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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엔딩송이 이것의 끝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기아 소피아

글바구니 by Lee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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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송이 이것의 끝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마침내 영혼마저 갈가리 찢기어 사후에 도달한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의지가 있음을 곧 지각하고, 곧바로 사지 끝을 뚜둑, 두두둑 움직여 보았다. 말초 신경계의 체성신경으로부터, ……마침내 아주 작은 수의 신경으로. 확인, 완료. 적막과 암흑 끝에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이성, 그리고 진실이 될 여러 가설들이었다. 지시약은 곧장 준비되었다. 실험 결과, 추락하는 것은 어떠한 ‘실(實)’도 되지 못할 것. 부유하는 것은 단 하나, 진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것, 그리하여 이성이 몇 번의 혼란을 겪게 한 것. 그러나 이 힘은 견고하다. 무디어지지 않는다. 그 오래되었으나 바래지 않은 빛은 마침내 하나의 길을 열었다.

 

‘이거, 가위눌렸네.’

 

정답을 열기 전 어떠한,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다. 내가, 이 조디 케니스가, 이 따위 환상에 속아 넘어갔다고. 그러나 이성은 당연히 제자리를 찾는 법이므로,

원칙, 하나: 가장 먼저 나와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매질을 파악한다. 보이지도 않는 눈을 다시 감은 채 목을 가다듬고(큼큼), 소리를 내보려 상상 이상으로 노력한다. 아, 아, 아…….

(소리는 파동이다. 매질을 통해 나에게 전달된다. 이것으로 주변 크기와 장애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옳지.

원칙, 하나에 대한 결과: 후면에 무언가 존재한다. 아주 거대한 것. 파동을 튕겨내는 정도로 보아 굉장히 딱딱하며 높고 날카로이 길다. 필시 하나의 벽, 하다못해 가벽이라도 될 것이다. 그 길이는 내 키를 훌쩍 넘을 것이다. 그리고,

 

“……조디?”

 

소리를 낼 수 있는 또 다른 생물이 그 뒤에 있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인간의 말을.

 

원칙, 둘: 이 환상을 만들어낸 괴물일지, ‘이 환상이 만들어낸 물리법칙’ 안에선 배타적이나 결국 비-배타적일 ‘나’일지 알아내야 한다. 다행히…“조디, 조디는?”…이 세계가 온통 환상임을 안다. 다시 한번 더, 말초의 수의근을 움직여본다. 뚜둑, 뚜둑거리면……아! 움직인다. 왼손가락을 살짝 들었다가 다시 내린다. 실시.

 

“조디…….”

 

그러나 울리는 것은 하나. 벽 뒤의 소리뿐. 풀썩, 쓰러진…”조디의”…왼손가락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른손으로 두 번째 원칙에 대한 시도를, 그러지 못한다. 손이 잘렸거나, 더 강력한 가위에 짓눌렸거나. 이성은 후자를 택한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자. 다시, 다시, …“조디는”…, 이성의 힘은 강하다. 합리는 늘 더 올바른 길로…“조디를”…인도한다.

 

Ending Song: Get Up

 


이 우주에는 너와 나뿐이지만, 언젠가 이 세계에 다다른 태양계의 작은 존재들에게, 해설서:

무릇 합리성이란 이성을 대신하는 또 다른 말이었다. 태초의 대폭발 이래 쏟아진 빛보다 멀리 볼 수 없음에도, 너는 온 우주를 이해하고 있다는 커다란 착각. 고전역학을 무너뜨린 양자역학의 등장에도, 무너진 세계는 네가 아닌 미시 세계만의 일임으로 축약하는 오해. 실은 논리학의 고전적 세계마저 무너뜨리는, 그야말로 ‘대폭발’이었음에도.

이성은 그리하여 오만하고 만다. 지금껏 자라온 우방 세계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기아 소피아[i], 신성하고도 거룩한 지혜는 필시 우리의 자랑이고 영원할지어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성의 권좌는 등 뒤에 열린 케르카포르타를 영영 보지 못할 것이다.

그저 울고있는 나 또한.



[i] 그리스어, ‘성스러운 지혜’를 뜻함. 이스탄불(동로마 제국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말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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