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30

글쓰기 모임, 8月

Lorem Ipsum by A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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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더위는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너와 나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너와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 있다. 빈말로도 세련된 장소라고는 못 한다. 다치지 않게 모래 대신 스펀지를 바닥에 깔고, 고무로 된 놀이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아직 어디 먼 나라의 이야기인 모양이다. 너와 나는 그네에 앉아 있다. 움직일 때마다 녹슨 사슬에서 불길한 소리가 난다. 하지만 아마도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때도 이 놀이터가 아직 지금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면, 누군가는 휴일을 맞아 즐겁게 놀다가 엉덩방아를 찧는 불상사를 당하게 되겠지. 다만 그게 오늘이 아닐 뿐이다. 너와 나에게는 다행히도.

지금은 여름의 끝물이다. 벌써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공기가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가 중천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지막 남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오늘은 특히 더 그렇다. 끈적이는 천이 살가죽에 달라붙고, 더운 공기가 폐에 한 줌 남은 숨을 모조리 뺏어가는 그런 날씨다. 너와 나는 한낮의 햇살을 피해 그늘이 드리운 그네에 앉아 있다. 수업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지만 둘 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유를 입에 담지는 않는다. 그저 학교가 끝나고 이 그네에서 최대한 늑장을 피우다 땅거미가 질 때쯤 들어가기로, 어느 샌가 너와 나는 약속을 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시원한 거라도 사올 걸 그랬나.

내가 말한다.

좋지, 하드 같은 거. 아니면 음료수도 좋고.

네가 답한다.

물론 너와 나에게는 물 한 병 사 먹을 돈도 없다. 주머니에 든 건 구겨진 휴지 조각과 백 원짜리 동전이 전부다. 말하자면 이건 너와 나의 놀이 같은 것이다. 놀이 속에서 우리는 원 없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도 있고, 5성급 호텔에 가서 캐비어를 먹을 수 있으며(너도 나도 사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른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석양을 향해 달려나갈 수도 있다. 놀이 속에서 너와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민과 걱정거리와 불합리함은 엔딩 크레디과 함께 사라질 것처럼 굴 수 있다. 너는 이 놀이를 제법 좋아한다.

하지만 예고 없이 놀이를 끝내는 것은 나다.

나 그냥 집을 나갈까봐.

왜? 너는 생각한다. 물론 내게 집을 나갈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걸 지금까지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다. 마치 부정이라도 탈 것처럼. 그렇게 외면하고 있으면 영영 이 문제를 덮어둘 수 있을 것처럼. 타조는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땅 아래 파묻는다고 한다. 보이지 않으면 사라졌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깊숙이 묻어둔 문제를 갑자기 위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한번 끌어올린 이상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적어도 너는, 너와 나 모두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는.

왜? 너는 생각한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나와 달리 너는 여전히 문제를 마주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침묵을 택한다. 타조가 되길 택한다.

왜?


여름 더위는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너와 나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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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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