챠수

선배 제가 만약에.

조각글

자캐 by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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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없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자기 전 시청하는 청소년 피겨 대회. 방 안에 조용히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소리.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피겨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피겨 선수로서의 성공을 꿈꾸었으나 성공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볼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중요했다. 대외적으로는 내 선택이니 책임을 져야지. 다른 길을 찾은 거 뿐이야. 같은 식으로 말했으나, 실은 자꾸만 떠올랐다. 스스로의 말이 빈 껍데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17살의 나이였다. 책임과 선택이라는 단어는 조금 무거웠다.

이러한 경험이 사랑을 놓치지 않게 해주었다고는 생각하지만, 둘 다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은 멈출 수 없이 깊어진다. 그 생각을 계속 밀어내려 애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창 밖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음악소리에 자꾸만 생각이 이어진다. 툭, 책상에 얼굴을 파묻는다. 생각이 끝없이 떠오른다. 정말 기회를 다 놓쳤을까?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전원을 꺼둔 휴대폰의 자판기를 누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선배…”

제가 만약에 모든 걸 포기하고서라도 다시 피겨를 하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할 거예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조차 함축된 말을 삼키고, 책상을 정리한다. 오늘은 공부할 날이 아닌가 보다. 다른 말은 전부 할 수 있겠지만 이 말만은 할 수 없다.

-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편이다. 방어기제이지 않을까. 전화를 걸지 않은 이유를 늦은 저녁이니까로 넘어가겠지만, 속마음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할까봐. 과거 어머니와의 일을 반복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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