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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다 (4)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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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다고 강상호는 생각했다.

살인 게임의 비협조적인 동료 이대림은 (사건 풀이에는 이따금 얼굴을 비췄지만 정작 사건의 출제는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살인 게임의 존속만을 보자면 가장 위험한 동료 중 하나였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시간이 되면 예전에 겪었던 미해결 사건을 소개해주겠다며 상호를 꾀어냈다. 그가 경영하고 있는 업체에 일이 없어 심심했는지도 모르고 (경영자로서는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겠으나) 어쩌면 지난 겨울 감기에 걸려 쓰러진 그를 보살펴 준 것에 대한 보답인지도 몰랐다. (그가 그런 것에 보답을 하는 인간상인가에 대해서는 제쳐두고서라도)

서울에서 나와 사건의 무대가 되는 폐건물이 있는 안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대림은 느긋하게, 또 사건 풀이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그 자신의 전애인에 대한 미련을 섞으며 (이대림 씨 당신도 참 순애보인 건지 아님 뒤틀린 지배욕의 현시인 건지 알 수가 없어 라는 말을 상호는 속으로 삼켰다) 오 년도 전에 겪었던 사건을 설명했다.

하지만 설마 현장에 도착해서 폐건물을 취재하러 온 작가 두 명을 만날 줄은…….

그 중 하나가 이대림 씨의 전애인 서도진 씨일 줄은.

상호는 몇 년 전 그와 대면한 적이 있다. 지금도 끗발을 꽤 날리고 있는 어떤 범죄 조직에 얽힌 상해 사건의 관련인, 그리고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그 상해 사건을 조사하게 된 형사로 마주했던 것이다. 그 때도 도진은 행동거지가 이상했다. 정신이 어쩌면 분열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상호는 그를 주시하면서 생각했었다. 분열이라고 할까, 어떤 면으로는 완전히 붕괴되어 있는 것도 같았고 (작가라는 사람들은 원래 어딘가 붕괴된 측면이 있지만) 다른 면으로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 의식이 연속되지 않는 것마냥 그는 행동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부스스하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낼 생각도 않고, 동행한 동료 작가의 시선은 뺨에 닿지 않는 것처럼 여기며, 방금 전까지 혼란하게 움직였던 눈동자는 어느 순간 한 곳만을 빤히 응시한다.

대림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명백하게도 화를 내고 있었다.

독고라는 특이한 성을 쓰는 호러 작가는 친구의 변화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대림이 사건을 설명하는 동안 줄곧 단상 조금 위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꼭 그곳에 아직도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듯이. 슬쩍 그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허공을 유영하는 먼지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대림은…….

“떠오르는 게 있으신가 봅니다, 작가님.”

쓱 웃으며 능숙하게 그를 부추겼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건 교주가 과연 4층에서 죽었는가…… 겠죠. 살해당한 교주도, 당신이 범인으로 몰고 있는 신자 A 씨도 5층에 묵고 있었으니까 5층에서 두 사람이 만나 죽고 죽였을 가능성도 있어요. 만약 범행 현장이 5층이라면 신자 A 씨가 계단을 오가지 못하는 문제도, 교주의 신발이 5층에 남아있는 문제도 전부 해결되죠. 5층에서 교주를 목 졸라 죽인 다음 신발을 벗기고 난간에 매달면 되니까요.”

도진은 길게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말하는 중간중간 말을 더듬거나 자연스럽지 못하게 숨을 들이키기는 했지만 (상호는 죽고 죽였을 가능성이라는 어구에서 작가나 쓸 법한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름 깔끔한 주장을 폈다. 살인 현장이 5층이라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점 역시 있다.

상호가 무어라 언질을 주기도 전에 대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볼이 아주 옅게 상기되어 있는 게 기분 나빴다.

“교주는 아주 건장한 장신의 남성이었습니다, 작가님.”

어딘가 감탄스럽다는 말투로 이어 내뱉는다.

“게다가 신자 A 씨는 무릎을 다친 여성이었죠. 그런 사람이 어떻게 건장한 교주를 목졸라 죽일 수 있었을까요? 난간에 매다는 건 또 어떻게 하고요. 시신을 난간 밖으로 밀어내다가 딸려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럼 5층에서 죽였다는 게 아니라는 거겠죠……. 그런 검증이 되는 거죠.”

도진은 그렇게 해답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루트를 틀어막았다. 몸이 불편한 여성이 건장한 남성을 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품이 든다. 이 전제는 5층에서의 살인을 부정한다. 만일 신자 A가 약물 등으로 교주를 제압해 살해했다고 하더라도, 크고 무거운 남성의 시신을 난간 밖으로 던지면 그러한 흔적이 남는다. 이를 테면, 시신의 목뼈가 교수형을 집행당한 죄수처럼 부러진다든가.

“…교주의 목에 남은 끈의 자국은 연속되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그건 남한테 목이 졸려서 죽은 게 아니라 정말이지 목이 매달려서 죽었다는 뜻이니까.”

주제를 바꿔서, 사람이 목을 매달면 어떻게 될까? 숨을 쉬지 못해서 죽는다. 이런 뻔한 얘기 말고.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은 것과 남에게 목을 졸려 죽은 건 끈의 자국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스스로 목을 매달았을 경우 체중은 자연스럽게 목의 앞쪽에만 쏠리게 되고, 따라서 끈 자국은 연속되지 않는다. 목의 앞 부분에만 남는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목을 졸리면? 범인은 피해자의 목숨을 확실하게 끊기 위해 목 뒤쪽에서 끈을 교차해 꽉 조일 것이다. 결국 목을 일주하는 연속된 끈 자국이 남는다.

대림의 말만 듣자면 교주의 시신에는 끈 자국이 연속되지 않고 반만 남아 있었던 듯했다. 아무리 지역 경찰이 수사했더라도 명확한 타살 흔적을 보고 그냥 자살로 넘기진 않았겠지.

“교주는 4층에서 목이 매달려 죽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디서 교주의 목을 끌어올렸을까. 당연히 5층이겠죠. 5층은 최상층이고 난간에 줄이 묶인 층이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신자 A 씨가 묵고 있던 층이니까…….”

도진의 추리를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며 감상하던 대림이 비실비실 웃으며 호응했다. 단상에 선 상호의 시야에서는 그의 뒤통수뿐이 보이지 않지만, 말에 웃음기가 섞이는 걸 보아하니 그저 행복한 모양이었다.

“아아, 설교 준비를 하려고 4층 단상에 선 교주의 목에 신자 A 씨가 줄을 걸어 교살했다는 거죠?”

“…네. 일단 목에 줄을 걸고 당기기만 하면 되니까, 죽이기도 쉽고. 다 끝난 다음에는 난간에 줄을 묶어두기만 하면 자살로 꾸밀 수 있죠.”

상호는 범행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침 설교 준비를 위해 일찍 객실을 나선 교주. 같은 층에 머물던 신자 A는 문 소리를 듣고 나와 그의 행동을 관찰한다. 교주는 4층으로 내려가 단상에 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신자 A는 교주의 루틴을 알고 있었던 걸까. 몰래 챙겨두었던 긴 끈 말미에 고리를 만들어 5층 난간에서 조심조심 아래로 내린다. 등 뒤에는 양 팔을 벌린 예수상이 서 있다. 교주의 목에 고리가 걸리고, 신자 A는 도르래를 끌어올리듯 힘껏 끈을 당겨올린다…….

나쁘지 않은 가설이다. 하지만 이걸로는 가장 큰 문제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건 물론, 대림도 깨닫고 있었다.

“사실 저도 그 생각을 가장 먼저 하긴 했습니다만. 그걸로는 5층에 남은 신발이 설명이 안 돼요. 교주가 5층에서 4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신발을 벗고 내려가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건…….”

도진이 입을 앙다물었다. 얇은 눈썹을 일그러뜨려 미간에 주름을 새기곤 올곧았던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다. 자연스럽게 펴졌던 손은 어느새 제 상의 밑단을 꽉 붙잡는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샐 정도로 세게 쥔 손이 부르르 떨리는 모습을 상호는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그러니까…….”

방금까지의 당당한 기색은 대체 어디로 쓸려나간 건가.

마른 입술을 몇 번 달싹인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숨은 갑작스레 거칠어졌고. 동공은 이제야 눈앞의 포식자를 알아챘다는 듯이 잔뜩 축소되어선. 가빠진 숨을 달래기 위해 입가를 손으로 덮는다. 힉힉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실은, 기이한 행동은 줄곧 그의 곁에 붙어있던 호러 작가에게서도 시작되었다.

도진과 대림이 사건에 대한 가설을 나누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자신이 알고 있던 친구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도진의 상태가 순간 변모한 때 그의 얼굴에는 이전의 것과는 다른 어떠한 공포와 경악이 혼재된 빛이 스쳤다. 다시 말하자면, 무언가를 보고 자지러지게 놀랐다. 하지만 입가 근육을 팽팽하게 당기는 것으로 비명을 무마했다.

뭘 본 거지?

단상 위에 선 상호는 그의 시선을 쫓아보았다. 자신의 어깨 즈음에 시선은 멈춰있었다. 박쥐라도 올라탔나 싶었지만 박쥐는 커녕 벌레새끼 한 마리 없었다.

“괜찮으세요? 작가님.”

대림이 입을 막은 도진에게로 성큼 다가섰다.

저 사람도 참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다 싶었을 때였다.

“물러나!”

낯빛이 묘하게 창백해진 유진이 외쳤다. 깜짝 놀란 도진과 오랜만의 접촉을 방해받아 심기가 거슬리는 듯한 대림이 그에게로 고개를 휙 돌린다. 유진은 두 사람의 눈치에도 (눈치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는 대림만이 하고 있었겠지만) 굴하지 않고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물러나세요, 뭐하시는 겁니까!”

“아니, 작가님 상태가 안 좋아 보이셔서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없을까 하고.”

시선이 허공을 짧게 스치다가 다시 대림에게로 향한다.

“그쪽이 몰아세워서 그런 거 아닙니까. 물러나요!”

그쪽이 물러나지 않겠다면 차라리 이쪽이 멀어지겠다는 건지 그는 도진의 손목을 잡아 몇 걸음 뒤로 끌어당겼다. 천장의 금에서 부스러진 작은 돌맹이들이 신발 밑창을 긁어대는 소리. 여전히 입을 막은 채 숨을 고르던 도진이 다시 놀라 헉헉댄다.

대림은 갑자기 끼어든 호러 작가가 어이가 없는지 잘 다듬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다가 상호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렇다는데요, 팀장님.”

“민간인 너무 놀라게 하지 말아.”

대림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여간 쿵짝은 잘 맞는다니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이 경위, 혹시 애초부터 같은 신발이 두 켤레 있었던 거 아냐? 2박3일밖에 안 되는 일정이라지만 그 사람은 매일 같이 신자들 앞에서 설교를 했을 거 아닌가. 그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예비용 신발을 한 켤레 더 가져왔을 수도 있지.”

“합리적인 추측이십니다. 근데 그건 또 아니었어요. 제가 얘기를 안해드렸던가요, 사건이 겨울에 일어났었다고?”

“뭐라고?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겨울이라니, 겨울이라…… 아니, 그 중요한 얘기를 지금 와서 하면 어떡해. 이 경위도 참 칠칠맞은 구석이 있군…….”

사건 풀이에 있어 사건의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림이 모를 리 없다. 여름이 되면 시신은 빠르게 부패해 사망추정시각을 재기 어렵고 겨울이 되면 얼음이라는 최고의 시한폭탄이 사방팔방에 널리게 되지 않는가.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계절에 일어났는지에 따라 풀이 방식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했나 봅니다. 아무튼 사건은 겨울에 있었습니다. 당시에 눈도 많이 왔었고요. 다들 자가용으로 왔다고는 하지만 기도원 밖에 쌓인 눈을 아예 밟지 않을 수는 없었어요. 교주는 아예 주변 산책을 장려하고 그 스스로 산길을 걷기도 했으니 신발 바닥에 젖은 흙이 묻지 않았겠습니까.”

만약 현장에 남은 신발이 깨끗했다면 당시의 수사반이 의혹을 품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 현장에 남은 교주의 신발에는 눈길을 걸은 흔적이 있었다는 의미와 같다. 분명 다른 증거들도 수집해 교주의 신발임을 명확히 했었겠지.

“애초에 신발이 두 켤레여도 말입니다, 5층에서 신발을 신고 내려간 교주의 목을 매달고 맨발로 만들 수는 없죠.”

“이런, 확실히 그렇구만.”

신자 A는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한다. 대전제를 까먹어서는 곤란하다.

“신자 A가 교주를 위협해 신발을 벗겼다는 건…… 말이 안 되는군. 건장한 남자를 상대로 위협은 커녕 역으로 위협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야.”

“동의합니다.”

대림이 등을 보인 채 대답했다. 그를 마주보고 선 호러 작가는 도진을 등 뒤로 감싸선 허공을 흘끔이다가 경찰 흉내를 내는 한 사람과 실제로 경찰인 또 한 사람을 번갈아보다가 아주 분주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건지. 허깨비라도 보이나. 저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왼쪽 눈으로는 보여서는 안 될 게 보인다든가?

눈동자를 쉴새없이 굴리던 그는 갑작스레 두 눈을 질끈 감더니, 이렇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죠?”

대림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 톤이 낮아져 있었다.

“왜……. 공범의 존재는 상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공범이라뇨?”

“신자 A 씨가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한다면,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공범 B가 범행 후 신발을 가져다 주면 될 것 같은데요.”

대림이 크흡, 하고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이치에도 맞지 않는 헛소리라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호러 작가시라고요? 혹시 공범은 리스크 분담의 동의어라는 개념을 아십니까? 신자 A가 사람을 죽이면 공범 B는 시신에서 신발만 벗겨 가져다 준다고요? 그렇게 치우친 리스크로 함께 뭘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가늘게 눈을 뜬 유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장을 펼쳤음에도 실상 대림의 반박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 상호에게는 슬슬 기이하게 비쳤다.

“게다가, 아까 제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그 때 기도원에는 교주를 추앙하는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그 중 신자 A만이 그에게 적개심을 내비쳤고, 다음 날 교주가 목매달아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으니 자연스럽게 신자 A에 의한 살인을 의심하게 된 겁니다. 그녀 외에는 용의자가 될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곳은 맹목을 도구로 삼아 인간을 착취하는 사이비 종교였으니까!”

대림이 강하게 말했다. 유진은 그런 그를 조금 질렸다는 눈으로 보다가 시선을 다시 빙글빙글 돌렸다. 그 어디에도 닿지 않는 시선을 유진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허공을 훑는 것도 같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초파리를 쫓는 것도 같은 시선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유진이 보이지 않는 것을 쫓고, 대림이 다음에 이어질 말을 고민하고, 상호가 눈앞에 펼쳐진 촌극의 전개를 예상하는 사이.

“있었어…….”

도진이 중얼거렸다.

제 몸을 가로막은 유진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내린다.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더 있었어.”

유진은 이젠 파리해진 낯을 모로 돌려버리고 있었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단호하지만 울상인 얼굴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어디서 불어왔는지 모를 차가운 공기의 흐름이 상호의 뺨을 할퀸다.

도진은 자신의 앞에 버티고 선 대림의 가슴팍을, 치켜세운 검지로 눌렀다.

대림은 몸을 조금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수사를 위해 잠입했다고 주장하는 당신이 바로 그 공범자야.”

뭐, 그렇습니다.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맞아요. 제가 그런 게 맞습니다. 그 날 밤에 자다가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아니 새벽녘은 환하게 뜨고 있었으니 새벽이라고 하는 편이 낫겟군요. 아무튼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문에 귀를 대고 잠시 기다려 보았습니다. 복도에서 뭔가 격투가 일어나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시간이 좀 지나니 남자의 신음은 멎고 여자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에서 객실로 들어가는 문 소리도 들렸고요. 복도에 사람은 두 명인데 들어가는 소리가 하나 뿐이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 몰래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아, 저는 그 때 5층에 묵고 있었습니다. 복도로 나가니 일단 난간이 보였고, 시야에 뭔가 이상한 게 잡힌다 싶어서 보니 난간에 묶인 매듭이었습니다. 창고에 굴러다니는 노끈이 난간에 묶여있던 겁니다. 깜짝 놀라서 난간 밑을 보니 교주가 매달려 있던 거죠.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저는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가 4층으로 향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교주는 이미 죽어서 살 가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축 늘어진 교주를 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아, 기도회에서 교주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신자 A 씨가 결국 사고를 쳤구나. 그 사람은 몸도 아픈데 살인죄도 지고 살아야 하는 건가. 어쩌면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살로 꾸며 그녀를 죄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주자. 어차피 죽은 교주는 사이비 행각으로 많은 신자들에게서 돈을 빨아먹은, 격하게 말하자면 죽어도 싼 사람이니 목숨의 등가교환 대상으로는 썩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주의 시신에서 신발을 벗겨 5층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예수상 앞에 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그를 자살로 판단했고, 신자 A 씨는 사이비 종교에서도 살인죄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결말입니까. 어쨌든 전 그 사건을 빌미로 해서 신자 A 씨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거든요. 사이비에 빠질 정도니 정신은 좀 좋지 못한 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사이로 발전했었습니다. 아,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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