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키부츠』
Ladies, gentlemen and those who are yet to make up your mind
첫 주차부터 대차게 지각한 후기 스터디… 킹키부츠 10주년 기념 공연이자 한국 6연을 보고 왔습니다.
사실 자첫을 한지는 좀 오래됐는데… 이번에 극이 내려가기도 했고 그리 많은 뮤지컬을 접해본 건 아니지만 킹키부츠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과 따듯함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뮤지컬을 보든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정제된 글로 적어 남기고 싶었어요.
사실 처음 킹키부츠를 보게 된 건 성규 때문이었어요.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아이돌이기도 했고… 뮤지컬 자체에 관심을 가게 해준 것도 성규였거든요 (레드북-브라운 역) 그래서 신발 이야기라는 지인의 소개 말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갔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다행이라는 느낌이 있네요.
작중 가장 유명한 넘버인 『 LAND OF LOLA 』, 롤라의 주제곡 같은 느낌인데(롤라가 등장할 때마다 한 번씩 연주해 줍니다) 난 이 넘버 중간에 치는 ‘자기들은 날 구경하러 왔고, 난 구경당하러 왔어. 그럼 우리 둘 다 행복한 거잖아~?‘ 이 대사가 진심으로 미칠 것 같음… 롤라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을 겪었을까 싶어서. 스스로를 대상화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냥 빨간 구두를 좋아했던 어린아이가 여기까지 무슨 일을 당하며 왔을까….
극이 전체적으로 롤라와 찰리의 교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롤라가 주인공이라) 롤라의 상처를 꼭 이 넘버에서만 엿볼 수 있는 건 아니고 랜옵롤 직후에 ’나를 보면서 자신이 정상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비정상들이 많거든.‘ 하는 대사를 치는데 이게 비단 뮤지컬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관객들, 더 나아가서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까지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됨… 보고 있으면 여러모로 정말 생각 많아지는 뮤지컬이에요. 사실 처음 등장한 롤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잃지 않을 것 같았는데 디자이너(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정해둔 ‘정상’으로의 편입을 이야기하는 거겠죠) 권유를 받고 난 뒤 ‘남성성’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공장에 나타난 게… 사회 규범처럼 정해져있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편가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새삼 아버지의 그림자에 갇혀 살던 둘이 스스로를 찾는 내용을 그려둔 것도 1막에서 그곳에서 벗어나자고 마음먹은 찰리가 그 결심 때문에 2막에서 롤라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도, 그런 롤라가 찰리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주는 것까지 그냥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 예전에 트위터에 후기 쓸 때도 몇 번 적었던 건데 우리 부츠는 여자에게 신겨서 밀라노에 보낼 거라고 했던 찰리가 로렌이 아닌 자기가 직접 부츠를 신고 런웨이에 섰다는 게…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찰리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롤라도 다시 손을 내밀어 준 거야.
내게 힘을 줬던 사람이 때로는 내게 상처를 줄 수도 등을 돌릴 수도 있는 거지만 사람은 누구나 변하고 잘못을 뉘우칠 수 있다…고 믿는 롤라가 좋아 그냥……. 작중에서 롤라가 너무 끊임없이 기회를 주고 주고 또 주고 그 기회가 누군가를 바꾸고… 바뀐 사람이 다시 기회를… 변화를… 하… 흑…. 아… 글 쓰다 또 눈물 날 것 같네ㅠㅠ
이건 킹키부츠 마지막 넘버인 『 Raise You Up 』, 가사를 보면 롤라의 ‘두려웠었지 널 만나기 전엔 날 믿어주고 밀어준 건 너뿐이었어 길을 잃을 때 나를 지켜준 건 너 이젠 내가 더 큰 사랑 돌려줄 거야’ 라거나 찰리의 ‘따분한 인생 꿈 따윈 없었어 내 삶에 당당하게 와서 불을 붙인 너 우뚝 일어설 거야 뭐든 해낼 수 있어 이런 나를 울 아빠도 보고 있을까’라는 말이 있는데… 극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찰리가 자신을 잃었을 땐 롤라가, 롤라가 자신을 잃었을 땐 찰리가 길을 만들어주며 서로 손을 잡고 나가는 씬이 있는데요... 누구나 마음속의 두려움이 있지만 그런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 때마다 서로 돕고 손을 내밀며 자신을 잃지 않으면 더 나은 나 자신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내게 외치는 것 같아서 정말 감동……. 커튼콜에서 관객들이 안무를 같이 하는 것까지 완벽한 Raise You Up의 완성 같습니다….
21세기… 특히 최근의 사회에서 나 자신을 잃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서로 받아들여주자는 이야기를 던지는 뮤지컬이라는 건 정말 의미가 깊다고 느껴요. 물론 한참 전부터 존재했던 극이지만 그런 주제를 가진 극을 지금 이렇게 다시 본다는 게 감회가 새롭달까, 그리고 혐오란 언제나 형태를 바꿔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 그리고 킹키부츠의 마지막엔 행복을 위한 6가지 조건을 이야기하는데 저 이거 진짜 좋아하거든요…
one 솔직하게
two 뭐든 도전해봐
three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줘
four 사랑해
five 자신을 믿어봐
six 맘 바꾸면 세상도 바뀐다
킹키부츠에선 이것만 기억하면 우리 모두 언젠가 더 나은 세상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전한답니다. 요즘 글을 하도 안 썼더니 어휘력이 바닥이라 정말 좋은 뮤지컬인데 설명을 충분히 다 못 적네요. 이번 서울 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지방, 혹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 날 꼭 한 번쯤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그날까지 오늘도~ 킹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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