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레나] 아메리카노에 카페인 들어가나요?

신X레나 현대 au

2차 - 86 by 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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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란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차림을 벗겨 버릴 정도로 온도와 습도가 높은 무더운 계절이다. 밖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소비하고, 만일 뛰기라도 한다면 후덥지근한 날씨에 금방 지쳐 그늘을 찾게 되는, 그런 무시무시한 계절. 운동이라도 한다면 금방 지치고 의지를 잃어 에어컨이 반기는 실내로 뛰어들고 싶은 계절! 그런 계절에 인기가 있는 것은 당연 카페였다.

쾌적한 실내, 시원하고 철량한 음료수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지점에 따라 달콤한 디저트까지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카페야말로 무더위에 지친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온 신의 사자와도 같았다. 폭염 속 행군을 한 어떤 이는 카페를 찬양하기까지 했으니, 그 인기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아데의 사관학교 학생들이 카페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초 학문을 수강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열량을 소비하니 자연스럽게 단 것을 찾게 되는 와중에, 지옥과도 같은 훈련이 그들을 반기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사관학교 근처에 있는 《스피어헤드 카페》는 당연 사관생도들에게 인기만점 장소였다.

사관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그 카페는 컨셉이 군대였다. 직원을 포함한 손님까지 모두 이름이 아닌 코드네임으로 불리우고 공평하게 존댓말을 사용해 이야기하는, 그런 카페. 유니폼도 적절하게 군복을 섞어 멋들어졌었으나 사관생도들은 카페에서까지 군복을 봐야 하는 운명인가… 하고 한탄을 했던 적도 있다. 뭐, 지금은 다들 적응도 했기도 하고 유니폼의 디자인도 좀 더 실용적이고 무난하게 바뀌어 모두의 찬사를 듣곤 하지만 말이다. 꼭 사관학교 근처에 위치한 카페라는 특징 뿐만 아니라, 카페의 마스코트인 테르모필레―줄여서 티피라고 불리우는 검은색 고양이를 통해 사람들이 많이 오곤 했다. 고양이치고는 꽤나 사교적인 성격이라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티피는 어미를 잃고 길거리에서 우는 새끼 고양이었을 적에 사관생도들이 구출해 학교 부지 내에서 먹이를 챙겨주다가 카페가 입양을 한 고양이다. 생도 몇 명은 내심 아쉬워했으나, 좋은 보금자리를 찾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눈물의 이별식을 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카페에서는 생도들을 대상으로 할인을 해주는 계기가 되었고, 고양이를 보기 위해 오다가 자연스럽게 단골이 된 생도들이 많았으므로 서로 이득을 본 훈훈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 외에도, ‘다른 요소’ 때문에 카페의 단골이 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신.”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니라고 대답하지. 세오.”

신에이는 자신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웃고 있는 세오를 가볍게 무시한 채 눈길을 돌렸다. 그 모양새에 누구는 훈훈한 미소를 짓고, 누구는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신에이가 상관을 써야 할 것은 아니었다. 현재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친우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모른 척 해야 했으므로….

“오늘도 또 우리 사신님을 놀리고 있구나….”

“놀리다니, 자각하지 못한 마음을 일깨워주고 있었던 것 뿐이라고? ‘블랙 독’.”

“제발 너희들만큼은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면 안 될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이니까, 익숙해지는 것이 좋을 거야.”

큰 키와 금발이라는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진, 코드네임 ‘블랙 독’은 작게 웃으며 그의 부탁을 거절하는 앙쥬에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그에 꼴사납게 울지 말라며 그가 들고 온 컵을 능숙하게 받은 라이덴의 말에 울진 않았다고 대답했지만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차례 농담이 가고 나서, 모두들 미소를 띄운 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코드네임 블랙 독, 본명 ‘다이야 이르마’. 그는 그의 친구들처럼 사관생도였지만, 훈련 도중 발생한 부상으로 인해 사관학교를 자신의 발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다. 하지만 그 부상에 좌절하지 않고 노력해 결국 사설 경호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으니, 그 노력의 결실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 카페에 모인 것이었다. 가끔씩 카페가 바쁠 때면 도와주는 그의 행동에 밖에서까지 코드네임으로 불리는 것은 덤.

사실 축하를 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라면 카페보다는 어디 식당에 모여서 편히 이야기하며 밥이라도 먹는 것이 좀 더 그들에게는 좋지 않을까 싶지만, 장소를 선정한 것이 ‘신에이 노우젠’이라는 점에서 모두 만장일치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가 이 무리의 리더격을 맡고는 있지만, 단순히 그가 ‘리더’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게 궁금하면 가서 말을 걸어보라니까?”

“궁금하지 않다니까.”

“아하, 그러셔….”

그는 자각하지 못한 것 같지만, 현재 신에이는 무려 짝사랑중이었다. 자각하지 못한 친구의 짝사랑이란! 한창 연애에 관심이 많을 그들이, 그 무뚝뚝한 신에이가 사랑을 시작했다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본인이 극구부인하고, 자각하지도 못한 짝사랑의 상대는 이 카페의 매니저. 코드네임 ‘핸들러 원’.

맑고 빛나는 은발과 은안을 가진 그녀는 이목구비가 빼어난 상대한 미인이었다. 그 탓에 그녀를 보기 위해 오는 생도들이 꽤 있었다. 외모 뿐만 아니라 당차면서도 자신의 할 일을 똑바로 해내는 그녀의 성격에 마음을 뺏긴 청년이 드물게 고백을 하는 풍경이 벌어질 때도 있었으니 하나의 이벤트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그 때마다 신에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그러진다는 것은 덤.

특유의 무관심함과 반대되는 집중력과 탁월한 실력. 높은 실력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는 신에이 또한 다른 생도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으나, 무심한 것인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것인지 그는 시큰둥했다. 애초, 연애라는 것에 관심이 0에 수렴하는 것 같은 그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자라니, 이보다 더 재밌는 상황이 있을리가 없었다. 어쩌다 ‘핸들러 원’을 껴안으며 노닥거리던 직원 ‘키클롭스’가 시선을 마주하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어주는 것에 조용히 이를 가는 신에이를 보는 재미도 있었으니 현재 신에이의 친구들은 매일이 축제였다.

하여 신에이 노우젠이 핸들러 원에게 입을 열지 못한 249일이 되었을 무렵, 보다 못한 앙쥬가 주문이라도 하고 오라며 등을 밀었을 때 신에이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항의하듯 그녀를 쳐다보았으나, 무언의 압박을 포함한 듯한 그녀의 미소에 조용히 시선을 제자리에 두었다. 그 정도가 되었으면 스스로 주문을 할 법도 하지만, 보통 주문은 앙쥬나 크레나가 하였으니 그가 했을 리는 없었다. 신에이는 주변을 배회하다가 결국 핸들러 원에게 말을 걸지 못한 채, 키오스크로 주문을 했다….

훈련할 때 있던 카리스마나 눈치 어디갔냐고.

한 번만 봐주자, 앙쥬. 한 번만 봐주자.

다이야는 일어서려는 앙쥬의 팔을 잡은 채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말리지 않았으면 당장이라도 신에이를 내리꽂을 것만 같았다. 옆에서 크레나가 마카롱을 입에 넣어주는 것으로 가까스로 그녀는 진정했다. 재밌긴 하지만 이 고구마만 먹은 듯한 심정을 어찌 해야 하는가. 아무리 초짜라고 하지만,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정도는 너무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할 때, 핸들러 원이 그를 불렀다.

“아, 방금 주문해주신 ‘언더테이커’,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호출한 핸들러 원에 신에이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여지껏 핸들러 원이 그를 호출하는 일은 없었으니 그의 친구들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주문한 음료인 ‘쇼콜라 딸기 프라페’에 휘핑 올려드릴까요?”

“….”

“네, 알겠습니다. 준비되면 가져다드릴게요.”

신에이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 채 자리로 돌아왔다. 신에이가 마시는 것은 아메리카노. 단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그가 달고 단 음료 중에서 극강의 단맛을 자랑하는 쇼콜라 딸기 프라페를 주문하다니, 그럴 리가 없는데. 크레나는 귀신을 보는 듯한 눈으로 신에이를 바라봤다.

“신…. 혹시 뭐 잘못 먹었어?”

“…잘못 시켰을 뿐이야.”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세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신에이를 쳐다보았다.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음료 중에서 쇼콜라 딸기 프라페를? 곰곰 생각하던 세오는 설마, 하는 마음에 하고 싶었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그의 앞에서 ‘설마 핸들러 원이 추천하는 이달의 메뉴에 있어서야?’ 라고 물었다가는 어떻게 될 지 자신도 몰라서…. 라이덴은 세오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지능 판정에 성공하면 광기가 오는 법이라네, 친구여.

그건 또 뭔데.

그렇게 먹을 사람 없는 쇼콜라 딸기 프라페가 탁자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크레나와 앙쥬는 신에이를 의자 밖으로 내쫓았다. 다시 한 번 쫓겨난 신에이는 억울하고 황당하다는 듯 그들을 쳐다보았으나, 그들은 진지한 표정을 고개를 저었다. 아메리카노와 허니브레드를 시키기 전까지는 못 돌아온다는 말에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마침 키오스크에 사람이 몰려있으니,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힘내라, 신! 다이야가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해주었으나 신에이의 무표정에 조용히 주먹을 내렸다. 이 이상 놀리면 응징을 받겠구나, 싶어서.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언더테이커.”

핸들러 원이 상냥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걸었다. 이제는 입을 열어야 할 때. 감격스러운 첫 대화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신에이의 친구들은 숨을 죽인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메리카노에….”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자하고 간지러운 상황이었다. 그래, 할 수 있어!

“아메리카노에… 카페인 들어갑니까?”

잠시 정적. 긴장한 나머지 당연한 상식을 말해버린 친구에 모두들 이마를 손으로 쳤다. 하다 못해 카페인 추가라고 말하면 덜 했다. 카페인이 들어가냐는 물음은 또 무엇인가. 답답함에 다시 뛰쳐나갈 앙쥬를 모두가 말렸다…. 신에이, 그 자신도 말하고 나서 아차했는지 잠시 버벅거리다가 카페인… 아니, 샷 추가가 가능하냐고 정정했다.

모두가 답답해서 죽어가는 와중, 신에이는 부끄러움에 죽어갈 노릇이었다. 자신의 코드네임을 말하며 눈을 마주하는 그녀에 순간 당황하여 말이 그만 꼬여버린 것이다. 스카프가 아니었다면 이미 붉어진 목을 보였을지도…. 어쩐지 열이 오르는 얼굴에 잠시 헛기침을 하면,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녀였다.

작게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아차 싶더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녀가 웃은 것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청량한 웃음소리에―어쩐지 가슴이 간지러워서. 그 표정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면 그런 말을 다시 한 번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은 왜였을까.

그 뒤로 어떻게 자리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의 놀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시각이라도 차단하고 싶다는 생각에 든 행동이었다. 그 모습에 다들 신나서 웃으며 그를 놀린 것은 덤. 한참을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손이 그들의 탁자에 침범했다.

핸들러 원이었다.

“아까 웃은게 죄송해서, 서비스로 드릴게요.”

미안하다는 의미로 살풋 웃으며 사과하는 그녀는 신에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문득 시선이 마주한 그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충동이 일어섰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핸들러 원, 혹시 시간 되십니까.”

하는 소리나 나오는 것이다. 그에 음료를 제조하던 키클롭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키클롭스가 그런 반응이었으니, 옆에 있던 친구들은 어땠을까. 말을 내뱉고 나서야 아차 싶은 표정으로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고 했던 신에이의 말을 가로챈 것은 핸들러 원이었다.

“―퇴근 후라면, 괜찮아요.”

그 때 뵐까요, 그리 웃으며 말하는 그녀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 깜짝할 새에 약속을 잡았으니, 약간 멍한 표정의 신에이는 그의 등을 두드리는 친구 덕에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이, 약속―죽어도 데이트라고 생각은 안 했다―을 잡은 것인가. 어쩐지 신경쓰이는 카페 매니저에게.

그러면 ‘핸들러 원’쪽은 어떤가? 잠시 직원실로 들어온 핸들러 원―블라디레나 밀리제는 들어오자마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모양에 잠시 쉬고 있던 ‘키클롭스’, 시덴은 한창 좋을 때다~ 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아니…. 분명, 웃었으니까 틀렸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의 실수가 어쩐지 귀여워서,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 직후 아차 싶은 마음에 그를 바라보았지만 어쩐지 표정을 읽기 어려워서 틀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걸 만회하기 위해 서비스라는 핑계로 가져다주고 사과하려고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말이 들려와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덜컥 수락하고 말았다.

“이상하게 생각하시진 않겠지…?”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을 꾹 삼킨 채 시덴은 알아서 잘 해보라며 레나를 밖으로 내보냈다. 자자, 매니저님 일할 시간입니다. 이번에도 좋은 ‘지휘’를 해주시죠.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는 시덴에 레나는 당황하기도 잠시, 곧 제 페이스를 맞추고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저런 점에서 저 사신님이 신경을 쓰는 걸까. 그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며 시덴은 의자에 늘어지게 누우며 휴식을 취했다. 아무렴 좋으니 주변사람들 답답하게 만드는―당사자만 모르는 감정을 깨달으면 좋을텐데, 그리 생각하면서.

여름. 정열적인 햇빛으로 모든 것이 익어버리는 계절. 자각하지 못한 마음 또한 익어버리게 만드는 그 계절 속에, 두 청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신경쓰인다고 여기는 것 까지는 자각했으면서, 그 이상은 자각하지 못한 채. 자신의 마음을, 행동을 바보처럼 만드는 상대를 마주하며 그 둘은 서로에게로의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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