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혁해량] 성장통6(完)

여름 제철 청게 젹량

96x105 by 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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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량에게 자고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서지혁은 곧바로 집주인에게 당당하게 갈아입을 옷을 요구했다. 신해량은 알겠다며 서지혁을 자신의 방에 데려가 옷장을 열고 옷을 직접 고를 기회를 주었다. 옷장 안을 훑어보니 무슨 죄다 무채색 계열에 그나마 색이 있는 건 채도 낮은 푸른색이나 남색 정도가 전부였다. 하여간 우중충한 취향하고는. 서지혁은 쇼핑하듯 고심하며 깔끔하게 정리된 옷들을 노려보다 고무줄이 달린 회색 반바지와 채도 낮은 하늘색 반팔티를 골라 들었다.

"상의는 네 옷을 입는 게 더 편하지 않겠어?"

"선배가 제 옷 빌려 입었으니 저도 선배 옷 빌려 입어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니 내 옷은 언제 돌려줄 건데?"

"다음에 또 기숙사 놀러 오시면 줄게요."

"거기에 놀 게 뭐 있다고."

"저 있잖아요. 아무튼 전 이게 좋은데요."

하늘색 반팔티를 손에 들고 흔드니 신해량이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이곤 옷장 문을 닫았다.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접힌 옷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서지혁은 그대로 옷에 얼굴을 묻었다. 깨끗하고 포근한 냄새가 기분 좋았다. 신해량은 자신이 빌려준 옷에 코를 박고 있는 서지혁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다가 수건 두 장을 건넸다.

"속옷은 있어?"

"없죠. 그냥 오늘만 노팬티로 자죠. 뭐 어때요?"

"별론데. 속옷도 안 입고 내 바지를 입겠다고?"

"그럼 뭐 어떡합니까? 입던 걸 또 입는 건 찝찝하고. 뭐 빌려주기라도 할 거예요?"

서지혁의 물음에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된 신해량이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약 5초 정도 지나자 신해량은 어떤 결심을 한 것인지 다시 옷장 문을 열고 아래 서랍을 뒤적거렸다. 정말 속옷을 빌려줄 작정인 것 같았다. 신해량은 꽤 고심하며 서랍을 뒤지더니 이윽고 남색 속옷 한 장을 꺼내 서지혁이 들고 있는 옷가지 위에 얹어주었다.

"거기엔 얼굴 박지 마."

그럼 딴 건 박아도 됩니까? 같은 농담을 하려다가 선을 넘는 발언인 것 같아 꾹 삼켜내고 입꼬리를 올려 산뜻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신해량에게 옷과 속옷을 빌린 서지혁은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숨이 차도록 달린 탓에 흘린 땀도 씻어내고 바닥에 뒹굴고 덜 털어낸 흙도 깨끗하게 닦아냈다. 신해량이 치료해주며 발라준 연고와 밴드도 물에 씻겨 내려갔지만 그런 것들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면 거짓말이고, 조금 아까웠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그에게 친절을 요구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또 어리광을 부리면 직접 치료해줄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신해량은 나를 귀여워하니까. 그리고 나를 좋아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서지혁의 입꼬리가 절로 히죽거리며 올라갔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무리하던 중 문득 거울을 바라보았는데 거울 속 서지혁은 눈이 거의 없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서지혁은 잠깐 놀랐다가 신해량이 귀엽다는데 아무렴 어떤가 싶어 더 눈이 없어져라 웃었다.

샤워를 끝낸 서지혁은 몸과 머리의 물기를 닦거나 털어냈다. 그리고 신해량에게 빌린 속옷을 집어 들었는데, 진짜로 입으려니 기분이 영 이상해 한참 동안 속옷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절로 신해량이 그 속옷을 입은 모습이 상상됐는데, 심장 겉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신해량의 속옷을 내가 입는다니. 너무 이상한데. 빌릴 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입으려니 괜히 의식이 되는 게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노팬티로 나가봤자 신해량의 경멸이나 받을 것 같아 얌전히 속옷을 입었다. 착용감 자체는 편했는데 맨살에 닿는 면의 느낌이 괜히 간지러운 기분이라 이상했다.

더 무례한 상상을 하지 않으려 서지혁은 빠르게 바지와 티셔츠까지 입고 거실로 나왔다. 입고 온 자신의 옷을 가방 옆에 잘 개켜두고 속옷은 누가 볼까 가방 깊숙한 곳에 재빨리 처박아두었다. 소파에 어색하게 앉아 있으니 잠시 뒤 다른 방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신해량이 거실로 나왔다. 머리까지 말리고 온 모양인지 이마를 덮은 까만 앞머리가 보송해 보였다.

"머리 말려. 내 방에 드라이기 있어."

"괜찮습니다. 제 머리는 그냥 둬도 빨리 말라요."

서지혁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신해량은 벌써 반쯤 마르고 있는 짧은 갈색 머리카락을 바라보고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저녁 먹어야지."

"저는 뭐 아무거나 다 좋은데요. 남의 집에서 얻어먹는 주제에 가릴 게 있겠습니까? 라면도 좋아요."

"김치볶음밥은 어때?"

"오. 선배가 직접 해주려구요? 완전 좋죠! 선배 요리도 잘하세요?"

"그냥 먹을 만큼은 해."

그렇게 말한 신해량은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서지혁도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따라갔다. 신해량은 냉장고 문을 열고 김치, 양파, 대파, 계란을 꺼내고 부엌 찬장에서 통조림 햄을 꺼냈다. 누나랑 둘이 산다더니 신해량도 요리를 자주 했던 모양이었다. 지체 없이 재료를 모두 꺼낸 뒤엔 곧바로 손질에 들어갔다.

"김치는 제가 자를게요!"

"그래."

서지혁이 그릇에 대고 김치를 가위로 열심히 자르는 동안 신해량은 송송 썬 파를 달군 팬에 기름과 함께 볶기 시작했다. 파기름을 충분히 나는 사이 양파도 빠르게 썰어 넣었다. 파와 양파가 익는 고소한 냄새에 서지혁은 벌써 침을 꼴깍 삼켰다. 신해량이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자 서지혁이 김치를 담은 그릇을 내밀었다. 파와 양파를 볶은 기름에 김치까지 더해졌다.

"설탕도요!"

"설탕?"

"예. 아까 김치 하나 먹어보니까 신김치던데, 설탕 넣으면 더 맛있어요."

평소 먹는 걸 좋아하는 서지혁의 입맛을 신뢰한 모양인지 신해량은 수긍하며 설탕을 적당히 첨가했다. 신해량이 썰어둔 햄까지 넣는 동안 서지혁은 계란 세 개를 그릇에 깨소금 한 꼬집을 넣고 젓가락으로 잘 풀어두었다.

"계란 제가 구울게요."

"응."

신해량은 바로 옆자리에 넓은 프라이팬을 올려주었다. 팬이 달궈지자 서지혁은 기름을 두르고 잘 풀어진 계란을 쏟아부었다. 그 사이 신해량은 밥까지 넣어 볶기 시작했는데, 두 사람이 먹는 것 치고는 밥양이 상당했다. 신해량은 거의 넘칠 것 같은 밥알을 열심히 가르며 잘 볶아준 뒤, 불을 끄고 마무리로 참기름까지 넣어 잘 섞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지혁이 열심히 구워낸 커다란 계란을 볶음밥 위에 이불처럼 올려주었다. 완성된 김치볶음밥을 보니 군침이 절로 돌았다.

"와. 살다 보니 선배가 해준 김치볶음밥도 다 먹어보네요."

"네가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선배가 할 소리도 아니죠. 잘 먹겠습니다!"

두 사람은 잠깐 투닥거린 뒤 곧바로 김이 폴폴 나는 먹음직스러운 김치볶음밥을 빠르게 먹어 치웠다. 요리는 그냥 먹을 만큼 한다더니, 참 여러모로 잘나고 겸손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신해량이 친히 만들어준 음식이라 그런지 더 맛있었다. 열심히 뜀박질을 하다가 눈물까지 질질 흘린 뒤 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전의 부끄러운 일들은 모두 잊은 것처럼 서지혁은 해맑게 김치볶음밥을 팍팍 퍼먹었다. 거의 산더미처럼 쌓인 밥들은 두 사람의 숟가락질에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은 둘은 신해량이 휴가 때 조부모님 댁에서 받아왔다는 식혜까지 마시고 다시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서지혁은 신해량에게 자신의 빈 무릎을 가리키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서지혁의 무릎을 가만히 보던 신해량은 곧바로 다시 연고와 밴드를 가져와 칠칠찮은 후배의 다친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서지혁이 깔끔하게 밴드가 붙은 자신의 무릎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신해량이 손가락으로 무릎 옆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약 바르라고 했잖아. 자국 남아."

서지혁은 자신의 무릎 옆에 생긴 불긋한 자국을 쳐다보았다. 키가 갑작스럽게 크면서 살이 갈라져 튼살이 생긴 거였다. 그리고 곧바로 신해량의 무릎을 보았는데, 비슷한 위치에 하얀 튼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 진짜 생겼네요?"

"아직 붉은 걸 보니까 지금 바르면 흉 지지 않을 거 같은데. 크림 사줄까?"

"예? 아뇨. 됐습니다. 괜찮은데요."

"보기 안 좋잖아."

"보기 안 좋아요?"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럼 상관없습니다."

신해량은 그런 걸 왜 고집부리냐는 표정이었다. 유치한 생각이지만 신해량과 같은 흔적이 몸에 생긴다는 건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더럽게 아픈 성장통을 겪었다는 증거 정도야 남겨둬도 괜찮지 않나. 커플 튼살이에요. 같은 소리를 하니 신해량이 낮은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실없는 소리나 하며 시간을 보내니 저녁까지도 눈치 없이 떠 있던 해가 드디어 졌다. 신해량은 서지혁에게 새 칫솔을 빌려주었고, 두 사람은 양치와 세수를 하고 신해량의 방에 들어와 스킨로션을 발랐다. 잘 준비를 끝내니 신해량은 서지혁에게 침대 안쪽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신해량의 침대는 주인의 덩치처럼 사이즈가 거대했다. 서지혁의 기숙사 침대에 비하면 거의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처럼 느껴졌다. 190cm가 넘는 두 남성이 같이 눕는다고 누구 하나가 침대 밑으로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신해량은 서지혁의 잠버릇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벽에 붙어 있는 침대 안쪽으로 서지혁을 거의 집어던졌다. 으악!

벽과 거의 키스를 할 뻔한 서지혁이 꼬물꼬물 몸을 펴서 누우니 신해량은 서지혁이 베고 있던 베개를 빼앗았다. 별안간 침대에 머리를 박은 서지혁이 억울해하며 노려보니 이제는 얼굴 위로 새 베개가 날아왔다. 아오 진짜! 말로 좀 하라며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하게 받은 베개를 벤 서지혁이 불을 끄고 제 옆에 누운 신해량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둠에 적응을 못한 눈은 신해량의 실루엣만 겨우 잡아냈는데, 어렴풋이 보이는 옆모습조차도 기가 막히게 잘생겼다. 번듯한 이마라인과 높은 콧대, 적당하게 도톰한 입술까지. 라인만으로도 예술이었다.

"선배."

"왜."

"저희 사귀는 거 맞죠?"

"……사귀자곤 안 했잖아."

"예?!"

발사된 로켓처럼 침대에서 벌떡 솟아오른 서지혁이 이불 위에 앉아 누워있는 신해량을 노려봤다. 이 미친 선배가 진짜? 남의 속이 터지든 말든 잠들 기세로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선배 놈의 가슴을 두들기니 어둠 속에서도 시선이 느껴졌다.

"사귀지도 않는데 아무나 막 이렇게 재워줍니까?!"

"네가 주장은 그래도 되는 거라며."

"아니……! 그건 제가 오해한 거구요! 선배는 그런 사람 아니라면서요!"

"시끄러워. 잠이나 자."

영혼을 잃은 서지혁이 입을 떡 벌렸다. 시간이 지나고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된 건지 이제 신해량의 얼굴도 잘 보였다. 태연하게 눈을 꼭 감고 정말 자려는 듯이 누워있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용서해준 거 아니었나?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한다고? 분한 마음에 머릿속이 어지러워 오히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신해량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으니 혼자 마음이 편해 보기는 선배 놈이 다시 눈을 떴다.

진짜 얄미워 죽겠네. 저 인간이 뭐가 이쁘다고 좋아진 거지? 머리가 아주 맛이 간 게 분명했다. 그래그래. 안 사귀고 말지. 내가 진짜 더러워서 안 사귄다! 기분이 제대로 상한 서지혁은 신해량이 울고 불고하며 제 앞에 무릎을 꿇는대도 안 사귈 자신이 있었다.

"나랑 사귀고 싶어?"

"예!"

"그럼 그렇게 하자."

"예!!"

서지혁이 신해량을 끌어안고 누웠다. 방금 전까지의 다짐은 기억도 안 난다는 듯이 히죽거리며 두툼한 몸뚱아리를 끌어안고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다. 고른 속도로 오르내리는 가슴에 얼굴을 묻으니 신해량이 서지혁의 동그란 머리통을 토닥이며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설렘에 고개를 들어 신해량과 눈을 마주하던 서지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머뭇대다 입을 열었다.

"……뽀뽀 해봐도 돼요?"

"……."

"어, 아니. 너무 빠른가? 방금 사귀기로 했는데 좀 그렇죠?"

혼자 물어놓고 혼자 당황한 서지혁이 허둥거리자 신해량이 눈을 천천히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뜻이지? 좀 그렇다는 뜻인지 허락의 사인인지 헷갈려 이도 저도 못한 채 쳐다보고 있으니, 신해량은 그걸 또 다른 의미로 알아들은 것인지 눈을 감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허락의 신호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을 더 잘 보기 위해 꼬물꼬물 침대 위로 올라온 서지혁이 눈을 감고 있는 신해량을 내려다 보았다. 자신의 앞에서 얌전히 눈을 감고 있는 신해량이라니, 잠든 모습 보다 더 귀한 장면이었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긴장이 돼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허락을 구하는 말은 충동적으로 내뱉어 놓고 실제로 행동할 용기는 아직 부족했다. 그렇다고 서지혁은 귀한 기회를 날려 먹을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마른 입술을 살짝 축이고는 그의 입술로 천천히 다가갔다. 일자를 그리고 있는 도톰한 입술이 바로 앞에 있었다. 신해량은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 모습만 보면 꼭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몰래 입을 맞추는 것 같아 오히려 더 심장이 떨렸다.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해량이 눈을 번쩍 뜨고는 이건 좀 아니라며 밀어낼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겹쳤다. 입술끼리 맞닿아 눌리는 감각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고작 입술만 붙었을 뿐인데 온 몸에서 삐뽀삐뽀 위험신호를 보내며 열을 냈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몸이 근질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입술을 떼고 싶지 않았다. 신해량의 입술은 마른 듯 건조한 것 같으면서도 말랑거렸다.

이제 슬슬 입술을 뗄 타이밍인 것 같은데 쉽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무서우면 몸이 굳어버리는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아도 몸이 굳는 걸까. 심장이 뛰다 못해 몸까지 달달 떨렸다. 그러면서도 입술을 떼어내고 싶진 않았다. 뇌 끝이 간질간질했다. 서지혁은 간신히 굳은 몸을 움직여 입술을 살짝 떼어냈는데, 입맞춤의 끝과 함께 신해량이 눈을 뜨자 다시 충동적으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재차 말랑한 입술이 닿는 감각을 느끼며 이불을 쥐어뜯듯이 손에 쥐었다. 황홀함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서지혁은 누군가 자신의 이마에 총구멍을 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마에 난 작은 구멍으로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신해량은 정신을 못 차리고 굳어 있는 서지혁의 가슴팍을 살짝 밀어냈다. 서지혁의 입술은 아쉬운 듯이 쭉 늘어나다 드디어 떨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서지혁의 얼굴을 마주한 신해량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언제까지 하려고."

"……어, 아. 죄송……. 그런데 한 번만 더 해보면 안 돼요? ……너무 좋은데."

서지혁의 커진 동공을 바라보던 신해량이 작게 웃고는 서지혁의 얼굴을 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쉽게 끌려간 서지혁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시 입술이 닿는 순간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몸에 붙은 털이라는 털은 모두 삐쭉 서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신해량의 입맞춤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해량은 살짝 입을 벌리더니 서지혁의 입술을 짧게 핥았다. 깜짝 놀란 서지혁이 온 몸을 움찔거리다 굳었는데, 신해량의 손이 서지혁의 볼을 꾹 눌러 입을 벌리게 했다. 자연스럽게 턱이 열리고 벌어진 서지혁의 입술 사이로 신해량이 혀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거리면 서지혁의 혀를 거칠게 쓸어 핥았다. 그와 동시에 서지혁이 몸을 부르르 떨며 폴짝 뛰어올라 벽에 처박혔다.

"헉. ……허억."

어지간히 놀란 모양인지 서지혁은 열린 입을 닫지도 못한 채 숨을 몰아쉬며 신해량을 귀신 보듯이 봤다. 차라리 실제로 귀신을 봤다면 이 정도로 놀라진 않았을 텐데. 서지혁이 벌렁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거의 울먹거리며 말했다.

"이러면 안 될 거 같은데요……."

"? 왜?"

서지혁의 눈썹이 팔자를 그리며 내려갔다. 꼭 겁먹은 강아지 같은 표정에 신해량이 황당해하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가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서지혁은 눈을 슬쩍 피하며 머뭇거렸다.

"……너무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

"……아니. 너무……."

"너무?"

서지혁은 꼬물꼬물 이불을 끌어당겨 자신의 몸을 덮었다.

"……야한 거 같아요."

"……."

신해량은 말이 없었다. 서지혁도 말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신해량이 서지혁이 덮은 이불을 끌어당겨 걷어냈다. 서지혁은 당황해하며 베개라도 품에 안았다. 신해량의 시선이 서지혁이 가린 몸의 아래로 향했다.

"보지 마십쇼!"

서지혁은 그대로 날렵하게 등을 돌리고 벽을 보며 누웠다. 베개를 끌어안고 몸을 동그랗게 만 공벌레 같은 모양새를 한 서지혁을 보고 신해량이 소리 내 웃었다. 서지혁은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둠 속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불타는 귀나 얼굴을 들키진 않을 테니까.

"……제가 이상한 게 아니라 놀라서 그런 겁니다."

"너 이상하다고 한 적 없어. 그러고 잘 거야? 재워달라며."

"……."

"화장실이라도 다녀와."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럼 잘 가라앉히고 자든가."

신해량이 동그란 형체를 한 후배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주니 그제야 서지혁은 꼬물꼬물 베개를 품에서 꺼내 다시 베고 누웠다. 애벌레처럼 움직이는 동그란 형체를 구경하던 신해량도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댔다. 잠시 뒤에 서지혁이 부스럭거리며 다시 몸을 돌려 신해량을 바라봤다.

"안아줄까?"

"예……."

민망해하면서도 서지혁은 냉큼 신해량의 품에 안겼다. 신해량은 그런 서지혁의 머리통을 귀엽다는 듯이 쓰다듬고는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일정한 속도로 토닥이는 손길에 서지혁은 눈을 감고 신해량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신해량이 낮은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직도 안 가라앉았어?"

"예? 아니, 무슨……. 농담하지 마세요."

"……농담 아닌데."

또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신해량의 품에 안겨 가슴팍에 얼굴을 박고 있던 서지혁이 꼭 붙이고 있던 몸을 살짝 떼어냈다.

"……그건 그냥 전데요."

"……그래."

서지혁의 수줍은 고백에 신해량이 떨떠름하게 갈색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어색하고 민망한 공기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지혁아 안녕! 오늘도 일찍 왔네?"

"옙. 누나도 일찍 오셨네요."

"응~ 이것 봐라~ 나도 스티커 귀여운 거 뽑았다?"

초코롤빵을 먹으며 부실로 들어온 강아영이 핸드폰 케이스에 붙인 기린 스티커를 자랑했다. 보아하니 이전에 신해량이 서지혁에게 사주었던 포x몬 빵 짝퉁 빵에 들어있는 스티커 종류 중 하나 같았다. 서지혁은 긴 목을 접고 자는 기린 스티커를 멀뚱 바라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기린 목이 부러질 거 같은데요?"

"그게 귀여운 건데?! 신해량은 어디 있어? 빨리 자랑해야 해."

"선배 잠깐 코치님 심부름 갔습니다. 곧 올 거예요."

"그래? ……잠깐잠깐! 스톱!"

"예?"

신해량이 오기 전까지 소파에 누워 있으려 했더니 강아영이 냉철한 눈빛으로 서지혁을 노려보며 다가왔다. 강아영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서지혁을 쳐다보다 기습적으로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렸다. 그리곤 알겠다는 듯이 팔짱을 끼며 뒤로 물러났다.

"어허. 이거 신해량 섬유 향수 냄새인데?"

"예?"

"왜 신해량 섬유 향수 냄새가 우리 귀여운 후배 옷에서 날까~?"

"……예?"

서지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지? 실제로 서지혁은 신해량의 집에서 나오기 직전에 그의 방에 놓인 섬유 향수를 몸에 뿌렸다. 평소 몸에 뭘 뿌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신해량의 섬유 향수 용기에 서지혁이 주었던 강아지 스티커가 붙어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이 웃고 있는 강아지 스티커를 흐뭇하게 보며 좀 뿌렸는데 이걸 바로 들키다니. 개코가 따로 없네. 서지혁이 할 말을 잃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신해량이 부실로 들어왔다. 강아영은 신해량을 보자마자 달려가 또 킁킁거리더니 서지혁과 신해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어제까지만 해도 기분 완전 안 좋더니 오늘은 표정이 아주 폈네?"

"딱히 그런 적 없는데."

"허! 지혁아! 너 그렇게 순진해서 어떡할래? 쟤는 맘고생 더 해봐야 한다니까!"

"허허허……."

그 마음고생은 이미 서지혁 혼자 뼈 아프도록 했었다. 내가 신해량 앞에서 눈물을 몇 번이나 보였는데. 그걸 알 길이 없는 강아영은 속이 터진다는 듯이 분해하며 신해량의 팔뚝을 툭 쳤다. 신해량은 능청맞게 어깨를 으쓱였고 그 꼴을 본 강아영은 더 열을 받았는지 곧바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곧이어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영 누나한테 뭔 짓을 했길래 저래요?"

"아무 짓 안 했어. 쟤는 원래 나 골탕 먹이는 거 좋아해."

"선배를 좋아하는 게 아니구요?"

"그 말 그대로 강아영한테 가서 해봐. 네 이마에 바람구멍 하나 만들어 줄걸."

대체 뭘 얼마나 잘못 짚고 오해하고 있었던 건지. ……하지만 신해량을 좋아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지? 이미 객관성을 잃은 서지혁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신해량을 노려보았다. 저 눈치가 귀신 같은 인간이 누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모를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진짜라는 건데. 보이지도 않는 틈을 노려보고 있으니 소용없다는 듯이 신해량이 고개를 저었다.

훈련 시간이 되자 감독과 코치, 부원들이 모두 모였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힘내자는 짧은 격려와 함께 훈련이 시작되었다. 서지혁은 귀마개를 끼고 라인 앞에 자리를 잡고 섰다. 총을 한 번 점검하고는 탄환을 장전해 10m 앞에 있는 표적을 향해 천천히 팔을 올렸다.

미세하게 커진 손에 잡힌 총은 유독 작게 느껴졌고,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닥은 멀게만 느껴졌다. 어느 하나 익숙한 거 없이 낯설고 새삼스러운 감각이었다. 훌쩍 자라버린 몸에 언제쯤 익숙해질 수 있을까. 성장이라는 것은 멈춰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불안정하게 나아가는 보드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서지혁은 넘어질까 불안하고 다칠까 두려워 움츠리고 있던 몸을 곧게 펴고 앞의 목표를 바라보았다. 낯선 감각 속에서도 과녁의 까만 점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여전히 확실한 거 하나 없이 불안함 투성이였지만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다치면 치료해 부축해줄 사람이 있으니까.

탕―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묵직한 반동이 느껴졌다. 10m 앞에 있는 표적과 가늠새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과녁을 띄운 스크린에 10.9가 찍혔다. 서지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주위의 부원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서지혁은 고개를 돌리며 눈으로 빠르게 부원들을 훑었다. 저 멀리서 부원들의 점수를 체크하고 있던 신해량과 눈이 마주쳤다.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는 서지혁의 목표였다. 그의 올라간 입꼬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서지혁이 헤실거리며 웃으니 신해량은 앞을 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서지혁은 다시 앞을 보고 총을 든 손을 올렸다. 서지혁의 총구 끝에서 나간 탄환들은 모두 10점대를 기록하며 훈련이 마무리되었다. 가히 전설적인 기록이었다.


"여기요. 제가 잘 빨아서 뽀송하게 말려뒀죠."

"그래."

기어코 신해량을 다시 기숙사에 데려온 서지혁이 싱글벙글 웃으며 남색 티셔츠를 건넸다. 신해량은 가방에 티셔츠를 넣고는 기숙사 방을 둘러봤다. 서지혁은 2학년이 되고 체육특기생 특혜로 기숙사 1인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혼자 지내기엔 부족함 없는 시설이라 생각했는데, 190cm가 넘는 두 남자가 놀기엔 좁은 공간이었다. 앉을 곳이라곤 책상 앞 의자나 침대가 전부였는데 신해량은 방 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외출복을 입고 남의 침대에 앉을 수는 없고, 의자에는 이미 서지혁이 앉아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손님을 데려와 놓고 혼자 편하게 앉아 있는 서지혁을 신해량이 멀뚱 내려다 봤다.

"편히 앉으시죠."

"앉을 데가 어디 있다고."

"여기 있잖아요."

서지혁은 뻔뻔하게 자신의 허벅지를 가리켰다. 신해량은 코웃음을 치며 서지혁의 머리통을 손으로 눌렀다. 아악! 한껏 구겨진 서지혁이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누르는 손을 털어냈다.

"아 왜 그러십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나가기나 해. 여기서 뭘 한다고 그래?"

"왜요? 여기서도 저 막 안아주고 예뻐해 주고 했잖아요."

"그땐 네가 아팠으니까 그렇지."

"지금도 아픈데요."

눈썹과 입술을 아래로 축 내린 서지혁이 신해량을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신해량은 개소리면 가만 안 둔다는 눈으로 서지혁을 노려봤는데, 거짓말일 게 뻔한 후배 놈의 눈을 들여다보던 날카로운 눈이 점점 순해졌다.

"……어디가 아픈데?"

거짓말이 아닌 것을 눈치챈 신해량은 표정을 풀고는 서지혁의 이마에 손등을 댔다. 열은 안 나는 거 같은데. 신해량이 중얼거리니 서지혁은 그의 손에 얼굴을 부비곤 허리를 끌어안았다. 신해량의 손이 동그란 갈색 머리통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디가 아픈 거야?"

"성장통이요."

"……끝난 거 아니었어?"

"키는 다 큰 거 같긴 한데요……."

말끝을 흐린 서지혁은 신해량을 안은 팔에 힘을 주고 그를 끌어당겨 기어코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해량은 서지혁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신경을 쏟았다. 애매한 말만 하는 후배의 속이라도 꿰뚫어 보겠다는 듯이 집요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마주한 서지혁은 괜히 민망함을 느끼며 신해량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다른 곳이 아픈 거야?"

"예."

"어디가 아픈지 말해줄 수 있겠어?"

다정한 물음에 결국 서지혁이 고개를 들고 제 무릎 위에 앉은 신해량을 올려다보았다. 새빨간 서지혁의 얼굴을 마주한 신해량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열이 나지 않은 것을 직접 확인했는데, 그 잠시 사이에 열을 뿜어내는 서지혁의 얼굴을 보고 퍽 놀란 것 같았다.

"심장이……"

"뭐? 심장?"

"예……."

"언제부터?"

"어…… 어젯밤부터요."

"뭐? 그랬으면 말을 했어야지."

서지혁의 말을 들은 신해량은 핏기가 가신 하얀 얼굴로 서지혁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심박수가 비정상적으로 높긴 해. 그렇다고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데. 심장이 아픈 거야? 어떻게 아픈데? 바늘로 찌르는 거 같아? 숨 쉴 때마다 아프다거나 다른 증상은?"

"다른 증상도 있긴 한데요……."

"뭔데?"

"여기……."

서지혁이 고개를 숙였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인 신해량이 입을 작게 벌리다 그대로 닫아 버렸다. 신해량은 자신의 엉덩이와 닿아 있는 서지혁의 허벅지를 보더니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 그대로 일어나려던 신해량을 서지혁이 빠르게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놔."

"저 아프다니까요……."

"진짜 아프게 해줄까?"

"아뇨!"

그러면서도 서지혁은 신해량을 놔주지 않았다. 얼굴을 가슴팍에 박고 있는 탓에 신해량은 서지혁의 타는 듯한 붉은 귀만 내려다 보다 헛웃음을 흘렸다.

"죽고 싶나?"

"그럴 리가요. 선배를 좋아하는 제 마음이 계속 자라고 있어서 아픈 건데요."

"다른 것도 자랐잖아."

"성장통이란 게 참 괴롭네요. 위아래로 다 올 줄은 몰랐는데."

"더 괴롭게 만들어주기 전에 놔."

"잉잉잉."

우는 시늉을 하면서도 신해량의 허리를 잡은 손은 풀리지 않았다. 결국 포기한 듯한 신해량이 허탈한 듯 바람 빠진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렇게 된 거야?"

"뭘 안 해도 성장통이라는 게 원래 자랄 때 되면 오는 거잖습니까."

"헛소리 하지 말고."

"……아니. 저는 그냥 심장 빨리 뛰는 걸 말한 거였는데요. ……아래는 선배가 제 위에 앉고 가슴을 만져서……."

"……."

그건 저도 의도한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인데요. 서지혁이 붉어진 얼굴을 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황당하다는 듯이 그를 내려다 보던 신해량은 한숨을 푹 쉬고는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잘났을까. 언제 봐도 질리지도 않는 얼굴을 빤히 보고 있으니 신해량이 서지혁의 볼을 톡톡 친다.

"그럼 내가 뭐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데?"

"뽀뽀 해주세요."

"더 아플 텐데."

"저 이제 성장통 같은 거 안 무서운데요. 까짓거 더 크죠 뭐."

능청맞은 소리에 신해량이 할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 예쁜 얼굴을 보고 있으니 심장께가 간질간질했다. 신해량은 기꺼이 엄살을 부리는 후배에게 입을 맞춰주었다. 입술이 닿자 안 그래도 붉은 서지혁의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타올랐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멈출 줄을 몰랐다.

분명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았는데. 그렇게 만족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더 자라버린 마음은 더 많은 것을 바랐다. 그가 나를 바라봐 주기를,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그에게 닿을 수 있기를. 혼자만의 욕심인 줄 알고 마음을 숨기고 졸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서지혁은 기꺼이 자신의 엄살에 어울려준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나를 자라게 만든 건 당신이지 않을까.

"정말 많이 좋아해요."

"나도 좋아해."

그렇다면 나를 영원히 성장하게 만들어 주세요.

우주보다 더 커져서 당신의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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