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쓰기.

만성편도염 같은 새끼

욕을 빼고는 말을 할 수가 없는 시절에 부쳐.

욕을 한다는 건 좀 어려운 일이다.

물론 화가 나거나 놀라면 입에서 비속어 한 두어 개 쯤 튀어나올 수 있다. 누구나 살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지 않는가. 가장 기본적인 ‘씨발’부터 시작해서, ‘미친’, ‘존나’, ‘염병’…… 하여튼 종류는 많다. 작금의 시대에는 정말이지 욕을 안 하고 살기가 어렵다. 내가 아직 번뇌 많은 중생인 탓도 있겠지만. 실은 난 석가모니 부처님이 당장 이 곳 대한민국에 오신다면 욕을 한 마디 이상 하실 거라고 믿는다.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말이다. 왜, 예수님께서도 욕을 하시지 않았던가. 다만 우리가 지금은 그것을 욕설이라 느끼지 못할 뿐이지.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니, 현대 인류인 내가 듣기에는 다소간 품격까지 느껴지는 모독이다. 물론 그 말을 들은 독사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생각만 잘 해보면 욕설이란 건 어렵지 않다. 남을 모독하는 방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재미난 흥밋거리나 다름없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 많고 많은 단어들 중에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상황에 대한 지긋지긋함을 한껏 담아 쏴붙일 수 있는 것을 고르기가 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욕설들은 남을 향한 혐오의 기반 위에서 내뱉어진다. ‘지랄’이라는 말은 뇌전증 환자들의 발작에 빗대 사람의 행태를 격하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병신’이라는 말은 오래도록 내려온 장애인 혐오에 기반한다. 예시를 들자면 많으나 그것들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냥 두 가지만 적겠다. 이것들의 중심에는 비정상성에 대한 혐오가 있다. 사회의 틀에서, 정상과 보통의 틀에서 벗어난 존재들을 비하하고, 그것을 또 누군가에게 혐오와 공격의 의도를 담아 내뱉는 일은 정말이지 옳지 않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분노라는 흔한 감정 하나를 표출하기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비하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그럴 필요 따위도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누군가를 욕하고 싶어도 나는 그런 단어들을 쓰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영미문학 번역본이나 라이센스 뮤지컬에서 그러하듯 다소간 슴슴한 표현들을 쓰고 싶지는 않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나의 감정은 ‘젠장!’이나 ‘이런, 망할!’같은 짦고 굵은 느낌표의 탄식성 소리로 뿜어낼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분노란 감정상 흔한 것이지만 또 상황상 그다지 흔하지 않아야만 하는 감정이기에. 물론 ‘젠장’과 ‘망할’에도 강렬함은 있고 또 어떤 모욕적 의사는 담겨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두 언어를 거치는 과정 속에서 다소간 순화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젓갈을 세 종류 미만으로 넣은 김치를 먹은 전라남도 사람의 얼굴이 되어 미간에 힘을 주게 되는 것이다. 설명하자면 음, 뭔가 빠진 것 같은데. 하는 얼굴이다. 적절한 욕설을 쓴다는 게 이토록 힘겹다는 건 지금에 와서야 처음 생각해 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욕을 안 하고는 못 배길 상황이라서 나는 고민했다. 가슴 속에 끓어넘치는 이 감정을 언어로 하여금 살려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무언가가 필요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보통의 것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찾지? 이 글의 제목은 그래서 지어졌다.

내가 왜 ‘욕하기’라는 행위에 굳이 만성편도염, 이라는 단어를 끌고 왔는지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좀 길다. 원래 나 같이 말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버릇이 있어서 듣는 사람과 읽는 사람들 모두를 골치아프게 한다. 각설하고 시작하자면 이렇다. 2년 전에, 한 항구도시의 작은 원룸에서 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원룸은 대한민국 인구 밀집지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구조의 방이었다. 전세금 5천짜리. 월셋방이 넘쳐나는 지역에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을 맡기고 방을 빌린다는 건 참 운이 좋은 일이었다. 그마저도 대출에 기대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방을 둘러보면 그냥 살림살이 그대로가 모두 눈에 들어올 만큼의 크기였다. 작디작은 화장실, 그보다 더 작은 부엌과 인덕션 밑에 옹색하게 숨어 있는 세탁기. 한 구석에는 침대가 있고 남향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 볕은 잘 들었지만, 옥상 바로 아래 있는 방이었기 때문에 추웠다. 그것도 매우.

항구도시란 원래 바람이 거센 곳이다. 바닷가의 바람이 얼마나 차갑고 축축한지는 겪어 본 이들만이 알 것이다. 소금기를 담고 있어 그 바람을 맞는 금속들은 쉬이 녹슬고 사람은 늘어진다. 그 방에서 겨울과 여름을 나기란 쉽지 않았다. 여름에는 그나마 쉬웠다. 관리비를 전부 감당해야 했던 나는 겁이 나 에어컨도 제대로 틀지 못했으나, 그래도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불곤 했으니까. 일을 나갈 때 창문을 열어 놓고 햇볕만 가려 놓는 작은 수고를 치르고 나면 저녁에는 살 만 한 온도를 유지했다. 문제는 겨울이었다. 전깃세는 견딜 만 했지만 난방비가 문제였다. 왜냐고? 누군가는 기억하실 것이다. 그 즈음에 말이다. 작금의 이 ‘욕설에 대한 고찰’을 쓰게 만든 어떤 정부의 수장이 주택가스요금을 일년에 무려 네 차례나 인상하였고, 수많은 이들이 난방비 폭탄을 얻어맞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그 작은 방에 살던 나다.

관리비를 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주 낭비만 하지 않는다면 보통 5~6만원 선에서 처리가 된다. 좀 많이 썼다 싶으면 8만원에서 10만원 내외가 나올 것이다. 인터넷, 전깃세, 수도세, 난방비를 모두 합해서. 내가 살던 방은 오래된 건물에 있었고 그래서 단열이 잘 안 되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난방비를 지출해야 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예상이 되는 사건을 ‘폭탄’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 달에 나는 난방비만 15만원을 냈다. 가스요금만 15만원. 작은 금액처럼 보일지 몰라도 당시의 나 같은 알바노동자에게는 턱이 떨어지는 금액이었다. 내가 이틀을 꼬박 일해서 벌어야 하는 돈이다. 말 그대로 폭탄처럼 터져버린 난방비에 나는 울분을 토하며 배부르고 등따시게 살고 있을 그 사람을 욕했다. 별별 소리를 다 써가면서. 그리고 대책을 세웠다. 남은 겨울은 최대한 가스를 아껴 써야겠다고.

그리고 그 해 겨울은 추웠다. 이가 갈리게 추웠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매일 아침마다 이를 딱딱거리며 일어나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추웠다. 폭설이 쏟아지고 한파가 찾아왔던 겨울에 난방비 폭탄이라니. 보일러를 안 틀 수는 없으니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방바닥 온도를 체크하고, 미지근하게 느껴질 정도로만 온도를 맞추어 놓고. 전기장판 위에서 이불을 둘둘 두르고 움직이지 않는 길을 택했다. 너무 추워 살 수 없을 때는 인덕션으로 물을 끓였다. 방 안 공기를 데우려고. 그렇게 아껴가며 사니 난방비가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청구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딱 한 달만 버티면 되겠다고 싶던 때에 날씨가 좀 풀렸다. 보일러를 끄고 자도 되겠구나!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날 보일러를 끄고 잤다.

다음날 나는 급성편도염에 걸렸다.

친구와 서울 어딘가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 날 나가지 못 할 것 같다고 친구에게 연락했다. 굳이 친구는 내 방으로 찾아와 열을 재고 죽을 끓인 다음 억지로 내게 먹여 지하철을 태웠다. 보호자격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그 친구네 집 바닥은 정말로, 굉장히 따뜻했고. 나는 이불 하나만 덮고도 잠을 잘 수 있었다. 한 10시간 즈음. 다음날 친구는 나를 끌고 병원에 데려갔고, 내 편도를 들여다 본 의사는 탄식을 내뱉었다. “많이 아팠겠는데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같다. “어쩌다 그랬어요.” 친구가 나 대신 답했다. “보일러를 끄고 잤대요.” 의사가 다시 탄식했다. “이 날씨에요?” 그러자 친구가 대신 답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 앞에서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구절절히 설명하는 건 조금 이상할 터였다. 뭐라고 하겠는가.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요. 지난 달 관리비를 봤는데 가스요금만 15만원이 나온 것 있죠. 이건 제 탓이 아니에요. 보일러를 끄고 잘 수밖에 없었어요. 가스요금을 아끼려고 그런 거에요. 정말이에요. 제 탓이 아니라 누가 산업용 가스 요금을 내렸으면서 주택 가스 요금은 한껏 올려 둬서……, 하는 식의 항변을 해 볼까 싶긴 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이상하다는 상식 정도는 내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날씨가 풀린 줄 알았어요.”

날씨가 풀리긴 개뿔이. 나는 그 날 이후 일주일이 넘게 골골댔다. 친구가 고맙게도 값을 내 주고서 맞혀 준 주사가 아니었으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환자로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난방비 폭탄과 함께 찾아온 편도염은 그 이후로도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피로와 추위와 스트레스에 센서처럼 반응해 내 목을 쿡쿡 찔러대고 열을 올려대는 만성 질환이 되어 내게 착 들러붙은 것이다. 그 겨울의 망령이 아직도 내 머리꼭대기 위를 맴돌고 있는 것 같다.

이 지긋지긋함을 없애는 방법은 기실 아주 간단하다. 현대의학의 축복을 받아 편도절제술을 시행하기만 하면 안전하게 이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고, 수술비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받쳐주질 않는다. 지금 나는 실비보험이 없다. 폐쇄병동 입원 기록 때문에 가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원할 시간마저도 마땅찮다. 그러니 잘 감시하고 때때로 면역력을 올려 견제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지난한 상태에 정확히 끼어 있는 것이다. 싹둑 잘라내기에는 소위 ‘건덕지’가 모자라다. 분명 내게 불편감을 안겨 주고 있으며, 내 일상 생활과 활동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도 가끔은 안하무인격으로 밀고 올라오는 이 염증을 내가 언제까지 견뎌야 하지? 그렇게 부르짖다가 나는 깨달았다. 바로 이거구나.

“내 일상 생활과 활동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도 가끔은 안하무인격으로 밀고”나가는. “싹둑 잘라내기에는 건덕지가 모자라”지만 잘라낼 필요성이 분명히 있으며, 지난 이 년간 “지난한 상태에 정확히 끼어”있게 만든 무언가. 나의 분노가 향할 핵심적인 누군가.

결정적으로 내게 인후통과 두통과 열이라는 불유쾌한 인생의 동반자를 안겨 준 어떤 인간에게. 내가 분노를 쏟아부을 수 있는 욕설이 있다면 이 말이 될 것이다. 만성편도염 같은 새끼. 내 안에 담긴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언어로 나는 이 문장을 택할 것이다. 이 만성편도염 같은 새끼. 아주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다. 뚝 잘라내 버리고 싶고, 다시는 내 인생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료폐기물처럼 며칠 보관하다가 정치라는 본인의 기반 위에 다시는 고개 들고 올라오지 않게 영영 매립되었으면. 그게 다다.

특정한 질환을 욕설로 쓰거나, 비하하는 행위 또한 혐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일상 생활 속에서 그러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조심하고 있다. 질병, 그러니까 아픔은 죄악이 아니며, 아프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나처럼 만성편도염을 가지고 계신 어떤 분들은 나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실 수도 있다. 그러니까 굳이 이 길고 긴 글을 쓴 목적은 바로 그 곳에 있는 것이다. 욕을 하지 않고는 말을 할 수 없는 시대에 부쳐, 내가 찾은 가장 적절한 표현법이 바로 “만성편도염 같은 새끼”라는 것을 개괄하여 설명하려는 것. 내게 윤석열은 만성편도염 같은 새끼다. 그 말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이 글은 짧은 문장 하나에 담긴 나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자 하는 시도였으며 그래서 다소간 가벼운 투로 쓰였음을 알린다. 이 시국을 다 함께 잘 이겨내자. 목에 천을 두르고 핫팩을 들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자. 언젠가 나는 편도절제술을 받을 것이고. 이 지긋지긋함을 떨쳐낼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했으며 그러기 위해 현재를 가열차게 살 것이다. 아무튼 누군가가 내 편도보다 먼저 떨어져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닫고자 한다. 건강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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