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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들러붙는 모래알이 맨다리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한 불쾌감에도 이 자리에 머무는 건, 한여름의 햇살을 온몸에 휘감고서 밀려드는 파도 여기저기에 파문을 남기는 저 한 사람 때문이다. 흰옷 아래로 비쳐 보이는 진주색 피부도 우유 섞인 캐러멜 같은 머리카락도, 눈이 아릴 정도로 선명하게 푸른 하늘과 바다 사이의 금색 모래사장 위로 반사되는 빛처럼 생동감 있게 튀어 올랐다. 청년이 얕은 파도를 일그러뜨릴 때마다 일어난 희고 둔탁한 물보라가 또다시 빛을 머금고 토해냈다.

습기와 소금기가 뒤섞인 바닷바람이 끈적하게 몸에 달라붙었다. 바다는 그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때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 직접 오는 일은 내키지 않았으나, 한여름의 바다를 보고 싶다는 청년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계약이랍시고 값비싼 여러 가지를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사용하는 돈을 내키는 대로 왕생당이나 북국은행 쪽에다 걸어두는 일이야 일상이었기에 딱히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에 조건을 거는 자는 없다. 평범하게 해오던 일이니까. 그런데도 왜 끝내 거절하지 못했을까. 이용하기 위해 만나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운 듯 들려오던 웃음소리 때문인가, 일부러 시시한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흥미를 보이던 눈빛 때문인가, 그렇게 함께하던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인가,

 

「종려 씨도 어차피 친구라고는 저밖에 없잖아요.」

회상 속 청년의 목소리는 의문형이 아니었고, 확신으로 가득 찬 말끝에 자신감이 매달려 그가 내뱉은 말이 땅에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떠올리니 자못 의기양양하게 말하던 꼴이 재미있어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으나, 지열을 느껴가며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서 있기란 고역에 가까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체적으로 이상 없이 버틸 수는 있어도 불쾌감이 최고치였다.

타르탈리아는 종려가 이러한 환경에 놓이기 싫어한다는 점도 알고, 원래 이기적인 성격도 아니다. 그런데도 고집을 부려 후덥지근한 여름 바다에 오고 싶어 한 이유는 그가 겨울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다. 얼어붙어서 파도도 치지 않아 생명력이 결여된 차가운 바다만을 보아왔기에 그에게는 이 따뜻한 바다가 매우 신선할 것이었다.

 

바다 여행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는지 혼자 준비하겠다더니,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름옷을 꺼내어 갈아입으라는 한마디를 내뱉고 그 자신도 주저 없이 입고 있던 잿빛 의복을 그 자리에서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흰 피부가 비쳐 보일 만큼 얇은 천으로 만든 의복을 타르탈리아가 입는 건 상관없지만, 종려가 받아 든 옷도 피부가 드러나는 디자인이었기에 어이없다는 심경을 담아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더니 ‘오늘을 위해서 비싸게 주고 맞추었다’, ‘그대로 나가면 더 더울 거다’라며 되려 상황 파악 못 하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분명히 잘 어울릴 거예요.」

화사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떠밀려 입었던 의복을 하나하나 천천히 벗어 정리하는 과정까지도 아무 말 없이 지켜본 타르탈리아는, 환복을 마친 종려를 다짜고짜 끌고 나가더니 그대로 라운지 바에 직행, 멋대로 주문한 음료를 손에 들려주었다. 타르탈리아가 든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그렇다 치고, 종려에게 건넨 음료는 지나치게 귀여운 것이었다. 바다처럼 푸른 리큐르, 그 위의 우유 섞인 커피까지는 납득 가능했으나 커피 위에 동동 띄워진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과……, 돌고래 모양의 머랭 쿠키. 아무리 생각해도 타르탈리아의 취향이었다. 종려를 생각해서 주문했다고 하기보다는, 초콜릿도 좋고 바닐라도 좋고 돌고래 머랭 쿠키도 좋은데 혼자 죄다 들 수 없으니 종려의 손에 맡겨놓은 느낌이었다. 대여한 튜브까지 종려에게 떠맡긴 타르탈리아는 아이스크림을 들지 않은 한쪽 손으로 종려의 손을 잡아 바깥으로 이끌었다. 그를 잡아끌지 않으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서 하는 행동이었다.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는 가운데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파도 근처에서 멈춰 선 타르탈리아가 걸쳐 메고 있던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의 바위 위에다 사진기를 조작하고 올려두더니, 곧바로 뛰어와 종려의 오른편에 서서 허리에 한쪽 손을 짚고 사진기 쪽을 응시했다.

「웃어요, 종려 씨. 하나, 둘──.」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서 불만스럽게 정면을 노려보는 종려의 얼굴을 확인한 뒤 한바탕 웃어젖힌 타르탈리아는, 곧바로 종려가 든 음료로 손을 뻗어 돌고래를 집더니 자신의 입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 후로 종려는 햇빛 아래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사장 위에 서서 타르탈리아가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비취색을 품고 금빛 모래 위로 밀려드는 파도 사이에서 춤추는 그의 모습이 신선했지만, 가슴 어딘가에서 치미는 불쾌감을 떨칠 수 없었다. 종려가 오랜 세월 동안 가꾸어온 리월항은 이렇게 덥지도 따갑지도 않아 느긋하게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그만의 정원이었는데, 그곳을 벗어나 저렇게 물 만난 고기처럼 생기로 가득한 타르탈리아를 보니 발칙하다는 생각이 반, 분노가 반이었다.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타르탈리아에로 다가간다. 종려가 이런 장소를 내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텐데도 마냥 즐거운지, 그는 허리를 굽혀 바닷물을 튀겨 대며 밝게 소리 내어 웃었다. 묵묵히 바닷물을 맞아가며 타르탈리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그의 몸을 순식간에 들어 올린 뒤 한쪽 어깨에 둘러멘 채 모래사장을 등지고 바다 쪽으로 들어간다. 수위가 높아질수록 물의 저항이 몸을 압박하고, 바닷물에 젖은 얇은 천이 피부에 달라붙어 불쾌감이 가중되었다. 바닷물의 표면이 가슴 아래에 올 때까지 걸어 들어간 종려는 당황한 기색으로 자신의 어깨에 매달린 타르탈리아를 천천히 물속에 내려놓았다. 밀착된 두 사람의 몸 사이로 젖은 천이 마찰하는 감각이 거슬렸으나, 타르탈리아의 체온은 한여름의 뜨거운 기온보다 훨씬 부드럽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물속에 내려서서 종려의 양팔을 붙잡은 타르탈리아는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좁혀 눈부시게 미소 짓더니 그대로 팔을 올려 목을 끌어안고 체중을 실어왔다.

두 사람은 바다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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