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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걸 원하나?

진혼극鎭魂劇

주절주절 by Ζ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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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가 고흐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한 지 사 년이 흘렀다. 그 말은 곧 아르토가 죽은 지 삼 년이 흘렀다는 뜻이다.

박사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그들을 이해해서 다시 만나 대화하고 싶었다. 아르토가 고흐를 만나 대화했듯, 자신도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돌렸다. 돌리고 또 돌렸다.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르토의 희곡을 읽고, 고흐의 그림을 보고, 아르토의 에세이를 보고, 고흐의 편지를 읽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었다. 배우는 박사 본인, 그리고 아르토와 고흐의 생각들. 무대는 아르토가 생전 쓰던 병실을 사용했다.

이미 죽은 아르토가 박사의 무대 위에 올라간다. 어느 순간 아르토는 살아 움직인다. 아르토가, 박사가 불러낸 고흐도 무대 위에 올라간다. 박사도 무대 위에 올라가 자신의 연극에 참가한다.

연극은 어려웠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 찬 병실에서 나와 박사는 다시 시간을 돌렸다. 내일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삼 년의 시간 동안 박사는 연극을 반복했다. 연극의 흐름은 항상 같았으나 아르토와 고흐의 말과 감정은 항상 조금씩만 달랐다. 박사의 대사와 호흡 또한 그에 맞춰 달라졌다. 어느 날은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고, 어느 날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날이든 박사는 연극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박사는 실망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돌렸다.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돌렸다.

‘이해하지 못함을 이해한다’라는 것은 박사에게 너무 어려운 개념이다.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이해했다 하겠는가. 박사에게 ‘이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어야만 붙을 수 있는 개념이었다.

시간을 아무리 돌려도 이해할 수 없는 연극이라니. 이 얼마나 무가치한 일인가.

무의미한 또는 의미 있는 연극을 하던 박사에게 어느 순간 아르토와 고흐의 대사가 처음으로 명확히 들렸다. 무엇이 그의 귀를 틔웠을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박사 본인조차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박사는 아르토와 고흐의 대사를 들었다. 그들이 나누는 교감에 조금 더 깊이 참여했다.

우린 어쩌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구나.

아니, 난 이해했어.

...

내가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해했어.

“내가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해했어.”

박사는 이해했다. 자신이 저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해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가?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나조차도 종종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지독히 이해했다. 뼈저리게 이해했기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 이해는 이런 것이다. 그래!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어.

박사는 한발 물러나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몸통에 꽂힌 미침을 바라보았다. 수분이 날아가 작아진 그들의 날개를 바라보았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 좋도록 전시된 유리 벽 속의 아르토와 고흐를. 자신이 그들을 판에 박아 넣고 모양을 잡아 유리 벽을 씌웠다.

역겹다. 박사는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을 느꼈다. 박사는 자신이 만든 박제 속에서 걸어 나왔다. 유리 벽을 부수고 바늘을 빼 집어던졌다. 아르토, 난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을 위한 연극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섭섭한가? 섭섭하지 않다. 박사는 그들을 이해했으니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이해했으니까!

앙토냉 아르토,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받고 한없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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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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