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A
좁은 골목 한쪽에 자리 잡은 여인숙, 그 안에 더 좁은 이강두네 집. 구석에서부터 찌든 내가 올라오더니 기어코 자고 있던 강두 코를 찔러 깨울 정도로 지독해졌다. 저린 다리를 구부리며 몸을 일으키고 염치없이 밥을 얻어먹으러 가면 작은 창문 틈으로 먹구름이 온통 뒤덮인 하늘이 보였다.
저러다 비나 안 쏟아지면 다행이지 싶었는데, 집을 나선 강두의 손에 들린 우산이 무색할 정도로 빗방울 하나 떨어지질 않았다. 다리는 점점 저려오는데 비가 안 온다. 습한 공기와 더운 공기 사이를 유영하는 날파리들만 불쾌하게 주위를 빙빙 돌았다. 모래 날리는 공사판 인부들과 건성으로 인사를 주고받고 나면 안전모 하나 덜렁 쓰고나서 현장 둘러보고 들어오는 차 일일이 확인해서 귀찮게 하고 불청객 놈들 쫓아내고. 그게 강두의 일이다.
직사광선으로 내리쬐는 햇빛이 없어도 충분히 더웠다. 안전모 안으로 숱을 안 친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게 느껴질 정도라 코를 찡긋거리며 인상을 팍 썼다. 제자리에서 다리를 두어번 절고 발목을 돌리고 통통 땅을 치니 보다 못한 인부 하나가 가서 쉬라며 내쫓았다. 아니- 하면서 운을 떼자 말대꾸 할 시간에 가서 쉬고 제대로 밥값 하라는 말이 마음에 콕콕 박혀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이다 휴게실로 걸어 들어갔다.
현장 휴게실은 싸구려 장판을 썼는지 이미 눅눅해져 곰팡이가 슬금 올라오는 듯했다. 발로 건드렸더니 장판 하나가 바닥에서 툭 떨어져나와 틈을 보이길래 헛기침을 하고 청테이프로 붙여놨다.
음, 깔끔하네.
용철이 알았으면 또 성질내겠구나 싶어 신발로 슥슥 그 위에 모래칠을 했다. 이 정도면. 뭐. 안전모를 걸고 앉아 다리를 주물거리는데 때마침 용철이 한숨을 내쉬며 들어왔다. 저 사람도 양반은 못되네.
" 강두야, 너 오늘 저녁까지 시간 되냐? "
다급한 상황인지 누렇게 물든 장판 사이로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청테이프를 발견도 못한 모양이었다. 사고 치고 눈치 보는 강아지 마냥 눈을 굴리다가 단호하게 답했다.
" 안 돼요. "
" 아, 그러지 말고, 쫌! 이번에 또, 또! 연락 두절이야. 젊은 놈들이 자꾸 날로 먹으려 한다니까? "
" 듣는 젊은 놈 억울해서 어쩌나~ 전 오늘 할 일만 마무리 하고 갑니다. "
용철의 표정이 마치 하늘 무너지기라도 한 듯했지만 강두는 별다른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통통 다리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거절이었다. 여지 없이, 칼 같이. 용철은 다시 부탁할 생각도 못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러 떠난 것 같았다. 그렇취~ 강두는 속으로 자신의 승리에 쾌재를 부르는 것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저녁 타임에서 낮으로 바뀐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늘까지 야근을 할쏘냐. 저릿하던 다리가 이제야 좀 기름칠 된 기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호탕하게 웃던 인부가 던져준 빵을 한입 물고 편의점 원 플러스 원 바나나 우유까지 입에 넣으니 빵이 녹아 사라졌다. 뭔. 맛을 모르겠네. 살려고 먹는 거다 살려고. 우걱우걱 먹어 치우고 있을 때 눈을 찌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방금 먹은 바나나 우유처럼 하늘이 노랗다. 까만 먹구름 사이로 노란 빛이 직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하늘 죽이네. 참 간단하고 명료한 감상평이었다.
강두는 감상적일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감상보단 이상을 좇고 이상보단 이성을 좇는 사람. 결국 삶이 공사판 모랫바닥보다 버석하게 메말랐다. 차곡차곡 쌓아가던 이강두의 모래성은 그렇게 탄탄하지도 않은데, 거기에 바닷물이 한 번 들이닥치니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남은 건 모래 속에 들어있는지도 몰랐던 작은 돌멩이 하나랑 나. 평생 손에 짱돌 하나 들고 깡으로 살고 깡으로 죽는다. 죽더라도 동생한테 사망 보험금은 남겨주고 간다. 동생이 들었으면 또 잔소리가 길어졌을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빵을 마저 먹어 치웠다.
공사 현장 바로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걷다 보면 옆으로 쌩하니 지나가는 버스가 얄미울 정도였다. 손안에서 뒹구는 우산 놀지 말라고 친히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엿 같네. 말버릇처럼 중얼거리던 욕은 허공으로 흩어졌고 경쾌하게 바닥을 치던 빗물은 점점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고 한참을 걸으니 빼곡하게 거리를 채운 가게에 불이 하나둘 들어왔다. 시끄러운 시장통, 축제 소리를 방불케 하는 호프집, 뜨거운 수증기에 타고 들어오는 만두 냄새. 그런 것들을 지나쳐 조용한 거리로 들어서자 가로등은 폼으로 있는지 칠흑같이 어둡다. 커다란 주택들이 늘어선 걸 보니 낳기를 미국서부터 낳아 군 면제는 물론 유학파라는 재벌 집 도련님들이 사는 모양이지.
그리고 이것들도 양반은 아닌지 으리으리한 주택 코앞에 인영 하나가 거슬렸다. 모른 척 지나치기에 강두는 밤눈이 꽤 밝은 편이어서, 짧은 밤톨 머리를 하고 언제나 딱 붙는 정장을 차려입은 눈앞의 찌질이를 알고 있다.
" 여기서 뭐 하는 건데? "
한숨처럼 내뱉은 말엔 원망, 증오, 두려움. 그런 더러운 감정들이 뒤섞여 본래의 걱정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두는 이런 게 참 싫었다.
남규만을 보면 떠올리게 되는 모든 감정들 말이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아니면 감정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건지. 고개만 떨구고 아무 말도 없는 규만을 한참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우산을 기울였다.
마음속 어딘가, 흔적도 없이 부서진 모래성 앞에서 엉엉 눈물 콧물을 빼던 어린 강두가 시소를 탄다. 뭐야. 여기 시소도 있어? 강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시소가 쭈우욱- 어디까지 기우는지 쳐다만 봤다. 저러다 모래에 푹 파묻히겠다 싶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쳤다.
강두는 규만을 살피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도 보고 다른 한 손을 흔들며 나 안 보여? 말을 걸기도 했다. 아무 반응이 없자 머쓱하게 다시 고개를 들었다.
" 사장님, 저 팔 아파요. "
비가 그칠 기미도 규만이 스스로 집에 걸어 들어갈 기미도 없자 강두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규만의 손을 잡으려다 그 앞에서 몇번을 손만 쥐락펴락. 우스운 모양새지만 손을 덥석 잡았다가 차갑다고 뿌리치는 것보단 우습지 않으리. 빗속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 냉장고에 넣어놓은 맥주보다 시린 손을 천천히 잡았다.
" 이거 쓰고, "
힘없이 떨어지는 손을 보고 있자니 맥이 다 빠졌다. 이건 뭐 하자는 건지. 거칠게 다시 잡아 올린 손, 그 소매를 거칠게 걷어 올렸다. 잘 올라가지도 않는 셔츠 소매를 우악스럽게 잡아 올리자 팔 부분이 뜯어지는 소리를 냈지만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틈만 나면 관리하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었는데 덕분에 새하얀 팔 안쪽에서 주사 자국 찾기는 쉬웠다. 희미하게 지워진 멍 자국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데 저 자국들이 싫어 일부러 팔을 꽉 쥐었다.
" 오늘은 약 안 하셨네? "
규만이 작게 몸을 움츠리자 강두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얼굴을 들이밀어 술 냄새를 확인하는 것까지가 수순이었다. 킁, 하고 냄새를 맡는 강두를 쳐다보지도 않는 게 이번 일엔 꽤 고집 있는 모양이었다.
" 술 냄새도 안 나고. 이야, 근데 여기서 왜 이러고 계실까, 어? 곱게 들어가서 주무세요, 도련님. "
비꼬는 어투로 규만을 밀어내는 강두는 제 앞에서 묵언시위라도 하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규만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시위를 할 거면 그때처럼 소리나 지르던가. 이제와서 회개한다는 것도 아니고. 왜 좋은 집 놔두고 서서 비나 맞고 있는지, 그렇게 싫어하는 옳은 말에 버럭버럭 화도 안 내는지. 무엇보다 제 손짓 한 번에 멀리 밀려나서 또 비를 맞는 규만을 보자 우산을 한껏 기울이는 자신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돌아올 답조차 없는 질문이 속을 자꾸 어지럽혔다. 시소가 왔다 갔다, 같이 타주는 상대도 없는데 혼자서만 기울었다 돌아왔다 또 한참을 기울었다가.
그게 짜증 나서 일부러 규만의 신경을 긁었다.
" 집에서 쫓겨나기라도 했어? "
비웃음이 섞인 질문에 규만이 순식간에 반응했다. 방금까진 산 송장 같더니. 천천히, 또 빠르게 강두의 후드를 손안에 잡아끌어 움켜쥐었다. 쫓겨난 거 맞는가 보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규만의 핏기 없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와중에 이강두가 또.
강두에겐 참 불필요한 게 많았는데 하나는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이었다. 위험할 때 옆에 사람 돕는 거 아니라고 믿었던 강두는 그 위험한 일 만드는 놈 옆에서 자꾸 정을 찾았다.
강두는 날 선 짐승을 달래듯 천천히 핏줄 선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쳤다. 규만이 밀어붙여 우산이 떨어지기 전까진 얌전히 그 손을 올리고 있었다. 점점 목이 졸리는 게 느껴지자 겹친 손은 규만의 손목까지 내려갔고 기어코 손목을 틀어잡았다.
" 나한테 또 화풀이 하려는 거면 그만하지? "
찰박, 찰박. 누군가 걷는 소리가 들려 규만의 손목을 잡고 밀쳤다. 넘어지지 않고 서 있는 게 용할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걷던 소리가 우뚝 멈추어 섰다가 다급해지더니 가까워졌다. 규만의 푹 내려앉은 머리통을 보던 강두의 시야가 밝은 색의 우산으로 꽉 채워졌다. 그 순간 만큼은 모든 게 느리게 보였다.
빗소리가 천천히 줄어들더니 가로등 불이 환하게 켜지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라서. 가로등 불을 찾아 날아드는 벌레들의 처절하고, 눈물겨운 신파 다큐보다도 못했다.
강두는 그 순간 규만의 눈과 마주했다. 기울어졌던 우산이 제대로 머리 위를 가리면 규만의 표정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비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카락, 삐딱하고 날카로운 눈썹, 찌푸린 미간, 오똑한 코, 흐리고 새까만 눈동자.
그게 좀 역겹다고 생각했다. 나쁜놈도 이런 나쁜놈이 없고,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고, 이강두 같은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역겨운 와중에 규만이 비는 안 맞아서. 가뜩이나 의지박약한 놈이 또 애비한테 버림 받았다고 뒤져버리진 않아서 다행이네.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뒤지진 않겠네. 속이 자꾸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게, 저런 생각도 역겨웠나 싶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혼자 눈을 감으면 괜히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새까만 눈동자가 날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아서 두 눈을 꾹 감고 빨리 자버리자. 차라리 못 보는 게 낫다. 못 보는 게, 안 보는 게, 안 본 척 하는 게.
그런데 그 깡이고 자존심이 뭐라고. 이게 뭐가 무섭냐? 쫄? 시전하면서 눈을 번쩍 떴다.
길 끝에 걸린 마지막 가로등 불이 켜지자 강두의 마음에도 작은 불이 하나 반짝, 들어왔다. 그게 화재경보기였는지, 구급차 사이렌이었는지 속에서 자꾸만 나가라고 나가라고 비상이라는 듯 소리를 질러댔다.
버스 타고 갔으면,
용철이 한 부탁을 흔쾌히 들어줬으면,
아프다고 종일 집에나 누워있었으면,
이런 엿 같은 일도 없었을 텐데.
의미없는 개미지옥, 그걸 자꾸만 만들었다.
아아, 차라리 개미지옥에라도 뛰어들고 싶어라. 개망나니 도련님이 뭐라고 모래를 한 주먹 씹는 것보다 쓰다. 모래성을 무너트린 바닷물보다 짜고, 삐걱거리며 저울질하는 시소보다 시끄럽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가로등 불빛은 한 번을 깜빡임 없이 꿋꿋하게 규만을 비췄다. 강두는 자꾸만 그 만약을 떠올리느라 떨어진 우산을 던져 가로등을 깨트리는 상상까지 했다. 빗소리 때문에 여즉 귀가 먹먹한데 다리까지 저리다. 규만 옆에 선 남자는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따라가려 애썼다. 무척이나 규만과 비슷한 남자였다. 아니, 비슷하다기보단 닮았다고 해야 맞지.
신경질적으로 후드를 푹 눌러쓰고 바람에 저 멀리 날아간 우산을 쥐었다. 뒤에서 다정하게 규만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섰다. 남규만, 그게 내 이름도 아닌데 왜. 흙이고 풀이고 묻어 더러워진 우산을 이미 어깨가 잔뜩 젖은 남자 손에 신경질적으로 들려주고 지나쳐 걸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서서히 그쳐버리는 빗소리를 뚫고 크게 들리는데 좁디좁은 여인숙 골목길을 향해 걷기만 했다.
다리 하나가 삐그덕.
깡통 로봇처럼 기름칠이나 해달라고 다시 삐그덕.
강두는 제가 꼭 이상한 나라 속 도로시의 양철 나무꾼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게 다른 동화였던가?
어찌됐건, 이러다간 또 다시 붕괴돼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만약에라는 말 하지 마라, 위험할 때 옆에 있는 사람 믿지 마라. 본인이 하지 말래놓고는 다 하고 나서 붕괴되면 뭐하나. 내 마음속엔 비석도 못 세우는데. 저 새끼가 뒤지질 않아서.
차라리 빨리 뒤져서 장례식에서나 다시 보는 게 낫다.
아.
씨발.
그건 또 존나 엿같네.
이강두의 붕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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