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글이 간절할 때 열리는 타입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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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영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함이라, 토코 켄드릭은 이를 모르지 않았다. 금속의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올라와 차가운 내음을 흐트러뜨린다. 사노라면 겪을 수 없는 것들. 제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증명. 언제나 바보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아닌 이상 평생을 알 수 없었을 무던한 날을, 소녀는 떠올린다. 손이 떨려온다. 무엇을 망설이는 거니? 토코. 하지만, 그렇지만. 네 이름의 뜻을 기억하고 있다면, 망설임이라는 같잖은 감정 같은 건 품어서는 안 되지. 어떻게, 내가…….

 

 

 

쏘렴, 토코.

 

네가 우리에게 총구를 겨눈 이유가 있겠지.

 

우리를 향한 시험일까, 단순한 반항일까.

 

반항이라면 아쉽게 되었구나.

 

 

 

왕족의 짐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서, 이리 망설이는 것이 내 자식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늘. 먹구름이 이는 푸른 하늘은 곧 회빛으로 물들고, 그것을 감아낸다. 음영에서 살아가는 자가 눈꺼풀로 하늘을 뒤덮는 일은 참으로 드문 일이라 자언한다.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 왕족의 짐승이! 제 손으로, 제 가족을 쏘는 행위를. 끌어올린다. 차디찬 이성 밑으로 가라앉힌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당긴다. 바보야. 또 넘어졌어? 내 손잡고 일어나. 울지 말고. 쌀쌀맞은 어투와는 달리 다정함을 품고 있는 그 목소리를. 내가 넘어지면 언제나 손을 내밀어 주던 너의 모습을. 상기한다, 기억한다, 떠올린다. 나의 망설임의 끝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고.

 

 

 

나의 주저를 네가 붙들어. 나의 자저를 네가 이끌어. 햇빛이 깃든 칠흑빛 눈동자가 눈앞에 일렁이는 것도 같다. 당기면 돼. 이대로, 쏘면 돼. 간단하잖아. 늘 하던 일이잖아. 그런데 왜, 왜 이렇게. 손이 떨리는 걸까. 안 되겠어. 못 하겠어. 너를 생각해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키르아, 내가. 할 수 있을까? 너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약속했는데. 너와 함께 떠나기로.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도. 나는. 태양이 꺼진다. 암운 틈새로 비치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끝끝내 소녀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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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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