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시리즈

103화 날조

아오이와 스펙터, 료켄이 만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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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년 6월 6일 연성 재업

* 과거 연성이라 현재 문체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미유의 몸이 하루하루 좋아지는 거 같아 다행이야. 한결 가벼워진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핫도그 좋아하려나? 얼마만에 나눠먹는 거지. 흔치 않은 제 모습에 낯선 체도 없이, 쾌청한 하늘 아래 생글거리는 미소를 뱅뱅 돌렸다. 평소보다 하이텐션이네, 그럴 만 하니까 상관 없으려나? 간만에 즐거운 생각이 줄짓는 기분이었다.

오늘만큼은 그 감정만 안기도 벅찼을 텐데. 한 순간이란 찰나는 그런 감상을 지우기 충분했던 걸까. 눈에 들어온 한 인물에 아오이의 움직임이 주춤했다. 저 사람이 여기 왜 있는 거야. 현실과 아바타의 모습이 똑같은 게 참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눈에 익은 그와는 하얀 옷차림 뿐이 달랐으니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펙터,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은 필시 리볼버겠지. 처음 본 인물이 낯설지 않은 건 아무에게나 따르지 않을 동행인 때문이리라.

그저 못 본 척, 외면한 채 속도를 올렸다. 딱히 인사치레를 건넬 필요는 없었다. 브레인즈 바깥의 모습을 알고 있다 한들 모든 일이 끝난 지금 저들을 볼 일은 없으니까. 그럴만한 인연이 아니었으니까.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이젠 아오이."

그리 생각한 건 아오이 뿐이었을까. 이윽고 서로를 스치려던 찰나, 스펙터의 담담한 말투에 아오이가 멈춰 섰다. 타인이 본다면 마치 몹쓸 말이라도 했다 착각할 만한 고까운 눈빛이 고개를 들었다. 반가운 이와의 조우가 아니었기에. 스펙터의 단독 행동인 듯 리볼버, 료켄마저도 뒤늦게 멈춰 서니 세 명이 나란히 선 모양새가 펼쳐졌다. 료켄이 의중을 파악하려 조용히 몸을 트는 새, 아오이의 말이 이어졌다.

"무슨 용건이야?"

"별 용건은 없습니다. 같이 싸웠던 입장에서 수고했다는 말 정도야 전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요."

료켄의 눈이 카페나기 종이 봉투에 가 닿았다. 무의식적으로 그를 사리는 아오이. 몸 뒤로 숨기고는 경계 어린 말투로 다시 한번 쏘아 붙였다.

"우리가 인사할 만한 사이도 아니었고, 특별한 이유도 없다면 부르지 말아줬음 하는데."

이유가 있더라도 반갑지 않을 거고. 뒷말은 죽이며 서늘한 칼을 세웠다. 스펙터가 해치지 않는다는 듯 양 팔을 들어보이며 무장 해제 시늉을 했다.

"차갑기도 하셔라.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가벼운 인사도 용납을 못 하시겠다면야."

두 팔을 내리고는 여유로운 말투를 흘려보냈다. 실례했습니다. 빙글 미끄러지는 미소에 아오이가 시선을 보내자 으쓱하며 '설마 표정마저도 굳히라는 겁니까?' 하는 분위기를 풍기기에 그대로 무시. 가던 방향으로 몸을 틀자 미유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미유가, 또 모두가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애초 원인은 로스트 사건이었어. 모든 일의 주범, 하노이의 기사단. 지금 아오이의 옆에는 그 리더와 최측근이 서있었다. 한 발 늦게 깨달은 사실에 눈이 번뜩 뜨였다.

"미유에게, 로스트 사건의 피해자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어?"

"부르지 말라면서 그쪽에서는 곧잘 부르시는 군요."

뒤를 돌았던 아오이와는 달리 자세에 변함이 없던 두 사람. 스펙터는 다소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 진심이 아니었다는 양 지워보였다.

"이건 의미 없이 부른 게 아니잖아."

스펙터를 향하던 시선이 료켄에게 옮겨졌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입을 열 차례. 스펙터가 한 발짝 물러서 고개를 숙였다. 무미건조한 말투가 귓가에 박혀왔다.

"복수를 노리거나 원수를 갚을 생각이라면 후일 찾아 와라. 직접 상대해 줄테니."

지금은 회복부터 생각하는 게 우선이지 않나? 나지막이 붙인 말에 아오이가 시선을 내렸다. 회복부터, 라. 그런 걸 신경은 써주는 구나. 조금 웃긴데, 웃음은 안 나오네.

"그쪽은 리볼버가 맞았구나. 결국 사과할 생각은 없다는 거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묵묵한 시선이 잠시간 아오이를 스치다 거두어졌다. 대화의 종결. 료켄이 뒤를 돌아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 발 늦게 아오이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스펙터. 길게만 느껴지는 짤막한 꾸벅임 끝에 재회를 건 채 그 또한 료켄의 뒤를 따랐다.

사념을 떼기까지 다소 오래 걸린 이유는 무얼까. 두 사람을 멀뚱히 바라만 보다 축 처진 걸음을 돌렸다. 바스락 소리에 뒤로 넘긴 종이를 겨우 눈치챘다. 쥐고 있던 핫도그 봉투마저도 잠시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손에서 구겨진 얇은 벽 너머 더 이상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식기 전에 가져다 주려고 했는데, 시간이 그렇게나 흘러버린 것일까. 입술을 살짝 물었다. 더 지체할 시간은 없지. 머무른 곳곳마다 미안한 마음이 한 줌씩 떨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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