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쓰기.

냉소는 나의 힘.

20240430, 쓰고 싶은 것을 쓴다는 일에 대하여.

나는 언제나 냉소를 무기로 삼아왔습니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죠. 왜냐하면 세상의 어떤 이들은 따뜻한 시각보다 차가운 시각을 지니는 일이 더 쉽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온기를 가진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불태워 그것으로 열을 내는 일이지만 차갑게 식어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우리는 미지근하게, 혹은 조금 차갑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무언가를 바라볼 때에 뜨겁지 않게 보는 것은 분명 힘을 덜 쓰는 일일 겁니다. 그래서 쉽습니다. 그래서 잔인하기도 하며, 동시에 예리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분석과 해체는 늘 나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때의 지향점은 저널리즘이었으니까요. 저는 현상을 두고 그것을 조각조각 나누었습니다. 전체를 보고서, 부위를 판단하여 그것에 든 지방, 근육, 힘줄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체된 조각들을 두고서 전체에 대한 말을 나눕니다. 언제나,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저에게 해체를 요하는 것들처럼 보여졌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반드시 냉소를 기반에 둡니다. 저의 펜은 차갑디 차가웠고, 종이 위로 검은 선들이 나보다 거대해 보이는 세상을 감히 작게 나누어 기사 하나, 문장 하나, 단어 하나로 압축해낼 때마다 저는 수행해낸 일들에 대한 재미를 느꼈습니다. 즐거움이요. 세상에 대해 분석하고 알아간다는 어떤 습득적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살아남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세상은 나보다 거대해 보였으니까요. 삶은 정말이지 무거운 것이고, 사람들이 각자의 투쟁을 지고 있으며, 죽음은 그 투쟁을 더더욱 육중하게 만듭니다. 그 무게감 앞에서 나는 냉소했습니다. 감히 나누어 내고, 파악하여 나의 것으로 삼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누어 놓으면 더 이상 무섭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그건 냉소로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무엇이든간에 나는 해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나의 무기였습니다. 여전히 그렇습니다.

냉소를 무기로 삼는 자들은 종종 함정에 빠집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차갑기는 너무도 쉬운 일이거든요. 물론 기술적으로야, 그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긴 했습니다. 훈련과 수많은 실패가 필요한 보통의 글쓰기처럼요. 해체는 애매할 수 없거든요. 제대로 나누어 놓지 않으면 전체의 형태마저 망가집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펜을 쥔 손을 그저 놓아두기만 해도 괜찮습니다. 따뜻해지기 위해 연료를 보충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래서 간혹 온기에 대한 것을 잊어 버리기도 해요. 나를 뜨겁게 달구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요. 말하자면 오만함입니다. 내 손에 들린 예리함에 취해, 그것이 나의 손에 들린 무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무기가 차갑다고 하여 나의 손까지 차가울 이유는 없는대도요. 그렇게 예리함이, 그 날카로움이 마치 나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느낍니다. 세상을 마주할 때 냉소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아무 것도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처럼 굴어요. 그건 그런 오만함에서 나온 태도이겠지요. 적어도 저 자신에게는 그렇습니다. 혹은 영향을 받고 싶지 않으니 냉소라는 무기로써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해체해 두려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함정에 빠져 차가운, 혹은 미지근한 상태로 너무 오래 머무르면 열기를 만들어 내는 법이 희미해집니다. 내가 무엇을 태워 온기를 만들었고, 열정은 어떻게 만들었던 것이며, 내가 쓰던 나의 연료는 무엇이었는지 말이에요. 글쓰기라는 노동이 과연 연료 없이 돌아갈 수 있을까요? 발전소를 돌리는 일에 열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는 생산할 수 있지요? 냉소란 건 그래서 무서울 때가 있는 겁니다. 잊는 순간 글쓰기가 표류하기 시작하거든요. 나는 어떻게 뜨거워질 수 있었던가? 어떤 열정을 가지고 글을 썼지? 요새는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무엇을 쓰고 싶었고 어떻게 쓰고 싶었는지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만 같아요.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그 철저한 차가움의 펜을 쥐었는데, 손이 차가우니 펜을 쥔 손의 감각이 떨어집니다. 저절로 써내는 일에 대해서도 쩔쩔 매고 있습니다. 나의 손이 다시 따뜻해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것을 고민합니다.

이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손에 쥔 나의 익숙한 힘, 세상에 마주하여 들고 있던 무기에 대한 ─공격적이기 짝이 없는 태도와 함께─ 또 다른 수용과 변화를 이뤄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겁니다. 과연 나는 계속해서 이 힘을 가지고 세상을 마주해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냉소라는 것은 겁쟁이의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항상 두려우니 해체하려 들고 영향받지 않으려 분석하던 류의 인간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냉소를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는 사실마저 그런 저를 증명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글쓰기는 항상 인간 그 본질과 직결되니까요. 이렇게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변화의 징조이려니 생각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그것조차 고민하지 않고 머무르고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굳어지는 일에 대해 지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또한 알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 글마저 냉소에 기대고 있을 겁니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저 자신을 나누어 해체해 보려 하는 것이니까요. 동시에 저의 약점을 고백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냉소를 힘으로 삼아온 내가 지금 함정에 빠져 있다고요. 온기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 잊었습니다. 너무도 오래 차가웠던 걸까요. 그래서 요사이의 제 글이 저널리즘의 뿌리로 회귀하려는 것 같습니다. 창작이란 일이 힘겨워지니 상대적으로 본래 편했던 행태로 돌아가려 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저 스스로가 인물을 창작하고 ‘말’을 정립하여 그것을 언어의 형태에 담는 일에는 반드시 엄청난 뜨거움이 필요합니다. 그 글쓰기를 추동하는 힘은 냉소일 수 없습니다. 분석은 형상을 나누어 해체하는 일이지만 창작은 형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니까요. 조각부터 시작하여 거대함을 향해 가는 골격 위에 입체적인 인물들을 덧붙여야만 합니다. 부분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요. 그렇게, 본디 내가 알던 글쓰기에서부터 거꾸로 가는 과정을 배우다 만 저는 헤메입니다. 투쟁하고픈 마음은 여전히 제 안에 있습니다.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요. 그것이 두려움을 잊게 만들어 주지는 않지만, 용기는 만들어 주었습니다. 감히 거대함 앞에 해체를 들고 나타날 수 있는 생각은 꾸준히 제게 많은 것을 주었고, 그 과정들을 뒤에 두고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엄두는 아직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냉소는 여전히 저의 힘입니다. 저의 무기입니다. 어느 언론사 부장의 말마따나, “펜은 너무도 차갑기 때문에 그것을 쥔 손은 따뜻해야만 한다.”는 말이 과연 저널리즘 아닌 곳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제가 사랑한 작가들은 모두들 지극한 사랑을 품고 생산해내고, 창작해내던 사람들이었는데. 저는 그들의 문학을 동경하면서도 너무 다른 방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군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처럼, 그들과 같이 창작하는 일은 그다지 바라지 않는가 봅니다. 저의, 나만의 방식으로 써내고픈 나의 고집이 이러한 일을 만들었나봅니다. 그렇다면 물러날 길은 없습니다. 당분간은 저는 해체할겁니다. 현상을 두고서, 전체를 두고서 나누어 내기를 생각하겠습니다. 이것이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생산이 될 때까지 질기게 손에 들고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차가움을 유지한다는 일, 그러면서도 뜨겁겠다는 일은 불과 얼음의 공존이며 화학작용으로 수증기든 녹은 물이든 어쨌든 뭔가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겠지요. 모순점 두 개를 가진 채 창작을 생각한다면 그 과정은 힘들 것이 분명합니다. 온전히 차가운 채 그대로 놓아져 있는 일보다는 어렵겠지요. 항상 어려운 길을 생각해야만 한다고, 그렇게 저 자신에게 말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다시 떠올립니다.

나의 차가움이, 두려움에 의한 해체가 아닌 열정에 의한 해석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다시 한 번, 쉽게 하는 냉소가 아닌 어려운 냉소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답안 하나를 정리해 두고서. 다시 저를 부추겨 보려고 합니다 뜨거움을 찾아서요. 그러므로, 앞으로도 어쩌면 냉소는 저의 무기일 겁니다. 아직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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