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글이 간절할 때 열리는 타입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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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석같은 자가 열병을 앓는다.

 

시몬 베일리. 사람이라 부를 수 없을 마냥 인간 같지 않은 채도 없는 낯을 소지한 자. 그가 열병을 앓는다. 가까운 숨에서 열기가 느껴진다. 라벤더 꽃잎이 흐드러지는 눈을 깜빡인다. 사람이구나. 너도, 인간이었어.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그는 눈을 깊이 감았다 뜬다. 이 열병은 지독한 감기일까, 아니면 새로이 퍼진 질병일까. 질병이라면, 감염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렇게 맞잡은 손을 타고 제게로 옮아 제 목숨 하나 앗아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 사내의 한쪽 손에는 장갑이 끼워져 있지 않았다. 마주 잡은 것은 되려 제 손이었지. 붕대가 감긴 손가락을 본다. 고개를 숙여 그것에 이마를 가져다 댄다. 한참을 소리 없이 열 오른 신음을 흘리던 사내가 눈을 뜬다.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채색의 눈이 깜빡인다. 허연 정수리에 시선이 닿는다. 마주 고개를 숙인다. 닿는다. 손과 이마가 닿고, 머리와 이마가 닿는다. 그것은 이마와 이마가 닿은 것이나 다름없을지니.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

 

멍청이. 멍청하게 생긴 군인 꼬맹이. 그 사내를 부르는 호칭은 언제나 엇비슷했다. 그러니 지금도 멍청이라 부르는 것이다. 허나, 방금 꺼낸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해. 깨닫는다, 라벤더색이 칠흑빛을 감싼다고. 알아챈다, 칠흑빛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고 다정하다고. 눈을 감는다. 이해한다. 그래, 나는. 비타, 저는. 아슬하게 끊기려 드는 이 숨결 하나를 아끼고 있구나.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이 마음이, 너를 아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역시 너도 인간이구나.”

 

“예,”

 

 

 

여기에 존재하니까요.

 

비타, 당신의 앞, 곁, 그리고 뒤에서. 저는 인간이 아니다. 저는 사람이 아니고, 저는. 괴물이다. 그러나. 그러나 시몬 베일리는. 비타의 앞에서만큼은 인간이 된다. 그것을 그 사내는 알았다. 당신의 앞에서 인간이 되고야 마는 제 곁에, 당신이 늘 있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 사내의 유일한 바람이었음을. 비타, 당신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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