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

放浪 by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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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삶을 누구에게 찾아야 할까 생각하면 내 남은 미래를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 막연하게 떠올렸던 긍정은 막을 내린 인생에 마침표처럼 찍혀 남았다. 광야를 떠안았을 때 마주한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아무도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는 위장할 수 있다면 거짓만 남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바꾸어 낀 지 오래된 색안경을 고쳐 썼다. 다리가 헐렁해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것을 굳이 얼굴에 떼어놓지 않는 이유라 함은 일관적인 단단함을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어진 틀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었지만 도리어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바랄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었기에 변화는 당연하다 뱉었지만 나약한 변화라면 차라리 불확실한 불변이 낫다 생각했다. 나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끝이 났는가, 내 변화는 강인함을 증명할 수 있었는가, 물음에 답할 사람은 주변에 한 명도 없었지만 답이라면 스스로가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새로 주어진 목숨에서 첫발을 내딯는 곧은 의지라 명명했다.


  내민 발걸음은 소멸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구천을 떠돌 영혼이 아닌 실존하는 것이 되어 그리움을 쫓았다. 원인을 굳이 제시하자면 그저 새로움 이전에 쌓아놓은 정의 잔재라 여겼다. 다만 정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던 것이 인생의 제일 큰 실수가 아니었을까. 진심이 담긴 사랑이 어디 있느냐, 쏟을 눈물은 차라리 마음에 모아 두는 게 낫다, 억압하는 감정에 정이란 것이 모순으로 들어찰 줄 누가 알았겠는가. 후회가 될 것을 알았음에도 마음에 품었던 것은 어리숙한 사람의 모습이었으나 고찰 뒤에 내린 단어는 후회가 아니었다는 것이 기억의 가치에 추를 달았다. 수평선의 태양을 등지고 추억을 상기했다. 그것에 담긴 감정이 극단으로 치우친다 한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일에 허비하는 행위가 썩 영양가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장대한 폭발 속에서 기어이 붙잡은 목숨 줄이란 주마등처럼 목에 낭자한 흉터로 남아 기억을 다시금 새겼다. 현장에서 단절되는 생명이 재처럼 흩어질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스스로가 버틴 몸은 원치 않은 구원처럼 발을 디뎠다. 이상과 행복에 대해 논하며 유언이 될 낭만주의의 연설은 현실에 남아 앞으로 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텐데, 유머랍시고 홀로 던지는 문장엔 정성이 없었다. 문드러졌던 피부는 길지 않았지만 지난 세월로 아물었음에도 호흡하는 행동의 편의는 나아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호흡기 언저리에 위치한 가죽 위로 남은 흉을 손으로 더듬었다. 손이랑 등까지 모자라서 목까지 오른 고단함의 흔적은 티 내기 싫은 잔재였다. 달갑지 않은 기분으로 내쉰 한숨이 대기 중에 갈라지며 흩어졌다.





 유일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마 그것은 잔잔했으며 이면이 존재했을 거라 생각했다.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보다도 살가죽이 닿는 그 자체를 이해하자며 끝에서 고쳐먹은 제 행위의 증거로 기어이 그 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표면에 일렁이는 잔잔함을 유일의 고유함이라 칭했다. 명명한 호칭에 할당한 죄책감이 미뤄두었던 외면을 넘어 흘렀다. 적막 가득한 나쁜 꿈속에 버려진 듯 둘뿐인 것 같았던 장소에서 허상을 맞이했다 하면 자신은 그 마지막에 등에 흐르는 전율보다도 추모하는 손길의 감각을 알았던 것 같았다. 심장 부근에 손을 올렸다. 아마 공백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독백으로 가늠하는 회상이 자리를 찾아갔다. 그것 이후에 가져간 것이 있었다면 끝으로 떠올리는 단어는 평안함 이었다고 익숙한 이름 석 자와 읊어내는 채무적인 것에서 내려가는 손이 작게 진동했다. 방향을 확정 지으면 여상히 남은 말이 제게 확신으로 닿는가에 대해 붙일 사족은 없었지만 막연하게 나아가는 것보다도 후회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뻐근한 어깨로 토해내는 미미한 통증이 긴 여행을 예견한다. 스무 살이 된다면, 이라는 긍정적인 미래로 짜놓은 버킷리스트가 왜곡되어 다른 방향을 찾았지만 일부 체념한 사고는 그마저도 괜찮을 것이라 자신을 다독였다. 적어도 일상과 함께하던 죽음의 단어가 없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미래의 가정이 무색해지는 관계들의 정의도, 가치로 저울질하는 인간성의 심오한 고찰도 없는 현실이 자유가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에 대해 스스로는 잿물이 아닌 바람이 된 것 같았다. 바람의 여행에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가, 색안경에 가려졌음에도 피곤한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명확한 갈피는 없었으나 명확한 목적지로 떠올리는 사람이 약속처럼 번복했던 부동에 그 자리에 있을까, 하는 생각은 그 사람의 성정에 대한 일방의 이해였을 것이다.


 그대의 관대한 사랑이 나의 행복, _ _ _. 번듯한 글씨체로 적어둔 쪽지를 흙 표면에 꽂았다. 꽃말에 대한 앎이라면 무지에 가까운 상태였으나 전한다면 앎의 범위에서 칭할 수 있는 감정이 최선이 아닐까 여기며 흉터 진 양손으로 작은 화분을 들었다. 선택지는 무수했으나 꼽은 것에 이유를 들자면 그저 가위로 오려낸 것만 같았던 꿈에서 누군가가 바라던 내 행복의 진실되고 명백한 답이었을 것이다. 시작에 가지고 갈 짐이 많지 않았으나 퍼센트로 칭한다면 제 양손으로 소중히 껴안은 화분이 8할은 차지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덤 위에 꽃을 올린다는 말로 제 무덤이었던 걸 보러 가는 것보다도 재회를 바라고 있었다. 생에 전할 선물이라면 제게 약속한 산물을 돌려주는 것마냥 손에 쥐여주는 것이 이상적인 만남일 터라 여겼다. 검은 안경알 너머 내려다보는 황색의 시선에 자주색 꽃잎이 자리 잡았다. 내쉬는 숨으로 토해낸 간결한 독백이 제 이름의 끝 글자로 향했다. 뇌내에서 겹쳐들어가는 호칭이 구체적인 형상을 띠었다. 상대를 떠올리며 반복하는 모놀로그가 완전한 행복의 단어를 상기했다.


 찰나의 영원으로 남았던 이름이 입가를 맴돌았다. 빛을 반사하는 색안경을 다시금 고쳐 쓰곤 앞을 바라보았다. 제 마지막이 되었던 첫 번째 목적지로의 긴 유람을 맞이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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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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