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상

[뱅상] 늑대(개)의 유혹

썰백업 근데 이제 조금 다듬은

02:34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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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병찬 햄 냄새다."

기상호는 종종 아니 자주 이상한 소릴 했다. 냄새라고하면 조금 이상하지 않냐. 와? 다들 비냄새 풀냄새라 안카나. 니도 냄새난다. 고린내. 말을 마친 기상호가 팔을 들어 흔드는 박병찬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야!! 뒷통수가 간지럽도록 소리쳤지만 어차피 잡으려고 뛰어도 박병찬과 다시 이쪽으로 올테다.

"햄 섬유유연제 S로 바꿨죠."

"오 알아챈거 상호가 처음인데?"

일반적인 스몰토크에서 나타나는 향의 유무와 달리 개코 기상호는 예민한 후각으로,

"햄 여 정착하는거 어때요. 전에 쓰던 거보다 햄 냄새랑 조화로워가."

자주 이상한 소릴 했다.

***

"병찬 햄!!"

언제 어디서나 먼저 저를 발견하고 찾아오는 건 상호였다. 또 얼마나 먼 거리서부터 (냄새를 맡고) 뛰어온건지 숨을 몰아쉬느라 광대뼈가 크게 오르내렸다. 그렇게 급하게 오지 않아도 너보다 먼저 찾아내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상호야.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그 날의 덥고 습한 여름이 눈꺼풀 위로 잠깐 막이 졌다가 사라졌다.

발걸음 디게 빠르네. 그라도 햄이 향수 뿌려가 다행이에요.

아녔음 꼼짝없이 비 맞고 갈 뻔 해가..

다시금 떠올려도 이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가슴께는 그즈음부터 간질거리며 자꾸만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으니. 병찬은 손목 안쪽에 향수가 발린 팔을 들어 상호의 뺨에 손부채질을 해주었다. 후각이 예민한 녀석답게 목을 뒤로 쭉 빼며 이상한 표정을 한다. 하나도 안 시원해요.

"햄아 제발 비결 좀 알려줘요. 땀 냄새랑 향수는 상성이 최악아이가… 그란디 햄은 늘, 옥상에따가 햇볕 받아가 자알 말린 냄새만 난다 아입니까."

작년 여름이었다면 거리감 모를 이상하고 낯간지러운 물음에 당황스러웠을 테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병찬은 그저 웃음을 터트릴뿐이었다.

그야 형이 상호한테 잘 보이려고,

태산만큼 관리하니까 그렇지.

(여기서 잠깐 병찬은 제 말투가 조금 상호를 닮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향수에 관심이 많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고 그냥 너랑 잘 어울린다며 선물 받은 것을 그때그때 기분 따라, 생각날 때마다 뿌리던게 작년 여름 이후로 꾸준해진거다.

소낙비 사이사이 바람이 섞인 듯 시원하게 부는 향. 만날 퀘퀘한 땀 흘려대는 운동선수한테 향수선물이라니. 나중에서야 안 사실인데 선물 받은 향수는 자기 전에 뿌리는 필로우 미스트라는 거였다. 어쩐지 향이 거부감없이 편하더랬다.

작년 그날의 여름에도 그랬다. 병찬은 학교 갈 준비의 끝마침표로 필로우 미스트를 가볍게 눌러 분사했다. 오늘의 기분이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문손잡이를 가볍게 잡고 열어젖히는데 연두색 개구리가 그려진 우비를 입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작은 아이가 장화까지 신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 비온다고했던가. 나오기 바로 직전에 봤던 인터넷 날씨를 더듬다가 윗층에서 아이를 만류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날씨는 한없이 맑다고했다. 병찬이 윗층을 향해 처들었던 턱을 내림과 동시에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 비냄새 난다 지금 밖에 비 오고 있나?"

병찬이 무어라 입술을 떼기도 전에 아이는 빠르게 아랫층 계단으로 사라졌다. 아이의 무릎부터 걱정해야할지 오늘 아주 맑음뿐일 날씨를 아이의 보호자를 따라 걱정해야 할지. 저 때문에 더 크게 실망하게 될 아이를 염려하며 병찬은 뒤돌아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형아도 오늘 비가 오길 빌어주마. 누구는 우산 챙기면 비 안 온다던데 병찬의 경우는 꼭 반대여서, 가방에 작은우산 하나를 넣어가지고 나왔다. 띵. 그리고 바로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예~ 몸을 실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제게로 밀려오는 얼굴들과 연락들을 피해 학교 밖으로 나온 병찬이 길게 하품을 했다. 머리 쓰는걸 싫어하진 않았지만 역시 가만히 앉아만 있기엔 좀이 쑤셨다. 그렇다고 어제 잔뜩 굴린 몸을 미리 데울 기분도 아니어서 정처없이 걷고있는데 어느 순간 투둑. 툭. 빗방울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제 뜻대로 따라주는 날씨에 덤덤한 얼굴로 우산을 꺼내든 병찬은 하늘을 찌를 듯이 우산을 높게 처들곤 윗집에 사는 아이를 떠올렸다. 펑 소리를 내며 펴지는 우산에 부러움이 담긴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진다.

예기치 않게 쏟아지는 비에 여기저기 급한 속도로 맞부딪히는 우산들이 퉁 퉁 소리를 낸다. 게중엔 아직 떼지 못한 택이 달랑대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양 옆으로 물흐르듯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불쑥 물고기 한 마리가 병찬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끼쳐들어왔다.

갑작스레 곁에 붙어오는 친구들과 온전히 혼자 쓰는 우산 속으로 불쑥 침범해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는 병찬에게 있어서 지금 이 상황은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헉….헉.... 발걸음 디게 빠르네. 그라도 햄이...헉... 향수 뿌려가 다행이에요..허억.... 아녔음 꼼짝없이, 비 맞고 헉..갈 뻔 해가.."

"......"

들러붙은 빗방울이 앞머리를 굵게 엮고 땋아놓는 바람에, 평소보다 이마가 훤하게 드러났다. 관자놀이서부터 흘러내린 빗방울이 눈웃음 지어 휘어지는 통통한 눈가에 찍힌 눈물점을 닦아내리며 떨어진다. 여전히 눈밑엔 눈물점이 선명하다.

"...햄?"

흔들리는 눈동자가 소리를 따라 조금 옆으로 옮겨갔다. 옅은 갈색눈이 저를 다시 부르기까지 분명 아주 긴 시간 같았는데, 눈앞의 녀석은, 상호는 여전히 숨을 고르며 병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향수와 같은 향을 푹 적신채로 달달 떠는 어깨를 보며 병찬이 떠오르는데로 입술을 움직였다.

"...이건 뭐지? 늑대는 아니고. 개의 유혹?"

"...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배의 퍼스널 엄브렐라(?) 안에 먼저 성큼 침입해서 당황하게 만든게 누군데 상호는 제가 더 황당하단 얼굴을 했으나 이내 고쳤다.

"우산 제가 들게요 저도 씌워주믄 안대까요?"

영화에선 이후에 우산을 씌워줬던가. 애초에 그 영화를 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병찬은 제 눈앞에 실제로 일어난 영화같은 일에 스스로 선택지를 골라야만 했다. 영화는 전개상 늑대에게 꼼짝없이 우산을 씌워줬을 테지만 지금 눈앞의 이 비맞은 강아,개는. 예기치못한 비와 함께 나타난 현실이었고, 마주치는 눈엔 낯간지러운 영화의 한 장면을 담아 느리게 보여주었다. 그래서 병찬은 쿵쿵 뛰는 심장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감삼다 햄..!! 아무 편의점까지만 델따주심 돼요. 아니 상호야 형네집 가자. 너 옷 다 젖었잖아.

***

박병찬은 학교에서 유명인사였다, 라고 시작한다면 너무 진부하제. 글믄 만인에게 사랑받는 남자는? 이것도 비슷할테다. 으음. 눈앞에 따뜻한 우유가 담긴 머그컵을 내려다보며 상호는 제 어깨에 둘러진 조금 더 저보다 어깨가 큰 병찬의 하얀 면티에 코를 박았다. 아 이 냄새 더블 D 아이가. 마이 비쌀긴데 팍팍 쓰다니 진짜 이래가 다들 햄아 햄아 노래를 부르지. 내도 그렇고.

"에휴..."

좁은 인간관계 풀을 가진 상호가 대뜸 병찬의 우산에 뛰어들 수 있었던건 저혼자만이 특기인 개코로 내적친밀감을 높게 가지고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하는 연습 경기 중에도 쉽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않던 햄이었는데. 아니 이건 누구라도 당황해할거다. 그치만 살면서 이래가 좋은 냄새 나는 사람 첨보는데 당연히 눈길이 가고 내적친밀감이 쌓이는 건 당연한거 아이가? 이게 다 비가 와서다. 그치만 비가 이래 갑자기 안왔으믄 내 평생 여 올 일 없었겠제. 진짜 뭐라고 말해야하노...

그랬다.

상호에게 병찬이는,

늘 옷에선 섬유유연제향이 나고 뒷목을 덮은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가끔 햄이 뒷목 쓸면 좋은냄새가 은은하게 나고 가끔 반쯤 덜말라서 샴푸냄새나는 머리랑 뽀송하고 구김없는 흰티 어쩌고... ,

하루를 다 써도 모자랄만큼 그를 동경하고 있는 수많은 후배 중에 하나였다. 그러니 거무튀튀한 우산들 속에서 좋은 냄새를 뿜어대는 그를 찾아낼 수 있었던건 우연이면서도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상호 감기 걸리진 않았지?"

"옙. 근데 저땜에 햄도 다 젖었을긴데.."

화장실에서 따끈한 수증기와 함께 덜마른 머리로 나온 병찬이 넓은 소파에 무릎을 세우고 웅크려 앉은 상호의 무릎 위로 손을 뻗었다. 그렇게 앉지마~ 편하게 앉자~ 병찬이 상호의 두 다리를 덥석 잡곤 소파 아래로 천천히 팔로 받쳐서 내려놓았다. 갑작스레 닿는 접촉에 움찔한 상호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병찬을 바라보자 마주치는 그 눈이 예의, 학교와 만인이 사랑에 빠져버린 그 미소를 지어보여서, 퍼스널 엄브렐라랑 쌤쌤으로 하는 것에 저도 모르게 동의해버리고야 말았다. 그치만 저는 만지진 않았는데요. 이거 오나전 늑대의 유혹아이가. 영화 말고. 내 여기있어도 괘안겠지? 당연한 소리겠다만. 스스로도 웃겨서 웃어버린건데 어쩌다보니 타이밍이 마주 웃게 되었다. 그러자 병찬이 맞추던 눈높이를 덜컥 높이곤 부엌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 상호야 과자먹을래? 좋아요 어 햄도 콘솔 있네요! 응, 한 판 할래? 바라보던 방향이 쌍방을 띄자 친해지는건 순식간이었다.

***

역시 바로 구운 빵냄새가 맞았다. 카운터 뒤쪽으로 구워지고 포장되는 빵들을 바라보며 상호는 쟁반을 받친 손에 힘을 주어 쓸어담았다. 딱히 손이 큰건 아니었고 그냥 문득 잘해주는 병찬햄이 떠올라서. 집에 놀러가고싶은데 또 잔뜩 얻어먹기만 할까봐 제가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초인종을 누르던 상호는 제귀에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한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어라 나 햄한테 간다고 말 했던가. 아무리 친해도 선후배 예의가 있지. 순식간에 상호의 머릿속이 작년 그 날의 여름으로 회귀하면서도 여태까지의 저를 맞이해주던 병찬을 떠올리며 빵봉투를 한 번 질끈 쥐었다. 역시나 벌컥 시원스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 병찬햄 냄새다.

좋은냄새가 나는건 여느때와 다름없는데,

조금 당황스러움이 담긴 눈이 커다랗게 뜨이며 저와 시선을 부딪히려 하지 않는다. 언제나 들어오라며 딱 소리가 나게끔 마주쳐오던 눈이었는데. 느릿하게 감기는 눈꺼풀 속에서 눈동자가 안간힘을 쓰며 굴러가는게 어쩐지 조금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켜서 빤히 바라보자,

"...들어와."

살짝 저를 비껴 돌아간 얼굴에, 뺨에,

간밤 무슨일이 있었는지 진하게도 베개에 패여버린 눌린 자국이 만화책에서 본 사연 많은 무사같았다.

이젠 완전히 상호만을 위해 사다둔 강아지가 그려진 흰머그컵에 우유를 내온 병찬은 식탁 위에 하나둘 올려지는 빵을 보면서 어쩐지 안절부절 돌아다니는 모양새다. 내가 너무 갑자기 오긴했제. 근데 딱히 주변이 어떤지는 신경쓰지 않는 편이라 상호는 이번엔 다 꺼낸 빵을 자르기에 열중했다.

"햄 먼저 드세여."

"어,응. 잘 먹을게."

평소라면 병찬이 다섯마디 하면 상호가 두어마디 하다가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게되면 상호가 열두마디 병찬이 세마디를 하는게 주패턴이었다. 물론 밥먹을 때 만큼은 두 사람 모두 얌전했지만 오늘의 병찬은 조금 특별한 병찬ver이므로 상호는 씹는 속도를 늦추며 속으로 관전모드 on을 외쳤다.

차분하고 어두운색의 머리카락은 시원스레 커다란 무쌍의 눈과 제법 선이 굵은 눈썹덕분에 어둡고 칙칙한 인상보단 시선을 빼앗겨버리는 짙은 심해같았다. 여기에 후각이 뛰어난 상호는 코를 킁킁대며 한 가지 감상을 더 덧붙였다. 

.…지금 이 햄 자다 인나가꼬 바로 향수 뿌린거가?

평소의 은은한 체향처럼 나는게 아닌 훅 폭우처럼 쏟아지는 향수에 상호는 얼른 포크를 내려놓고 머그컵으로 손을 뻗었다. 햄아 푹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이래 쳐들어와 먄해요..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병찬은 작년의 그 여름 이후로 상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태산같이 관리해야 했으므로.

상호의 숨기지못하는 입꼬리에 눈치 빠른 병찬은 단번에 제얼굴 위를 더듬다가 벌떡 일어났다. 상호의 동경이 사랑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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