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제

바다

75제 4일차

스터디용 by FL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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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미는 어디어디 가봤어?”

호기심이 왕성해지고 웬만한 발음이 가능해지는 시기의 키타로는 귀여움을 갱신하며 물어왔다. 갑작스런 질문에 이유를 되묻자 게게로에게 내가 일본열도를 돌아다녔다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아직 집 근처만 돌아다니는 키타로에게 타지는 흥미로울 수도. 바다, 산 같은 자연이 많은 곳부터 사람이 많은 도심까지 설명하자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귀여워.

환생 트럭에 치여 눈을 떴을 때 처음 봤던 건 별이 수놓여진 밤하늘이었는데, 주위는 불빛도 없는 텅 빈 바닷가라 파도 소리가 그리 우렁찰 수 없었다. 내가 물 속에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의 큰 소리에 양손으로 귀를 막아봐도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찬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고, 몸을 웅크리자 팔다리의 피부가 아닌 미끄럽고 끈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감각에 놀라 품을 보니 세상 어둠을 다 담은 것 같은 석유와 닮은 액체가 뭉쳐져 있었다. 품 뿐만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내 주위는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여있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뭉쳐있는 검은색의 무언가. 그것이 요괴가 됐을 때 처음 본 내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그게 내 일부이며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능력으로 흡수하거나 먹은 물건, 동물의 모습을 능력을 통해 복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좀 늦었었지만…. 그 사실을 알자마자 닥치는대로 먹다가 요괴를 먹었더니 강해지는 걸 알고 정말 닥치는대로 먹었었지. 중2병 마냥 힘에 취해 우쭐했던 적도 있고…. 이 흑역사, 숨기긴 힘들지 않을까. 이미 조금 밝힌 적도 있으니….

지금이라도 쥐구멍에 들어가서 접시에 코 박고 죽고 싶다.

뭐, 나이가 나이이니 그때만큼 심하진 않지만. 아직 우쭐해하는 부분도 있으니 조심해야지. 특히 키타로 앞에서는 정말. 반면교사는 아니되오.

얘기를 하는 동안 키타로가 슬슬 질려하는 것 같아 능력으로 놀아주기 시작할 때 미즈키가 슬금슬금 내 옆으로 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작은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냐니?”

“예전에 봤던 수상쩍은 미소가 나오는 것 같아서. 너 그런 표정 지을 때 이상한 생각하잖아.”

제 표정을 읽으셨군요, 역시 지니어스 영업맨. 멋져요.

“그냥,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렸을 뿐이야….”

내 대답에 과연. 하며 납득했다. 누구나 흑역사를 묻고 싶어하니까 이해해준 것일까.

“…그냥 과거일 뿐이야. 부끄럽다면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그는 날 위로하면서 어깨를 토닥였다. 자신에게도 하는 소리라고 느끼는 건 내 기분탓일까. 최근 나구라 마을 때의 기억이 전부 떠올라서 그게 걸린 것일 수도 있다. 잠시 미즈키를 바라보다가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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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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