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Ζu
“병을 치유하는 것은 범죄이다. 그것은 삶의 존재를 억압하는 것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병자이다.” - Artaud 앙토냉 아르토. 로데즈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위험도가 가장 높고 까다로운 환자. 종종 원인불명의 액팅 아웃을 일으키며 발작과 실신의 빈도도 잦다. 하여 이 환자의 주치의는 Dr.L. 로데즈의 병원장이다. 1) 아르토의 대본 혹은 박사L의
“박사님 의사 맞아요?” “무슨 뜻이죠.” 박사는 코끝에 걸쳐진 안경을 고쳐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환자들이라면 으레 그렇지만 이 환자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난데없이 가면의 의미를 묻질 않나, 물감이 망치라고 표현하질 않나. 이번에는 뭐, 의사가? “가운 입은 걸 못 봐서요.” “왜요. 보고 싶은가요? 당신은 의사 가운
고흐의 자연은 단순한 초록색이 아니다. 그의 자연에는 옅은 연두색부터 진한 녹빛까지 온갖 초록색이 들어있으며, 붉은색과 노란색, 검은색, 파란색, 흰색, 보라색, 수천 수억 가지의 색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고흐의 붉은 자연을 보고 미쳤다고 말한다. 아르토는 고흐를 통해 자연을 다시 본다. 아르토의 자연은 잔혹하다. 포도주 대신 피로 적셔진 붉은
중력! 너희들은 중력이다! 우리가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헐뜯고, 물어뜯고, 으르렁거리는 존재들! 박사는 그들을, 아르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일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므로 그 부분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관습과 제도. 그 둘은 문명을 이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아니던가. 그걸 어째서 중력으
아르토가 고흐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한 지 사 년이 흘렀다. 그 말은 곧 아르토가 죽은 지 삼 년이 흘렀다는 뜻이다. 박사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그들을 이해해서 다시 만나 대화하고 싶었다. 아르토가 고흐를 만나 대화했듯, 자신도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돌렸다. 돌리고 또 돌렸다.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르토
앙토냉 아르토의 몸뚱이는 아주 앙상해 볼품이 없었다. 최소한의 근육과 살 위를 피부가 겨우 덮은 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러질듯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으니. 그럼에도 그는 세상의 모든 것과 끊임없이 투쟁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온몸을 부딪쳤다. 마치 그의 뼈가 부러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몸이 부서질 염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아르토! 철퍽 탁 스윽스윽 진정해요! 쾅 끼이익 탕탕 우당탕 가만히, 좀, 앉아봐요, 아르토! 아하하하! 아르토 제발! ... 그래요, 침착하게……. 스흡 하 하하! 아르토! 점심즈음에 하는 상담은 언제나 정신이 없다. 아르토의 광기가 하루 중 가장 치솟아 있을 때이며 육체가 가장 활성화되어 있을 시간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다
까아악 까악깍까악 까악깍깍깍 까아아악까악 까악까아악깍 까아악까아악깍
유채색의 화실. 또는 검은색의 극장. 고흐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린다. 아르토는 이곳에서 고흐를 만난다. 박사, 등장. 고흐. 당신은 정상적인 자연을 그려야 합니다. 아르토. 여긴 극장이 아닙니다. 당신도 배우가 아니고요. 박사님. 전 언제나 자연 그대로를 그리고 있어요. 박사님. 당신도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인정하세요. 고흐. 정신착란 증세가 악화
그의 용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아르토를 치료하려면 고흐를 알아야 한다. 그는 고흐의 죽음을 용기라고 불렀다. 촛불에 손을 그을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귀를 자른 것을 세상에서의 탈피로 읽었으며 총으로 복부를 관통한 것을 용기라고 칭송했다. 어째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고흐를 동경하는 건가? 그러나 고흐를 동경한다기에는……. 앙토냉 아르토는 종
아르토는 연극의 본질을 찾고 싶다. 아르토의 손이 연극을 둘러싼 막을 뚫고 복부로 침범한다. 둥그런 구체의 본질을 꺼낸다. 아르토의 손이 본질의 내부로 다시 침범한다. 또다시 둥그런 구체의 본질을 꺼낸다. 본질의 본질을, 본질의 본질을 끄집어낸다. 더는 손을 넣지 못할 만큼 작아진 본질을 눈높이에서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건 어디에서 왔을까? 이건 무엇일까
‘치료될 수 있을까?’ 박사가 스물세 번째로 전류를 흘려보내며 한 생각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일 만큼 상태가 호전된 것이 보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아르토의 증세는 악화되어만 갔고 전류를 흘려보내도 더는 완화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아르토는 발작을 하고 있다. 전류가 아르토의 팔과 다리를 공중으로 솟구치게 만든다. 환상을
조명이 밝아진다. 아르토를 샅샅이 비추는 태양처럼. 아르토, 허공을 향해 손짓한다. 마치 자신의 극장에선 태양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무대가 어두워진다. 아르토가 암전에 숨어버린 것처럼. 태양을 잃은 해바라기가 힘을 잃는다. 고개가 땅으로 툭 떨어진다. 고흐의 해바라기 역시 빛을 잃고 시들어 간다. 아르토, 망설인다. 아르토, 망설인다... 아르토, 망
쿵! 아르토가 크게 뛰어올랐다 추락한다. 쿵! 아르토가 다시 크게 뛰어올랐다 추락한다. 쿵! 바닥에 금이 간다. 쿵! 쩌적 갈라지기 시작한다. 쿵! 세상을 이루는 표면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린다. 추락한다! 모든 세계가 뒤틀린다. 박사는 일어난다. 바닥에 혹은 천장에 놓인 침대에서. 아니, 원래 벽면에 붙어있어야 했던가? 아침의 일과를 성실히 수행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