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로그 3
케일럽 윈터는 우승 축하연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개중에는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된 사람도 있었다. 그는 아주 초기의 우승자로, 헝거게임이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솔직한 살육전일 시기에서부터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캐피톨에서 단 세 가지만 없애도 캐피톨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 토하는 약, 그리고 TV 프로그램. ‘그 높은 고층 빌딩들이 무색하게도 말이야!’ 의미 없는 농담처럼 지나간 말이었다.
머지않아 케일럽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캐피톨의 수많은 사람은 집 안의 작은 상자, 가게에 내걸린 스크린, 빌딩 벽의 거대한 전광판에 쉽게도 매혹된다. 판엠 곳곳의 날씨, 캐피톨 동물원에 새롭게 태어난 새끼 동물들, 명예로운 캐피톨 아카데미에서 다가올 졸업식 같은 일의 소개를 듣고 있자면 지금의 삶으로 충분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탓이리라. 당연하게도 74회차에 달하던 헝거게임 역시 주요 장르 중 하나로, 수많은 우승자가 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은 새로운 우승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한다. 그 끔찍하고 환상적인 게임에서 살아나간 뒤의 삶을 궁금해한다. 수많은 진행자는 불시에 들이닥쳐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특기를 뜯어내 찬양한다.
그리고 이것은 케일럽 윈터가 새로운 우승자로서 한참 주목을 받기 전의 일이다.
“난 사람들이 네게 왜 흉터를 남긴 건지 모르겠어. 아무리 네 타고난 외모가 대중적인 취향과 멀다고 해도 말이야.”
안야는 메이크업 브러시를 손등에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그는 8구역 준비팀의 일원으로, 케일럽에게 분장에 가까운 화장을 선사하는 중이었다. 신랄한 평가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갓 태어난 우승자는 대본을 읽는 척만 했다. 도로 거울을 봤을 때 그의 긴 흉터는 적당히 강조되었고 날랜 눈매는 충분히 어두워졌다. 어차피 조명에 다 날아가. 그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성의 없는 위로가 건네졌다.
캐피톨의 방송인들은 케일럽 윈터가 이렇다 할만한 특기도, 취미도 없는 소년이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심지어 그가 화면에 보여줄 만한 무언가를 고안해내는 데에도 실패했다는 것까지 알아챈 후에는 다짜고짜 8구역으로 들이닥치는 일을 그만두었다.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었다. 8구역에서의 케일럽은 최근 깨진 물건들을 치우고 우는 여인의 고성과 발작을 받아내느라 바빴으니까. 하지만 새로운 우승자를 선보일 만한 무언가를 고안하지 못하면 그건 캐피톨이 아니다. 토크쇼의 게스트로 출연하는 이번 기회가 어쩌면 모두의 해답이 될 수 있었다.
안야는 엉망이 된 테이블을 정리한 다음 정장 재킷을 둘 내밀었다. 하나를 고르자 이번에는 약통 하나가 내밀어진다. “긴장을 덜어주는 약이야.” 고개를 저어 거절한다. 이후 대본을 점검하며 말머리나 말끝을 고쳐주는 것에도 질릴 때쯤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고 토크쇼 스태프가 방송 시작 10분 전을 알렸다. 무료함을 덜기 위해 켜두었던 대기실 TV를 끌 시간이었다. 그리고 언제고 펠리시아 미첼은 꽃아카시아 나무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한다.
“어쩜, 사랑스럽기도 하지!”
들판과 푸른 하늘 속에서 얇은 시폰 드레스를 걸친 펠리시아가 맨발로 풀잎들을 밟으며 뛰어가고 있었다. 안야가 감탄을 담아 중얼거린다. 스태프 또한 곧바로 발을 돌리는 대신 그 자리에 서서 광고를 시청한다. 다른 준비 팀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저걸 12구역에서 찍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네. 하지만 펠리시아 미첼이 아니었으면 무척 식상한 계획이었을걸. 오, 그러니까 그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선택을 한 거지. 이번에 베가에서 새로운 퍼퓸 라인을 밀어주기로 작정했나 봐. 어디 봐. 여섯 가지 향으로 출시, 펠리시아 미첼의 이미지를 모티프로 한 일곱 번째는 한정판으로 출시… 주제는 자연스럽게 광고 물품에 대한 관심이 된다. 펠리시아 미첼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날개가 돋친 듯 팔려나갈 것을 알면서도.
어린 케일럽은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혹은 현실감이 전무했다고 해도 좋다. 적어도 확실한 건 그때의 케일럽은 제정신이 아닌 가족에 대한 생각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찬미하는 대기실에 홀로 앉아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캐피톨의 연인, 가장 사랑스러운 우승자. 펠리시아 미첼이라면 이 기이하도록 화려한 세상에서 안전하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토크쇼 마크스맨의 라이브 던Marksman's live dawn의 포맷은 평범했다. 일주일에 한 번, 늦은 시간에 편성되어 당일 초대한 게스트의 근황과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대는 방식이었다. 흔한 프로그램이었다. 간혹 펠리시아 미첼이 등장하는 것만 빼면. 호스트 마크스맨이 서로 가진 개인적인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질 때나 홍보할 뉴스가 있을 때, 덜 여문 우승자를 대신해 쇼를 이끌어야 할 때 펠리시아 미첼은 그 붉은 소파에 앉았고 오늘은 복수의 목표가 있었다.
토크쇼 내내 케일럽 윈터는 딱딱하게 얼었다가 난처해했다가 하얗게 질리기를 반복했다. 헝거게임 전후의 자신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낱낱이 밝히는 과정은 늘 버거웠다. 그러나 등 뒤에서 얼마나 끔찍한 하이라이트 신이 방영되고 있건 간에 펠리시아는 태연하고 또 상냥했다. 호스트가 짓궂은 질문을 케일럽에게 던지면 과장되게 웃거나 타이르듯 질문을 순화해 재전달했다–“케일럽 윈터. 당신이 숨어 있는 동안 프로 조공인들 사이에서 어떤 분란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나요? 마침 어미뿌리에게 겁을 먹었을 뿐이라면 당신은 올해 가장 운이 좋은 소년이었겠는데요…”, “이런, 마크스맨. 제가 보기에 케일럽은 가장 좋은 은신처를 골랐을 뿐으로 보여요. 만약 저 날 밤 강에서 물이 넘쳤다면 그는 얼마 되지 않는 물자조차 떠나보내고 말았을 거예요. 그렇죠?”–.
그런 구도가 지속된 끝에 케일럽 윈터는 말주변은 없지만 귀여운 구석은 있고, 동시에 요령이 좋으며 직감할 줄 아는 우승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마크스맨은 점차 낙찰되어가는 이미지에 만족했는지 화면을 전환했다. 오늘 그들이 강조할 장면이었다. 화면 속에서 케일럽은 헐떡이며 금속 창대를 고쳐 잡고 있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프로 조공인 한 명이 그의 맞은편에서 외쳤다. ‘그 창은 네 것이 아니야!’ 어떤 무기도 온전히 한 조공인의 것일 수는 없었으나 다소 허무하게 동료를 잃었을 그에게 남은 말은 그것뿐이었으리라. 이후는 피와 살점이 튀는 난투극이다. 케일럽은 점점 침울해졌다. 속이 좋지 않았다. 저 때의 감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단지 살아남고자 했을 뿐임에도 그는 결코 떳떳해질 수 없었다. 케일럽은 반사적으로 곁에 있는 이를 곁눈질한다.
그리고 일순간 시선이 마주친다. 짙은 와인 빛깔의 눈은 일말의 틈도 없이 휘어지며 웃었다. 오히려 케일럽이 덜컥 당황스러워진다. 펠리시아 미첼은 케일럽 윈터가 ‘활약하는’ 장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동시에 케일럽을 질타하는 눈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스쳐 지나간 어떤 감정이 있었으나 케일럽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이후 이어지는 대화는 이전과 다름없이 자연스러웠기에 결국 펠리시아의 의중은 알 수 없게 되었다. 펠리시아는 케일럽에게 괜찮냐는 질문이나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토크의 전반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짧은 모니터링 시간이 지나고 게스트들은 휴식을 받았다. 안야는 케일럽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몇 차례 닦아준 뒤 손에 음료 캔을 주고 갔다. 케일럽은 고갯짓한 뒤 주변을 둘러본다. 펠리시아는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코디네이터와 수정 화장을 막 마친 것 같았다.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던 케일럽은 조용히 일어나 가까이 다가갔다.
“미첼 씨. 혹시 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케일럽은 타고나기를 무뚝뚝한 낯의 소년이었으나 그 말이 쭈뼛거리는 내색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었다. 어색한 질문과 그보다도 더 어색하게 내민 음료 캔에 코디네이터가 대번에 안색을 바꾸며 지금이 그들의 휴식 시간임을 알리려는 찰나였다. 펠리시아가 캔을 받아 들며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 일레카! 그저 질문 하나라잖아요.”
2부 대본에 관한 건가요? 혹은 조금 전 진행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무엇이든 괜찮아요. 부디 내가 당신의 게임을 얼마나 즐겁게 봤는지를 말하라고만 하지 마세요. 뒷말은 마치 능숙한 농담처럼 속삭여졌다. 그는 케일럽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못할–사람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파악했으리라. 케일럽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어물거리자 펠리시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일레카라고 불린 코디네이터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 새로운 우승자 씨에게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우리의 마크스맨에게 그가 여전히 떨고 있다고 전해줄래요? 이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도요.”
일레카는 그의 슈퍼스타가 이 보잘것없는 구역 출신에게 엮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펠리시아가 부탁해요, 라고 말하며 비쥬를 건네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를 떴다. 펠리시아는 캔을 옆에 내려놓은 뒤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일럽은 엉겁결에 팔을 내밀었다. 케일럽의 캐피톨식 매너는 단기간에 머리에 흠집을 내듯 새겨졌으므로 어색하게나마 일상과 함께했다. 펠리시아는 거절하는 대신 그것을 짚고 케일럽을 복도로 이끌었다. 옷감을 사이에 두고 닿는 손아귀의 감촉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아직 긴장하고 있군요. 그럼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해봐요. 당신이 게임을 겪은 지 얼마 안 된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아니까요. 우승자식-생활은 어때요? 마음에 드나요?”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여전히 파티는 힘들, …익숙하지 않지만요.”
“걱정 말아요. 처음에는 구역 출신 모두가 같은 고민을 토로하거든요.”
“모두가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뜻인가요?”
“더 나은 파트너, 더 나은 초대장을 고르는 법만은 알아내곤 하죠.”
대화에 점차 익숙해져 가던 케일럽은 펠리시아의 말에 다소 침울해진다. 바로 이전에 갔던 파티의 참가자들이 연신 사적인 이야기를 캐묻고 토하는 약을 권한 탓이었다. 펠리시아는 마치 그 일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웃으면서 속삭였다. 마치 이런 것들이 궁금했군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난 워터하우스보다 베가의 파티가 낫다고 생각해요. 비단 내가 그 곳의 ‘뮤즈’ 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마치 아주 사적이고 즐거운 대화를 하듯 펠리시아 미첼은 많은 사람과 사건을 반추해낸다. 니콜라이 모드의 초대장은 처음 한 번을 빼고는 예의상 도착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참석해야 한다면 얼굴을 비춘 뒤 3층 테라스로 올라가는 편이 좋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붉은 크라바트와 루비 목걸이를 한 사람이 있다면 동행인에게 소개를 부탁한 뒤 좋은 인상을 쌓아 두어라. 어떤 생존 규칙처럼 짧고 간결하게 요약되는 삶에 입이 말랐다.
“제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그들이 왜 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케일럽 윈터. 카메라의 사각형을 기억해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제한적인 프레임을요. 실재하는 나와 그들이 보는 나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그들이 보는 바를 이용하는 거예요.”
“…기억할게요. 그리고, 케일럽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요, 케일럽. 우리 이제 그만 돌아가요. 곧 모든 것이 다시 시작할 테니까요…….”
두 우승자는 토크쇼의 단상 위로 오르고, 토크쇼의 2부가 시작한다. 펠리시아 미첼의 근황과 취미, 그가 새롭게 모델을 맡게 된 베가의 향수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야기의 주체가 바뀌자 프로그램은 이전보다 경쾌해졌다. 케일럽은 언제나 눈치만은 좋았으므로, 자신이 어떻게 어우러져야 할지를 이번 주인공의 그림자에서 좇는다. 프로그램의 방영은 성공적이었다. 안야의 불평이 사라지는 시점이었다. 케일럽은 어느덧 새롭게 순응하는 법을 깨닫는다. 조명을 받지 않게 숨긴 사실들이 안전하리라 믿었고 어쩌면 이 안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래서 스타일리스트도 내게 우승할 거란 기대 없는 의상을 줬나 봐요!”
두 번째 경기장에서 펠리시아 미첼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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