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모음

[대만준호] 천생연분(天生緣分)

~연애는 대만준호가 하고 고통은 타인이 받는다~

* 서로 다른 대학에 간 대만준호입니다.

* 대만이 동기로 동오와 명헌이가, 준호 동기로 수겸이가 나옵니다. 

* 애들 캐붕이 많은 것 같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정대만, 늦었잖아."

"연습이 늦게 끝나서 그랬어. 5분 밖에 안 늦었으니까 좀 봐줘"

"봐주는 게 어딨어뿅. 늦었으니까 벌금이다뿅"

"아 진짜 치사하게 그러지말고"

K대 근처 술집.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술집에는 학생들로 가득했고 정대만 역시 많은 학생들 중 하나였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자리에 도착한 대만을 탓하면서도 동오는 그의 앞에 수저를 챙겨줬고 명헌은 그의 잔에 물을 따라줬다. 최동오와 이명헌, 전국대회에서 맞붙었던 최강 산왕의 주전 두 사람은 현재 대만과 같은 대학의 동기가 되었다. 학기 초에는 고교시절과는 달리 머리를 기른 둘을 보고 못 알아본 대만 때문에 조금 소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셋이 곧잘 밥도 먹고 술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다. 가방을 옆 자리에 내려놓으며 대만은 테이블을 살폈다.

"주문은 했어?"

"아까. 늦게 온 사람에게 주문권은 없다뿅."

"난 다 잘 먹으니까 괜찮아. 그래서 뭐 시켰는데?"

"삼겹살이랑 목살. 물론... 술도 시켰지."

라고 말하기 무섭게 종업원이 맥주와 소주를 두 병씩 그들의 테이블로 가지고 왔다. 테이블에 술병을 내려놓자마자 소맥 말 준비를 하는 명헌을 보며 대만은 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셋 중 주량을 따지면 명헌>동오>대만 순이었다. 대만은 스스로 술을 못 마신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둘에 비하면 술을 잘 마신다고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마시려고? 아직 고기도 안 나왔다"

"일단 적시고 시작해야지뿅. 왜 약한 소리하고 그러냐뿅"

대만을 타박하면서 명헌은 익숙한 듯 맥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동오는 맥주병을 따서 자연스럽게 병을 명헌에게 넘겼다. 같은 팀이었던 탓일까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어시스트에 대만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은 대학와서 술만 쳐마셨나 하는 생각을 하며 대만은 숙취해소제 하나를 까서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그래. 너 애인한테 허락 받았다며?"

"그건 그렇지만 많이 마시면 준호가 걱정한다고."

'술 마시러 가? 명헌이하고 동오하고? ...가는 건 좋은데 술 너무 많이 마시지마. 경기 얼마 안남았다며 무리하다가 감독님한테 혼나지 말고. 숙취해소제 먼저 먹고 마셔. 알았지?'

저녁에 술약속에 있다는 말에 애정 어린 잔소리를 했던 준호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대만은 웃었다. 고교시절부터 자신에게 잔소리가 많은 애인이었다. 잔소리가 많다는 건 그만큼 자신에게 애정이 있다는 얘기이기에 대만이는 준호가 잔소리하는 걸 좋아했다. 공부.. 관련해서는 조금 싫었지만. 혼자 실실 웃는 대만이를 보며 동오는 명헌이 건네주는 소맥잔을 받았다. 대만은 가끔 저렇게 실없이 웃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 대부분이 자기 애인 생각에 좋아서 그러는 거라는 걸 최근 들어 알았다. 알기 전까지는 저 놈이 미쳤나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난 후에도 저 놈이 미쳤나 라는 생각 밖에 안드는 동오였다. 그는 대만의 앞에 소맥잔을 내려놓은 명헌의 팔을 툭툭 쳤다.

"쟤 또 저런다."

"그러게, 재수없어뿅"

여전히 실실거리는 대만의 팔을 꼬집으며 명헌은 술이나 마시라며 그의 앞에 놓아둔 잔을 턱짓으로 가르켰다. 꼬집힌 팔을 문지르며 대만은 잔을 들었다. 짠, 하고 유리잔이 경쾌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세 사람은 각자의 잔을 비웠다. 단번에 원샷을 한 둘과 달리 대만은 3분의 2 정도만 마시고 술잔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 익숙하지 않은지 대만은 인상을 팍 쓰며 테이블에 놓인 반찬을 집어먹었다.

"야 이명헌, 소맥 제대로 안 타냐? 오랜만이라고 소맥 마는 실력 다 죽었냐?"

"제대로 탄 거다뿅. 그리고 첫잔은 원샷이다뿅"

대만의 투정에도 아랑 곳 안하고 명헌은 빨리 남은 거 마시라고 재촉했다. 마지못해 잔을 비우자 그 잔을 바로 다시 가져와 소맥 제조에 들어갔다. 뒤이어 고기가 나오자 집게를 들고 대기타던 동오가 기다렸다는 듯이 불판에 고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고기가 구워가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의 이야기도 시작되었다. 처음엔 평범하게 학교 얘기, 과제 얘기였지만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농구였다. 셋 중 농구팀 소속인 건 대만이 뿐이었지만 다른 둘 역시 농구 얘기를 시작하면 멈출 줄 몰랐다. 당장 대만이 속한 K대 농구팀 전략분석부터 시작해서 타학교 팀의 선수들에 대한 얘기, 며칠 전에 있었던 NBA 경기 얘기.. 열면 멈출 수 없는 과자마냥 농구 얘기는 끝을 몰랐다. 고기가 3판째 나올 무렵, 이야기의 주제는 그들의 후배들로 빠졌다. 

"그래서 정우성 걔는 요즘 어때? 이젠 좀 적응 했대?"

"어제 명헌이한테 전화해서 울었다는데? 나한테도 전화 왔었는데 못 받았어."

"또? 걔는 전화했다 하면 운다는 얘기네. 아직도 적응 못하겠대?"

"아니, 어제는 그냥 자기 없을 때 재밌게 놀았다고 그런거다뿅"

며칠 전에 애들이랑 놀이공원 갔다온 거 알고 말이지뿅 투정 부리는 거라 그냥 바로 끊었어뿅 하고 덧붙이며 다시 잔을 비우는 명헌을 보며 대만은 에.. 하는 소릴 지었다. 산왕전에서 서태웅을 압도하던 그 정우성이 그런 걸로 울었단 말이지.. 명헌이나 동오를 통해 듣는 정우성의 얘기는 매번 들어도 새로웠다. 뭐.. 매번 잠만 자는 후배랑 자기가 천재라고 우기는 후배를 둔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가 싶었지만. 

"우성이가 원래 잘 울어. 삐지기도 잘 삐지고 그만큼 회복도 금방하는 녀석이고"

동오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고 명헌 역시 맞아뿅 하며 아직 잔에 술이 남은 대만에게 마저 마시라고 재촉했다. 좀 천천히 마시자 누가 잡아가냐 라고 대꾸하며 대만은 잔을 비웠다. 그리고 잔이 비기 무섭게 명헌은 그 잔에 다시 소맥을 말아서 건넸다. 작작해 좀 하는 시선으로 명헌을 쳐다보는 대만이었지만 산왕의 전 주장은 그런 시선에 기가 죽는 이가 아니었다. 소맥이 든 잔을 대만의 잔을 되돌려주며 명헌은 말했다.

"북산은 요즘 어때? 송태섭 미국 유학 간다는 얘기가 있던데뿅"

"넌 그거 어떻게 알았어?"

"현필이가 말해줬다뿅. 시합 전에 마주쳤는데 강백호가 얘기해줬다고 했어뿅"

"백호가? 나 참 자기가 가는 것도 아니면서 하여간..."

그렇게 중얼거리던 대만은 2주 전 준호와 함께 북산 농구부를 찾았을 때를 떠올렸다. 태섭이 유학 간다는 얘기를 그 때 들었는데 아직 실감이 안난다며 머쓱해하는 태섭과 달리 다른 후배들이 더 난리였다.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송태섭! 이 천재가 금방 따라가줄테니까!'

'저도 곧 따라갈게요. 선배'

태섭의 유학 소식이 자극이 됐는지 태웅도 백호도 열의에 불타는 눈빛으로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 열의를 가지고 싸우는 것도 여전했다.

'흥, 여우 너는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어.'

'시끄러, 멍청이'

'뭐?? 이 여우놈이?? 해보자는 거냐??'

'둘 다 변함이 없네. 그래도 싸우지 말아야지. 후배들도 생겼는데 선배답게 굴어야지.'

그런 둘을 준호는 말리며 웃었다. 졸업하고 몇 달이 지났지만 마치 자기 일마냥 투닥거리는 둘 사이에 끼어드는 준호를 보고 한나가 준호선배도 여전하네요. 라고 했다. 그 말대로 권준호는 고교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상냥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선배이자 대만의 연인이었다. 

"그러고보니 넌 유학 같은 건 생각 없냐? 주변에서 다들 간다고 하면 흥미가 생길 법도 할텐데"

동오는 잘 구워진 고기를 자르며 물었다. 미국 유학이라.. 대만은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며 잔을 들었다.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농구의 본고장에서 하는 농구.. 분명 지금까지 해온 거랑은 다르고 배울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야 뭐 여기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굳이 유학까지 갈 생각 없어."

헛되게 보낸 시간만큼 대만은 지금 이곳에서 농구를 더 충실하게 하고 싶었다. 미국이 아니더라도 이 곳에서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은 많았다. 정대만에게 중요한 건 장소보단 농구 그 자체니까.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다면..

"그리고..."

명헌이 준 소맥을 이번에는 원샷으로 비워낸 대만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제법 진지한 얼굴을 한 대만을 보고 동오도 명헌도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준호가 여깄는데 내가 왜 미국에 가냐? 준호도 미국에 가면 모를까.. 난 걔 두고 어디 안가. 롱디한다고 맘고생 시킬 생각 요만큼도 없어."

권준호. 정대만이 농구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두고 떠날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준호를 힘들게 한 건 2년이면 충분했다. 그 이상 고생시키지 않을 거라고. 그에게 고백했을 때부터 다짐했던 철칙이었다.

"....아 진짜 정대만 짜증나."

명헌의 앞접시에 고기를 놓아주고 이어서 대만에게 고기를 놓아주던 동오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기를 다시 가져가려 했다. 아 왜 안주 가져가는데 라며 대만의 젓가락질에 금방 저지당했지만. 새침한 얼굴로 고기를 씹는 대만을 보며 동오는 명헌이를 쳐다봤다.

"대체 권준호는 정대만 어디가 좋아서 사귀는 거냐 진짜"

"입시 스트레스가 심해서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뿅"

"야 니네 말이 좀 심하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하게 말해. 준호랑 사귀면 다 이렇게... 아니 준호는 나랑 평생 사귈 거니까 꿈도 꾸지 말고 그리고 어디가 좋아서 사귀냐니... 준호는 나 다 좋다고 그랬어."

언젠가 물었던 질문에 준호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어쩌다가 한 질문이었더라.. 아마 주말에 자신의 자취방에서 같이 보던 연애프로에서 본 질문이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안겨 있던 준호는 글쎄.. 라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딱히 어디가 좋다고 말하긴 어려운데.. 그냥 다 좋아. 이렇게 말하면 별로인가? 라고 했었다. 별로긴.. 그 말에 가슴이 아플 정도로 뛰었는데..  굳이 그걸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준호가 느낄 수 있게  꼭 안아줬었다. 목에 닿은 자신의 머리카락에 간지럽다며 웃던 준호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 준호 보고싶다~"

어제도 영상통화 했고 그제는 직접 만나기도 했는데 왜 이렇게 돌아서면 보고 싶은지.. K대 추천으로 들어온 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준호랑 같은 학교를 다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따라 저 새끼 지랄이 풍년이다....."

"한 두번 저런 게 아니지만 오랜만에 보니까 새삼 뭐같네뿅"

"오늘 저거 죽여놓을까"

"좋은 생각이다뿅"

보고 있으니까 술맛 다 떨어진다뿅 라며 명헌은 동오와 잔을 부딪혔다. 그런 동기들의 앞담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준호 생각에 센치해진 대만이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

한편, Y대 도서관의 세미나실. 준호는 동기인 수겸과 함께 조별과제를 함께 하고 있었다. 타자 치는 소리만 울려퍼지는 중에 준호는 기지개를 켰다. 벽에 걸린 시계가 어느 새 8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수겸아, 세미나실 대여 시간 10분 남았어."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나머진 다 모여있을 때 다시 하자."

준호의 말에 수겸도 시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에 어지럽게 놓여있던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에 수겸이 준호를 보며 불쑥 입을 열었다.

"너 오늘은 정대만이랑 통화 안하네."

"어?"

"너 항상 이 시간쯤이면 정대만이랑 통화하잖아. 어제도 그랬고"

수겸의 지적에 준호는 민망한 듯 웃으며 그랬었나 라고 답했다. 준호가 자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8~9시쯤이면 그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준호와 함께 과제를 하면서 수겸이 직접 목격한 적도 있었고 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가 통화 중이라는 말에 전화를 끊은 적도 있었다. 통화하는 상대는 매번 같은 사람, 정대만이었다. 둘이 사귀는 사이라는 건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호와 함께 다니게 되면서 바로 알았다. 대만이가 준호를 만나러 학교에 와서는 준호 잘 부탁한다는 말과 그렇다고 작업 걸진 말라는 말을 하고 갔기 때문이었다. 그때 느꼈던 황당함이란... 아마 앞으로 다시 겪기 힘든 황당함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수겸은 가방 끈을 어깨에 매며 말했다.  

"뭐 네 연애에 참견할 생각은 없는데, 적당히 해라. 정대만 그렇게 다 받아주지 말고."

"아, 으응.. 그래. 조심할게."

그 때, 준호의 핸드폰이 지잉하고 울렸다. 화면에는 잘생긴 애인님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또 언제 바꿔둔 거람. 웃으며 전화를 받으려는데 음성통화가 아니라 영상통화였다. 뭐지 싶어 전화를 받자 화면 너머로 시끄러운 술집 내부와 함께 준호야 라고 그를 부르는 대만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질린다는 표정을 한 동오와 무표정한 얼굴로 술잔을 비우는 명헌의 모습도. 

[안녕, 둘 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준호야, 내가 전화했는데 나한텐 아는 척 안 해주냐? 서운하게..]

대만의 투덜거림에 그럴 리가 없잖아 라며 준호는 웃었다. 숙취해소제는 먹고 마시는 거지? 빈 속으로 마시는 건 아니지? 라는 다정한 물음에 대만은 툴툴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무심코 귀여워 라고 중얼거릴 뻔했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수겸의 기척에 꾹 참으며 잘했다고 대답하는 준호였다. 툴툴거리던 대만도 잘했다는 준호의 한 마디에 기분이 풀렸는지 어느 새 웃고 있었다.

"또 그렇게 다 받아주고 있네."

방금 전 자신이 한 충고가 무색하게도 대만의 투정을 받아주고 있는 준호를 보며 수겸은 혀를 찼다. 내 충고는 헛된 충고였네 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준호 옆에 누군가 있는 걸 눈치챈 대만은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 누구 있어?]

[수겸이랑 같이 있어.]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이상한 오해하지마. 그냥 같이 과제한 것 뿐이야.]

화면 너머로 얼굴을 비춘 수겸의 말에 대만은 찌푸렸던 눈썹을 폈다. 시덥지 않은 질투를 하는 대만에게 수겸은 팔짱을 낀 채로 동기랑 과제하는 걸로 질투할 거면 동기 둘이랑 술 마시는 네가 더 문제 아니냐고 물었다. 대만은 아.... 하더니 격하게 손사레를 치며 절대로 그런 거 아니야 라며 온 몸을 비틀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 말에 반응한 건 대만 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도 마라. 난 저 녀석이랑 엮이는 거 사양이니까]

[나도 사양이다뿅, 정대만이랑 엮일 바에야 그냥 평생 혼자살겠다뿅]

[이쪽도 사양이거든?! 니들이랑 달리 나한테 준호가 있다고!!]

[하하.. 대만아, 진정해.]

동오랑 명헌을 노려보며 씩씩거리는 대만을 달래면서 준호는 화면 너머로 보이는 테이블을 살폈다. 소맥 먹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재빠르게 술병의 갯수와 대만의 주량을 계산한 준호는 나지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전에도 말했지만 술 마시는 건 좋지만 적당히 마셔. 너희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마시는 거라는 건 알지만 우리 대만이한테 너무 술 먹이진 말아줘. 걱정되니까.. 같은 학교가 아니라서 내가 챙겨줄 수도 없는데 만취해서 다니면 속상해서..]

준호의 말에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좋아하는 대만을 보며 동오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고 명헌은 조용히 대만의 빈 잔을 가져와 소주를 들이부었다. 반 컵 가까이 소주를 붓는 모양새가 심상치가 않았다. 

"정대만만 문제인 줄 알았는데 권준호도 문제네."

"끼리끼리, 유유상종이다뿅."

"역시 정대만 오늘 죽여야겠다. 저기요, 여기 맥주랑 소주 좀 더 갖다주세요."

"오늘 정대만 제삿날이다뿅."

"이 미친놈들아 방금 준호 하는 말 못 들었냐?! 야, 이명헌 너 뭐 넣는거야?! 야!!! 준호야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다급한 말과 함께 끊긴 전화를 준호는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괜찮을까... 정말로 먹이진 않겠지? 식당 주소 물어볼껄.. 하고 생각하는 준호를 보며 수겸은 한숨을 쉬었다. 그대로 돌이 될 기세인 준호의 팔을 툭치며 수겸은 문 쪽으로 가르켰다.

"통화 끝났으면 가자."

"....."

"권준호"

"아, 미,미안 그래 얼른 가자."

철컥, 하고 문고리를 돌리자 고요함이 흐르는 도서관의 공기가 두 사람을 반겼다. 책장 사이를 지나가며 수겸은 혼잣말 하듯이 중얼거렸다.

"나오기 전에 전화가 와서 다행이네. 타이밍이 좋았어."

아니었으면 도서관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겠네. 라는 수겸의 말에 준호는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그러면서도 주머니 속에 든 핸드폰을 꼭 쥔 채 놓지 못했다. 도서관을 빠져나와 학교 정문까지 갈 때까지 준호의 핸드폰을 울리지 않았다. 정문을 빠져나와서 수겸과 헤어져 자취방으로 향할 때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자취방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을 때까지 울리지 않는 전화를 보면서 준호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 식당 어딘지 물어볼 껄.. 지금이라도 K대 앞에 가면 세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불안감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방 안만 맴돌고 있을 때, 주머니에서 지잉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던 대만의 전화였다. 

"대만아, 괜찮아?!"

"하아...어..하..괜찮,아...후..."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목소리에 준호가 걱정스러운 듯 묻자 대만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말을 이었다.

"애들이 자꾸, 후우... 술 먹이려고 해서 도망치느라고, 하.. 별 일 없으니까. 걱정마."

짜식들 질투한다니까 부러우면 지들도 애인 만들던가. 라고 툴툴거리는 목소리에 안심한 듯 준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짜 사람 걱정시킨다니까.. 대만의 목소리를 들으니 긴장하고 있던 몸에 힘이 쫙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까 분위기 보니까 애들이 순순히 보내줄 것 같지가 않던데"

"그래서 엄청 뛰었어. 50m정도 뛴 것 같은데 ."

대만은 자기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준호와 전화를 끊고 명헌이 정대만 제삿날이라고 만든 특제 폭탄주(소주/맥주/그리고 뭔가 이것저것 들어감)를 보고 기겁한 대만은 나 이제 갈거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그런 대만을 호락호락하게 보낼 두 사람이 아니어서 빠져나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다. 어디 가냐면서 식당 앞까지 동오가 쫓아왔던 것 같지만 뒤돌아보진 않았다. 돌아봤다가는 그대로 붙들려 식당으로 끌려갈 게 뻔했다.  

"너 지금 집이야?"

"응, 방금 왔어."

"그래.... 그럼 나 니네 집에 가도 돼? 가면 꿀물 타줘."

"지금? 괜찮겠어? 내일 연습은?"

"괜찮아. 여기서 택시 타면 금방 가니까.. 내일 연습은 오후부터 있어서 시간도 여유 있어. 그리고.."

네가 보고 싶어서 그래. 라고 덧붙이는 말을 준호는 거절하지 못했다. 준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만의 부탁이라면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그 부탁이 자신을 향한 애정에 기반한 것이라면 더 그랬다. 별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준호는 말했다.

"꿀물 타놓고 기다릴테니까 얼른 와."

***

대만과의 통화를 끝낸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고 나와서 꿀물을 타고 있으면 대만이 올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준호는 욕실로 들어갔다. 준호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대만이 도착하는 건 그가 씻고 나온 후인 게 맞았다. 한 가지 준호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통화를 끊기기 전에 한 대만의 말이었다.

-로켓처럼 날아갈테니까 걱정말고 기다려.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는지 대만은 준호의 예상보다 3분이나 일찍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대만은 준호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과 그리고 현관 옆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였다. 씻는 중인가보네. 대만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욕실 문고리를 잡았다. 문이 안 잠겼는지 쉽게 돌아가는 걸 보고 대만은 문고리를 쥔 손가락을 까닥거리다가 준호야 나 들어간다 라고 말하며 문을 벌컥 열었다. 따뜻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욕실 안에는 막 샤워기 물을 끈 준호가 보였다. 들어간다는 소리를 못 들은 건지 대만을 등지고 서 있는 준호의 등을 따라 물방울들이 하나둘 흘러내렸다. 하얀 등에 옅게 남은 붉은 자국들 사이로 흐르는 물방울은 선정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예전부터 한 생각이었지만 권준호의 등은 너무 야했다. 다른 이들에게 어떨지 몰라도 정대만에겐 그랬다. 보고 있으면 손대고 싶고, 입맞추고 싶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지금처럼. 대만은 뒤에 누가 온 줄도 모르고 무방비하게 있는 애인의 등에 손을 올렸다. 그제서야 움찔하고 놀라 자신을 쳐다보는 준호와 눈이 마주치고도 대만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검지손가락 끝으로 목 뒷덜미부터 척추를 타고 쭉 내려가 허리까지 왔을 때 그는 그대로 준호를 뒤에서 껴안았다.

"씻고 있는데 들어오면 어떡해. 다 젖잖아."

대만을 타박하며 준호는 세면대에 올려둔 안경에 손을 뻗었다. 김이 서린 렌즈를 닦아내고 안경을 쓴 준호는 거울에 비친 대만을 쳐다봤다. 애인의 타박에도 대만은 문이 열려있으니까 들어왔지 라고 대답하며 준호를 더 꽉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준호에게선 은은한 바디워시의 향이 났다. 대만이 좋아하는 향이었다. 

"내 옷이랑 속옷 여기에도 있으니까 다 젖어도 상관없잖아~ 겸사겸사 오랜만에 알몸인 애인 감상도 하고"

"오랜만도 아니면서.."

대만의 말에 뒤지지 않고 대꾸하는 준호였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손은 조금 다급하게 욕실 찬장을 뒤지고 있었다. 찬장에서 꺼낸 수건을 허리에 두르려는 걸 보고 대만은 준호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쳤다. 

"그제 보고 오늘 봤으면 오랜만에 본 거 맞지. .....좀 더 보게 해주라 응?"

"..아까 꿀물 타달라고 한 게 누구더라"

준호는 자신의 어깨에 턱을 대고 쳐다보는 대만을 쳐다봤다. 대만은 음.. 하며 생각하는 척하는 표정을 지었다. 준호는 이게 정대만이 뻔뻔하게 나올 때 하는 표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대만은 준호의 어깨에 대고 있던 턱을 슬쩍 들어서 준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까까지는 꿀물 마시고 싶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준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안겨있는 품에선 알콜에 섞인 대만의 향수 냄새가 났다. 아 이건 좀 위험할지도.. 

"꿀물은 나중에 마시고.."

"..."

"지금은 너부터 먹을래."

준호의 귓볼을 앙 하고 물며 대만은 비어있는 손으로 아직 열려 있는 욕실의 문을 닫았다.

***

"우으...."

다음날, 먼저 눈을 뜬 건 준호였다.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준호는 앞으로 축쳐진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결국 어제는 대만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넘어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쩌겠는가 좋아하는 사람이 넘어오라고 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을. 눈을 비비며 안경을 찾으려 몸을 들썩이자 허리에 걸린 대만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못 가게 꼭 쥐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에 괜시리 웃음이 났다. 다행히 침대 머리맡에 안경이 있어 대만의 품을 벗어나지 않고도 안경을 쓸 수 있었다. 안경을 쓴 준호는 자는 대만의 얼굴을 관찰하다 몸을 뒤척인 준호의 시야에 벽에 걸린 시계가 들어왔다. 현재 시각 오전 11시 43분.......11시 43분???????

"대만아! 일어나 정대만!! 일어나라니까!!"

"으...주노야..나 쫌만 더 잘게에..."

"너 오늘 연습 있잖아. 벌써 11시가 넘었어! 얼른 일어나!!"

베개에 얼굴을 부비며 정신 못차리던 대만은 11시가 넘었다는 말에 번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씨 망했다 라며 씻으러 들어가는 대만을 보고 준호는 욱신거리는 허리를 붙잡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맞은 편에 있는 옷장 서랍을 열어 자신의 옷과 한 쪽에 잘 개둔 대만의 옷을 꺼냈다. 다른 서랍에선 아직 뜯지 않은 새 양말을 꺼내 욕실 문 앞에 내려놓고 준호는 문을 두드렸다.

"대만아, 문 앞에다가 옷 뒀으니까 이걸로 갈아입어."

문 너머로 아랐어~ 하고 뭉개진 발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치 중인 가보네 라고 피식 웃은 그는 좀 전에 꺼낸 옷을 입었다. 편한 트레이닝복 바지에 농구공 세 개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이미지가 그려진 반팔티를 입고서 준호는 싱크대 앞에 섰다. 마실 필욘 없을 것 같지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타주겠다고 했으니까. 준호는 지난 밤에 냉장고에서 꺼내놓은 500ml 생수병을 따서 컵에 부었다. 그리고 그 컵에 꿀을 한 수저 넣어 휘익 저었다. 

"하아.. 감독님한테 신나게 깨지겠네. ..너 뭐해?"

욕실에서 준호가 챙겨준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대만이 자신을 보며 묻자 준호는 대답 대신 컵을 대만에게 내밀었다. 대만은 컵과 준호의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일단 컵을 받아들었다.

"뭔데 이거?"

"꿀물. 어제 타달라고 했으니까. 많이 마신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마시고 가"

"...아~ 권준호 누구 애인이라서 이렇게 내조도 잘 하나~ 정대만 애인이라 그런가?"

지각했다는 사실도 까먹었는지 싱글벙글한 얼굴을 하며 대만은 준호가 타준 꿀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후우.. 이제 속 아플 일은 없겠네. 연습하는데 문제 없겠어."

"과장하긴.."

과장 아닌데? 라며 대만은 의자 등받이에 걸어뒀던 스카잔과 가방을 챙겨들었다. 대만이 비운 컵을 설거지하는 준호의 옆에 쓱 다가가 대만은 쪽 하고 준호의 뺨에 입을 맞췄다.

"네 덕분이야. 연습 잘하고 올게. 같이 저녁 먹자. 별 일 없지?"

"음... 별 일 없긴 한데 여기서 연습 더 늦으면 저녁이고 뭐고 못 먹는 거 아냐? ...12시 넘었어 대만아"

준호의 말에 컥 소리를 내며 대만은 급히 현관으로 나갔다. 어쨌든 오늘 저녁 같이 먹는 거야! 알겠지? 딴 약속 잡지마!!! 라는 말을 남긴 채 대만은 떠났고 준호는 알았다며 그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었다. 평범한 연인의 주말 오전이었다.


***

그로부터 3일 뒤, K대와 J대의 농구시합이 열렸다. 명헌과 동오는 주전으로 출전하는 대만의 시합을 보기 위해 관중석에 와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준호도 관중석에 있었다.

"네가 올 건 예상했는데... 너도 올 줄은 몰랐네."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준호가 보러 간다기에 따라왔지. K대 농구팀의 전술이 어떤지도 궁금하고."

"누가 들으면 아직도 농구팀인 줄 알겠다뿅"

"뭐 농구는 안해도 전술분석은 할 수 있으니까."

최강 산왕의 전 주장은 이번 시합 어떻게 보는지 의견이 궁금한데? 라며 묻는 수겸에게 명헌은 K대가 이긴다 말고 다른 의견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 순간, 점프볼과 함께 시합이 시작되었다. 처음 공을 가져간 건 K대였다. 이후 전개된 속공으로 골을 넣은 K대가 먼저 득점을 해냈다. 

"다들 컨디션이 좋아보이네. 대만이도 그렇고"

다들 이라고 준호는 표현했지만 그의 시선은 대만만을 쫓고 있었다. 3점슛 라인에서 몸싸움을 하던 대만은 자신에게 공이 오자마자 그대로 림을 향해 던졌다. 림을 건들지 않고 들어간 깔끔한 슛에 준호는 잘했다 정대만!! 하고 소리쳤다. 골을 넣고 디펜스 자리로 돌아가던 대만은 준호가 앉은 응원석 쪽을 보며 씨익 웃었다. 누굴 향한 미소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저거 시합에 집중 안하고 저러네."

"놀랄 것도 없다뿅."

대만의 미소를 본 동오가 혀를 차자 명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준호가 응원하러 온 이상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 번 술 자리에서 대만이 한 얘기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지난 번에 술 마셨을 때, 미국 유학 얘기 하다가 권준호 네 얘기가 나왔다뿅"

"네 얘기?"

"아.. 그랬었지. 미국 유학에 흥미 없냐고 물었더니 정대만이 권준호 고생 시키기 싫어서 안 간다고 했었지.. 롱디 시킬 생각이 없대나 뭐래나 하여간 대단한 사랑꾼이야"

"어.... 대만이가 그런 얘길 했었어?"

준호는 생전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나한테는 그런 얘기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농구 얘기해도 항상 자기 팀이나 후배들 얘기였지 유학에 관련된 얘기는 조금도 없었다. 준호는 눈을 깜박이며 생각에 잠겼다. 유학 같은 건 관심없는 줄 알았는데.. 자기 때문에 갈 생각이 없다고 하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준호였다. 미국 유학 가고 싶으면 가도 되는데.. 네가 가도 나는...

"..난 대만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기다릴 수 있는데. 롱디도 괜찮고.."

대만이가 농구를 놓고 있던 그 2년도 기다렸는데 더 기다리는 것 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농구를 하러 간다면야 얼마든지.. 아니면 나도 같이 가도 괜찮고 라고 중얼거리는 준호를 세 사람은 보고 침묵했다.

".....김수겸 너도 진짜 고생이 많다.."

"나야 너희들에 비하면 별 거 아니지."

동오가 측은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자 수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 때 또 대만의 3점슛이 터졌고 준호는 아까처럼 대만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객석 쪽을 확인한 대만이 이번에 제 애인을 향해 손을 마주 흔들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명헌은 말했다.

"진짜 천생연분이네뿅"

그 말에 동오와 수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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