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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다 (5)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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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경험

필자는 얼마 전 차기작의 구상을 위해 경기도의 한 폐건물에 취재를 다녀왔다. 이전 모 사이비 종교의 기도 시설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동료 작가 한 명이 필자의 여정에 함께했는데, 그는 놀랍게도 몇 년 전 이 폐건물에 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있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므로 상당히 놀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방문객과 만났는데……. (생략)

동료 작가 S (이하 S) 죄송해요. 이건 말해드려야 될 거 같아서……. 시신을 처음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는 신자 B가 저예요. 그리고 아까 그 머리가 얼룩말 같았던 사람은 제 지인이었던 사람이고요…….

머리가 얼룩말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필자는 S가 그에게 썩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음을 직감했다.

S 죄송해요. 그 사람이 원래 살인 사건 조사하는 걸 좋아해요. 저랑 만났을 때도 그랬던 거 같아요.

필자 아냐. 나야 색다른 경험이었지.

S 죄송해요. 작가님도 많이 놀라신 거 같아서요…….

필자 가자고 한 건 난데 왜 자꾸 S가 죄송하다고 해. 그러지 마.

S 죄송해요…….

S는 상당히 심약한 성격이라 틈만나면 별것도 아닌 일에 사과를 하고는 했다. 물론 그 날 우리가 겪은 건 별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무거웠지만.

필자 시신을 발견한 게 S였다니……. 무서웠겠네.

S 무서웠죠……. 사실 그날 악몽에 시달렸거든요. 자는 곳이 바뀌어서 그랬었는지 몰라도요.

필자 악몽에 시달리다가 눈을 떴다?

S 네, 맞아요…….

필자 그런데 밖에 나가보니 시신이 매달려 있고.

S는 당시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듯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곧장 안색이 창백해지는 게 곁눈질로도 보였다. 안쓰러운 친구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S 전, 교주님이 서 계시길래……. 아침 설교에 늦은 줄만 알고……. 엘리베이터는 아직 꺼져있어서……. 계단을 허겁지겁 내려가면서 교주님 얼굴을 살폈는데…….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필자 괜찮아, 괜찮아. 더 안 말해도 돼. 괜히 물어봤구나, 내가. 미안해.

우리는 폐건물이 있던 산에서 빠져나와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회상

필자에게는 아직까지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대학교 은사님이 한 분 계신다. 민속학을 전공해 종교를 전문으로 연구하시고 계시는 그 분은 양 교수님이라고 한다. 폐건물, 그것도 이전에 사이비 종교의 기도원이었던 건물로 차기작 구상을 위한 답사를 나간다고 하니 양 교수님은 쌍수를 들고 반기셨다. 답사의 결과를 알려달라는 요청도 하셨다.

그리고 필자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집 근처 대학의 정문을 넘어 교수님의 연구실에 방문했다. 오피스 아워는 모두 꿰고 있으니 필자가 방문했을 때 교수님이 계시지 않을 리는 없다.

교수님은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책상 앞에 앉아계셨다. 책상 뒤 창문에서 내리쬐는 봄날의 햇빛이 뜨거워 보였다. 교수님은 항상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내리셨는데, 얼마 전부터는 포니테일을 고수하고 계신다. 나이에 맞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필자의 눈에는 괜찮아 보였다.

필자 답사 다녀왔습니다.

교수님 답사……. 아, 폐기도원에 다녀온다고 했지. 네가 그간 답장 한 번 안 해줘서 잊고 있었구나. 소득은 있었니?

필자 죄송합니다. 그 날 너무 바빴고……. 그게, 교수님이 좋아하실만한 소득은 없었어요.

필자는 한 손에 들고 있던 카페의 테이크아웃 캐리어를 책상에 올려두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필자의 몫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교수님의 몫이었다.

교수님 그래도 다른 쪽의 이야기는 있는가 보구나. 아주 꺼림칙해서 상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낮부터 휘핑크림 올린 초콜릿 음료수를 사 온 걸 보니…….

필자 원귀를 마주쳤습니다, 교수님.

교수님은 동봉된 플라스틱 빨대로 휘핑크림을 떠 드시다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필자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원귀? 사이비 종교에 원한을 가질 사람은 많지. 특히나 신자들이 그러하지 않니. 그게 상담까지 필요한 이야기인가?

필자 그게…….

필자는 폐건물 답사에서 겪은 기이한 사건을 숨기는 것 하나 없이 모두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과거에 있었던 교주의 자살극. 용의자인 신자 A와 최초발견자인 신자 B. 그리고 공범으로 밝혀진 얼룩말 머리의 남자까지.

교수님 추리극 같은 이야기구나. 혹시 살해됐다는 교주가 원귀가 되어 나타났다고 얘기하고 싶은 거니?

필자 네. 교수님 말씀대로……. 원귀가 된 교주의 혼이 그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어요.

교수님 그럴만도 하지. 원한이라는 건 개개인의 주관에 따르는 것이니. 설령 수많은 신자들을 착취한 사이비 교주라도 살인이라는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 그 나름의 원한은 태어나기 마련이란다.

교수님은 윗입술에 묻은 휘핑크림을 날름 핥아내렸다.

교수님 하지만 이런 걸 묻고 싶어서 얘기를 꺼낸 건 아닐 테지?

필자 …제가 여쭙고 싶은 건, 원귀가 원한의 대상을 앞에 두었을 때 보이는 반응이에요.

조금 남은 휘핑크림을 잘 저어 초콜릿 음료와 섞어버리던 교수님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눈썹을 쓱 들어올려선 잠시 필자의 말에 담긴 함의를 생각하는 듯하셨다.

교수님 혼은 육체라는 그릇에 담겨있다는 건 유진이 너도 잘 알거다. 그릇이 파괴되어 현실에 발 붙일 곳이 없어지면 혼은 성불하는 것이 옳아. 헌데 원귀는 원한이 강하게 남아 도저히 성불하지 못하지. 현실과 저 세상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 갈 곳 없는 분노만 터뜨리고 있는 거란다. 그런 원귀가 원한의 대상을 앞에 두면, 어떻게 될 것 같으니?

필자 …부숴버리고 싶겠죠.

교수님 잘 알고 있잖니.

필자 고성을 지르거나, 영력을 내뿜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거나.

교수님 유진이 네가 만났다는 원귀가 그런 행동을 한 거니?

필자 네. 윈귀가 된 교주가요. 교주는 공범을 보고 막 발광했어요.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흰눈을 뜨고 소리를 지르는데, 정말 고역이었다니까요.

교수님 하하하. 폐건물까지 가서 소득 하나 못 얻고 이상한 사람들에 원귀까지 만나고 오다니. 고생했구나.

초콜릿 음료의 단내가 은은하게 연구실에 퍼졌다. 교수님은 슬슬 수업을 가야 한다며 반쯤 남은 음료를 책상에 두고 일어나셨다.

필자 오늘은 저녁에 뭐하세요?

교수님 글쎄다…….

당은 억지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교수님을 보니 교수님도 사람은 맞는 것 같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연구실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필자는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원귀가 된 교주는 얼룩말 머리의 공범이 아닌 S를 보고 저주의 말을 내뱉고 있었다.

프로키온 작가님

프로키온 작가님이라는 분이 있다. 몇 년 전 장르소설 앤솔로지에 같이 글을 올린 사이인데, SF 슬래셔라는 살벌한 글을 쓰시는 것과는 다르게 친화력이 좋으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인스타그램에 하트를 찍거나 댓글을 다는 형태로 말이다.

프로키온 작가님은 일본의 어떤 기업 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얼마 전 휴가를 내셨는지 한국에 잠시 들어와 인천공항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셨다. 오랜만에 귀국하셨네요 라고 적은 친교용 댓글에 오랜만이네요 역시 한국이 좋아요 유진 작가님은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 시간 되시면 언제 밥이나 한번 먹을까요 라는 답글 러쉬를 받은 필자는 어쩌다 보니 그와 정말로 밥이나 한번 먹게 되었다.

프로키온 와, 이게 얼마만이야. 작가님! 요즘은 책이 아니라 웹소설을 쓰고 계시던데! 반응도 좋고!

필자 하하, 아닙니다. 프로키온 작가님은 차기작 생각 없으세요?

SF 슬래셔라는 기이한 장르를 쓰는만큼 그의 팬층은 소수의 코어팬으로 이루어져 있다. 업무가 바쁜지 영 작품을 공개하지 않는 프로키온 작가를 코어팬들은 그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다.

프로키온 아우우, 쓰긴 써야 되는데 이상하게 손이 안 간다니깐. 하하하하.

프로키온 작가님이 자줏빛으로 염색한 머리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옅게 색이 들어간 안경이 튄다면 튄다.

식사를 하며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프로키온 작가님은 여전히 일본의 기업 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책은 요즘 별로 읽지 않고 반신욕을 하면서 욕조에 머리 끝까지 담그는 게 기분이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필자 역시 비슷한 수준의 얘깃거리를 꺼내다가, 불현듯 얼마 전 S와의 폐건물 답사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필자 저, 얼마 전에는 S 작가님이랑 같이 폐건물에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프로키온 폐건물이요?! S 작가님이랑! 우와, 그거 좋은데. 어디 폐건물이요?

필자 안양에 있는, 예전에 사이비 종교의 기도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는데요…….

필자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경찰이라고 주장하는 두 사람과 만난 것, 과거의 자살 사건에 대해 들은 것, 실은 그게 자살이 아니라 살인이었으며 범인과 공범이 밝혀졌다는 것…….

필자의 이야기를 듣던 프로키온 작가님은 초반에는 흥미로운 듯하셨지만, 내용이 진전될수록 왠지 얼굴에 심각한 빛을 드리웠다. 그가 처음으로 필자의 말을 끊은 건 S 작가가 귀가하는 차 안에서 눈을 질끈 감는 장면에서였다.

프로키온 잠깐……. 잠깐만요.

필자 왜 그러세요?

프로키온 S 작가님이 그렇게 저돌적인 성격이었나?

필자 전혀 아니죠. 저돌적이라니 말도 안 돼요. 소심한 편이시죠. 그래서 저도 그땐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로키온 그러니깐, 그러니깐……. 뭔가 마음에 걸리는데. S 작가가 그 공범이라는 얼룩말이랑은 지인이라고 했다고요?

분명 멀쩡한 이름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얼룩말이라고 불렸다.

필자 음, 지인이었다고 하진 않았고 지인이었던 사람이라고 했던가. 비슷한 뉘앙스였습니다.

프로키온 지인이었던 사람이라…….

프로키온 작가님은 무언가 짚이는 게 있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필자 그런데 그건 왜……?

프로키온 뭔가 납득이 안 되는 점이 있어서요.

신발

필자 어느 부분이요?

프로키온 S 작가님이 교주의 시신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러서 사람들이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필자 그랬죠. 최초발견자라고 했었죠.

프로키온 그게 이상해. 4층에 머물던 S 작가는 악몽을 꾸고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단상에 서 있는 교주를 봤다고 했어요. 그래서 자기가 아침 설교에 늦은 줄 알고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갔다면서요.

필자 계단을 내려가면서 교주의 눈치를 살폈답니다. 그 때 교주가 목이 매달려 죽은 걸 알고 비명을 질렀겠죠.

프로키온 음…….

프로키온 작가님은 자줏빛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부여잡고는 고민에 빠졌다. 필자보다 세 살이 많지만 언제나 젊게 사시는 분위기다.

필자 뭔가 문제가 있을까요?

프로키온 S 작가님은 교주가 왜 단상에 서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필자 그야, 교주는 단상에 서서 목이 위로 졸려진 채 죽었으니까요. 교살한 후에 줄을 난간에 묶어두면 몸이 선 채로 축 처지겠죠. 막 악몽에서 깬 S 작가가 그걸 서 있는 걸로 착각했던 겁니다.

프로키온 아니, 그게 아니라. 작가님. 공범 얼룩말은 교살된 시체에서 신발을 벗겨 5층 난간 앞에 가져다 뒀다고 했죠?

필자 네? 그랬죠. 그러니 자살로 판단된 거고요.

프로키온 얼룩말이 일어났을 땐 새벽녘이 밝아 있었고. 그렇다는 건 얼룩말의 방에는 새벽녘을 확인할 수 있는 창문이 있다는 게 되겠죠.

필자 …그렇게 되겠죠?

프로키온 5층의 예수상 뒤에는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어서 해가 뜨면 빛이 환하게 비쳐 들어왔고?

필자 …그렇죠?

프로키온 그렇다면 복도에 불이 켜 있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맨눈으로 주위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겠죠?

필자 아, 네. 제가 답사를 갔을 때도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빛이 들어와서 꽤 밝았어요.

진짜 손전등을 대신해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실상 폐건물에 들어가고 나선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5층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햇빛이 비쳐 실내가 결코 어둡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키온 그럼 S 작가는 대체 왜 교주가 살아있다고 생각했을까요?

필자 네?

프로키온 S 작가의 말이 진실이라면, S 작가가 매달린 교주를 발견했을 때 교주는 흰 양말 차림이어야 하잖아요. 신발은 얼룩말이 이미 벗겨갔으니까요! 그리고 교주가 흰 양말 차림이라면 그게 S 작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리가 없어요. 얼룩말이 신발을 벗길 때 이미 새벽녘은 떠 있었고 실내는 충분히 밝았을 거 아니에요. 그럼 S 작가는 흰 양말을 신은 교주를 보고 설교를 위해 단상에 서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필자 …그건 이상하긴 하지만, 제가 말했던 것처럼 악몽을 꾸고 일어났으니 그 정도의 분별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프로키온 악몽, 악몽 하니 말인데. 좀 더 납득하기 쉬운 가설이 하나 있어요. 방금 생각해냈습니다.

필자 …뭔가요?

프로키온 S 작가는 애초부터 신발을 신고 단상에 선 교주를 봤다는 설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아침 설교를 하려고 단상에 선 거라고 생각할 만도 하죠.

필자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프로키온 여기부터는 순전히 제 상상이에요. 유진 작가님이 먼저 무서운 얘기를 꺼내셨으니 저도 무서운 얘기를 이어드리고 싶어서요.

그가 테이블 위로 상반신을 쭉 내밀며 말했다. 입은 싱글싱글 웃고 있지만 눈은 어쩐지 웃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필자 …들어나 보겠습니다.

무서운 상상

프로키온 그럼……. 교주가 살해당한 새벽, S 작가는 방 밖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가니 단상에 선 교주가 보인 겁니다. 설교를 위해 신발까지 잘 챙겨신으신 걸 보고 S 작가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계단을 타고 내려갑니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가던 S 작가의 눈에 보인 건…….

필자 교주의 시신…….

프로키온 유진 작가님. 작가님이 S 작가가 되어 생각해 보세요. S 작가님은 한때 사이비에 몸담고 있었어요. 사이비는 교주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상한 곳이잖아요. 전날까지만 해도 기도회에서 열심히 설교하셨던 교주님이 아침에 눈뜨자마자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런 상황에서 심약한 S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을 거 같아요?

필자 경찰에 신고해서 진상을 밝히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프로키온 작가님은 참 몸처럼 정신도 건강하신 거 같아요.

필자 감사히 듣겠습니다.

프로키온 근데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S 작가님을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 정신적으로 강하신 분 같진 않거든요. 그 분이 쓴 글을 읽어보면 대강 감이 잡힙니다. 특히 데뷔작인 보랏빛 심해. 현실과 꿈을 혼동하며 해변으로 밀려온 잘린 머리의 환상을 보는 내용이잖아요. 정말이지 정신적으로 오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었어요……. 아! 잡설이 길었네요. 아무튼, S 작가님은 정신적으로 약해요. 하물며 사이비를 믿고 있었던 상황이라면 더더욱 약했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교주의 죽음을 목격한 S 작가님은…… 현실 부정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필자 현실 부정……. 아니, 설마요. 설마. 그 친구가 소심하긴 하지만 설마…….

프로키온 눈앞의 상황을 이해했지만 너무나 큰 충격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S 작가님은 아마 교주가 목매달고 죽은 사실을 악몽으로 치부하려고 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집니다. 이건 꿈이고, 다시 들어가서 자면 된다. 그런데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었습니다. 뭐였을 거 같아요?

필자 다시 자기 전에 할 일이라니……. 그런 게 있을리가요.

프로키온 아뇨, 분명히 있었어요. 교주님의 신발을 벗겨 5층에 두는 거예요.

필자 …뭐라고요?

프로키온 현실과 꿈을 혼동했더래도 어쨌든 꿈은 현실의 부속물일 수밖에 없죠. 우리는 현실에 발 붙이고 살고 있으니깐요. 그러니 꿈의 이치는 기본적으로 현실의 이치를 기저에 두곤 합니다. 예를 들어 현실의 나는 회사원이지만 꿈 속의 나는 고등학생이라 해 봐요. 꿈 속의 나는 고등학생이니 4교시가 끝나면 점심을 먹을 겁니다. 현실의 나처럼 오전 업무를 보고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꿈 속에는 꿈의 이치가 있지만 현실의 이치를 부분적으로 따른다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꿈 속의 내가 이질감을 느껴 꿈에서 깨지 않도록, 꿈 속 환경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두뇌의 연막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이고, 또 잡설이 길었네.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 애를 먹고 있는 필자를 내버려두고 프로키온 작가님은 500ml 플라스틱 물통에서 물을 따라 한 잔 마셨다.

프로키온 어우, 좀 살겠다. 자……. 그렇다면 현실을 악몽으로 치부한 S 작가님은 어떤 이치에 따라야만 했을까요? 교주님의 자살이라는 악몽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S 작가는 뭘 해야만 했을까요. 자살자의 눈에 띄는 특징이 뭐가 있죠? 바로 신발을 벗어두는 겁니다. S 작가님이 보기에 교주님은 자살하신 거니까 신발을 벗어 5층 난간 앞에 두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한 겁니다.

필자 아니, 말도 안 돼요 그건. 대체 누가 그게 올바르다고 생각해서 굳이 신발을 벗깁니까?

프로키온 하하, 제가 아까 순전히 제 상상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필자 상상도 정도가 있지…….

프로키온 그게 아니면 얼룩말의 증언이 성립이 안 되거든요.

필자 증언이요?

프로키온 타임 테이블을 잘 생각해 봐요. S 작가가 공범의 위치에 있을 때의 타임 테이블을요. 신자 A에 의한 교주 살인이 거행되고 그 소음 탓에 S 작가는 밖으로 나왔을 겁니다. 그리고 S 작가는 신발을 신고 단상에 선 교주의 시신을 발견, 현실에서 벗어나 악몽의 세계로 도망칩니다. 자신의 악몽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교주의 맨발이죠. S 작가는 신발을 벗겨 5층에 가져다 두고 다시 잠에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두 번째 잠에서 깨어났을 때 교주의 시신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던 거예요. S 작가는 그제서야 현실을 목도하고 비명을 질렀겠죠.

필자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 보았다. 사건의 등장인물은 네 명. 피해자 교주와 가해자 신자 A 그리고 최초발견자 S 작가, 마지막으로 공범자 얼룩말.

하지만 얼룩말은 사실 공범이 아니었고, 최초발견자였던 S 작가가 실은 의도되지 않은 공범이었다면. 그렇다면 얼룩말은 당시의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걸까.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기에는 그의 패배 선언 겸 사건 해설이 너무 상세하지 않았나.

프로키온 S 작가님이 최초발견자이자 공범이라면 이 사건에 얼룩말은 전혀 개입하지 않은 게 되죠.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떻게 사건의 내막을 그렇게 잘 알고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사건이 새벽에 일어난 것도 알고 있고 말이에요. 이건, 간단합니다. 실은 얼룩말은 사건이 일어났던 때 깨어있었던 거예요. 그게 살인 현장의 소음 때문이었든, S 작가가 신발을 놓을 때 났던 소리 때문이었든. 어쨌든 당시 깨어있었던 얼룩말은 창문으로 비춰드는 새벽녘을 봤고 그에 더불어 S 작가가 5층에 신발을 가져다 놓는 것도 보았던 겁니다.

무시무시한 가설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상상을 들으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필자 …잠깐만요. 저도 얘기 좀 해도 됩니까?

프로키온 웰컴!

필자 얼룩말이 신발을 가져다 놓았다는 본래의 해답이 틀렸다는 증거는 없는 거 아닌가요? S 작가는 현실과 꿈을 헷갈린 게 아니라 정말로 악몽을 꾸었을 뿐이고, 악몽에 시달린 탓에 흰 양말을 신은 교주를 보고 아무런 의심 없이 설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걸수도 있잖아요.

프로키온 그러면 S 작가가 ‘5층의 신발을 설명해 봐라’라는 얼룩말의 질문에 그렇게 큰 동요를 보일 이유가 없죠. S 작가는 자기가 기도원에 있었던 사실을 폐건물에 도착해서야 기억해냈다고 했죠? 그럼 무의식 중에 자기가 교주의 신발을 옮겼다는 사실도 깨닫고 있었을 거예요. 그게 질문에 대한 동요로 나타난 거고요.

…맞는 말이었다. 신발에 대한 지적을 하기 전까지 S 작가는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논리를 잘 펼쳐냈다. 그런 그의 상태가 한순간 불안과 절망에 침식된 건 얼룩말이 신발을 지적한 직후의 일이었다. 논리에 허점이 있다면 그걸 보완하면 되고, 도무지 보완할 수 없다면 그저 포기하면 된다. 하지만 S 작가는 그 지적 한마디에 완전히 페이스를 잃고 무너져내렸다…….

필자 아니, 그럼 애초에 얼룩말은 왜 자기가 했다고 한 거예요? S 작가가 신발을 옮기는 걸 봤으면 S 작가의 짓이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프로키온 그건 두 사람이 이전에는 지인이었기 때문이겠죠.

필자 그게 무슨…….

프로키온 아, 말 너무 많이 했나 봐. 목이 다 아픈데? 하하하하, 내 무서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에요. 질문도 더 안 받을래. 커피나 마시러 안 갈래요?

그는 충격적인 상상에 말을 잃은 필자를 데리고 카페로 향했다. 식당에서 두 블럭 떨어진 건물에 있던 카페에서 우리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폐건물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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