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하얀 가운

#로데즈_아트치료_전력60분

주절주절 by Ζu
18
0
0

“박사님 의사 맞아요?”

“무슨 뜻이죠.”

박사는 코끝에 걸쳐진 안경을 고쳐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환자들이라면 으레 그렇지만 이 환자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난데없이 가면의 의미를 묻질 않나, 물감이 망치라고 표현하질 않나. 이번에는 뭐, 의사가?

“가운 입은 걸 못 봐서요.”

“왜요. 보고 싶은가요? 당신은 의사 가운 안 좋아하잖아요.”

“제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나요?”

“그렇게 쓰지 않았나요? 정신병리학자들은 쿵쾅거리는 고릴라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네. 고릴라 무리라고 했지, 가운을 싫어한다고는 안 했는데요.”

“오해를, 좀 했네요. 미안합니다, 아르토.”

“네. 미안해하세요.”

빠득.

누군가의 가면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누구의 가면도 깨지지 않았다. 중지 끝으로 안경을 재차 고쳐 쓴 박사가 입매를 끌어당겨 웃었다.

1945. 10. 07.

우울증, 분열증, 정신착란, 피해망상, 이중인격장애, 편집증.

호전된 증세 없음.

정신발작 증세 악화. 식사 거부.

환각과 환청. 점점 구체화되어 가고 있음.

박사의 펜이 종이 위에 아르토의 상태를 분석해 나갔다.

앙토냉 아르토, 박사L이 된다.

박사L이 기록을 마치고 고개를 들면 흰 환자복을 의사의 가운처럼 걸치고 바른 자세로 서 있는 아르토와 눈이 마주친다.

아르토

당신은 당신의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박사L

아르토,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아르토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당신에겐 심각한 불안증세가 있어요.

박사L

아르토. 당신은 의사가 아니에요.

아르토, 자신의 대본과 고흐의 그림엽서를 찢어 알약 모양으로 작게 뭉친다.

아르토

약을 처방해 드리죠. 신경안정제와 항불안제를 드릴게요.

“당신이 먹었던 약이군요.”

둥근 모양으로 뭉쳐진 ‘알약’들을 손바닥 위에서 굴려보던 박사가 코트 주머니에 쓰레기를 넣고 정상적인 약을 꺼냈다.

“아르토, ‘진짜’ 약을 먹을 시간이에요.”

아르토

페르디에르. 당신은 더 이상 의사가 아니에요. 현실을 직시하세요.

“연기하지 마세요. 당신이야말로 더는 배우가 아니에요. 거부해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아르토. 입 벌려요.”

박사L, 아르토의 팔을 잡고 입에 약을 넣는다.

아르토, 저항한다. 저항하고 싶다. 그러나 이 틀어약을 뱉을 수 없다. 극장에서 병실로, 발목혀 끌려 간다. 아르토의 흰 가운은 도로 하얀 환자복이 된다.

“…….”

“검사할게요, 입 다시 벌려요.”

“…….”

“좋아요. 잘했어요. 자꾸 거부하면 안 됩니다, 아르토?”

“박사님은 언제나 우릴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글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 막.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