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실.
20.10.05.17:17
* * *
"...이틀동안의 붉은 실이라니,"
그럼 그전에는 풀 수 없다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실을 건들여 풀어보려하였지만 역시나 들은대로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경께서는 괜찮은것일까. 자신에게 있어선 움직이는데 그리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상대가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괜히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경,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조심스레 그에게 물어보았으나 혹시라도 불편해하면 어쩌나 하고 이 난감한 상황에 괜히 불안감만 차올랐고, 자신과 이리 묶이게 된 것에 굉장한 불쾌감을 느끼실지도 모르니 괜히 속이 답답했다. 어쩔 수 없다고 속으로 말하며 자신을 설득시켜보아도 복잡한 기분이 머릿속을 엉키게만 만들 뿐,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아 한숨이 새어나왔다. 정말, 이걸 어째야할까.
"..! 아, 아니 불편하지는 않네만.."
마침 저도 묶인 실을 발견하고선 무작정 풀어보고, 당겨보기도 했던 것이다. 당신과 똑같이 그저 상대가 불편하진 않을까 싶어하던 참이었다.
"자네는.. 괜찮은 건가?"
당신의 한숨에 살짝 흠칫거리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본다. 혹여 부담스러워할까 한 걸음 떨어지기도.
"그것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당신을 힐끗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식사는 괜찮겠지만, 실은 제가 잠버릇이 좋은편이 아닌지라... 무언가를 끌어안고 자는게 버릇이어 혹시라도 경께 실례를 저지르게될까 걱정입니다."
그리 말하고는 조금씩 당신의 눈치를 보며 제 손가락 사이를 메만지다가 곧이어 이어진 말에 꽤나 기쁜듯 미소를 띄었다.
"아, 그것도 좋겠군요. 즐거울 것 같습니다. 혹시 아직 보지 못하신 곳이 있습니까? "
그저 당신의 말을 멍하게 듣는듯하더니, 이내 푸흐, 하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에이, 뭘 그런 걸로 그러나. 잠버릇이라니.."
한 번 더 당신의 말을 되새겨 보고서는 또 웃는다. 그렇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네, 난 잠이 깊게 드는 데다가 자네가 푹 잘 수 있겠다면 얼마든지 안겨주도록 하겠네."
자신있게 웃으며 대답하고선, 잠시 우물쭈물거리는가 싶더니 실이 매인 당신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잡아 이끈다.
"자네가 차와 서적을 좋아하지 않았나. 근처에 좋은 찻집이라도 있나 둘러보고 싶어서 말일세."
그리 말하며, 주변에 있던 작은 불빛들이 비추는 얼굴이 매우 밝아보인다.
"그.. 그렇습니까. 그리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만,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볼이 붉은 등빛에 물든듯 옅게 붉어지고 고개가 살짝 숙여진 채 미소가 지어졌다가 당신이 잡아 이끈 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 찻집 말입니까. 경께서 좋아하시는 곳을 가도 괜찮습니다."
당신에게 잡힌 손가락에서부터 열이 나는것같아 움찔 하였지만 이내 살짝 마주 잡았다.
"그래도 저를 생각해 주신 것에는 기쁘군요. 고맙습니다, 운하."
"..하하, 그런가?"
밝게 웃어보이며, 당신의 희미한 미소를 본 것만 같아 괜시리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응, 뭐.. 자네가 짐작하는 것보다도 나는 꽤나 자네 생각을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살짝 떨리는 손으로 당신을 이끌어, 경치가 좋아보이는 찻집으로 움직인다.
"마음에 들 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좋아하는 난초도 피어있는 것 같아 말이야."
화사하게 미소 짓지만 재빨리 손을 놓고서 시선을 땅으로 옮긴다.
이끄는 대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며 당신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약간 숨죽인 호흡이 달게 느껴졌다.
"...아아, 그렇군요."
걸음을 멈추고 들린 당신의 목소리에 주위를 살짝 돌아보았다가 옅은 미소를 걸치며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가 다시 마주하였다.
"이리 좋은 곳으로 대려와주어 감사합니다."
놓아진 손을 조금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당신께 웃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괜히 미소짓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당신의 미소를 마주본다.
"감사하다니, 오히려 날 따라 와준 것도 고마운걸."
당신의 말에 뭐가 그리도 좋은지 미소가 지어지다가,
"혹.. 좋아하는 차라도 함께 하겠나? 근처에 자네가 좋아할 만한 서적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당신이 어색하지는 않을까 신경쓰이기 시작하며, 눈만 데구르르 굴린다.
당신의 말을 들으며 제 손가락에 감긴 실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차라... 왠만한 것을 다 좋아하니 어느 것이든 괜찮습니다. 그리고 서적을 보지 않아도 이리 경과 함께있는것 만으로도 좋아 굳이 보지 않아도 될것 같군요."
그리말하면서도 무언가 생각하는듯이 살짝 시선을 내리곤 조곤히 말을 덧대었다.
"게다가 제가 글만 보았다간 경께서 지루해하지 않겠습니까. 말벗이라도 되어드려야 하는것을요."
"흠... 그런가,"
차는 다 좋아한다는 말에, 바로 보기에 어여쁘고 향도 좋은 꽃차를 떠올려보았다. 당신과 꽤나 잘 어울릴 것 같기에.
"..하하.. 그런가? 나도 자네랑 있는 건 무척 좋아."
웃으며 말하는 얼굴이, 만약 꼬리라도 달려 있다면 기분 좋다고 살랑살랑 흔들릴 것만 같다.
"나는.. 으음... 물론 자네가 말벗이라도 되어 주면 정말로 좋겠다만, 가만히 글 읽는 얼굴을 구경하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말이야. 주변에 있는 꽃보다도 예쁜 걸 말이지."
농담조로 말하면서도 괜히 민망한지 시선을 피한다. 흘끔 당신을 쳐다보는 것도 물론.
"저, 저를 보는것이 무어가 재밌다고 그러십니까."
놀란탓에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오며 실을 감은 손끝이 흔들렸다.
"...아마 글을 읽어도 저를 그리 보신다면 집중이 되지 못하여 눈에 전혀 들어오질 않을것입니다. 그러니 이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다."
왠지 어색해진듯한 공기에 말을 찾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곧바로 입을 떼었다.
"그러고 보니 경이 좋아하는것은 압니다만 싫어하는것은 모르는군요. 음, 좋은 주제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 무언가 꺼려하시는것이 있으십니까."
"에이, 이리도 수려한 자네이니 말일세."
능글맞게도 웃어보다가, 곧이어 오는 당신의 말에 바로 수긍한다.
"하하.. 그것도 그렇겠지. 응,"
그렇게 당신의 말을 듣다가, 살짝 눈을 크게 떠보기도 한다. 잠시 고민하는 듯 싶더니, 애써 입을 열어본다.
"으음.. 꺼려하는 거라.. 다리가 매우 많은 곤충이라던지?"
애매하게 미소짓다가, 그걸 생각해보고선 소름이 돋는다. 몸을 한 번 떤 걸 보니.
"그럼 자네가 꺼리는 건 무언지 물어봐도 되겠나?"
"아, 확실히. 저도 그런 것은 꺼려지긴 합니다. 특히 그... 여럿이 모여있는것을 보면..."
눈살이 찌뿌려지며 목소리에 불쾌감이 담겼다. 살짝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며 음, 하고 짧은 소리를 내었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는 말을 다시 꺼냈다.
"다른 것은 으음, 굳이 따지자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아픈 것이 싫습니다. 그외에는 잘... 모르겠군요."
살짝 눈을 흐리다 다시 곱게 접으며 입술 끝을 말아올렸다.
"아, 혹시 사람의 행동 중에 싫어하는 것은 없으십니까. 혹시라도 제가 실례되는 행동을 하여 경께 미움받고 싶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당신의 말에, 그것도 상상되어버려 한 번 더 몸에 소름이 끼친다.
"..흠, 아픈 거라... 듣고 보니 그것도 꺼려지는군."
당신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뒤따라오는 말에 눈을 두어번 끔뻑여본다.
"하하.... 글쎄, 이미 살아보면서 꺼리는 것들은 많이 겪어 보았으니 말이야. 자네가 그런다 해도 별 생각 없이 넘기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어떻게 자네를 미워할 수 있을까, 작게 덧붙인다.
"자네가 나중에 필요하다면 내 우산도 씌워줄 수 있고 말이야. 음.. 그렇담 자네가 꺼려하는 행동은 있는가?"
"정말이십니까. 그렇게 말하시니 알겠습니다만..."
기쁘지만 혹 제가 정말 어쩌다 그의 마음을 상하게할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생각하다 당신의 말에 대화를 이었다.
"제가 꺼려하는 행동은 으음, 거짓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알았을 때가 마음이 아파 힘들더군요."
그리말하곤 어색하게 작은 미소를 지으며 제 말을 조금 끊어내었다.
"아, 운하 경. 음, 조금 걷지 않으시겠습니까. 이곳도 좋지만 제가 달리 쉴 수 있는 곳을 한군데 알고 있습니다."
약간 뻣뻣한 목소리로 말을 돌리고는 왠지모르게 올라오는 부끄러움을 꾹 삼켰다.
"으음, 거짓말이라..."
마음이 아파 힘들었다는 건, 직접 겪은 일인가? 그런 말은 입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삼켜진다. 그냥 말하는 당신의 얼굴만 담담히 보다가
"..응? 아, 그럼. 자네가 아는 곳이라,"
필시 좋은 곳이겠지. 덧붙여 말하며 아까처럼 붉은 실이 매인 손가락을 살짝 잡으며 생긋 웃어본다.
"소개해주게, 자네만 믿고 따라갈테니."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열이 오른 얼굴을 숙이곤 찬찬히 걸으며 잡힌 손가락을 조금 끌어당겼다. 뒤죽박죽 얽힌 생각에 할말 조차 찾지 못하여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나가기만을 하다가 이내 몸을 틀고 당신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경. 혹시 괜찮다면 손을 잠시 잡아도 되겠습니까."
사람이 아직 많은듯하여 그렇다는 핑계를 대곤 아직 붉은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며 그리 말하였다.
당신이 혹시 어딘가 불편한 건 아닐까, 불안한 눈빛으로 흘끗 살펴본다. 그러곤 눈을 두어번 끔뻑이다, 재빨리 대답한다.
"아, 무, 물론일세!"
그렇게 말하며 제가 먼저 당신의 손을 잡아버린다.
물론 사람도 많긴하지, 덧붙이는 것보다도 빨리. 무의식중에 몸이 먼저 나가버린 터라, 잡고 나서야 저도 얼굴에 열이 오른다.
괜찮은 건가..? 라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지며.
눈이 살짝 커지며 짧게 숨을 들이켰다. 잡힌 손이 움찔하며 한차례 떨었지만 이내 조심스레 마주잡곤 수줍게 웃어보였다.
"...곧있으면 금방이니 조금만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리말하며 아까보다 조금 느릿해진 걸음으로 한걸음씩 발을 떼었다.
"이리 부탁을 들어주시니, 경은 따스하신 분 같습니다. 제가 정말 귀하신분과 연을 맺을 것 같습니다."
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입술사이로 높게 나왔다.
"..응,.."
웃음을 띤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자 시선이 무의식중에 땅으로 내려간다. 정말이지, 자신에게 시비 거는 불량배들한테도 눈을 잘만 맞췄건만 이게 뭔가.
"..하하, 그렇게 말하는 자네가 따스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귀하신 분이라..."
심장 부근을 간질이는 소리에 그저 웃음만 새어나온다.
"난.. 자네랑 이렇게 지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네. 정말이지, 자네가 해주는 말이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기쁜 건지 모를 거야."
"제가 하는 말 하나로 경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저에게야말로 좋은 일입니다. 그것으로 저와 같이 있는것을 즐거이 여기신다면 더더욱이지요."
웃으며 그리 말하고는 한걸음씩 앞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적어지며 한적한 길이 나왔다. 퍽 운치가 좋았지만 나름 고요한 것이 마음에 들었으나,
"아,"
천천히 걸었는데도 도착한 발걸음이 야속하고, 그에 맞추어 기다렸다는듯 사라진 빨간 실이 안타까웠다.
"...운하, 경은 전에 제게 친우라 해주셨지 않습니까. 경께서는 어찌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으나, 그런 분과 이리 이틀동안 함께 있을 수 있게되어 저는 매우 기뻤답니다."
아직 잡고있는 손을, 살짝 쥐며 조곤히 말하였다.
"...제가 아무래도 경을 많이 아끼고 좋아하나봅니다."
고요한 길 위에서, 붉은 실이 사라진 제 손목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씁쓸하고서도 아쉬운 기운이 남았으니.
"..그거야 듣기 좋은걸. 이틀, 혹시 불편하진 않았을까 고민했단 말이지."
여유롭게 웃었지만, 당신이 잡은 손에 뜨거운 열이 오른다. 그러곤 당신의 말에 살짝 놀란듯, 눈을 두어번 끔뻑이며 당신을 응시한다.
방금 그가 뭐라고 한 거지? 이 말만 머릿속으로 몇 번 되새기다, 겨우 입이 열린다.
"....하하, 으음.."
얼굴에 점점 열이 오르며, 당신을 쳐다볼 수 없게 돼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다.
"....으응, 나도.. 화란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네. 나도 얼마나 좋아한다고."
입술을 몇 번 달싹인다.
그러고선 여기 있는 모두가 다들 상냥하고, 좋은 사람밖에 없는 것 같아 자기도 정말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필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서 말한 거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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