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시리즈

사귈래

스펙아오+어스아쿠

연전 by 연전
3
0
0

* 19년 12월 14일 연성 재업

* 과거 연성이라 현재 문체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덜컹대는 진동이 사방을 조여왔다. 숨 쉴 구석까지 몰아붙이는 압박감, 톱니 소리. 주변을 메운 비명이 간헐적으로 피부를 때렸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나기 직전의 긴장감이 들숨과 날숨에 끈끈히 달라붙었다.

"스펙터."

"네."

"사귈래?"

"싫습니다."

낭떠러지로 내달릴 정열의 붉은 열차 맨 앞자리. 앞만을 응시한 두 사람, 스펙터와 아오이가 안전바를 붙들었다. 새하얗게 질린 손가죽이 팽팽하게 당겨왔다. 혈관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듀얼 디스크에서 어스와 아쿠아가 뾰로롱 튀어나왔다.

"사랑한다, 아쿠아!"

"사랑해요, 어스!"

"애인의 손을 꼬오옥 잡고! 바람을 가르고, 눈을 넘어! 롤러코스터, 출발합니다."

이곳은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회전목마와 모노레일 따위에 이어 다섯 번째 기구에 탑승하는 중이었다.

*

본디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벌벌 기는 파리한 자도 있는 법. 그 에이아이에 그 오리진이라는 건지 출구를 나서는 스펙터와 어스의 안색이 창백한 붕어빵이었다. 허리께에 닿는 끼익 우는 철문에 넌더리를 내며 스펙터가 엉망이 된 머리칼을 정리했다.

"으윽. 세상이, 세상이 돈다."

"어스, 괜찮아요?"

"아아. 조금 쉬면 괜찮아질, 우억!"

옷매무새를 다듬는 손길 그대로 어스가 따라 흔들렸다. 아쿠아의 걱정이 무참히 저버리는 순간. 언제나 가까이 마주하고 싶다는 성화에 못 이겨 익숙하지 않은 팔에 듀얼 디스크를 장착한 탓, 이라기엔 고의성이 다분했다.

"어스!"

"아쿠! 우윽."

"당신은 에이아이잖아요. 자꾸 속이 메스꺼운 척 하셔도 무의미합니다."

차디찬 무신경이 한 쌍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얼렸다. 서로를 향해 애처롭게 손을 뻗던 커플이 스펙터를 째릿 쪼아 봤다. 본인에게는 아무런 대미지도 입히지 못했으나.

"에이아이도 충분히 감정 표현은 할 수 있어요."

"그거야."

"거기, 방금 막 나온 커플 두 분! 기념 사진 커플 할인가로 들고 가세요!"

홀로 멀쩡하게 두리번거리던 아오이와 눈이 마주친 호객꾼의 떡밥. '당신의 가장 아찔했던 순간을 간직하세요!' 글자 간판이 우스꽝스럽게 강조된 가판대 위에 방금 전 어트랙션 승객들의 모습이 번갈아 띄워졌다. 가장 높은 구간에서 떨어지는 찰나. 멋드러지게 뽑힌 포토존이 영광의 일순을 뽐내고 있었다.

온통 반짝거리는 이그니스들이 무언으로 인간들을 보챘다. 스펙터가 속이 쓰린 눈빛으로 아오이를 흘겼다. 아오이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으쓱하고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두 분 커플이신가요?"

"아니…."

"네."

'아니오'라는 말을 완성할 틈은 없었다. 부정할라 치면 꼭 대답을 가로채길 수 차례. 모습을 숨기곤 목소리만 하하호호 내기 일쑤였다. 참담하게 눈꺼풀을 가리자 딸려오는 어스. 살려달라는 외침은 머리 꼭대기에서 부는 바람에 먹혔다. 와중에 착실히 '커플 할인가'로 사진을 수령한 아오이가 발을 돌렸다. 뒤돌기까지 직원의 얼굴이 어찌나 해사했던지. 실적을 올린 틈에 또 다른 호객꾼이 냉큼 '절친 할인가'로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할인가 따위 없을 겁니다, 분명."

"그래도 기념이니까. 이것 봐, 당신 얼굴 근육이 되게 웃기게 움직이는 것도 다 보여."

"어스도 눈 크기가 완전 짝짝이예요. 보여요?"

쨍한 색깔이 코팅된 손바닥만한 종이 안에서 금방이라도 날아갈 본새인 어스가 하늘하늘 흩날렸다. 누가 보면 종이 인형이 겨우 버티는 걸로 보일 테였다. '커플 할인'이라는 키워드에 정신을 붙잡던 어스가 다시금 눈동자를 굴렸다.

"눈이… 돈다…."

"괜히 보여줬나 봐요…."

아쿠아가 이리 한 번 저리 두 번 안절부절 못하고 어스를 살폈다. 단순 어지럼증은 아쿠아의 치유 능력도 듣지 않을 게 뻔했다. 아오이가 살풋 웃으며 따끈따끈한 추억을 그만 봉투에 집어 넣었다.

"애초에 커플이라는 단어에만 무섭게 반응하고 있잖아요."

"할인 받으면 겸사겸사 좋지 않나요."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아쿠아는 그렇다 쳐도 왜 아오이까지. 분명 처음 때만 해도 스펙터와 아오이의 포지션은 정반대였을 터였다. 한 번 쯤이야 하는 안일한 흥미가 벌써 몇 번째의 대리 데이트로 흘러갔는지.

매일 사이버스 세계에나 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던 어스는 오프라인 이동 셔틀로만 스펙터를 찾았다. 거부해도 막무가내. 하루 온종일 징징대며 일을 방해받을 바에야 들어주는 게 편했다. 아쿠아와 사이가 좋은 아오이는 놀러 다니는 기분으로 체념한 듯 했다.

"어딜 가나 저희가 커플 취급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귀자고 한 건데."

"대체 무슨!"

오해받기도 지쳤다며 의연한 아오이 밑으로 아쿠아가 짐짓 놀란 체를 했다.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는 듯한 시늉하며 어쩐지 얄밉게도 보이는 태도. 시선 끝에 걸린 스펙터가 눈썹을 구겼다.

"당신이 싫어할 만한 일은 아닌 줄 알았는데요, 스펙터?"

아쿠아가 아주아주 비밀스러운 얘기인 양, 그러면서도 성량은 그대로 아오이에게 몸을 돌려 속닥거렸다. 아오이가 장단 맞춰 허리 숙여 귀를 기울였다.

"저는 미유가 아오이를 생각하는 마음에 강하게 영향받은 이그니스예요. 알고 있죠?

"응. 그래서 나를 찾아준 거잖아."

"맞아요. 그래서인데, 사실 저는 능력 한 가지를 더 가질 수 있었어요. 치유와 거짓말 분별,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아오이를 생각하는 사람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요."

대놓고 다 들으라는 식이었으니 깔끔하게 맺고 태연히 뒤도는 아쿠아. 손도 모으고 곱게 눈 접어 상냥하게 '그렇죠, 스펙터?' 라는 분위기를 전했다. 스펙터의 얼굴에 언짢음이 펴발라졌다.

"그런 거짓말을 왜 제게."

"하하! 아쿠아한테 거짓말이라니 올해 들은 농담 중 최고로 웃긴…."

"거짓말이에요."

삐끗. 허리까지 젖혀가며 온몸으로 웃던 어스가 양 팔을 엇갈고 뚝 굳었다. 두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리는 게 영락 없이 에러가 난 모양새. 그런 능력은 없어도 당신의 거짓말은 알 수 있으니까… 하는 아쿠아의 목소리가 멎었다. 전산 오류를 헤매는 흐릿한 파도빛 안광에서 나지막한 오류음이 기어나왔다.

"세상이 돌고 도니 헛소리도 다 들리는군…."

"어스! 정신차려요!"

아오이가 재빨리 두 이그니스의 위치를 맞붙이자 아쿠아가 한달음에 어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반짝, 은은한 둥근 빛이 어스를 감싸자 천천히 상태가 진정되어 갔다. 코앞에 비치는 아쿠아의 얼굴에 정신이 든 어스가 몸을 뒤로 빼며 어흠, 어흠 두 번 헛기침을 했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은 느낌이 나는데. 무슨 일이 있었지?"

"아무 일도요. 괜찮아요?"

"어어, 괜찮아. 꿈을 꿨던가? 아쿠아 네가 거짓말을 하는 듯한."

"꿈이에요."

어스가 뒷머리를 문질문질 긁으며 허허 웃었다. 역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해맑은 꽃밭이 어스와 아쿠아 사이에 피어났다. 덩달아 미묘하게 가까이 섰던 두 인간이 거리를 벌리며 건조하게 서로를 마주했다.

"무슨 생각해?"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요."

"그럼 이동할까?"

대답을 들을 맘도 없었는지 아오이가 먼저 걸음을 뗐다. 무슨, 그런 뜻이 아니었단 걸 알고 있을 텐데! 같은 스펙터의 반박은 꺼낼 여지도 없이 차곡차곡 잘 묻으며. 바짝 따라 붙는 뒷사람에 아오이가 잘게 키득였다. 갑작스런 이별을 맞았던 연인은 금세 재회하자 손을 흔들며 장난을 쳐댔다.

"가고 싶어 하더니 곧잘 따라오네."

"그럼 거기서 바로 갑니까?"

"별로, 아무런 사이도 아니니까 상관은 없지 않나?"

이그니스들이 아오이를 멀뚱 바라보다 곧 각자 고뇌에 빠졌다. 팔짱을 끼고 턱을 문지르며 곰곰이 아오이에게 동조를 곱씹었다.

"음, 확실히─."

"스펙터와 아오이는 별 관계도 아니니…. 무리는 없죠."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 마십시오."

스펙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뚝딱 스위치를 뒤집은 듯 깨발랄한 콩트가 펼쳐졌다.

"물론이지. 이건 우리 데이트잖아? 어딜 벌써 돌아가려고."

"아직 한참인 걸요. 끝까지 잘 부탁드려요."

들켰냐며,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라도 꺼낸 것처럼 입 싹 닦은 뻔뻔함에 스펙터는 기가 찼다. 세 명이서 한통속.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정말 돌아가버릴까 잠깐 고민하다가도 어스 한 번, 아오이 한 번 바라보고 빠르게 접었다. 소음공해 받다 붙잡힐 바에는 이쪽이 나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 건데요?"

"글쎄. 아, 저거 봐. 기념품 노점 있다."

유원지에 하나쯤 있는 가게. 각종 머리띠부터 모자, 팔찌 등 여러 장신구가 휘황찬란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띄는 건 시즌 한정이 분명한 크리스마스 코스튬. 아오이가 산뜻하게 다가가 산타 모자를 집어다 제 머리에 얹었다. 꼼꼼하게 착용하고 전시된 거울을 들여다 보고 나면 그 옆에 놓인 루돌프 뿔 머리띠는 스펙터의 차지. 그제사 도착한 일행의 머리에 쏙 씌워 넣었다.

"뭐긴, 산타와 루돌프잖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어."

아오이가 제 얼굴을 두어 번 톡톡 쳤다. 은근한 미소가 서린 얼굴. 분명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아주 잠시 조용하다 싶던 어스와 아쿠아가 듀얼 디스크를 뾰록 가르고 나왔다. 제각각 머리에 리본과 눈송이를 매단 채.

"아쿠아, 네가 하래서 하긴 했다만 이 리본은 대체."

"잘 어울려요, 어스. 꼭 선물 상자 같은 걸요."

서, 선물 상자. 오묘한 감정을 지으며 리본을 매만지던 손길은 아쿠아의 '저만의 선물 상자'라는 노린 대사에 기쁨으로 탈바꿈했다. 아오이가 스펙터의 새로운 뿔을 딱 맞춰 끼웠다.

"우리 지금 꼴이 이 둘에게 선물 주고 있는 거 같잖아. 그러니까 산타와 루돌프."

"아뇨, 아오이. 선물은 저희가 여러분께 드리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치만─. 그래, 뭐. 그런 걸로 하자."

상관이야 없겠지. 이의를 닫으며 지갑을 열었다. 스펙터의 동의 없이 모든 상품을 결제해버린 아오이. 물 흐르듯 지나가버린 상황에 한껏 당황이 담겼다. 뒤늦게 벗으려 해봤자 아오이가 넣어두라는 손짓으로 막아버리니.

"당신, 정말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군요."

"음, 간만이니까."

산타 모자 끄트머리의 방울솜이 딸랑 기분을 밝혔다. 눈 뜨고 코 베인 스펙터가 체념의 웃음을 흘렸다.

"오오, 스펙터도 웃었어. 드디어 즐길 마음이 든 건가?"

"또 어디로 이동할지나가 궁금할 뿐입니다."

"내 목적지는 여기였어. 아쿠아가 부탁해서."

길거리에서 돈을 쓰는 게 목적이었다고 할 셈인가? 의심을 피우고 아오이를 따르면 그 방향으로 크나큰 트리 하나가 우뚝 서있었다. 사람이 많아졌다 했더니 광장이었던가. 발견하지 못했을 때야 그렇다 쳐도, 저 커다란 나무는 한번 시야에 담그면 쉽사리 뗄 수 없을 만한 흡인력이 있었다.

물감을 몇 번이나 덧댄 두터운 쪽빛 위로 그를 감싸 안은 금, 은, 적색의 파티술. 아담한 잎 한 쌍이 수줍게 달린 빨갛고 둥근 구. 밑둥을 따스하게 메운 양말과 가지각색 선물 상자에, 하늘을 찌를 뾰족한 머리에는 노란 별까지.

특별할 거 없는 정석적인 장식에도 묘한 위압감이 있었다. 귀를 기울이면 인파를 타고 귓가를 맴도는 캐롤, 엇박자로 발하는 카메라 셔터음. 당연하기 그지없는 광경에 시간이 멎었다.

"이게 크리스마스라는 건가."

허리춤에 손을 올린 어스가 음음, 계절을 음미했다. 이 정도면 아쿠아가 보고 싶어할만 했겠어. 혼잣말로 수긍하던 어스가 돌연 퍼뜩 튀었다. 그러고보니 아쿠아는? 급히 허둥대는 모습이 한 개구쟁이에게 포착되었으니. '눈으로만 보세요' 팻말을 무시하고 장식용 선물 상자를 까보던 호기심쟁이가 휘딱 내던지고는 우다다다 달려왔다. 헉. 숨을 죽인 어스가 뿅 몸을 숨겨버리고, 스펙터와 꼬마가 충돌하려던 그때.

"어딜 한눈 팔고 있는 거야?"

제쪽으로 끌어당기는 아오이에 의해 사고는 피했다. 뒤늦게 위험했음을 깨달은 스펙터가 혼자 숨어버린 어스를 향해 묵음으로 따지는 동안 몇 미터는 더 가서 겨우 멈춘 꼬마가 되돌아 왔다. 걱정과 꾸중. 무릎 굽혀 눈높이를 맞춘 아오이가 사람 많은 곳에선 조심해야지, 하고 타일렀다. 그치만을 시작으로 튀어나오는 변명과 어스의 존재는 조곤조곤 반박하며. 스펙터가 말을 얹으면 일이 더 커지기만 할 거란 판단 하, 끼어들려는 구간마다 팔꿈치로 다리를 치기도 했다.

가족이 와서 죄송하다며 데려가서야 똑바로 마주할 수 있던 두 사람. 은근히 아파하는 스펙터는 간단히 무시했다.

"하여튼, 한눈 판 탓에 이게 무슨 일이야. 눈에 띄게 루돌프 머리띠 씌워두길 잘했네."

"갑자기 사라진 당신이 잘못이죠."

"갑자기 사라졌다니. 바로 뒤에 있었거든."

이번엔 제대로 오라며 아오이가 스펙터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원래 있던 위치와 완전한 사각지대. 중앙과 대척한 둘레 모퉁이마다 작다만한 전봇대가 줄지어 서있었다. 다같이 전등 밑에 새초롬하게 크리스마스 겨우살이를 걸고서.

"크리스마스에 겨우살이 밑에서 키스를 하면 연인이 행복해진다면서요?"

아쿠아가 얼굴만 빼꼼 내밀고서 살포시 진의를 내려놓았다. 분홍색으로 가득 차오른 조그만 네모 머리가 듀얼 디스크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트리가 아니라 이게 목적이었던 건가?"

"둘 다죠. 겸사겸사."

아쿠아, 어스! 서로의 이름을 외치며 상반신까지 빠져나온 이그니스들이 손을 마주잡고 눈을 감았다. 입이랄 만한 기관은 없어도 뜻만 통하면 그만이라는 의미로 키스. 우리 이제는 함께 살아나가요. 그야말로 감동적인 멜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였다.

그를 지켜보는 일 열도 아닌 영 열 관객 두 명. 일부러 흐릿하게 뜨던 반달 눈이 슬쩍 아오이로 올라 보름달을 띄웠다. 둘의 시선이 맞닿자 달덩이는 재빨리 딴청으로 달려나갔다.

"사실 아까 아쿠아가 말했던 건 내 능력이라고 했던가?"

"무슨?"

"내 생각을 하는 사람을 느낄 수 있다는 거. 그치, 스펙터?"

또 그 소리인가 하는 마음 반, 뜨끔함 반. 대화 상대를 마주하던 눈길이 슬금슬금 도망갔다. 아, 눈을 피하는 성격하고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건 분명 어스에게 옮은 거라며 내심 신음하고 당당히 아오이를 향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거짓말이네요."

"응, 거짓말이야."

"솔직하지 못하구만!"

어스와 아쿠아가 스펙터를 빤히 쳐다봤다. 현장을 잡은 수사관의 미소. 손깍지 꽉 낀 채 저들끼리 화기애애했다. 곧 아오이마저 산뜻하게 상황 정리를 나섰다.

"자, 하고 싶은 것도 다 했으면 기구 하나만 더 타고 갈까?"

"뭐, 뭘 또 탄다고?"

"좋아요. 바이킹 어때요?"

"아쿠아가 타고 싶다면 타야지."

어스의 감탄스러운 태세 전환에 스펙터가 한숨을 쉬었다. 저벅저벅 옮기는 걸음이 여느 때보다 무거웠다.

*

"커플! 맨 뒷자리 두 분 우선 입장하실게요. 커플 두 분 안 계세요?"

"여기!"

"여기요!"

이제 라이프가 제로가 된 스펙터의 팔이 울렸다. 반박은 다 내려놓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아오이와 스펙터가 맨 뒷자리에 자리잡았다.

"아오이 님."

"응."

"사귈래요?"

안전바를 내리던 아오이가 풋,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스펙터가 고개를 푹 떨궜다.

"싫어."

자잘한 웃음이 배에 흩뿌려졌다. 바이킹은 사랑을 싣고, 출항합니다! 직원의 희망찬 목소리와 땡, 땡─ 출발을 알리는 벨 소리. 현실을 뒤늦게 인지한 어스가 정신 없이 타임을 불러도 운항을 시작한 기구는 멈출 줄 몰랐다. 안전바에 묻은 얼굴이 절로 하늘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