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등 2차

[해량무현] 시켜줘 명예공청기 - 4

두시전에자자 by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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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을 공기청정기로 삼지 말자


가까이 있기만 해도 가이딩이 가능하다니, 신해량은 정말 뛰어난 가이드인가보다. 등급이 얼마나 될까? 설마 1급은 아니겠지? 아니다, 1급쯤 되면 이미 정부에서 귀히 대한다고 했다. 그래도… 비록 내 등급이 낮아서 영향을 받기 쉽긴 하지만 그래도 2급은 되어야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신해량은 그러면 해저기지에서 가이드 활동도 하고 있는걸까?

정신 차려 보니 온종일 신해량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동안 박무현은 제 가설에 맞추어 이런저런 검증 작업을 거쳤다. 똑같은 시간, 요일에 딥블루에 들어가 보았을 때 딱히 비염이 완화되는 기색은 없었다. 검증의 일환으로 박무현은 작은 습도계를 하나 구해서 늘 지니고 다녔다. 신해량과 마주친 날에도(상쾌했다) 연동 어플리케이션에 자동 기록된 습도는 일관되게 처참했다.

사실 신해량과의 폭력적인 첫 대면 이후 박무현은 꽤 자주 그 날을 떠올렸다. 주로 아침에 일어나 재채기를 하거나 식당에서 코가 막혀 슬픈 식사를 할 때 특히 심했다. 평생 비염으로 큰 불편을 느꼈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사람이 있다가 없으니까 이렇게 간사했다.

아무튼 박무현은 확신했다. 제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이 겪었던 일은 분명히 가이딩을 통한 종합 염증 치료였다.

검증이 완료되었다면 다음 차례는 당연히 실행이다.

그런데 어떻게?

박무현은 잠시 환경을 점검했다. 자신은 치과의사고… 신해량은 엔지니어다. 신해량이 치아 검진이나 치과 치료를 오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이 드물다는 뜻이었다. 어떡하면 좋지? 한 번 실행을 결심하니 멈출수가 없었다. 박무현은 검정고시를 거쳐 치대 졸업까지 이뤄낸 두뇌를 열심히 굴렸다. 그 때 신해량이 분명….

‘위협적인 일이 발생할 때…’

시방 박무현 본인이 제일 위험한 사람이었다.

‘고장난 기자재가….’

박무현은 핸드피스를 째려보았다.

박무현은 염치불고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신해량에게 치댔다. 핸드피스 하나가 고장날 때마다 신해량에게 메세지를 보내 수리를 요청하고, 신해량의 근무 상태를 째려보다가 그것이 휴식중으로 바뀌는 순간 백호동 앞에서 서성거렸다. 도움이 필요할 경우 언제든 부르라는 말은 예의상 한 말이었겠지만 의외로 신해량은 박무현이 무얼 요청할 때마다 부하 엔지니어를 보내는 일 없이 직접 수리를 하러 왔다. 딱히 살가운 대화 같은게 있는 건 아니었고 할일을 하곤 그럼 수고하십시오, 하고 돌아가버리는게 다였으나 그것만으로도 박무현의 삶의 질은 상승했다….

진짜 착하고 성실한 청년이구나. 그의 능력을 몰래 부려먹는 것 같아 조금 양심이 아팠지만 딱히 언급하지 않는 걸로 봐선 본인에게도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실제로 무조건적으로 요청에 달려오는 건 아니었고 신해량 본인이 바쁘거나 할 땐 일정 조율을 요청했다. 박무현은 나름 커피나 사탕 같은것도 열심히 제공했다. 시원한 호흡을 제공하는데 이 정도 쯤이야…

그러나 박무현의 작은 행복에도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네? 신 팀장님이 퇴사하신다고요…?!”

박무현은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말도 없이 그럴 수 있어? 우리 친했잖아?! 안 친했다.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박무현 혼자 마음속으로 친밀감을 잔뜩 쌓았을 뿐이었다… 박무현은 착잡한 마음으로 커피를 쫍 빨았다. 벌써 바닥을 드러낸 컵에서는 공기 빨아들이는 소리만 났다. 소식을 전해준 한국인 동료, 유금이가 박무현 쪽으로 휘낭시에 하나를 더 밀어줬다.

"그래서 요즘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무현쌤 멘탈관리 좀 해 드리려고 왔어요. 바쁘실 것 같아서."

"제가요?"

소식을 요약해보자면 신해량의 퇴사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엔지니어 팀 간의 불필요한 소요를 막기 위해 퇴사 사실을 마지막까지 숨길 예정이었는데, 고작 일주일을 남겨두고 엔지니어 총괄이라는 마이클 로아커인지 킨더초콜릿인지 하는 양반이 월간회의에서 "미스터 씬, 후임은 정해졌나? 아, 지난번에 리포트했다고? 내가 못 봤군." 같은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회의가 끝난 뒤 약 1시간동안 주먹질을 동반한 대거리가 세 번은 있었다고 했다.

"그게 어제 일이라 이제 거의 주먹질 파티, 주먹질 대잔치, 주먹질 블랙 프라이데이 이런거 열렸을 줄 알았거든요."

듣고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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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댓글 1


  • 정교한 강아지

    주먹질 파티 대잔치 블랙프라이데이라니 누가 이런 말을 해요ㅋㅋㅋㄱ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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