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로데즈_아트치료_전력60분
아르토는 연극의 본질을 찾고 싶다.
아르토의 손이 연극을 둘러싼 막을 뚫고 복부로 침범한다. 둥그런 구체의 본질을 꺼낸다. 아르토의 손이 본질의 내부로 다시 침범한다. 또다시 둥그런 구체의 본질을 꺼낸다. 본질의 본질을, 본질의 본질을 끄집어낸다. 더는 손을 넣지 못할 만큼 작아진 본질을 눈높이에서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건 어디에서 왔을까? 이건 무엇일까? 연극의 근본적인 모습? 아르토의 몸이 한없이 작아진다. 먼지처럼 작아진 몸이 한없이 가벼워져 중력에서 벗어난다. 공중으로 둥실 떠오른 아르토가 본질의 안에 첨벙 뛰어든다.
하얀가? 검은가? 붉은가? 붉다! 타오르는 불길처럼, 울컥대는 핏줄기처럼, 따스한 황토처럼, 뜨겁게 넘실대는 태양처럼 붉다. 태초의 연극은 사냥을 기원하는 제의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 않았나. 제사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낮에 시작된다. 열기를 받은 붉은색 흙 위로 제물이 뉘어져 있다. 제물의 심장에서 피가 경쾌하게 뿜어져 나온다. 제의의 마무리는 넘실대는 불길로 제물을 태워 신에게 연기를 바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배우는 원형 무대에서 연기를 한다. 하나 혹은 둘. 코러스가 등장한다. 연기를 하던 배우가 무대 밑으로 내려간다. 대신 무대에는 사형수가 올라온다. 배역의 처형은 사형수가 대신한다. 궁금하다. 사형수로서 사형당한 것일까, 배역으로서 처형당한 것일까? 어차피 죽음이니 차이가 없지 않으냐고? 아니.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무대 장치의 신이 내려온다. 연극이 막을 내린다.
잠시 암흑의 시간이 지난다. 검은색은 아니다. 무無색의 암흑기다.
셰익스피어가 등장한다. 영국과 프랑스와 에스파냐와 독일. 암흑의 시간을 거친 사람들에게 이 연극들은 분명 혁명적이었겠지. 극작가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배우와 가수들도 몸값이 높아진다. 온갖 시적 요소가 쏟아져나오고 낭만적인 세레나데를 부른다. 모두가 아름다운 인간에게 집중한다. 조각나고 더럽혀진 것은 눈 밖으로 치워버린다.
평범한 인간이 무대 위에 올라온다. 자연 역시 무대 위에 올라온다. 기술 역시 무대 위에 올라온다. 인간은 자연과 대립하기도 하고 기술과 대립하기도 한다. 무대 위에 무엇을 올리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 대립한다. 싸운다. 무대 위에서 연극이 끌려내려 간다.
제4의 벽이 두꺼워진다. 대화와 논리로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연극이 이어진다.
아르토, 제4의 벽을 향해 돌진한다! 몸이 다시 커진다! 무거워진다! 제4의 벽 안으로 아르토가 손을 뻗는다!
아르토의 크기를 이기지 못한 벽이 와장창 부서진다. 연극의 본질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난다. 이제 본질은 찾을 수 없다.
아르토는 수십만 개의 얼룩으로 조각나 바닥에 떨어진 연극의 본질을 주워 모은다. 꾹꾹 눌러 내키는 모양으로 빚는다. 모양이 고정되지 않은 부정형의 물체가 아르토 연극의 본질이다.
아르토, 연극의 본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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