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Naughty dog

어바등 - 지혁해량지혁

*

폭음은 없었다. 고요했다. 서지혁은 그 적막함이 싫었다.

이런 건 질색인데....

목에서부터 꿀렁이며 피가 입 안으로 가득 찼다. 기침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그 피에 질식해 죽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눈이 가물거리고 피가 눈동자에 튄 것인지 앞이 침침했다. 마지막이라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몇 번이고 마지막에 대해서 생각했다. 살면서 죽음이 그의 곁에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탓에 불행했다거나 불안에 잠식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서지혁은 그 나름대로 삶에 집중했고 그렇기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눌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 모르지. 이러다 또 살아날 지도.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에 아직 죽기는 조금 이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해저기지에서 퇴사하고 본부의 명령에 따라 서지혁과 신해량, 백애영은 새로운 일터로 배정 받았다. 서지혁은 자신이 일하는 곳을 '일터' 또는 '직장' 정도의 가벼운 단어로 부른다. 백애영은 자주 "여긴 지옥이야." 하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는 비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백애영은 아직 어렸다. 그러나 그가 거쳐 온 지옥의 깊이가 얕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서지혁은 그래도 자신이 있는 곳을 지옥이라고 말하는 종류의 인간은 되지 못했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지옥에 떨어질 수 없다. 그가 부정하는 종교의 세계에서 떨어져 보더라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신해량은 어떠한가. 서지혁은 신해량이 내뱉는 몇 안 되는 말들을 추적한다. 기억을 이 잡듯 뒤집어 봐도 신해량이 일관적으로 자신의 일을 수식하는 경우를 보거나 듣지 못한 것 같다.

신해량은 배정되는 '일터'에 따라 직업을 달리하는 그들의 특성에 맞추어 이름을 바꾸어 불렀다. 전쟁터에서는 용병 또는 군인, 잠입 임무에서는 잠입한 곳의 이름을 따와 경호원, 산업안전기사, 인테리어 시공 업자, 엔지니어 등의 이름을 사용했다. 신해량은 자신을 하나의 이름으로 가두지 않았다. 서지혁이 그 스스로를 넓은 뜰에 풀어 놓았다면 신해량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목적지를 두고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지혁은 신해량을 이해해기 어려웠다. 자기를 정의 내리지 않는 사람을 부를 땐 뭐라고 해야 하나?

"팀장님!"

그럴 땐 직책을 부르면 된다. 서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앞서 걷는 신해량을 불렀다. 이어폰을 켜지 않고 말했기 때문에 복도에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신해량은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을 싫어하나? 모르겠다. 적어도 경호 일을 하는 중에는 싫어할 것 같다.

저것 봐. 얼굴 구기잖아.

서지혁은 미묘하게 구겨지는 신해량의 미간을 보고 총총히 달려가 신해량 옆으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같이 좀 가시죠."

신해량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 임무는 테러 예고를 받은 고위직 공무원 인사의 경호를 맡는 것이었는데 이 고위 공무원, 그러니까 김경식이 일반 경호 업체를 사용하지 않고 국가 소속 용병을 끌어들인 이유는 간단했다. 테러를 예방하고 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테러범을 사살할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서지혁은 속으로 혀를 쯧 찼다. 대가리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 그런 대가리가 물 위로 동동 뜨는 놈들 덕분에 자신 같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기는 한데, 고까운 것은 고까운 것이다.

신해량은 앞만 보고 걷다가 부드럽지만 절도 있는 동작으로 자리에서 멈춰 섰다. 김경식의 비서가 김경식의 집무실 앞에 서 있었다. 신해량은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내리며 인사 했다.

"안에 계십니까?"

"15분에 노크하고 들어가. 지금은..."

비서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다시 신해량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7분 남았네. 잠시 기다리게."

신해량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 옆으로 등을 붙이고 섰다. 서지혁 역시 그의 옆으로 같은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대기했다.

가만히 7분을 기다리자니 별 잡생각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역시 이런 경호 임무는 별로다. 무엇이 가장 별로인가 하면 고용인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점이 첫 번째로 가장 별로이고 두 번째로는 흡연을 할 수 없다는 점이 그렇다. 종종 흡연을 권유하는 정신 머리 없는 고용인도 있기는 한데 그런 경우에도 거절해야 한다. 뇌에 연기가 차면 생각이 날서지 못하고 무뎌진다. 그런 빈틈에 기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고용인을 두고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나마 조금 나은 점은 2교대를 하기 때문에 쉬는 동안에는 마음껏 피워도 된다는 것인데 쉰다는 것도 말이 쉬는 것이지 보고를 올리고 다음 교대를 준비하고 눈 좀 붙이고 나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기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문득 옆에 무감한 얼굴로 서 있는 신해량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신해량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일에 대한 별다른 불평 불만을 내뱉는 편이 아니다 보니 그가 어떤 임무를 선호하고 어떤 임무를 불호하는 지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7년이 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황당한 수준이다.

서지혁은 옆에 선 신해량의 팔뚝을 쿡쿡 찔렀다. 신해량은 눈동자만 데굴 굴려 서지혁을 보았다. 서지혁은 손가락을 꼼질 놀리며 수화로 신해량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은 경호 업무가 좋습니까, 아니면 자유도가 높은 업무가 좋습니까?

신해량은 그것을 눈만 내리 깔아 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서지혁은 그가 무시하려는가 보다 싶어서 다시 얼굴을 돌리려는데 신해량이 손을 움직였다. 

-비슷해.

서지혁이 작게 소리 없이 웃었다. 이 양반은 어떻게 찔러도 이런 식으로 짧은 답을 준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자신은 어떻게 찔러도 길고 장황한 말을 뱉을 자신이 있으니까. 신해량의 단답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서지혁에게는 아직은 웃긴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서지혁은 신해량의 그런 모습을 '군인답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했다. 이건 군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신해량이 이렇게 타고 난 인간인 것 뿐이다. 지금까지 서지혁이 본 신해량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래도 둘 중에 뭐가 더 좋은지 정하면요?

-긴장을 덜 하는 쪽이 좋지.

신해량의 손짓에 서지혁의 눈썹이 위로 들썩였다.

-팀장님도 긴장을 합니까?

-나도 인간이야.

-팀장님 인간 아니잖아요.

서지혁의 우스갯소리, 아니 그런 손짓에 신해량은 다시 양 손을 맞잡고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표명했다. 서지혁은 속으로 툴툴거리며 손을 내렸다.

그때 비서가 손목 시계를 확인하더니 중지와 검지를 까딱였다. 그 신호에 맞추어 신해량과 서지혁은 문 앞으로 섰다. 비서가 문을 두드렸고 안에서 "들어 와." 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비서가 신해량에게 눈짓하자 신해량이 잠시간 침묵하다가 문고리를 열고 들어갔다. 서지혁은 그의 뒤로 따라 들어갔다.

집무실 안에는 같은 용병 소속인 경호원 세 명이 서 있었고 가장 안 쪽 자리에 김경식이 의자에 파묻히다시피 하여 앉아 있었다. 경호원들 중에서 가장 키가 작아 눈에 띄는 백애영의 눈동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 신해량과 서지혁을 확인한 후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세 명의 경호원들은 신해량과 서지혁 팀과 교대한 후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김경식이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며 이마를 문질렀다.

"일정 보고는."

"받았습니다."

"테러 예정일이 오늘이야. 그런데 왜 인력을 합치질 못한다는 거야?"

김경식이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서지혁의 시선이 그 손으로 향했다. 그러나 신해량은 미동도 않고 김경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지침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들은 유도리라는 게 없나?"

지금이 나서야 할 때다. 서지혁은 입을 다문 신해량을 흘깃 보곤 웃음기를 지운 얼굴로 김경식에게 말했다.

"계약 조건에 교대 인력을 합치지 못하도록 되어 있잖습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사고 터지면 니들이 뭐, 책임 질 거야!"

김경식은 짜증을 부리다가 하는 수 없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났다.

"오늘 마지막으로 남은 비공식 일정이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자리를 다른 곳으로 바꾸면 될 것 아니야?"

그때 신해량이 입을 열었다.

"지금 장소를 변경하셔도 브로커가 끼어 있을 경우 오히려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테러범을 잡으시려면 계속 피해 다니기 보다는 덫을 놓는 것이 좋습니다."

신해량이 길게 설명을 나서는 경우는 정말 필요한 때 뿐이다. 서지혁은 신해량의 그런 면을 좋아했다. 정확히 어떻게 좋으냐고 묻는다면, 신해량에게 자신이 브로커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점이 좋았다. 신해량은 오해를 많이 사는 사람이고 오해를 사서는 안 될 경우에서까지 자신의 문제를 방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을 중간에서 풀어주는 존재가 바로 서지혁이었다. 서지혁은 자신이 신해량의 필요에 충족한다는 점을 만족스럽게 여겼다.

"여기는?"

"집무실은 2팀이 확인한 결과 폭발물이나 여타 위험 물품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고 됐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럼 그 확인 절차를 비공식 일정에도 적용하면 되잖아?"

"테러범, 잡고 싶지 않으십니까?"

신해량이 물었다. 말은 도돌이표였다. 테러범을 잡고 싶으면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는 거다. 서지혁은 신해량의 말을 김경식이 알아 들었을지 염려 되었다.

그렇게 말하면 누가 알아 듣냐고.

그래도 김경식은 나름 머리 깨나 쓰는 공무원이라 그런지 신해량의 말을 얼추 알아 들은 모양이었다.

비서가 노크를 두 번 하고 들어 왔다. 일정 장소로 이동할 시간이었다.

*

테러 당일이기 때문에 운전대를 잡은 것은 서지혁이었다. 운전기사가 사주 받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당일에는 비서와 고용인인 김경식, 1팀인 신해량과 서지혁, 이렇게 4명만 움직였다.

마지막 일정은 저녁 8시에 강남 인근의 바의 개인 룸에서 이루어지는 미팅이었는데 사전 점검에서는 폭발물은 확인 되지 않았다. 테러범이라고 하면 대부분 떠올리는 것은 폭발물을 이용한 테러가 많다. 그러나 독극물을 사용하거나 총기를 사용하는 테러도 적지 않다. 갑자기 급습하여 칼침을 놓는 경우도 있지만 테러 예고를 하는 경우에서는 그런 방법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테러범이 특수 용병을 고용하지 않는 이상 경호원들을 뚫고 칼로 대상자를 찌를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경우에는 폭발물, 독극물, 총기류에 대비하는 식으로 조가 짜였다. 서지혁은 그 중에서도 총기류에 능했고 신해량은 능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속한 1팀은 2팀보다 인원이 한 명 적었다. 그렇다고 2팀의 능력이 떨어지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지만 그도 그럴게, 신해량이지 않은가. 서지혁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입가로 웃음이 비싯 새는 것을 느끼고 생각을 잠시 멈추었다.

차가 바의 입구 앞에 도착하자 신해량이 전방과 후방을 살폈다. 김경식은 긴장했는지 내내 속이 안 좋은 표정이었다. 신해량은 주변을 경계하며 먼저 차에서 내려 문을 잡아 주었다. 김경식이 내리기 직전에 서지혁은 품에서 총을 잡아 쥐고 신해량의 앞으로 가 섰다. 신해량과 서지혁이 길을 만들듯 호위하는 가운데로 김경식이 내렸다. 비서가 조수석에서 내리자 서지혁은 차문을 잠그었다.

신해량이 앞장을 섰고 서지혁이 맨 마지막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신해량은 사방을 주시하면서 바의 입구까지간 후 손짓으로 일행을 멈추어 서게 했다. 서지혁은 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등허리에서 얕은 긴장이 타고 올라왔다. 신해량이 바의 문을 열자 안에서 은은하게 재즈 음악이 흘러 나왔다.

"들어가시죠."

위험 요소가 없다고 판단하여 신해량이 먼저 들어갔고 김경식과 비서가 뒤를 이었으며 서지혁이 뒤를 경계하며 문을 닫았다.

바의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의 주인장이 달려와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주인장은 테러 예고에 대해 들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아직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등등의 말을 늘어 놓았고 김경식은 그의 그런 태도가 익숙한 것인지 긴장한 기색을 겨우 숨기려 애쓰며 당당한 체 했다.

"안만영 위원장님께서는 이미 와 계십니다."

"그래. 안내 해주게."

경호팀에서는 그들의 미팅 내용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방의 외부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신해량과 서지혁이 문지기라도 되듯이 문 양 옆으로 섰다. 비서가 문을 열었고 김경식이 들어가려는데 신해량이 갑자기 김경식을 붙들었다.

"바에서 내오는 술은 마시지 마십시오."

"여기 주인장은 믿을만한 사람이야. 안 위원장도 그렇고."

"술을 중간에 바꿔치는 것은 물 마시는 것처럼 쉽습니다. 아무도 믿으시면 안됩니다."

"내가 알아서 해. 어쨌든 알겠으니 대기해."

김경식과 비서가 문을 닫고 들어서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안만영의 웃음기 어린 인사 소리가 흘러 나왔고 이내 문이 닫히며 소리가 뚝 끊겼다.

서지혁은 구둣발을 내려다 보았다가 뒷짐을 지고 신해량 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방음이 잘 되면 안에서 무슨 일이 터져도 모르겠는데요."

"비명 소리까지 방음 되지는 않겠지."

"농담도 거 참..."

신해량은 문을 흘깃 보고 작게 눈썹을 움직였다. 농담이 아니다 이건가.

서지혁은 주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슥 훑었다. 김경식이 들어간 방은 바의 가장 안 쪽에 위치한 룸이었고 그곳까지는 양 옆으로 꺾인 복도가 있었고 가운데로 바에서 질러 올 수 있는 크고 넓은 길이 있었다. 그러니까 총 세 군데를 마크해야 하는 것이다. 넓게 뚫린 가운데 길은 쉽게 시야각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곳 보다는 옆으로 꺾인 복도가 있는 왼쪽을 신해량이, 오른쪽을 서지혁이 맡기로 했다.

서지혁은 오감이 민감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잠자코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의 주인장이 직접 술을 들고 가운데 길로 걸어 왔다. 술은 병을 따지 않은 데킬라였다. 신해량이 술병과 술잔을 체크하는 동안 서지혁은 오른쪽과 왼쪽을 분주하게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만히 중앙 복도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감각이 촉수처럼 양 옆으로 뻗어나갔다. 움직임, 작은 발소리나 말소리, 숨소리까지 선명하게 서지혁의 귀 속으로 들어갔다. 신해량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그 가운데서 가장 크게 들렸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신해량은 주인장의 주머니까지 체크한 후 문을 두 번 두드리고 3초를 기다린 후 문을 열어 주었다. 신해량은 주인장이 김경식과 안만영 앞에 술을 각각 놓아주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고 신해량의 시야가 빈 곳을 서지혁이 채웠다.

그때 서지혁은 신해량이 건 홀스터 쪽으로 손을 옮기는 것을 보았다. 서지혁은 이상을 눈치 채고 신해량에게 시선을 돌렸다. 신해량은 여전히 룸 안을 보고 있었고 총을 췬 손의 반대 손으로 서지혁에게 신호를 보냈다.

-'적.'

서지혁은 눈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다섯. 셋.'

셋. 그와 동시에 신해량이 손을 들어 김경식의 머리를 향해 발포했다. 격발음과 함께 김경식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바로 이어서 옆의 비서의 머리통에도 구멍이 났다. 주인장이 품에서 총을 꺼냈고 그가 총을 신해량에게 겨누기 직전에 서지혁이 주인장의 머리에 총을 쐈다.

"둘은 어디에 있습니까?"

서지혁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뒷목을 강타하는 묵직한 무언가에 의해 의식을 잃었다.

*

서지혁이 눈을 떴을 때는 옆에는 신해량은 없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끙하는 앓는 소리만 내고 몸을 뒤척였다. 손발이 앞으로 묶여 있었다. 뒷목이 아릿했다.

"팀장님?"

"일어났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움직여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았다. 국가직 용병들을 관리하는 단체의 관리장이자 용병 수장으로 불리는 남자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신 팀장이 고생을 좀 했지. 지혁이 너는 눈치가 좋잖나."

관리장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처음부터 타겟은 김경식이었던 겁니까?"

"틀렸어."

"그러면..."

"일을 묻을 필요가 있었어. 김경식은 그냥 허수아비지."

"그럼 저는 왜 이러고 있는 겁니까?"

"아직도 모르겠나? 묻혀야 할 일은 너희야. 지혁아. 아, 물론 신 팀장도 완전히는 내막을 몰라. 신 팀장한테는 본 타겟은 김경식이고 테러 예고는 우리가 했다고만 알려뒀어. 그것도 사실이지. 테러는 우리 쪽에서 예고한 게 맞으니까."

관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로 누워 있는 서지혁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구둣발로 서지혁을 툭 밀었다. 서지혁은 기우뚱하며 등을 뒤로 하여 눕혀졌다.

"우리 일이 좀 그렇잖아. 뒷공작이 많고 국가에서 떨어진 명령이라면 죽음도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서지혁의 머리 속으로 온갖 가능성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이 하나 물 위로 떠올랐다.

"NPIUS 일입니까?"

"역시 지혁이 너는 눈치가 빨라. 신 팀장도 눈치가 좋기는 한데 너는... 냄새를 잘 맡는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저한테는 비밀로 한 겁니까?"

관리장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한참을 웃음 소리가 벽을 치고 울려 퍼져나갔다.

"너무 그러지 말자고. 신 팀장한테도 비밀로 한 거니까. 억울하지는 않지?"

"그럼... 팀장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쯤이면 백애영한테 갔겠네. 불러 오라고 했거든. 신 팀장도 참 말을 잘 들어."

서지혁은 뒷목이 당겨오는 것을 느끼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 양반이 우리를 사지로 내몰리가 없다고."

"의식적으로 시키면 못할 인간이라는 건 나도 알아. 그래서 네가 그러고 있는 거야. 백애영을 데려오지 않으면 널 죽이겠다고 했거든. 뭐, 어차피 다 죽일 거긴 한데."

서지혁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머리가 울려서 그 웃음은 길게 이어지지 않고 끊어졌다. 관리장이 싸늘한 시선으로 서지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너희를 처리하는데 배치된 인력만 해도 몇인 줄 알아? 물론 해저기지에서의 일이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일 뒷 마무리가 더러우니까 이렇게까지 고생하게 됐잖아!"

관리장이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다. 서지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를 노려 보았다.

"당신은 잘못 건드린 거야. 팀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거야."

관리장이 다시 목을 가다듬더니 낮게 웃는 얼굴을 해보였다.

"알아."

"팀장은 애영이를 데려오지 않을 거야."

"아니야.... 데려 올 거라는 걸 너도 알잖아. 신 팀장은 사람을 못 버려. 그래서 백애영도 데려오고 너도 구하러 오겠지. 어리석게도."

쾅.

그때 문에 무엇인가 묵직한 것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서지혁은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쾅. 탕. 탕탕!

총의 격발음이 뒤섞였다.

"애영이한테는 사람을 몇 명 붙였습니까?"

"1팀의 둘."

"그 둘이 애영이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야 모르지. 백애영은 그 둘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자길 죽이려 드는 놈은 망설이지 않을 걸요."

"지혁아."

관리장이 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를 불렀다.

"수작 부리지 마."

서지혁은 손목 안쪽에 넣어 둔 칼을 꺼내 순식간에 손발을 묶고 있던 케이블타이를 끊고 일어 섰다. 관리장의 손에 쥔 총이 서지혁에게로 향했다. 문이 열렸다.

"멈춰."

관리장이 눈알을 한 바퀴 굴리더니 빙긋이 웃으며 신해량에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

탕. 발포음이 울렸다.

*

더 이상의 폭음은 없었다. 발포음도, 무엇인가 죽어가는 소리도 없었다. 고요했다.

천하의 신해량도 총알보다 빠르지는 못했다. 서지혁은 복부에 총을 맞고 입 안으로 차오르는 피를 반은 뱉고 반은 삼키며 죽어가고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팀장님... 신해량?"

눈 앞을 가리는 것이 피인지 아니면 생리적으로 흘러나오는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인 것 같았는데 만약 백애영이 이 꼴을 본다면 두고두고 놀리겠지 싶어서 지금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나 잘 안 보여서, 그런데.... 어딨어요?"

말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게 힘겨웠다. 겨우겨우 문장을 완성해서 밖으로 밀어내자 머리 위쪽 방향에서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 혁아."

시발.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팀장님, 죽지 마세요."

그 말이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너무 뻔한 신파극에나 나올 법한 대사가 아닌가? 누가 썼든 이 각본은 망했다.

"죽을 거면, 옆에서.. 콜록. 죽으라고."

"미안해."

"미안하면 다야?"

어디에서 힘이 솟아났는지는 몰라도 말이 술술 나왔다. 하극상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상관한테 오라 가라, 죽어라 죽지 마라 명령하는 부하를 둔 신해량도 참 안타까웠다.

몸을 겨우 뒤집었다. 서지혁은 온몸이 경련하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신해량이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사과는 나중에 해요. 죽지 말고..."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신해량이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고개를 올려 신해량을 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온 몸에 자상과 총상이 있었고 그곳들로 부터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해량의 피부는 창백했고 마치 갓 구워낸 도자기 인형 같았다. 

신해량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미안해."

그것으로 신해량은 미동하지 않았다. 서지혁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에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손 잡아줘요.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말을 한다고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손을 잡자니 이제는 손끝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점점 의식이 흐려져 갔다.

팀장님....

그를 불렀던 것 같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다음 임무를 맡을 때는 의심 좀 해요. 그래야 내가 당신을 믿을 거 아니야.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만약이 있다면 저 양반은 살려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곧 의식이 멀어지고 검은 장막 안으로 가라 앉았다.

 

*

눈을 떴다. 새햐얀 천장, 새하얀... 새하얀?

"나 죽었어?"

"안 죽었어."

"어?"

"지혁아."

신해량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 왔다. 고개를 돌렸다.

Naughty dog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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