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동생에게
동생아, 나는 날로 숨이 꺼진다. 바다의 품은 춥고 어둡지만 한편으로는 다정하다. 나는 나의 저주의 시작이었던 하늘에서 멀어지기 위해 바다속으로 가라앉기를 몇 번씩이고 잇는다. 하늘의 품은 다정하더냐. 늘 묻고 싶었던 말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이제야 묻는다.
난 늘 내게만 냉정했던 하늘을 원망하고 있다. 그래서 내게 저주가 생겼던가. 평생 맞지 않는 다리로 절뚝일 수 밖에 없는 이 운명을 어쩌면 좋을까. 해구에서 올라온 원죄가 무겁다. 죽은 이들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원죄의 족쇄를 매달고 숨 끊어질 때까지 이렇게 절뚝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작년에 숨이 멎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나는 내 운명을 원망하고 있다. 어째서 이 녀석은 나의 행복을 방해하면서 동시에 죽음조차 방해하고 있는가. 그저 끝없이 절뚝거리며 세상을 방랑하는 수 밖에 없는 이 운명이 원망스럽다. 완벽한 종언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 뿐일 것이다. 스물 여덟. 많지 않은 나이지만 충분히 오래 살았다.
그것 아느냐. 요즈음 잠수함대는 유겐트와 다를 바가 없다. 죄다 침몰해버리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만약 작년에 병상에 눕지 않았다면 나 또한 해구의 원혼이 되어 바다의 품에 안겼을까. 그래서 난 이 모든게 운명처럼 느껴진다. 그럴 운명이었던 거야. 어릴 땐 제일 싫어하던 소리지만 이제 와서는 내 인생의 정의가 되어버렸나. 참 알 수 없는 것도 인생이고, 다 정해진 것도 인생이다.
대양의 한구석도 안전하지 못해 종언을 맞는 잠수함들이 많다. 네들이 하늘을 잃었다는 뜻일테니 난 이른바 패배주의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내 운명을 부정적으로 평한다. 하늘이 내 편이 아닌 것은 원망스럽지만 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하늘이 너에게 만큼은 다정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동생아. 그래도 너는 살았으면 한다. 시간의 쳇바퀴가 멈추더라도 너만큼은.
닿지 않을 편지를 매일마다 쓰는 이유는 이러다 정말 존재가 잊혀질까봐 그런 것도 있지만, 소중한 것을 계속 기억에 상기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오빠에게.
나는 나날이 숨이 꺼지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오빠가 있을 수면 아래가 궁금해진다. 그 깊은 대양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늘 위로 오르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말았다. 비행을 하기 위해 포기한 모든 것들이 그 대가를 치르러 내 숨을 옭아맨다. 나도 곧 오빠와 마찬가지로 망인이 되어버리겠지. 죽거나 살거나 의미없는 숨을 뻐끔뻐끔 이으며.
새가 되지 못하고 추락한 영혼은, 나와 마찬가지로 바닷속에서 유령마냥 숨을 이을 동류의 영혼에 마음이 불편해지고 만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본 오빠의 모습을 떠올렸다. 푸른 하늘과 바다 사이의 항구. 오빠는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바다의 앞에 위태롭게 서 있다. 시선은 수평선 너머 어딘가를 보고… 나는 답지 않게도 그 모습을 보며 죽음의 낯을 떠올렸다. 유령선의 주인이 뭍까지 떠내려오면 그런 모습이려나 싶었다. 묘하게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죽음의 경계에서 숨을 잇기를 반복하면 그런 모습이 되는 것인가.
오빠에 대한 감상은 살아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점점 망인에 가까워진다.
이것이 운명인가. 우리는 운명대로 따랐을 뿐인데 이렇게 저주받고야 말았구나.
마지막으로 본 오빠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항구에서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위태롭게 서 있던 모습. 시선은 수평선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던. 바다에서 죽은 망령이 항구까지 떠내려오면 그런 모습일까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죽음의 경계에서 숨을 이으면 그런 모습이 되는 것일까. 오빠에 대한 감상은 점점 살아있는 것이라거 보다는 망인에 가까워진다.
이것이 운명일까, 우리는 운명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숨을 살았구나. 다음에 만나면 바다가 오빠에게 충분히 다정한지 물어보아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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