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나의 피로. 나의 피, 로.

어바등 - 지혁지현


믿음이라는 거, 강요 되는 거, 그거 되게 싫지 않냐. 믿는 거야 자유인데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손 뻗어서 너는 지옥에 갈 거라느니 천국에 갈 거라느니 무례도 그런 무례가 없어. 그러니까 너는 나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이건 서지혁이 가장 후회하는 말 중 하나다. 동시에 엎어져서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사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으면서 후회라는 이름표를 붙인 말이다.

저 때가 언제였더라. 이지현에게 했던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지현 들으라고 한 말은 맞았다. 서지혁이 사람 발소리 하나 구분 못하는 초짜는 아니었고 그런고로 김재희에게 하는 말이랍시고 이지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그런 말을 했다.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 이유였는데 지금에 와서 이지현에게 절절 매게 되었으니 후회는 당연했다.

서지혁은 종교를 싫어한다. 싫다. 그냥 싫어. 맹목적으로 쫓는게 눈 멀어 보여서 바보 같잖아. 동시에 다른 사람 바보 만들기도 쉬워서 싫다. 누구라고 믿음이 있어본 적이 없어서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지현이 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난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뭔데. 천국에 가고 싶어서? 구원을 바라서? 서지혁은 진짜 구원 되어야 하는 것은 지옥으로 떨어질 영혼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념에 갇힌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병들은 거야. 세상을 판가름하는 단위가 딱 하나 남아서 거기에 매달리는 게 제정신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서지혁은 이지현을 좋아하게 된 후로도 입조심 하는 법이 없었고 자기 생각은 필요하면 무조건 뱉어야 하는 사람인지라 그의 기준에서 이지현에게 상처 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와 동시에 이지현에게 한 없이 다정하기도 했는데 이지현은 어느 쪽도 별 감흥 없이 넘기곤 했다.

절절한 구애 같은 걸 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널 좋아한다고 있는 티 없는 티 다 냈다. 아마 해저기지 내에서 그가 이지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팀 가 내에서는 없다. 서지혁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도 서지혁은 자신의 감정을 이유로 신념을 꺾는 사람도 아니었고 할 말을 못 뱉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하는 데에 지장을 주는 인간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그런 이유로 이지현과 함께 조가 짜여서 작업을 하게 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일에 자원할 수 있을 때에야 이지현 옆에 찰싹 붙기도 했는데 그것도 매번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이지현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늘 적당한 정도를 유지했다. 이 꼴을 보고 있던 백애영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렇게 구는 게 더 부담스러워. 그냥 아예 티를 내지를 말던가."

"지현이가 부담스럽대? 너한테 그렇게 말했어?"

"지현 언니가 그걸 대놓고 말 할 정도로 인성 없지 않거든?"

"그럼 됐어."

그러니 이번 외벽 수리에 이지현과 서지혁 둘만 차출되어 나가게 된 것은 굉장한 우연이었고 서지혁의 말에 따르면 운명이었다. 서지혁은 이지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 감정은 다소 부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지현을 보고 있자면 과거의 자신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점점 더 뻗어 나가 이지현도 결국 자신처럼 배신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데까지 도달했다. 늘 그랬다. 종교에 맹목적일 수록 나중에 크게 배신 당하기 마련이다. 서지혁은 하루라도 빨리 이지현이 그런 방식으로라도 그 더러운 곳에서 발을 빼기를 바랐고 동시에 그가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사랑하는 마음은 복잡하구나."

"뭐라고?"

무전 너머로 이지현이 되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지혁은 혼잣말로 생각을 중얼거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두껍고 둔한 잠수복을 입은 탓에 그게 육안으로 보일 리는 만무했으나.

"아니야. 아무 말도 안 했어."

잠수복만 아니었다면 서지혁은 그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철썩철썩 쳤을 테지만 그럴 여유는 되지 않았다.

서지혁이 보조를 하고 이지현이 최종 점검까지 끝낸 후 길게 외벽을 따라 걸어 둔 로프를 잡고 이동했다. 몸에 걸린 로프를 벽면에 걸린 로프에 이동 중간중간 빼내었다가 다시 거는 방식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외부 입구까지 도달하기 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다. 서지혁은 그 시간 동안 잠수복 안으로 울리는 자신의 숨소리와 이지현의 숨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소리는 일정했고 아무런 이상 없이 완벽한 일정을 소화했음이 자명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끊어진 것은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어. 하는 이지현의 짧은 탄사가 무전 너머로 들려왔고 서지혁은 본능적으로 뒤따라 오는 이지현을 뒤돌아 보았다. 이지현은 허리에서 이어져 외벽 로프에 걸려 있던 고리를 빼기 위해 달칵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이게... 안 빠져."

서지혁은 심장이 아래로 덜컥 내려 앉는 듯이 느꼈다. 이지현과는 1미터가 조금 넘게 거리가 벌어져 있었기 때문에 서지혁은 자신의 로프를 뒤로 끌며 이지현에게 다가갔다. 그 옆에 자신의 로프 고리를 걸고 이지현에게 일어난 문제를 확인했다. 고리의 닫는 면이 로프에 걸린 것 같았다.

"잠시만."

이지현은 "응." 하고 말한 후 몸을 뒤로 조금 물렸다. 그 속에서 작은 불안이 느껴졌다. 서지혁은 로프에 걸린 것을 힘주어 한 번에 당겨 빼냈다. 그 탓에 반동으로 이지현이 벽면에서 떨어져 나갔다. 문제는 그들이 입고 있는 잠수복이 굉장히 무겁다는 데 있겠다. 이지현은 떨어진 곳에서 부터 점점 아래로 추락했다. 아주 느린 추락이었지만 당장 붙잡지 않으면 이지현은 어떤 연결도 없이 심해로 가라앉을 것이었다.

빠르게 손을 뻗었다. 이지현이 버둥거리다가 그 손을 잡았고 서지혁은 잡은 손을 당겼다. 그 순간 떨어진 것은 이지현이 아니라 서지혁의 심장이었을 것이다.

"아 세상에."

서지혁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쓰면서도 빠르게 이지현의 로프 끝 고리를 외벽에 걸었다. 속으로 엄청난 양의 욕설이 지나갔지만 이지현은 들을 수 없었다.

해저기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후 무거운 잠수복을 벗자마자 이지현은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주저 앉았다. 서지혁은 그에게로 다가가서 옆에 앉았다.

"많이 놀랐어?"

이지현은 대답 없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물기 젖은 짧은 머리카락이 부슬거리며 갈라졌다 붙었다를 반복했다. 안색이 파리한 것이 누가 봐도 긴장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방금에서야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서지혁은 주저하며 머뭇거리다 이지현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주었다.

"별 일 없어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이지현이 작게 중얼거리며 손을 잡아 모았다. 서지혁은 그런 이지현을 담담하게 내려다 보았다.

"나한테 고마운 마음은 없고, 신한테만 고마워?"

"뭐?"

이지현이 당혹스러운 듯한 눈을 하고 서지혁을 바라 보았다.

사실 서지혁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말을 함구할 수 있었고 다른 주제로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낸 것은, 어쩌면 그 역시 너무나 안도했기 때문이리라.

"나한테도 좀 고마워 해주면 안돼? 네 손을 잡은 건 난데, 넌 꼭 신이 네 손을 붙들어 준 것처럼 말하잖아."

서지혁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뒤로 지나가는 빈정거리는 말이 자신에게도 비수처럼 꽂혔으니 이지현에게 어떻게 들릴 지 예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하자. 상처 줄 거 알면서 왜 그렇게 말 해.

"난... 너한테도 고마워 하고 있어."

이지현의 목소리에 곤혹이 어렸다.

"아, 그래?"

서지혁의 말투에는 날 선 부분이 하나 없이 부드러웠지만 이지현이 느끼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고맙다고 바로 말하지 않아서 화가 난 거니?"

"난 화 안 났어, 지현아."

서지혁은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렇게 구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위험한 상황이었고 그 순간 이지현을 붙들 수 있어서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지현이 누구에게 먼저 감사하든, 그건 서지혁이 알 바가 아니었다. 이지현이 무사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생각에서만 그친 것인지 속에서 답답하게 응어리진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냥, 난 지현이 네가 거기서 떨어졌어도 다 그 놈의 주님의 생각대로 행해진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래."

"...그게 잘못 됐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신은 인간을 보살피지 않아. 지현아, 신은 부재중이야."

이지현의 얼굴이 굳어 어두운 그림자가 드러웠다. 서지혁은 그것을 보고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춤추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빨간 구두처럼, 나쁘게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항아리를 몸 속에 담고 있어 모든 말을 뱉어내야 그만 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 진짜 못됐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 지 모르겠어."

"좀 이기적이잖아. 그 순간에 있었던 건 너랑 나밖에 없는데 왜 애 먼 신에게 감사를 표하는지. 궁금해."

".....구해줘서 고마워. 됐어?"

이지현은 잠수복을 팔에 걸쳐 질질 끌며 서지혁을 지나쳐 탈의실로 사라졌다. 서지혁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젖은 얼굴을 문질렀다. 피로했다.

방에 들어 온 것은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밤이 된 시각이었다. 해저기지에는 햇볕이 들 일이 없기 때문에 시계가 없으면 밤이 오는지 낮이 오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도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해저기지 생활에 적응 한 것인지 밤이 오면 몸이 조금 무거워지는 것처럼 느꼈다.

서지혁은 샤워를 한 직후라 노곤해져 침대에 걸터 앉았다. 머리 맡에 꽂힌 책들을 보며 이지현의 방에 꽂혀 있을 성경 따위를 생각했고, 동시에 한 때 자신의 책장에도 꽂혀 있던 것들을 떠올렸다. 이지현에게 했던 말들은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서지혁은 이지현을 연민하고 싫어했다. 어리석어서. 그 얇은 종이에 적힌 말들을 섬기는 것이 너무나 어리석어서.

종교 서적들로 가득 차 있던 어린 시절의 책장은 이제는 시집 따위의 것들로 대체되었고 서지혁은 과거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지현을 보면 과거가 그림자처럼 계속 밟혔다. 기분 나쁜 기억들이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지현을 좋아한다니 이건 무슨 신의 장난인가 싶었다. 그에게 신이 있다면 이딴 장난이나 치는 괴팍한 존재일 것이다. 물론 그걸 넘어서 서지혁은 그 존재 자체를 믿지 않았다.

오늘의 이지현을 구한 것은 신의 보혈로 얼룩진 손이 아니라 서지혁의 살아 있어, 맥동하는 손이었고 그를 이렇게까지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신이라는 존재가 주는 불쾌였다.

서지혁은 언젠가 이지현을 잊게 될 날을 떠올렸다. 뭐, 그건 죽어서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그는 아마도 이지현보다 먼저, 이르게 죽을 것이고 이지현은 서지혁이 지옥에 갔을 것이라 생각 할 것이다. 이지현의 마음 속에 있는 지옥에 가장 먼저 떨어질 사람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지혁은 조금 웃었다. 무엇이 되었든 처음을 장식하는 것은 꽤나 괜찮은 일이니까.

나의 피로. 나의 피, 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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