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혁해량] 7월의 애정촌

[지혁해량] 7월의 애정촌 27

데이트1

96x105 by 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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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량조절 실패로 좀 뜬금없는 곳에서 끊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다시 집까지 끌려온 서지혁은 헛웃음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신해량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신나 보이는데 기분 탓인가?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겨 신해량의 방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벌써 옷방으로 간 건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첫 데이트 기분이나 즐겨야지. 서지혁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옷장 문을 활짝 열어두고 고민에 빠졌다. 무슨 옷을 입지? 고민하다 오랜만에 신해량이 사준 오렌지색 셔츠를 골라 들었다. 신해량은 무슨 옷을 입으려나. 마음 같아서는 컨닝을 하고 적당히 맞춰 입고 싶었지만 설렘을 간직한 채 모르고 싶기도 했다.

서지혁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겨드랑이 쪽이 파인 하얀색 민소매 티셔츠와 베이지색 바지를 입었다. 그 위에 주황색 셔츠를 걸쳐 입고 붙박이 옷장에 달린 거울로 전체적인 조합을 확인했다. 괜찮은데? 신이 난 서지혁은 거실로 나와 다시 신해량의 방 안을 살폈는데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서지혁은 열린 신해량의 방문을 손등으로 똑똑- 가볍게 두들겼다.

"오래 걸려요?"

"10분."

"10분이나요? 머리 해요?"

"응."

"와. 혼자 치사하게!"

억울함을 담아 소리치니 멀리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허. 이 인간이 진짜. 제대로 힘주겠다 이거지?

질 수 없는 서지혁은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미 짧게 자른 탓에 머리로 멋을 낼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단 수영장에서 샤워를 하고 대충 말린 탓에 살짝 떠 있는 머리를 빗질하고, 옆 머리를 잘 눌러준 다음 정수리에서 뻗어 나온 가르마도 정리했다. 단정하게 자른 짧은 앞머리는 올리나 내리나 큰 변화가 없었다. 고민을 하다가 옆쪽을 살짝 터서 넘겨주었다. 음. 이 정도면 됐고.

시계를 보니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머리가 짧으니 더 만질 것도 없네. 할 일을 잃은 서지혁은 거실에서 서성거리다 다시 신해량의 방문에 노크했다.

"이왕 준비하시는 거 10분 더 드릴게요. 저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10분 뒤에 나오세요."

"괜찮아. 곧 다 돼."

"아뇨. 딱 10분 뒤에 나오십쇼."

서지혁의 의도를 생각하는 것인지 신해량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약 15초 정도 후에 알겠어. 하는 대답이 들렸다. 이따 봐요. 짧게 인사를 한 서지혁은 지갑과 핸드폰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와. 뭐예요?"

"뭐가?"

다 알면서 뻔뻔하게 묻기는. 오피스텔 건물 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서지혁은 건물 출입문을 열고 나오는 신해량을 보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오래 걸린다 했더니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이마 가운데를 터서 앞머리를 살짝 깠는데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더럽게 잘 어울렸다. 가르마만 바꿨을 뿐인데도 낯선 느낌이라니. 심장께가 간질간질했다. 옷은 서지혁이 선물했던 여름옷이었는데, 깨끗한 흰색 반팔 티셔츠와 청량한 청색 셔츠가 잘 어울렸다. 선물한 옷을 입고 나올 거라 예상은 했는데 실제로 보니 입꼬리가 절로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하여간, 뭘 줘도 아깝지 않게 만든다니까.

"그건 뭐야?"

"햐. 하여간 눈치하고는."

신해량은 태연한 표정으로 서지혁의 등 뒤에 숨긴 팔 쪽을 고갯짓하며 다가왔다. 이미 입이 귀에 걸린 서지혁은 신해량이 자신의 바로 앞까지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숨겨둔 것을 건넸다.

"장미?"

"뭐. 첫 데이트 때 장미 한 송이 이런 거 기본 아닙니까?"

신해량이 준비를 할 동안 먼저 나온 서지혁이 부리나케 꽃집으로 달려가 사 온 장미였다. 흔하고 진부한 레파토리였지만 서지혁이 원한 것은 그런 거였다. 아주 평범하고 특별할 거 없는 일들을 신해량과 함께 하는 것. 포장된 장미 한 송이를 받은 신해량은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지혁과 꽃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꽃향기를 맡으며 미소 지었다. 예쁘다. 예쁜 입술에서 나온 예쁜 말에 서지혁도 히죽거리며 웃었다. 이러니 뭐든 해주고 싶은 건데. 다음엔 재롱잔치라도 해줘야 하나.

"고마워."

"말로만~?"

서지혁은 바라는 게 많은 눈으로 신해량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쭉 빼서 볼을 내밀었다. 대놓고 대가를 바라는 몸짓에 신해량이 작게 웃더니 서지혁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곤 흐뭇한 미소를 짓는 서지혁의 얼굴을 붙잡고 제 쪽을 향하도록 돌려 입술에도 짧게 키스했다. 요구한 것 이상의 보상을 받은 서지혁은 놀란 듯 입을 벌리고는 신해량을 보며 헤실헤실 웃어댔다. 언제까지 일일이 놀랄 거야? 평생이요. 바보 같은 웃음을 마주한 신해량은 히죽거리는 서지혁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어머 어머. 밖에서 뭐 하는 짓이래? 서지혁이 과장되게 엉덩이를 쭉 내빼며 신해량의 손을 잡았다.

"저 어때요?"

"? 좋아."

"……아니. 그렇게 막. 훅 들어오지 좀 마십쇼. 저도 좋은데요. ……그게 아니라, 평소보다 멋있다거나 그런 거는요?"

"잘 어울려."

"저 오늘 머리도 이쁘게 했는데요."

"응. 이뻐."

엎드려 절받기도 아니고. 순순히 원하는 말을 출력해주는 건 좋은데 너무 영혼 없는 거 아닌가? 진정성을 의심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니 신해량이 뭐 어쩌라는 거냐는 표정을 짓는다. 생판 구라 같진 않은데. 에휴. 말 수 적은 남자친구 둔 내 탓이지. 누굴 탓하랴. 이런 인간인 거 모르고 좋아한 것도 아니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해탈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신해량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쳐다보다 차키를 꺼내 들었다.

"어딜 갈 건데?"

"저 주십쇼."

손을 내미니 곧바로 차키가 손에 들어온다. 웬일로 고분고분하지? 뇌물을 받았으니 순순히 따라주겠다는 건가. 신해량의 집으로 돌아온 서지혁은 다시 필요가 없어진 차를 동생에게 넘겼다. 호텔에 주차해둔 차를 알아서 가져가라고 하고 차키만 넘겨주었는데 잘 가져갔나 모르겠네. 다시 뚜벅이가 되었지만 오늘 서지혁은 남자친구의 차로 생색을 좀 낼 예정이었다. 넘겨받은 차키로 주차된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타니 신해량이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았다.

"잠시만요."

"……?"

서지혁은 안전벨트를 매려는 신해량의 행동을 저지했다. 곧바로 왜 그러냐는 의문 담긴 눈이 서지혁을 향했다.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 신해량을 보며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은 서지혁이 상체를 일으켜 직접 신해량의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임무를 완수한 서지혁이 입꼬리를 올려 뿌듯하게 웃고 있으니 신해량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서지혁은 제 안전벨트도 꼼꼼하게 매고 핸드폰을 차량 스피커에 연결해 잔잔하게 노래를 틀었다. 출발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핸들을 툭툭 치니 신해량이 그러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약 20분 정도 운전 끝에 도착한 곳은 번화가의 고층빌딩이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지혁이 운전하는 내내 어딜 가는 건지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탓에 신해량은 미심쩍은 눈으로 건물 안내 표지판과 간판 같은 것들을 죄다 훑었다. 경계심 많은 고양이처럼 구는 신해량을 보며 키득대던 서지혁이 7층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신해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영화관?"

"예. 영화 좋아하세요?"

"그런 건 데리고 오기 전에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죠. 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이미 예매도 다 해놨어요."

"……싫은 건 아니야. 영화관은 동네에도 있잖아.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나?"

"생각해 보니까 저희 7월 내내 집에 박혀 있거나 동네에서만 놀았더라구요. 그래서 오랜만에 다른 동네에 와봤죠. 새롭고 좋지 않아요?"

대충 이유를 납득한 신해량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7층을 향해 가는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멈춰서 사람을 태웠다. 좁은 엘리베이터의 공간이 서서히 사라지자 가장 뒤에 있던 서지혁과 신해량이 벽에 딱 붙었다. 서지혁은 앞에 있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가만히 보다가 제 옆에 불쑥 솟아 있는 신해량을 보고 실실 웃기 시작했다. 신해량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서지혁을 쳐다보았는데, 그때 엘리베이터가 6층에 서고 사람 두 명을 더 태웠다.

이미 포화상태인 엘리베이터에 만원 알림이 안 뜨는 것이 기적 같았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꼬물거리며 자신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 틈을 타 서지혁은 몸을 돌려 제 옆에 있는 신해량을 벽에 가두듯 가깝게 밀착했다. 거의 끌어안듯 서로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한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의 구석에서 몰래 웃었다.

몇 초 뒤, 7층에서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에 휩쓸려 같이 빠져나온 서지혁과 신해량이 손을 잡고 매표소로 향했다. 신해량은 벽면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를 쭉 훑어보았다.

"무슨 영화를 보는데?"

"비밀이에요."

"비밀이 왜 그렇게 많아?"

"제 맘이죠. 제 비밀 같은 거 안 궁금하다면서요."

"안 궁금해."

으유. 또 거짓말을 하시네. 신해량은 자신이 보게 될 영화가 무엇일지 추측하려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포스터를 노려보았다.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화 예고편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봤자 절대 예상 못할 텐데. 서지혁은 손목의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고 있으니 신해량도 시선을 내려 서지혁의 왼쪽 손목을 보았다.

"상영 시간이 몇 시인데?"

"어……. 아직 30분 정도 남았어요. 10분 남았을 때 팝콘이나 삽시다. 그동안 그냥 앉아서 쉴까요?"

"음……."

그냥 앉아서 시간을 죽일 생각은 없는지 신해량은 침음하며 영화관 주변을 살피다 건물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신해량은 서지혁의 손을 끌어당기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근처로 향했다.

"어디 가려구요?"

"아래층에 서점이 있던데."

"서점이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엘리베이터 내부에 적혀 있던데."

"그건 또 언제 보셨대."

건물 층별 상가 간판을 유독 노려본다 했더니 그 사이에 서점 위치를 봐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출장 다녀오면 같이 서점에 가기로 했었지. 신해량이 이끄는 대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몇몇 상가들 사이에 서점 하나가 있었다. 들어가 보니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깔끔하고 보기 좋게 책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신해량은 곧바로 서지혁을 데리고 시집 코너로 향했고 서지혁은 끌려가는 도중에 베스트셀러가 전시되어 있는 구역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골라봐. 사줄게."

"저번에 그 약속 때문에 그런 거죠? 그런데 저 시집은 차고 넘쳐요. 지난 달에 몇 권 샀거든요. 당신이랑 노느라 아직 안 읽은 것도 있는데요."

"읽는 건 나중에 하면 되잖아. 일단 골라봐."

"음……."

서지혁은 빼곡하게 전시된 시집의 제목들을 노려보다 고개를 저었다. 시를 읽는 게 취미긴 했지만 시집을 닥치는 대로 사 모으는 걸 좋아한 건 아니었다. 해저기지에 있을 때는 방에 책을 둘 곳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다. 물론 유독 좋아한 책은 종종 구매해서 끼고 살긴 했지만 좋은 시집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시 하나에 꽂혀서 해당 시인의 시집을 사면 뜬금없는 젖가슴 염불을 마주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좋은 감정을 가졌던 시인에 대한 정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신해량의 성의를 봐서라도 아무거나 골라볼까 싶었지만 그런 의미 없는 선물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서지혁은 스쳐 지나갔던 베스트셀러 책을 떠올렸다. 소개 글을 언뜻 보았을 때는 추리소설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달에 샀던 책 중 추리소설이 한 권 있었는데 반전이 참신하고 재밌었다. 원래 소설책 보다 시집을 먼저 읽으려 했는데, 신해량이 빌려 가서는 하도 재밌게 보길래 궁금해서 책을 돌려받자마자 바로 읽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시집 표지만 노려보던 서지혁이 신해량의 손을 잡고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섰다.

"소설책을 사려고?"

"예. 이 책 아세요?"

"몰라."

서지혁이 손에 든 책은 '의사가 범인이다'라는 책이었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책을 홍보하는 문구를 보니 '최고의 반전!', '전 세계가 속았다!',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고전 추리소설의 귀환!' 같은 글들이 강조하듯이 적혀 있었다. 반전이 있다는 걸 말해주면 그게 스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뒤집어 뒤에 적혀 있는 줄거리를 읽어 보았다. 요약하자면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내용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연쇄살인 사건이 하나의 지역이나 나라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난 거였다. 이 일이 개별의 사건이 아닌 연쇄살인 사건으로 묶인 이유는 피해자들이 죽기 전 남긴 다잉메시지가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피해자들은 죽기 전 '의사가 범인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죽었다. 피해자가 발생한 각 나라에서는 유력한 범인 후보를 추려냈고, 그들이 한 곳에 모여 심문을 받게 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오. 흥미로운데? 뒤표지에 적힌 글자들을 다 읽은 서지혁은 옆에서 궁금하다는 듯이 기웃거리는 신해량에게 책을 넘겼다. 곧바로 신해량도 소설의 줄거리를 읽었는데 눈썹을 씰룩거리는 걸 보니 내용이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이거 재밌겠죠? 시집 대신 이거 사주세요."

"……좋아."

"또 제 책 훔쳐 읽을 거죠?"

"그래."

뻔뻔하기는. 신해량은 베스트셀러 코너를 한번 훑어보고는 서지혁에게 더 살 건 없냐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니 서지혁이 고른 책을 결제하고 서점 밖으로 나왔다. 서지혁은 신해량에게 책을 돌려받자마자 포장을 뜯고 앞 페이지를 넘겼다. 예상대로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가 바로 나왔다. 고전 추리소설 분위기를 잘 녹였다는 홍보 문구가 있어 예상은 했다만.

"내기할래요?"

"무슨 내기?"

"등장인물 소개만 보고 범인 맞히기요. 맞히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둘 중 한 명이 맞힌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런 약한 소리를 다 하시고. 뭐 쫄리시나 봅니다?"

쫄? 하고 도발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신해량은 코웃음을 치며 서지혁이 들고 있던 책을 빼앗아 들어 등장인물 페이지를 읽었다. 소개 글 하나하나를 노려보는 눈빛을 보니 책을 상대로도 독심술이 통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신해량의 어깨 너머로 같이 등장인물의 이름을 째려보던 서지혁이 먼저 선점하듯 손가락으로 한 인물을 가리켰다.

"저는 이놈이요."

"의사?"

"예. 책 제목이 '의사가 범인이다'잖아요. 반전이 있다니까 사람들은 당연히 의사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역으로 진짜 의사가 범인인 거예요. 그러면 반전인 게 맞죠. 아닌가? 그럼 의사가 아닌 게 더 반전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진짜 의사가 범인이면? 그게 더 반전이지 않나? 아니. 거기에 대한 반대로……."

"난 이놈."

혼란에 빠진 서지혁을 무시한 신해량이 손가락으로 한 인물의 이름을 가리켰다.

"소설 작가요?"

"응."

"작가 모르세요? 걔네는 해저기지 연구원들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 애들이에요. 맨날 앉아서 골골거리면서 글만 쓰고 또 글 쓰고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또 글 쓰고. 누굴 죽일 시간도 체력도 없는 놈인데요?"

"어차피 누굴 고르든 그럴듯한 이유를 댈 수 없어. 아직 읽어보지도 않았잖아."

"그렇긴 하죠. 말 바꾸기 안 되는 거 아시죠? 내일 같이 읽어보죠."

"좋아."

서지혁은 신해량이 가져온 가방을 빼앗아 책을 넣고는 어깨에 걸쳐 멨다.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팝콘과 음료를 사서 위층 상영관으로 올라갔다. 입장하기 직전까지 자신이 보는 영화를 몰랐던 신해량은 상영관에 크게 걸려 있는 포스터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신해량은 뭐 하는 짓이냐는 표정으로 서지혁을 쳐다보았지만 서지혁은 얄밉게 빨대로 콜라만 쪽 빨아 마셨다. 티켓 확인 후 상영관에 입장한 신해량은 텅 빈 내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서지혁의 손에 이끌려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뭐야?"

"뭐가요?"

서지혁이 뻔뻔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자 신해량이 음료꽂이에 음료를 꽂아두고는 서지혁을 가만히 쳐다 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한 서지혁은 눈을 옆으로 데굴 굴려 둘을 제외하고는 비어있는 좌석들을 훑었다.

"정말 이 영화가 보고 싶어서 온 거 맞아?"

"예. 왜요? 별로예요? 마음에 안 듭니까?"

"……."

"……아니. 그냥 커플석에 앉아 보고 싶었어요. 이왕이면 좀 꽁냥대고 싶어서 사람 없는 영화로 고른 겁니다."

"그래서 '물개 뽀뽀의 여행'을 골랐다고?"

"뽀뽀가 어때서요? 귀엽게 생겼잖아요. 뽀뽀가 어떤 여행을 할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싸이코패스입니까?"

서지혁이 고른 '물개 뽀뽀의 여행'은 아동용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흥행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평일 오후 시간에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서지혁의 예상대로 동시간대 상영 영화 중 '물개 뽀뽀의 여행'의 상영관만 텅 빈 상태였다. 입장 직전에 남은 좌석을 다시 확인해 보았는데 여전히 서지혁이 예매한 두 좌석 외에는 모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눈치싸움에 성공한 서지혁이 히죽거리며 캐러멜 팝콘을 입에 넣었다. 파삭파삭 씹히는 달달한 팝콘을 먹고 있으니 신해량이 헛웃음을 지었다. 서지혁은 그런 신해량의 입에 오리지널 팝콘을 넣어주었고, 신해량은 작은 입으로 입에 들어온 팝콘을 저항 없이 오물오물 잘 씹어 삼켰다. 그 사이 내부의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에서 광고가 흘러나왔다.

"저 커플석은 처음 앉아 보는데 생각보다 넓네요? 일반석보다 몇 천원 더 비싸던데 이유가 있었네요. 가림막이 이렇게 큰 줄도 몰랐어요. 이런 거 있는 이유가 있는 거겠죠?"

"무슨 이유?"

"다 알면서 내숭을 또 떠시네. 이런 거죠, 뭐."

서지혁은 입에 넣었던 팝콘을 삼키고 고개를 숙여 음료꽂이에 꽂아둔 콜라를 쪼옵 빨아 마셨다. 콜라까지 삼킨 뒤, 서지혁은 촉촉해진 입술을 손등으로 쓱쓱 닦고 팝콘 통을 신해량의 품에 안겨준 뒤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방금 음료를 마신 모양인지 닿은 입술이 촉촉했다. 고개를 살짝 틀어 말랑한 입술을 감각을 느끼며 혀로 살짝 핥았더니 팝콘의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의도치 않은 단짠 조합에 혀로 입술의 틈을 살살 쓸었더니 작은 입술이 벌어지고 붉은 혀가 마중을 나왔다. 미끈하고 축축한 혀가 닿을 때마다 하반신에서 척추를 타고 전기가 오르는 듯 찌릿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서지혁이 고개를 더욱 꺾어 신해량의 입술 사이를 더 벌리는 순간, 신해량이 서지혁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밖에서는 이쯤 하라는 신호였다.

에이, 좋다 말았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니 신해량이 손등으로 입술을 눌러 닦았다. 그리곤 서지혁의 입에 캐러멜 팝콘 반 주먹을 밀어 넣었다. 아니. 미친 건가? 내 입이 무슨 자기 집만 한 줄 알아. 당황한 서지혁이 입을 크게 벌려 팝콘을 죄다 받아 먹었다. 어두운 상영관 속에서 파삭파삭 팝콘 씹는 소리가 광고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부지런히 팝콘을 씹어 삼킨 서지혁이 자신의 어깨로 신해량의 어깨를 툭 쳤다.

"이런 거 하라고 가운데 팔걸이는 없으면서 가림막만 있는 거 아니에요?"

"여기까지만 하라고 있는 거지."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거든요?"

서지혁이 콜라를 손에 들고 쭉쭉 빨아 마시며 노려보니 신해량이 말 없이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루한 광고 시간이 끝나고 각종 주의사항을 안내하더니 극장이 한 번 더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물개 뽀뽀의 여행'은 귀여운 3D 애니메이션이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청량한 바닷가에서 아기 물개 뽀뽀가 신나게 헤엄을 치며 놀고 있었다. 이 상황이 황당한 것인지 옆에서 피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서지혁은 뻔뻔하게 팝콘만 와삭와삭 씹어 먹었다.

"귀엽게 생겼네요. 그쵸?"

"응."

어이없어 하면서도 신해량은 곧바로 이 유치찬란한 영화에 집중했다. 팝콘 통을 옆에 앉은 물개의 품에 안겨주고 혼자 팔짱을 끼고 정면만 응시하고 있는 신해량을 빤히 쳐다보던 서지혁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기껏 아무도 안 보는 영화를 골랐더니 자기만 혼자 열심히 보고 있네. 구매한 지 30분도 안 된 팝콘을 거의 혼자 다 비워버린 서지혁은 빈 팝콘 통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의 남자친구에게 개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서지혁은 기지개를 켜는 척 팔을 번쩍 위로 들더니 자연스럽게 신해량의 넓은 등을 넘어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흔해빠진 수작에도 신해량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물개 뽀뽀가 어딘가로 열심히 기어가는 모습을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뭐가 재밌다고 그렇게 보는 건지. 목석같은 신해량의 반응에 서지혁은 고민하다 어깨를 두른 팔을 아래로 내려 허리를 감싸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랬더니 드디어 신해량이 반응을 보였다. 홀로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한쪽 팔을 서지혁의 등 뒤로 가져가 올리더니 자신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갈색 머리통을 쓰다듬듯 토닥였다.

사소한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서지혁은 고개를 살짝 들어 신해량의 얼굴을 살폈다. 어둠 속에서 여러 색채를 얹은 빛이 그의 얼굴에 뿌려졌다. 바다의 푸른빛, 산과 나무의 초록빛, 이외의 노란빛과 분홍빛의 광채들까지.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얼굴과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홀린 듯 쳐다보고 있으니 그제야 시선을 느낀 것인지 신해량이 고개를 돌려 서지혁을 마주 바라봤다.

"영화 안 봐?"

"제가 여기 영화 보러 왔겠습니까?"

"영화관에 영화 보러 오지. 뭐 하러 왔는데?"

"데이트하러요."

"네가 말하는 데이트가 뭔지 모르겠는데."

극장 내에 있는 인원이라곤 둘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낮게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서지혁이 장난스레 웃으며 입술을 쭉 내밀었더니 신해량이 미소를 띠며 동그랗게 통통한 입술에 가볍게 뽀뽀했다. 심장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서지혁이 기대고 있던 몸을 완전히 일으키고 신해량의 허리를 두른 팔을 걷어냈다. 그리곤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길고 두툼한 손가락을 매만지고 있으니 닿은 손 틈 사이에서 온기가 피어났다.

"재밌어요? 뽀뽀 쟤는 왜 갑자기 저기 있대요?"

"바다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던데."

"물개가요? 바다 아니면 살 곳도 없을 텐데요? 왜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 태풍을 겪고 무서워했잖아. ……전혀 안 봤군."

"전혀 안 봤죠. 그래서 등산을 하는 거예요? 어이구. 굴러떨어지네."

두 팔과 꼬리로 열심히 산을 오르던 물개 뽀뽀가 산 아래까지 굴러떨어졌다. 몸에 물기가 말라 털이 보송하게 선 아기 물개 뽀뽀가 흙을 잔뜩 묻힌 채 엉엉 울었다. 그러게 꼬맹이가 왜 그런 무모한 여행을 해서는. 제목과 포스터만 보았을 때는 즐거운 여행인 줄 알았더니. 집 나가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물개 꼴을 보며 서지혁이 혀를 찼다.

"이래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겁니다. 이제 바다로 돌아가겠죠?"

"글쎄. 그래도 얻은 건 있잖아. 물개가 언제 산에 가보겠어. 못 보던 풍경도 보고 안 해본 경험도 해보는 거지."

"그건 그런데, 그래도 불쌍하잖아요. 낯선 곳에서 안 해도 될 고생 하니까."

"여행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지. 그래도 지나고 보면 저 녀석한테도 좋은 추억이 될 거야."

그런가? 서지혁은 신해량의 손등을 문지르다 짧게 입술을 묻고는 신해량을 따라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생고생을 맛본 뒤 바로 바다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물개 뽀뽀의 여행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산에서 굴러떨어진 이후 물개 뽀뽀는 예쁜 꽃밭을 발견해 기분 좋게 뒹굴거리다 벌에 쫓기기도 하고, 시골 마을까지 와서 사람들에게 예쁨받다가 동네 개들에게 공격당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온갖 곳을 탐험하듯 돌아다녔지만 물개 뽀뽀가 정착할 곳을 찾을 수는 없었다. 강가에서 물개 뽀뽀가 엉엉 울고 있으니 지나가던 참새가 말을 걸어왔다.

'넌 처음 보는데 누구야?'

'난 물개 뽀뽀야.'

'그렇구나. 왜 이런 곳에서 울고 있어?'

'내가 어디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물개 뽀뽀는 서럽게 울면서 참새에게 그동안의 여정을 들려주었다. 태풍을 겪고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온 건데 어디에도 자신이 원하던 곳이 없었다고. 작은 날개를 강물에 씻던 참새가 물개 뽀뽀의 이야기를 듣더니 간단하게 대답했다.

'태풍은 원래 무서운 거야. 어디에 살아도 만날 수밖에 없어.'

'어딜 가든 안전할 수 없다는 거야?'

'그렇진 않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잘살고 있는걸. 너에게 맞지 않았을 뿐이지 어디에도 나쁜 곳은 없어. 하지만 이상하네. 바닷가에 사는 새한테 들었는데, 물고기들은 태풍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했어. 바다 아주 깊은 곳은 태풍이 일어나도 잠잠하대.'

'그게 정말이야?'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신해량에게 물어봤더니, 물개 뽀뽀는 태풍이 일어났던 날 해변에 누워 있다가 천둥소리에 놀랐다가 비바람을 맞고 겁을 먹었던 거였다. 참새의 꿀팁을 들은 물개 뽀뽀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팔과 꼬리가 쓸려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바다로 돌아가는 길도 모르고 힘도 잃은 아기 물개가 강가에 축 처져 있으니 참새가 다른 새들을 불러 모아 물개 뽀뽀를 바다에 돌려보낼 방법을 궁리했다. 그때 나이가 많아 보이는 비둘기 할머니가 잔기침을 하며 물개 뽀뽀를 불렀다.

'얘야. 바다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

'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요. 다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꼬리뿐이에요.'

'너에게 필요한 건 다리가 아니란다. 그 작은 꼬리로 힘차게 헤엄치면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게야.'

'정말요? 헤엄을 쳐서 바다로 갈 수 있어요?'

'물론이지. 이 강물을 따라 헤엄치면 바다로 돌아갈 수 있단다. 강은 결국 바다로 이어지는 법이거든.'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

물개 뽀뽀는 자신을 도와준 새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힘겹게 팔과 꼬리로 땅을 기어 다녔던 때와는 다르게 아기 물개는 자유롭게 강물을 가르며 빠르게 헤엄쳤다.

'난 역시 헤엄치는 게 제일 좋아!'

물개 뽀뽀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헤엄쳤고, 비둘기 할머니의 말처럼 바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바다로 돌아온 물개 뽀뽀는 물고기 친구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로운 것도 많았고 그만큼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야기를 하는 물개 뽀뽀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다에 다시 태풍이 찾아왔지만, 물고기 친구들과 함께 깊은 바닷속에서 신나게 헤엄치는 물개 뽀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났다.

어느새 몰입해서 영화를 보고 있었던 서지혁이 흘러가는 엔딩크레딧을 보며 다시 신해량을 끌어안았다.

"생각보다 재밌었네요. 그쵸?"

"그래."

"엄청 유치할 줄 알았더니 나름 재미와 감동이 있네요. 집 나가면 개고생이지만 그 개고생에도 나름 추억과 의미가 있었다. 뭐 대충 이런 거 같죠? 당신은 뭐 어떤 걸 느꼈어요? 영화 봤으니 감상평 남겨줘야죠."

"물개가 귀엽던데."

"그게 다예요?"

서지혁이 장난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신해량이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너 닮았어."

"아주 귀여운 건 다 나 닮았대. 콩깍지 안 벗겨지게 간수 잘 하세요."

두 사람은 밝아진 상영관에서 짐과 쓰레기를 챙겨 나왔다. 좀 더 꽁냥거리고 싶었는데 의도치 않게 영화를 넋 놓고 봐버렸다. 빈 팝콘 통과 음료 컵을 버린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다시 매표소를 지나치고 있는데 서지혁이 배치된 포스터를 슬쩍 하나 가져와서 신해량에게 내밀었다.

"뭐야?"

"저 닮았다면서요. 잘 간직하십쇼."

서지혁이 건넨 건 '물개 뽀뽀의 여행' 포스터였다. 신해량은 물개 뽀뽀의 귀여운 얼굴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는 서지혁에게 포스터를 다시 건넸다. 서지혁도 신해량의 웃는 얼굴을 보며 실실 웃고는 포스터를 메고 있던 신해량의 가방에 잘 집어 넣어두었다.

"슬슬 배 안 고프세요?"

"저녁 먹으려고?"

"예. 그런데 아직 예약 시간까지 조금 남았어요."

"예약? 식당 예약을 해뒀어?"

"데이트에 이 정도는 기본이죠."

"……내가 오늘 일정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일정 없을 거 알았죠. 제가 수영장에서 어떨 줄 알고 당신이 다른 일정 잡겠어요? 수영장 약속 잡고 바로 예약 다 해뒀죠."

서지혁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니 신해량이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논리에 완전히 압도당했군. 서지혁은 가방을 고쳐 메고 신해량의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밑에 쇼핑몰 있는 거 보셨죠? 여행 가서 입을 옷 쇼핑이나 합시다. 그 물개보다는 재밌게 놀아야죠."

"그것도 오늘 계획에 포함된 건가?"

"당연하죠. 오늘은 저만 따라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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