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한계

어바등 - 신해량 과거 날조 고찰글

*권예진은 가상의 인물입니다.

*캐해석에 가까운 글이니 가볍게 읽어주세요.


신해량은 언제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것은 유한하며 존재는 불완전하기에 신해량은 완벽함을 추구하되 한계를 정해두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니 이것은 모순이다.

이 글은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신해량의 답이며, 신의 시선으로 본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한계를 안은 신해량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늦은 저녁에 전화 한 통을 받는다. 26살의 신해량은 아직 어리고 혈기 넘치며 덕분에 잠도 없다. 11시에 잠들지 않는 인간인지라 전화를 받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전화는 신해량의 인생을 흔든다. 결과적으로 신해량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해량은 한 동안 침잠한다.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거나 의미 없이 휴대폰 갤러리를 뒤지는 짓을 반복한다. 몇 번이나 곱씹었던 지난 행동들이 후회라는 명찰을 달고 신해량의 뒤를 쫓아 온다. 신해량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의 뒤로 바짝 붙어 오는 것은 그가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과거다. 신해량은 후회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첫 번째 전화는 부고를 알리는 신호탄에 가까웠다. 신해량은 자신이 권예진의 죽음을 판단할 수 없고 또한 선언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전화를 받고 달려간 비가 쏟아지는 계곡에서 권예진이 생존할 확률이 바닥으로 치닫는 것을 보고서도 서지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차가운 이성으로 알고 있었지만 죽은 몸뚱이라도 건지고 싶었다. 신해량은 자신의 한계가 여기에 있음을 안다.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무력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 그럼에도 그는 한계를 확장해나간다.

비가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퍼부었다. 그 속에서 권예진을 건져 낸 것은 권예진이 물에 휩쓸려 실종되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다. 익사체는 시간에 비례하여 그 모습이 달라진다. 쉽게 말하자면 물에 살덩이가 불어나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퉁퉁 불어서 원형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여름일 수록 시체는 빠르게 부패하고 그 중에서도 익사체의 부패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이다. 부패와 분해가 동시에 진행된다. 물 속에 있는 생물들에 의해 그렇게 된다. 불어난 살이 파먹히고 분해되며 그 색 역시 달라진다.

신해량이 되찾은 권예진은 그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시신을 보지 말기를 권하는 1순위는 분사한 사체이고 익사체 역시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제외하면 다른 유가족에게는 보는 것을 지양하도록 한다. 애초에 살아 있던 생전 모습을 알아보기가 어렵고 그 모습이 끔찍하기 때문에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에서도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확인하는 것이 유가족이 할 수 있는 한계다. 나머지는 과학수사대의 감식 요원들이 처리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신해량이 할 수 있는 일은 권예진을 뭍으로 건져내는 것 말고는 없었던 거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발이 미끄러지지 않았더라면. 물살이 거친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계곡에 가지 않았더라면. 신해량은 그런 가정들로 1여년을 살았다. 남은 것은 목걸이 하나가 전부였다. 후회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신해량은 가진 것이 없었다. 후회를 가진 사람은 그나마의 추억들에 매몰되기라도 하는데 신해량은 기억에 파묻히기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억이라곤 라피스라줄리 하나에 담긴다. 새파란, 물을 닮은 보석. 신해량은 과거로 돌아가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라피스라줄리는 물과 압력에 약한 보석이다. 때문에 물에 오래, 자주 들어갈 수록 망가질 확률이 크다. 그런 연약한 보석을 가지고 깨질 때까지 목에 걸고 다니자고 약속을 했다. 결과적으로 권예진은 보석보다 빨리 부셔졌고 신해량은 아직도 목에 걸린 보석과 함께 물에 들어간다. '익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면서 바다 속에서 살기로 했다. 프리다이빙을 좋아하는 시점에서 그 결심은 다소 어그러진 구석이 있다고 신해량 역시 생각한 바가 있다.

군 생활을 접고 국가 소속 용병으로 들어간 것은 전환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권예진이 죽은 지 1년이 지난 때였고 신해량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다.

하필이면 바다였다. 그것도 아주 깊은 심해라서 수영해서 올라오지도 못하는 그런 깊은 곳으로 발령이 났다. 신해량은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나 거절하지 않았다. 한 번 물에 홀린 사람은 영원히 물에서 살다가 물에서 죽는다고 하던데 자신도 그런 것이려나 싶었다. 전환점 치고는 권예진을 잊기에 온전히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신해량은 시험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으므로 해저기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상부에서는 함께 데려갈 용병을 신해량이 직접 선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신해량은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서지혁과 백애영을 골랐다.

서지혁도 백애영도 자신에게는 수족같은 사람이었으므로 다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리고 구태여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읊어주지 않아도 신해량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이었다. 이유는 완벽했고 판단에 흐린 점은 없었다.

NPIUS로 발령이 난 후 한 달 정도의 틈이 났다. 시간이 벌어지면 그 사이로 잡념이 흘러 들어온다. 그 사이 동안 신해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살아오면서 자아가 바로 잡힌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자신이 가진 통제권을 놓지 않고자 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분명히 말하건대 가능한 일 역시 아니다. 신해량은 한계에 도전하기를 주저하는 인물 또한 아니었으므로 상충되는 이해와 욕구의 사이에서 간극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좁혀지기를 반복했다.

결론적으로 신해량이 '신은 존재하는가?'의 물음을 던진 것은 권예진이 죽고 1년이 지난 후였다. 신해량에게 신이 있다면 그 신은 권예진을 죽게 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신해량이 권예진을 마음 속에 묻어둘 수 있도록 만드는 존재다. 죽은 권예진을 살아 돌아오도록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헛된 생각을 억누르게 만드는 존재다. 과거를 후회하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게 만드는 존재이며 미래에 휩쓸리게 만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다. 신해량은 신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믿었다.

그러므로 신해량은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오롯이 현재를 살 뿐이다. 그에게 슬퍼할 일도 두려워 불안해 할 일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신해량이 가진 최대의 능력은 거기에서 나왔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어찌되었건 간에 사람에게 큰 상실을 안겨준다. 사람 하나 만큼의 우주가 있고 그 우주 만큼의 공허가 있다. 비어버린 사람은 종이에서 오려내듯 커다란 모양을 만들고 그것은 그 사람의 형태를 정의 하는 데에 큰 반석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구멍이 나면 그 방향으로 사람은 쉽게 일그러진다. 그러니 그 구멍이 뚫리고도 굽어지지 않는 신해량은 단순히 '강하다'라는 표현으로 일축하기에 복잡한 존재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신해량은 신의 존재에 대해 진위 여부를 가리기를 보류했다. 많은 부재를 겪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의심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신해량에게 서운해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신해량은 너그러운 신도이자 신의 깊은 불신자이기 때문에.

한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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