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영원을 체결합시다

2. 영원의 사랑

과 같은 사람아, 나의 영원한 시간과 같은 사람아, 나의 황홀경과 같은 사람아, 하고 허공에 조용히 불러보면 눈앞에 항상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내가 부르지 않아도 내 시선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 내가 왜 그토록 좋을까… 싶은 사람. 말에 따르자면 좋아하는 것에 이유 없다고, 난 네가 목적을 가지지 않아서 좋다고 했지만, 이영원은 그 말을 부정했다. 나는 너 처음부터 노리고 만난 거야. 너랑 한바탕 뭐라도 해보려고….

입이 닳고 닳을 정도로 말한 주강하와의 첫 만남의 기억이 있다. 죽어도 잊히지 않은 기억이 하나 영원의 깊숙한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한다. 그때부터 이영원은 생각했다. 내가 저것을 꼭 가져야겠다고, 어렸을 적 뭣 모를 소유욕은 나이를 먹기 시작하며 애정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속박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나는 너랑 한바탕 뒹굴며 구원이니 사랑이니 이런 말을 나누면서, 서로를 속박하면서 평생 살고 싶은 거야. 세상에 이보다 더 추악한 욕망이 존재할까? 너의 돈과 명예를 노리고 다가온 사람들보다 더 악질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주강하가 이영원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영원은 이미 주강하 인생에 최악의 인간으로 남았을 거다. 이런 감정의 방향을 주강하로 돌리진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네가 감히 나의 불행까지 주웠잖아, 네가 내 이름까지 주운 바람에…하고 원망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네가 내 불행을 줍지 않았어도, 내 이름이니 생일이니 그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이영원은 다른 이름을 단 채 주강하를 애정했을 거다. 나의 애정은 네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깊어, 강하야. 확신을 두고 말할 수 있었다. 네가 나에게 주는 사랑도 많이 깊은 거 알아. 근데 적어도 난 그에 준하거나 그보다 깊을 거야.

항상 주강하에게는 예외가 생겼다. 이영원은 이것을 다른 형태의 사랑이라 생각했다. 꽉 막힐 정도로 정해놓은 규칙, 남들이 들어온다면 기겁하며 도망칠 규칙 속 주강하는 없었다. 그 안에는 오직 이영원과 주강하를 제외한 나머지 인구가 존재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각을 맞춰 접어놓는 잠옷 하나, 출근길에 오르며 운전하는 깨끗한 차 안, 매일 다리미로 다리는 듯한 캐비넷 속 옷들, 교과서 모범 답안으로 나와도 좋을 똑바른 젓가락질까지. 이영원 삶에는 언제나 스스로 만든 규칙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주강하는 유일하게 없었다. 잠옷을 방바닥에 던져두어도, 차 안이 지저분해도, 캐비넷 안에 온갖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있어도, 서투른 젓가락 하나까지… 고쳐줄 생각이 없었다, 포기했다, 보다는 그대로 두고 싶다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야 내 세상 속 모든 사람이 통일되더라도 너만큼은 이런 행동을 보고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주강하의 특이를 바로 찾아낼 수 있을 테니…. 동일 속 특이는 이상한 것이 아닌 아름다움에 가까운 존재였으니.

주강하의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너는 이것도 모를 거다. 내가 말을 안 하니까. 일부러 말을 아끼는 중이니까…. 표현을 자주 해야 그 마음을 상대도 알고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안다. 책에서도 수십번 읽고 수백번 형광펜을 쳐 이제는 구멍이 뚫려 너덜너덜해진 페이지가 그를 증명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주강하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도 안다. 머릿속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납득되지 않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또 달라서, 이영원은 주강하로부터 자신이 평생 이해하지 못했을 것을 배웠다. 왜 사람은 그렇게 사랑에 목숨을 거는 건지, 타인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건지, 사랑하니 그랬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통하는지. 전부 주강하에게 대입하면 금방이고 답이 나왔다. 너는 정답이 없는 함수였다. 이말은 즉슨, 이해하지 못했을 문장을 주강하라는 함수에 넣으면 답이 나왔다. 답이 나오지 않은 적은 없는, 그렇지만 정답은 아닌. 그럼에도 결과는 나와 이것이 무엇인지 추론할 수 있는 내 유일한 정답이 없는 함수. 이영원의 수만가지 경우의 수를 낳게 해주는 주강하. 수학을 사랑하다 못해 수학을 닮아버린 자를 사랑해버린 수학자의 최후 같은 것에 어울리는 문장이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것을 감히 너에게 끼워 맞추는 폭력을 저지른다. 글자도 모르는 3살 배기 애가 영원이라는 카드를 들고 다닌 이유는 이 이름을 받고 너에게 바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나는 영원하지 않아도 너는 영원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다음 생을 얻었을 때 다시 영원의 이름을 단 주강하를 찾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영원은 주강하를 본 순간부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사랑은 곧 형체가 있는 신과 같음을 알아버렸다. 형이상학적 존재가 아닌 실존세계에 존재하는 인물에 대해 유일한 신도가 사랑을 기도하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조건 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갈 곳 없는 맹목. 비이성적인 행동이 이어지고 이것을 속죄하기 위해선 신에게 다시 사랑을 기도하는 것밖에 없는, 폭력성이 짙은 유일무이한 종교. 이영원에게 주강하란 이리 크나큰 존재인데……. 주강하는 이 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주강하는 그럼에도 이 맹목이 가득한 종교 속에서 살아가기를 택할까. 근데, 강하야. 나는 네가 평생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어. 너랑 나랑 눈이 멀어버린 아담과 하와처럼 그 옳은 것 하나 구분하지 못하고 평생 그릇된 삶을 같이 살아가면 좋겠어. 내 영원이 너의 걸림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나는 감히 주강하에게 고해한다. 나는 이제 너 없이는 미래를 생각할 수도, 생존을 생각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이렇게까지 사랑할 생각은 없었는데, 모든 걸 주강하가 망쳤다고. 이영원은 제 역린을 토한다. 주강하의 애정을 삼킨다. 나랑 평생 영원하면 안 되겠냐고, 해보지 못한 것들을 너와 즐기며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서로 알아가면 안 되나며. 서로의 시간에는 서로가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하루종일 만져대다 다시금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 원래 사랑이란 이토록 부질없었으나 이영원은 쓸모 없는 것을 사랑했다. 내 유일한 애정, 내 유일한 욕심. 내 심장이라도 꺼내 네 앞에서는 이만큼 빠르게 뛴다 하고 싶다. 이게 사랑이 아니냐면 무엇이냐고 묻고도 싶어졌다.

강하야, 너는 내 애정이야. 너는 내 지울 수 없는 흔적이야. 그러니 나랑 평생 함께 살아주라……. 내 삶에 영원히 있어줘.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