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글이 간절할 때 열리는 타입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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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녀석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말했으니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일은 없겠지. 저도 알고 있어요.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나의 소중한 애착 인형. 가장 소중한, 나의. 애착 인형에게. 알고 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것이 무어가 중요할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가장 소중한 법이거늘. 당신도 알지 않나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애틋한 것인지. 비록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누가 내게 뭐라고 할지언정, 내게는 사랑이에요. 이 마음은 변치 않을 거야.

 

 

 

그리 조잘대는 입을 사내는 바라본다. 언제나 먼저 맞춰오던 입맞춤. 박애주의라 하면서도 냉랭한 모양새를 닮아 차갑기 그지없던 체온. 그 숨결마저 차가웠던가. 다시 입을 맞추면 알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사내는 헛웃음을 뱉은 것도 같다. 어머, 듣고 있는 거죠? 듣고 있다, 이 여자야. 내가 네 놈을 무시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그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다. 오늘도 사랑해요, 고든 씨. 돌아오지 않을 대답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혹은, 내가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나? 따위의 화답이 다가올 것을 인지하고 있겠지. 그는 모든 것을 예측한다는 것마냥 굴었다. 그러니 제가 무슨 답을 할지조차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겠지. 애착 인형. 그래, 그놈의 애착 인형. 왜 너는 예상 밖의 행동을 그리도 싫어하면서, 어째서 제가 당신의 예상을 벗어날 거라는 건 예측하지 못하는 것인지.

 

 

 

눈앞의 이는 필멸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샌가 사라져 있을 법한 위치에서 제게 사랑을 고한다. 불멸하는 존재에게 필멸이란 숨 쉬듯 짧은 순간으로 다가오는 법. 깜빡이는 찰나조차 아깝다. 당신을 적빛 눈동자에 담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래, 내 입으로 말했지. 내가, 네 녀석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순간의 연극, 찰나의 연기. 진심은 가면 뒤로 가린 채 커튼콜을 맞이하면서도 드러내지 않는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 말에 사랑을 품어 고해한다. 네가 모두에게 품는 박애를 내게도 똑같이 전하겠다면. 나를, 애착 인형이라 취급하겠다면. 그 사랑이 진심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겠다면. 나도 똑같이 대해야지 않겠어?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연극이다.

 

커튼이 내려앉아도 나는 나의 본심을 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배우일 뿐이야.

 

사랑을 고하고 사랑을 밀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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