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리와 눈사람
AxL
잠시 장을 보러 나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소복하게 내린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득, 하며 결정이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계절이 올해도 훌쩍 다가왔는가. 특별한 계절과 추억들을 발걸음마다 아로새긴다. 나는 문득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고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춥지만 다정한 계절이 아닌가. 집에 도착하면 그대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날이 추우니 품에 가두고 뺨을 조물거려 주어야 되겠다. 나는 문득 침대에 폭 파묻혀 추워… 하며 중얼거리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고양이마냥 따끈한 곳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
흐뭇하게 미소짓던 도중 저 멀리 차 위로 눈덩이를 올리고 있는 그녀가 눈에 띄었다. 두꺼운 웃옷에 파란 목도리를 걸친 채 발갛게 달아오른 손끝을 하고선 해맑게 미소짓고 있는…. 노란색 집게로 눈을 집어 형태미상의 눈덩이를 만들고, 차 보닛 위로 올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대체 뭘까… 뭘 하고 있는 걸까.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차된 차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머리 위에 쌓인 눈을 살며시 털어주고 빙긋 미소지어 본다. 그녀가 내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는 것을 느끼며 빙긋 미소지었다.
“추운데 무엇 하나.”
“오리요!”
오리라. 차 보닛을 바라보자 어린아이가 욕조에서 쓰는, 그런 오리의 모습을 한 눈덩이들이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어디선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묘한 기시감에 기억을 더듬어 본다. 동양의 한 황제의 무덤이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나…. 잠시 눈을 끔뻑거리다 그녀가 주는 오리를 손 위로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차갑지만 포슬포슬하고 한편으로는 꽤나 하찮고 귀여워 보였다. 조금은 그녀와 닮았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조그만하고 무너질까 두려우니. 고양이도 눈을 좋아하던가?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말았다.
그대도 겨울이 지나면 내 곁에서 사라져버릴까? 눈처럼 녹아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잠시 고민을 하는 새 그녀는 보닛을 다 채우고 차 지붕에 눈오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차를 다 채워야 끝낼 셈인가. 난 다시 눈을 푸러 차 앞으로 온 그녀를 가만 바라본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집게로 눈을 집고, 탁탁 털어 잔여하는 눈을 털어내는 일련의 과정들. 다시 차에 올려두고 올 무렵 망설임 없이 손목을 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얼굴을 부비적거리다 베시시 웃는 모습. 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따스한 체온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처음 품에 안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차가운 뺨을 조심스레 주물거리면 그녀는 소녀마냥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입술을 두어 번 손끝으로 쓸었다가 가벼히 입맞춤을 해 주었다. 차갑지만 그럼에도 부드럽고 다정하다.
“따뜻해요.”
“다행이군. 추우니 슬슬 들어갈까.”
“그럴까요.”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담아 주고 잠시 내려두었던 장바구니를 다시금 집어든다. 졸래졸래 쫓아오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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