘가 부정하랴. 그가 임오년 아비를 비극적으로 잃었음을. 차마 그것에 대해 말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 왔음을! 허나 이것은 침묵을 깨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약용이 스스로 깨달은 바가 아니었다. 주상이 몸소 보여 준 바가 있었다. 어버이가 그리 하였는데, 자식이나 다름없는 신하가 어찌 그것을 믿지 않을까! 고약한 글자가 당신을 잡아채기 전에. 신하는 간절하였다. 그리하여 엎드려 애원한다.

 

 

“신 정약용, 버들의 재목으로 쓰이고자 조정에 나아왔나이다. 뭇 백성과 문무백관이 있을 물가는 오로지 전하 한 분뿐이오며, 신이 머물 물가도 또한 주상 전하의 지척뿐이옵니다. 부디 눈을 들고 옥체를 돌리시어 주상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산 자들의 도리는 다만 군자의 길을 걷기 위해 온 심신을 다하는 것뿐이옵니다.”

 

 

길고 긴 말이 끝을 맺었으나,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고개 조아린 신하는 눈을 들었다. 임금이 옥루를 흘린다.

 

신하는 입 열어 군주를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찰나에, 용안에 굴러 떨어진 눈물방울이 사라진다. 붉은 용포가 휘둘러진다. 꼭 작금의 당신과도 같노라고, 약용은 생각했다. 흘릴 눈물을 핏빛으로 감추려 하시는구나. 일그러진 용안을 보며 약용은 괴로웠다. 이제 임금은 빼어 들 화살이 남지 않은 사냥꾼이 되어,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신하는, 문득. 아주 불경하게도. 임오년 그날 뒤주 앞에 서 울고 있던 세손을 보았다고 생각하였다. 손을 뻗어 들어 끌어안고, 다독여야만 할 세손을. 그 날에 갇히어 빠져나오지 못하여서 너무도 괴로운 아이를.

 

 

“어찌 하라는 것이냐.”

 

 

임금이 입을 열었다. 신하가 듣는다.

 

 

“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는데.”

 

 

산이 말을 이어 나간다. 약용이 듣는다.

 

 

“잊으라 하는 이들도 모두 목을 베어 효수하고 싶다.”

 

 

신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임금은 한 호흡에 스스로 화마火魔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전하.”

 

“그대는 나를 모른다.”

 

 

아니, 너무도 잘 알고 있노라고. 그렇게 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약용이 눈 들어 본 자신의 군주는 자신이 모르는 얼굴을 하였다. 꺼질 수 없는 불길. 어쩌면 영원히 타오를 지도 모를 그 눈이 자신을 보고 있잖은가. 해묵은 상실은 대상 없는 증오 되어 세상에 휘둘러진다. 진실로 자신 앞에 앉으신 분이, 이전에 알던 군주가 맞는가. 약용은 의심하였다. 불경하게도. 정말로 돌아설 수 있는 이인가. 그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니 제발, 그대의 입을 닫으라.”

 

“......”

 

“나는 그대의 목을 베고 싶지 않다.”

 

 

아주 머뭇거리며, 끊기는 호흡에 마음 담아 기어이 임금 이산李祘이 전하였다.

 

 

“귀농歸農, 그대가 써낸 글을 보았을 때 나는 참으로 궁금했다. 내게 무어라 말할 것인지. ... 그대가 하는 말들마다 옳다 여겼다. 나의 빈 곳을 채워 주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곁에 두었으면 하는구나. 헌데 어찌하여 나의 마음을 이리도 밀어내는가.”

 

 

신하는 답하고 싶었다. 나의 마음을 밀어내고 계신 것은 당신이라고. 그러나 보아라! 어긋났다. 아주 어긋나 버렸다. 이 조선에서. 달 없는 밤 조선에서. 임금과 신하 모두 어둠 속에서 더듬대며 서로의 손을 잡으려 애썼으나 기어이 어긋나 버렸다! 약용은 이제 엎드려 울었다. 떨리는 어깨를 보았는지, 주상이 말한다.

 

 

“어찌 하여 우는가?”

 

“주상께서 끌 수 없는 불 속에서 타오르고 계심을 알아 절로 눈물이 나옵니다.”

 

“그리한가 보지.”

 

 

임금은 아주 체념하였다. 그는 신하가 모른 척 자신에게 한번쯤 고개를 숙여 주기를 바랐다. 모두가 그리 하는 것처럼. 이 조선의 임금 이산은 그것 이외의 통치법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숙이라 명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다른 임금을 알았다. 그러므로, 숙이지 않을 참이었다. 하여 임금은 신하를 내려놓아버렸다. 이는 참으로 불행이라. 신하가 말을 이어 나간다.

 

 

“신 정약용, 감히 저수儲水되어 그 불길을 끄고자 하겠나이다.”

 

“......”

 

 

알 수 없는 말이다. 주상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뜻을 물을 참은 아니었다. 임금은 그저 힘 빠진 목소리로, 노여움도 기쁨도 없이 답하였다. 경의 뜻대로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가거라.”

 

“예.”

 

“경은 술자리 흥취 돋우는 데에는 영 재능이 없도다.”

 

 

여전히 힘 빠진, 습관적인 농조의 말에, 뜻밖에도 신하가 작은 웃음을 지었다. 마치 어디선가 들어 보았던 말인 것처럼. 익숙히 대꾸하며 웃질 않는가.

 

 

“신이 모자란 이인지라 송구할 따름입니다.”

 

“......”

 

 

하고서, 신하는 눈물 젖은 얼굴을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임금에게 절을 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달이 고개 숙여 흐려지고, 그림자 아래 앉은 두 사람의 술잔 안에 차오른 것은 검디검은 밤의 옷깃뿐이며. 오가는 말도, 마음도 엇갈린 채로. 그렇게 신하가 물러난다. 임금은 자리에 남았다. 참으로 외로운 새벽이로다. 산祘과 귀농歸農 모두 그리 생각하였다.

 

 

 

五.

그 다음 날 낮에 희릉 직장 정약용의 사직청원을 담은 글이 올라왔다.

 

임금은 그 또한 자신을 놓아버렸다 생각하였다. 그대도 지쳐 버렸구나. 비웃음 한 결에 마음을 꾹 닫아 버린 채, 그것을 미루었다. 그러나 약용은 조정에 나아오지 않았다. 드디어 겁을 먹고 숨어버렸구나. 그리 생각했다. 한편으로 이산李祘은 그마저 겁먹고 사라진 조정이 휑하다 느꼈으나. 곧이어 빗발치는 상소에 다시 눈을 부릅떴다. 여전히 빈 껍데기뿐인 것이로다. 다시 한 번, 사직원이 올라왔다. 왕은 그것을 내쳤다. 머무르겠다 말한 때는 어디로 가고. 떠나려 드는 꼴이 한심하다 여겼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조정 대신들이 외친다. 어지러운 경연장이다. 늘 그래 왔다. 말싸움하길 즐기는 왕은 신하를 붙들고 놓아 주지 않으려 했고, 이에 질린 신하들은 이리저리 피하려 애만 쓰는 꼴이었으니.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사냥터였다. 왕은 기어이 이겨 들고자 하였으나 상대가 제풀에 놀라 미리 백기를 들어 버릴 적에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 하여, 늘 살얼음판과 같았다. 이제 상대편끼리도 삿대질하여 논쟁하라 판을 깔아 주니, 벌떼처럼 달려드는구나. 자신이 조장하여 든 꼴을 보고도 왕은 그리 생각하였다. 그 때에, 시끄러운 경연장 문이 왈칵 열려든다.

 

 

“어느 불경한 놈이 경연을 방해하는가!”

 

 

임금이 외친다. 일순, 모든 것이 고요해진다. 침묵.

 

 

“송구하옵니다. 하, 하오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젊은 무관이 고개를 숙인다. 온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다. 주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하라.”

 

“그것이, 희릉 직장 정약용이…….”

 

“왜, 사직원을 받아 달라 고함이라도 쳤느냐?”

 

 

임금이 다그친다. 어서 고하지 못할까! 숨죽인 침묵을 견디지 못한 채 주상이 성큼성큼 걸어 옥좌를 내려왔다. 기어이 그 무관은 납작 엎드린다. 숫제 땅으로 꺼져 버릴 기세로. 이러한 말을 입에 담는 것도 무섭다는 듯이.

 

 

“희릉 직장 정약용이 지난 밤 뒤주에 들어가 스스로 덮개를 걸어잠그었다 하옵니다!”

 

 

얼음장 같은 말이 끼얹어졌다.

 

 

“무어라 했느냐.”

 

“소, 송구하옵니다. 허나 그, 그분께서 스스로 자물통을 들고 들어가시어 차마 여, 열 수 없는 탓에…….”

 

“어디에 들어가?”

 

 

산祘은 멍하니 되물었다. 벌려진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것이, 뒤주에…….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주상이 경연장을 뛰쳐나갔다. 와르르, 소리와 사람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 붙잡는 손길을 뿌리친다. 처마를 벗어나니 그곳은 칠 월, 볕이 따갑다. 너무도 따가워 견딜 수가 없다! 왕이 불같은 소리로 내쏘았다. 어디냐! 젊은 무관이 저 먼 곳을 가리킨다. 영화당暎花堂 앞, 상자 하나가 꿇어앉아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임금은 차오른 숨을 고르기도 전에 멎으려 드는 숨길을 도로 끌어내야했다. 다급히 그를 따라 온 홍개紅蓋가 그에게 그늘을 드리우려 들자 주상이 그것을 내쳤다.

 

 

“가까이 오지 말라!”

 

 

임금이 서슬 퍼렇게 절규한다. 다시, 그를 따라 온 소리와 군중이 게걸음질친다. 멈칫, 멈칫. 그러나 이제 그것은 주상을 거슬리게 하지 못한다. 희부연 햇살이 눈앞을 흐리고, 어깨에 얹어진 이글대는 열기가 있음에도. 서늘하다. 춥구나. 주상은 떨며 한 걸음 다가갔다. 정자 앞에 놓인 뒤주. 그 위의 햇살. 와글대는 그 햇살. 산祘의 손이 떨린다. 문득, 이 구중궁궐이 자신을 둔 채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만 같아서. 군주가 비틀대었다. 그러나 누구도 가까이 다가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희릉 직장 정약용은 과인의 말이 들린다면 답하라.”

 

 

두어 발자국 앞에 서서, 임금은 굳어졌다. 입술을 떼어 말하였다. 허나 돌아오는 답이 없음에.

 

 

“어명이다.”

 

 

명하여 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없다. 이산은 알았다. 제가 다가가 그 뒤주를 열어야 할 것임을. 그러나 발이 떼어지지 않는다. 후들대는 발걸음은 한 걸음도 딛지 못하고 그만, 풀썩. 주저앉았다. 용포가 더럽혀진다. 등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전하! 그 소리에 임금은 고개 돌려 다시 한 번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말라 하였다!”

 

 

한 보라도 내딛는다면 모두 죽이리라. 주저앉은 채 임금이 뇌까렸다. 그러나 그 자신도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여, 그 뒤주 앞에 무너진 꼴이 아닌가. 실소가 새어 나온다. 고개 들어 보면 그 앞에는 여전히 산 자에게 관으로 쓰였던 그 고약한 물건이 있다. 뒤주. 임금은 기다시피 그에 손을 뻗었다. 손끝에 나뭇결이 닿는다. 비쩍 마른 나무는 칠 월 햇살에 사정없이 공격당해 손 데일 지경으로 뜨거웠다. 몇 시진이나 이곳에 있었을까. 임금의 손이 그곳에 툭, 닿자. 작게 떨림이 느껴진다. 툭, 툭. 안에 있을 자가 내었을 소리. 뒤주 벽을 작게 두들기는 소리. 그것에. 임금은, 아니, 산祘은 왈칵 소리를 터뜨렸다. 아니, 눈물을 터뜨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정신없이 일어서 뒤주의 덮개를 주먹으로 두들겼다. 쿵, 쿵, 쿵, 쿵, 쿵. 그에 답이 전해져 온다. 툭, 툭, 툭. 임금은 고개 숙여 온 몸으로 뒤주를 덮을 양, 그것을 감싸 안았다. 흐느끼는 소리로 말하였다.

 

 

“열어라.”

 

 

여전히, 답이 없다. 분명 그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임금은 다시 주먹으로 두들겼다. 쿵, 쿵, 쿵. 소리는 돌아온다. 툭, 툭. 기어이, 이산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제발 열어라!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어명이다. 정약용은 나와 물을 마시라! 날이 더우니 그 안에 있으면 아니 된다!”

 

 

쿵, 쿵. 마지막 선고처럼. 산은 두 번을 내리쳤다. 이제, 작은 두들김마저 돌아오지 않는다. 임금은 뒤주를 감싼 채 여전히 울고 있었다. 갈라진 나무 틈새로 눈물이 스며들어간다. 용포가 한껏 펼쳐진 채 칠월의 잔인한 햇살을 필사적으로 막아 드려 애쓰고 있다. 저기, 톱과 도끼와 자귀를 든 내금위들이 달려오고 있다. 허나 주상이 그 앞에서 비키지를 않는다. 정신 잃은 이처럼 옷깃을 휘두르며 외친다. 아니 된다! 아니 된다!

 

 

“그리 열었다 몸을 해할지도 모르니 물러서라! 어서!”

 

 

미친 사람처럼 그가 뒤주를 등 뒤에 숨기듯 품고 섰다. 눈물로 젖은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내금위가 뒷걸음질 친다. 임금은 다시 뒤주를 붙잡고 울었다. 열어라, 제발 열어 다오. 부탁이다. 손으로 그 관짝 같은 물건을 쓰다듬으며 빌었다. 다시, 작게 달그락대는 소리가 났다. 철컥, 자물통 열리는 소리가 난다. 산은 고개를 들었다. 허겁지겁 그가 뒤주 뚜껑을 밀어 올렸다. 딸그랑, 나무 궤짝 바닥에 열쇠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산은 손을 밀어 넣어 그 안에 있는 이를 꺼내려 했다. 손끝에 열기를 견디다 못해 축축한 몸뚱아리가 닿았다. 신음하는 소리, 내젓는 손, 젊은 얼굴. 그러니까, 스물일곱 살의 이가 뒤주 안에 담겨 있다.

 

드디어 꺼내었다. 기어이, 뒤주 안에 갇히었던 이를 꺼내 든 서른일곱의 왕은 열 살 아이처럼 울었다. 마구 울며 빌었다. 헐떡이며 그 뺨을 쥐었다. 그가 빈다. 눈 좀 떠보시옵소서. 식은땀에 젖은 이가 눈 뜨기를 원하며, 제게 말 한마디라도 다시 돌려주기를 바라며. 이제 산은 그가 자신의 신하인지, 아비인지 몰랐다. 그에게는 오로지 뒤주 안에 갇힌 이를 꺼내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이처럼 울며 빌었다. 눈을 떠달라고. 누군가 가져 온 물그릇을 그 입술에 들이 밀며 간곡히 부탁했다. 물을 가져왔으니 부디 마셔 달라고. 이제 저곳에서 나오셨으니 물을 드셔야 한다고. 그는 죽어가는 아비를 붙잡은 자식처럼 울었다. 품 안에 안긴 이가 몸을 뒤채인다. 입술을 떼었다. 눈이 뜨여진다. 임금은 눈을 홉뜬 채 그 양뺨을 손으로 감싸 들었다. 일순 그는 외쳤다. 아바마마, 아버지, 아버지. 소자이옵니다. 소자가 물을 가져왔사옵니다. 꺼져 가는 목소리로 그 몸뚱이의 주인이 답한다.

 

 

“갇힌 것을, 꺼내어. ... 주시니, 성은이. ...”

 

 

그는 보았다. 뒤주의 뚜껑이 활짝 열리어 있음을, 칠월 햇살 얹어진 어깨에 닿아 있었던 저 두 손을, 그는 기어이 그 안에 갇힌 이를 꺼내었던 것이다. 기어이! 스스로 뒤주 안에 들어갔던 신하가 이제 웃는다. 산은 양 손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온기가 도탑다. 기어이 꺼냈구나. 임금은 되뇌었다. 칠 월 뒤주 안에 들었던 스물일곱의 몸뚱아리를. 이제 아무도 갇혀 있지 않다. 뒤주는 비었다. 그 안에는 아비도, 세자도, 신하도, 그리고 세손도 없다. 아무도 없다. 텅 비었다. 임금이 꺼내었다. 땀에 젖은 손이 산의 뺨 위에 얹어진다. 그제야, 임금은 그가 자신의 신하임을 보았다.

 

 

“...... 내 경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부디,”

 

“경의 골육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곁에 두리라.”

 

“만천명월萬川明月, 되시어.”

 

“내 그대 말한 대로 달 되겠다. 물가가 될 터이다.”

 

“성수무강聖壽無疆, 하시옵고. …….”

 

 

그 말을 하는 입술이 시퍼렇다. 비명처럼 누군가 질러 들었다. 비상砒霜이다! 스스로 독을 삼켜 들었다! 산은 눈을 번히 뜬 채 고개를 휘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외쳤다. 품 안의 젊은 신하는 이제 눈꺼풀 가누지 못하고 파르르 떨며 눈을 감는다. 와르르, 손이 뻗어져 임금을 끌어당기고, 그 대신 의원들이 뛰쳐나간다. 산은 외쳤다. 놓아라! 모두가 그를 놓았다. 의원이 맥을 짚었다. 고개를 젓는다. 그 앞에 왕이 꿇어앉았다. 아. 고개 늘어진 그 이가 돌바닥 위에 누웠다. 산은 울었다. 어긋났다. 모든 것이 아주 어긋나 버렸다. 내뻗은 손을 제때 잡지 못하여 그만 이리 되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분명 이리 되지 않았어도 될 일이다. 그러나 어찌할 바 없다. 군왕 이산과 신하 정약용의 조선이 바로 지금인 것을.

 

그리하여 군주는 신하를 먼저 보낸 채 엎드려 울었다. 자신의 빈 곳 채우려 하였으나 내쳐진 그 마음을 이제는 알기에. 그 작은 옥獄속에 자신을 가두었던 신하를 보았기에. 그렇게 기어이 제 손으로 그 안에 갇힌 이를 꺼내 들게 만들었는데. 이 발칙한 이는, 아니, 충직한 이는. 부르고 물어도 대답을 내어 주지 못함에. 신하가 보낸 마지막 마음 앞에서 그렇게 울었다. 궁궐 연못물이 떨리고, 해도 그 얼굴을 숨긴다. 그날 밤 조선은 기어이 달이 밝았으리라. 그러했으리라. 죽음 보내는 군왕의 마음처럼 깨어 환해졌으나 또한 쓸쓸했으리라. 군주가 때를 놓침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달 또한 알기에. 한 비극悲劇 앞에서 감히 밝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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