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빛 봄 한 가지

남빛 봄 한 가지 / 04.

藍春の一枝

502 by 티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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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국으로 가득했던 냄비에 흰 거품이 흘러내렸다. 뜻하지 않은 손님 덕분에 이틀만에 비울 수 있게 된 터라, 시마는 내일부터 뭘 먹을까 느긋한 고민에 빠진 채 설거지에 전념했다. 사실 변덕이 불러온 결과치고는 그날 식사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 순경이 학생들에게 끌려와 졸지에 마녀가 되지만 않았어도, 또 매번 사람 좋은 얼굴로 꼬박꼬박 인사하지만 않았어도 굳이 그런 권유를 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물론 경찰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본가에 항상 손님이 많아 그런 자리가 익숙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부키라는 사람에 대해 허들이 낮아진 건 맞다. 시마는 그렇게 인정했다. 사고뭉치라는 소문이 마음에 좀 걸리기는 해도 좋은 사람이었다. 재미있었다. 말투나 행동에서 과거 이력이 묻어날 때마다 교사 특유의 직업병이 불쑥 치솟을 때가 있다는 점을 빼고는.

때문에 오늘, 40분 가량 당긴 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푸른 밤이 밝아오는 하늘을 등지고 떠난 자리에 햇살이 들이쳤다. 오전 6시 30분.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나온 그는 문을 열자마자 등장한 인물에 멈칫했다. 이부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교사도 운동은 필수라서요.”

겸연쩍게 내뱉은 변명에 이부키가 활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센서등보다 밝은 햇살이 그의 낯에 떨어졌다.

“좋은 아침!”

힘찬 인사와 함께 그가 대문 앞으로 훌쩍 뛰었다. 좁은 정원을 단숨에 가로지른 긴 다리에 시마는 다시 현관으로 들어갈 뻔했다. 애써 침착한 그가 대문을 닫으며 밖에 나오자, 히죽거리면서 기다린 이부키가 양손을 달리기할 때처럼 흔들었다.

“조깅하러 나온 거예요?”

“체력을 기르는 데엔 유산소가 좋으니까요.”

“오, 역시 성실한 선생님.”

엄지를 치켜든 이부키가 슬슬 제자리뛰기를 시작했다. 시마는 그 옆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5분쯤 지나자 이부키가 도로를 눈짓하더니 주먹 쥔 손을 들어올렸다.

“자, 이제 출발!”

“하? 엇, 잠깐!”

발 빠른 순경이 먼저 도로로 나가버렸다. 얼결에 휘말린 시마는 뒤따라 뛰다 호흡과 보폭을 조절했다. 잘못 뛰면 무릎과 허리가 박살나기 십상인 게 달리기였다. 굳이 함께 달릴 필요는 없으니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달리려는데, 몇 발 앞서나 싶던 이부키가 뒤로 뛰어 다가왔다.

“시마 쌤 왜 이렇게 느려요?”

“하? 그쪽이 빠른 거거든요.”

“으응? 아닌데? 나 지금 엄청 천천히 뛰는데?”

“그럼 먼저 가시든가.”

“에이, 운동은 근성이라구요! 자! 핫둘 핫둘!”

혼자 신난 이부키가 옆에서 응원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페이스를 잃을 뻔한 시마는 애써 천천히 달렸다. 중학교 방향이 아닌 위로 향하면서 다리를 지났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오거리에서 좌회전. 또 다시 다리를 건너 오쿠타마 우체국 앞에 다다랐다. 오래된 빨간 우체통이 햇살에 물들어 반짝였다.

그쯤 되자 대화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15분을 내리 달리다 정신을 차려 보니 우체국은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3분 가량 걸은 그는 저만치 앞서 걷는 등을 바라보다, 이를 악물고 다시 뛰었다. 세 번째 다리를 건너며 세차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좀 들었다. 그 사이 앞서 갔던 이부키가 돌아와 옆에서 함께 달렸다. 가쁘지만 고르고 안정적인 호흡, 제 페이스에 맞춰 내뱉는 구호 덕분에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가자 초반에 지난 오거리가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진력을 쥐어짠 시마는 벅찬 숨을 터트리며 발을 내딛었다. 점점 목적지가 가까워졌다.

탁!

약 20여 분 만에 그리워진 집에 드디어 도착했다. 턱까지 찬 숨을 토해내듯이 내쉰 시마는 마지막 체면으로 무릎만 짚은 채 휴식을 취했다. 마찬가지로 땀 범벅인 이부키도 옆에 서서 목에 건 타올로 이마를 훔쳤다.

“후우….”

드디어 안정을 되찾은 시마가 한숨과 함께 허리를 들었을 때 이부키는 이미 평온해진 후였다. 앞머리까지 젖은 시마를 바라본 그는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완전 재미있죠?!”

“하?”

“같이 뛰는 거요! 처음이거든요!”

시마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달린 거리에 비해 빨리 도착했다. 아무래도 이부키의 페이스 조절에 휘말린 듯했다. 어쩐지 폐가 터지도록 힘들더라니. 한숨을 내쉰 그는 타올로 얼굴을 대충 훔치며 말했다.

“맞춰주느라 재미없었을 것 같은데.”

“으응? 전혀요! 원래 뛰는 만큼 다 뛰었어요.”

하긴. 이부키는 중간에 먼저 앞서 가서 뛰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시마는 가볍게나마 인사를 건넸다. 어쨌든 자신에게 맞춰준 건 사실이었다.

“뭐, 그래도 코치는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뛰었어요.”

“진짜요?”

“네.”

이부키가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기분 좋게 웃었다. 보는 사람까지 상쾌해지는 미소였다.

“그럼 내일 또!”

“됐습니다.”

“왜요! 잘 뛰었다면서!”

“매일 하는 건 무리라서.”

그럼에도 냉정하게 거절한 시마는 대놓고 실망하는 얼굴에 피식 웃었다. 애석하게도 자신은 이 순경만큼 단련된 러너가 아니었다. 그래도 평소에 해둔 운동이 있어 근육통을 겪지는 않겠지만, 매일 이렇게 달리기는 무리였다.

“그쪽도 적당히 쉬어요.”

“네에.”

손을 흔든 시마가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이부키는 아쉬운 티를 감추지 못하고 입을 비죽 내밀다가 돌아섰다. 그에게는 남은 달리기가 있었다.

파출소 순경의 스케줄은 보기보다 다이내믹하다. 시골이라 해도 사건사고는 있기 마련이고 별별 사소한 신고도 잦았다. 그렇다고 해도 도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부키는 심심하면서도 바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종종 체감하고는 했다.

오늘은 한가한 동시에 심심한 하루였다.

주말을 맞이한 오쿠타마에는 새벽부터 지금까지 내내 눅눅한 손님이 머무르는 중이었다. 가랑비였다. 회색빛 먹구름이 하늘에 옅고 넓게 퍼져 오쿠타마 전체가 울적했다.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맑은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흐음. 1학년 애들인가?”

종이컵을 물고 문 앞에 선 이부키는 눈을 굴렸다. 저 멀리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우산을 뽐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안면이 익은 중학교 학생들인데 아마도 문화제 준비로 모이는 듯했다. 주말에는 학교를 이용하기 어려우니 누구 집에서 모이기로 한 모양이다.

“으으음. 쌤은 안 지나그왓!?!”

놀란 고양이처럼 펄쩍 뛴 그는 벌렁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문앞에 불쑥 등장한 검정 우산이 뒤로 젖혀지며 그를 놀라게 만든 주인공이 나타났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시마였다. 기척도 없이 등장한 그는 유리문 너머를 향해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오랜만이네요.”

“시마 쌤!”

문에 막힌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재빨리 문을 열어젖힌 이부키는 빗속에 선 그를 맞이했다. 오랜만이라기에는 이틀밖에 안 됐지만 반가웠다.

“여기 볼 일 있어서 온 거예요? 민원? 아니면 도움?”

“아뇨. 지나가다 보고 잠깐 인사만 하려던 거라.”

빈손이 없는 시마가 고개만 저었다. 이부키는 그제야 그의 손에 들린 묵직한 비닐봉투를 발견했다. 봉투 겉면에 쓰인 로고가 익숙했다.

“어라, 그 마트 오우메에 있는 건데.”

“아, 네. 이것저것 좀 좀 사러.”

봉투를 들어보이는 시마에 이부키는 눈을 반짝였다. 지난번에 대접 받은 식사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반찬부터 국까지 전부 맛있어서 게 눈 감추듯 먹었는데. 오늘 식사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오늘 저녁엔 뭐 먹어요?”

“음…. 수프?”

“수프?”

“백탕이라고 해두죠.”

“백탕???”

무슨 백탕? 재료가 뭔데? 간은 어떻게? 맵게? 담백하게? 진하게? 이부키의 눈 속에서 수많은 의문이 흐른 끝에 다소 엉뚱한 결론에 다다랐다. 오쿠타마에 음식점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국물이 끝내주는 가게는 하나 있었다. 이런 비 오는 날에 딱 걸맞는 가게 하나가.

“엇. 그거 꼭 오늘 먹어야 해요?”

“응?”

“백탕 하니까 생각났는데 라멘이 맛있는 데가 있거든요.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데.”

생뚱맞은 추천에 시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부키와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가끔씩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아리송한 말을 툭 툭 내뱉는다는 것.

“같이 먹자는 겁니까, 아니면 단순한 추천입니까?”

“에? 그렇게 되나?”

정확한 의미를 요구하는 시마에 이부키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지만 듣고 보니 같이 가고 싶기는 했다. 제 여건만 아니면.

“오늘 당직이라서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백탕을 선택하죠.”

“에에? 왜요?”

“여러 가지 이유로요.”

“쳇.”

기껏 한 추천이 보류됐다. 입을 비죽 내민 이부키는 금방 씨익 웃더니, 시마를 향해 상체를 내밀었다.

“그럼 다음에 같이 먹을래요?”

“하?”

“같이 먹으면 더 맛있잖아요.”

비를 다 맞을 기세에 시마가 그의 머리 위로 우산을 드리웠다. 빗물이 흐르지 않도록 뒤로 기울이자 젊은 순경이 어설픈 윙크를 날렸다. 이 사람,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심란해진 그는 이부키에게 우산을 떠넘겼다. 자연스럽게 받은 이부키가 얼떨떨하게 우산을 씌워주는 동안, 그의 손은 분주하게 봉투를 뒤적였다.

“밥이든 뭐든 일단 시간부터 내시죠, 바쁜 순경님.”

한참 부스럭거린 봉투 안에서 손바닥만 한 갈색 비닐포장재가 튀어나왔다. 누가 봐도 간식이었다. 그는 이부키가 뭔가 묻기도 전에 능숙하게 우산과 교환하고 간식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오늘은 사탕 대신 이걸로.”

순식간에 당한 이부키가 멍하니 손끝에 닿은 글자를 읽었다. ‘초콜릿’. 비닐의 투명한 부분으로 개별포장된 초콜릿이 가득 비쳤다.

“우와, 초콜릿… 어? 포노쨩은요?”

“포노? 아아. 당분간은 그 녀석 대신 이 녀석이 당번일 거예요. 그럼 이만.”

포지타노 레몬사탕은 당분간 휴무인가. 이부키는 심각한 얼굴로 끄덕이며 초콜릿을 소중하게 쥐었다. 잘 먹겠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기특하다는 양 웃은 시마가 우산과 봉투를 한손에 쥐었다. 툭툭. 빈손이 이부키의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었다. 또 당해버린 이부키가 멀거니 눈만 끔뻑이는 사이 등을 돌린 그가 코앞에 있는 오거리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시마 쌤! 내일 저녁에 같이 운동해요!!”

한 발 늦게 외치는 이부키에 시마가 손만 흔들었다. 마침 청신호가 들어왔다. 달려가 따라잡을 틈도 주지 않는 신호에 이부키는 아쉽게나마 멀어지는 등을 지켜봤다. 비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어디서 단내가 났다.

4층 짜리 건물에서 3층. 1LDK에 침실이 꽤 널찍한 이 방이 관사였다. 지대도, 층도 근처에서 높은 축이라 창을 열면 오쿠타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첩첩이 겹친 산과 새파란 하늘, 저 멀리 경사를 따라 지은 자그마한 집들을 지나 가까운 곳에 눈을 돌리면 오쿠타마역에서부터 이어진 좁고 소박한 철로가 보였다. 도심 한복판에서는 절대 꿈꿀 수 없을 풍경이지만, 이부키는 때때로 갑갑했다. 누군가 팔다리를 옭아맨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고, 이 무료하고 좁은 세상이 감옥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감상도 꽤 예전에나 자주 들었지, 몇 년 지나고 나니 그럭저럭 살만해졌다. 적응하지 못하면 떠내려가기 마련이라 지금 자리에서라도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덕분에 몇몇 주민과는 친해졌고 아이들은 수시로 그에게 장난을 걸었다. 몇몇 불량스러운 녀석들이 있지만, 몰래 담배를 피우다 걸렸을 때 몇 m도 못 가 제게 뒷덜미를 잡히고 난 후에는 까불지 않았다.

그렇게 오쿠타마 생(生) 5년 차에 다다랐다. 아니, 6년인가? 날짜도 이제 가물가물했다. 팩우유를 입에 문 그는 베란다 창에 몸을 걸친 채 빨대를 씹었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과 집 조명만이 반딧불처럼 점점이 떠오르는 한적한 시골 풍경에 모기향 냄새를 더하니 옛 생각이 절로 났다. 다 비운 지 오래인 우유만 공연히 쪼로록. 더 내줄 것도 없다는 아우성에 드디어 우유를 놓아주기로 결심했다. 슬슬 나갈 시간도 됐으니 이제 움직일 참이었다.

우유팩을 깨끗하게 씻어 둔 다음 밖에 나서자 벌써 8시가 가까워졌다. 간단한 워밍업을 끝낸 그는 경사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골목길을 따라 쭉 내려가기만 하면 오거리였다. 거기서 맞은편 길로 가면 파출소였지만, 그의 목적지는 왼쪽으로 가야 나왔다. 반쯤 뛰다시피 걸으며 다리를 건넌 그는 관광객 몇이 모인 캠핑장을 지나 쭉 내려갔다. 목적지가 가까워졌다. 담장 하나 없이 작은 정원만 둔 2층 집.

초인종을 앞에 둔 그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자주 마주치기는 했어도 이걸 누르기는 처음이었다. 검지만 세워 꾸욱 누르자 안쪽에서 딩동, 하는 명랑한 소리가 울렸다.

“시―마―쌤?”

차박차박.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 이부키는 히죽거리며 뒤꿈치를 들썩였다. 현관으로 가까워진 인기척에 이어 달칵, 문고리가 돌아갔다. 귀가 쫑긋 서는 동시에 문이 열렸다.

“진짜 왔네….”

시마가 난감한 얼굴을 내밀었다. 어째서일까. 그의 이런 표정마저도 흥미롭고 즐거운 이부키는 사람 좋게 웃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약속하지 않았는데요.”

“에? 거절 안 했잖아요?”

“제멋대로군.”

한숨과 함께 투덜거린 시마가 그를 흘겼다. 까만 눈에 담긴 질책을 알면서도 이부키는 모르는 척 “응? 응?”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이번에도 별 수 없이 진 선생이 목이 꺽여라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만 기다려요. 금방 나올 테니까.”

그대로 사라진 시마의 인기척이 다시 멀어지더니, 3분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완연한 운동복 차림이었다. 반팔 티셔츠에 목에 건 타올 한 장, 길고 얇은 트레이닝용 바지. 그리고 러닝용 운동화. 이부키는 문을 잠그는 그를 기다리다 팔을 번쩍 들었다. 덩달아 번쩍 들어올린 시마가 미간을 좁힌 채 그를 따라 몸풀기를 시작했다. 허리를 양쪽으로 굽히고, 발목을 돌리고, 다리를 쭉쭉 뻗고. 해야 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 이부키의 행동에 덩달아 휘말리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번처럼 특별히 정한 코스도 없이 달렸다. 느린 속력으로 15분을 내리 달리다 보니 동네 두세 바퀴가 우스웠다. 벤치가 있는 작은 공원에 다다라 잠시 쉬기로 합의하고 땀을 닦아냈다. 오늘은 바람도 잔잔한 날이라 그런지, 공기가 선선해도 열이 쉽게 빠지지 않았다.

“어라. 삼색이네.”

“삼색이?”

“응. 저기 보여요?”

옆에 서서 몸을 풀던 이부키가 공원 구석을 가리켰다. 허리를 숙이고 있던 시마는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가로등 불빛이 아슬아슬하게 닿는 경계 지점에 꼬리와 귀가 쫑긋 선 큰 고양이와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둘 다 삼색 얼룩무늬였는데 누가 봐도 혈연이다 싶을 만큼 닮았다.

“아. 진짜네.”

“한동안 안 보였는데 아기 낳으려고 그랬나봐요. 아, 저 큰 고양이가 엄마예요.”

“헤에.”

낮게 감탄한 시마는 더 오래 쳐다보지 않고 이부키를 바라봤다. 너무 빤히 보면 어미가 경계할 것 같아서였다.

“사료 같은 거 챙겨주나요?”

“응? 음, 가끔? 저보단 동네 할머니들이 더 잘 챙겨줄 걸요. 아, 갔다.”

이부키의 말에 다시 그쪽을 일별하니 고양이가 온 데 간 데 없었다. 수건으로 땀을 훔친 시마는 어디서 주워 들은 토막상식을 떠올렸다. 보통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에게 함부로 보이지 않는다 했던가. 가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고 들었다.

“인사 시켜주려고 했나 보네.”

“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신세지던 인간에게 데려와 보여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들었거든요. 맡기기도 하고.”

피식 웃은 시마는 허리를 바로 세우고선 어깨를 으쓱했다. 고양이가 왜 이부키에게 인사를 시키려 했는지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신뢰받고 있네요, 이부키 씨.”

동그랗게 뜨인 이부키의 눈에 가로등 불빛이 반짝반짝 맺혔다. 미처 그 눈을 발견하지 못한 시마는 수건을 목에 동여매고서 기지개를 쭉 켤 뿐이었다.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달릴 시간이었다.

“후우. 이제 가죠.”

먼저 뛰기 시작하는 시마에 이부키도 덩달아 발을 뗐다. 앞서는 하얀 등이 땀으로 젖어 있었고, 가끔씩 바람처럼 시원한 향기가 스쳤다. 충분히 쉬었음에도 콩닥거리는 가슴에 이부키는 저보다 작은 등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랄까. 방금, 엄청 큐릇했는데. 시마 쌤은 남자잖아. 그치만 큐릇했고, 귀여웠고, 뭔가 두근두근했어.

뭘까.

정의내리지 못한 감정을 채근하듯 바람이 들이닥쳤다. 차마 날려보내지 못한 이부키의 시선이 수건에 가려진 시마의 목덜미에 닿았다. 심장박동이 어긋나며 불규칙하게 뛰었다.

*

글을 읽으시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지도를 살짝 가져왔습니다.

두 사람의 관사/집은 가상으로 지정했으며, 실제 건물과는 무관합니다.

*오쿠타마 파출소 실제 위치는 저쯤이 맞습니다. 지도를 축소하니 안 보여서 따로 표기했어요.

오쿠타마 중학교는 오른쪽 하단에 있습니다.

*퇴고 없이 쭉 쓰느라 의식의 흐름이 느껴지겠지만… 언젠가 제가 수정하리라 믿으며…^^ 귀여운 이모티콘과 댓글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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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예의바른 산양

    오늘도 잘읽었습니다!

  • 독창적인 판다

    큰일났네 경찰아찌... ㅋ 반했네 반했어..큥 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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