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Sunrise, Parabellum

디스코 엘리시움 킴 키츠라기/눈깔 과거 날조 NCP

선이네 by 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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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 위계에 의한 폭력, 직장 내 따돌림, 청소년의 죽음, 가까운 이의 죽음, 청소년을 향한 공권력 집행, 마약 언급, 총격 및 그에 대한 비윤리적 발언, 살인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 눈앞의 광경이 횡으로 늘어지며 빠르게 회전한다. 사방이 먹먹하게 조용한 건 비단 한쪽 고막 탓만은 아니다. 뿌연 시야로 멀리 작고 반짝이는 형체가 떠오른다. 삽시간의 착륙은 망가진 테이프에 녹화된 듯이 느리다. 안경은 매끄러운 포물선을 그리고 바닥을 디딘 후 곡예를 부린다. 허공을 한 바퀴 돌고는 거친 타일 바닥을 미끄러져 긁을 때 활강은 끝난다. 그의 눈은 제 구호기의 상태를 빠르게 점검한다. 부러지진 않은 것 같은데. 알이 깨지지도 않았을 것 같아. 그 정도면 양호하지, 아마도. 몸은 글쎄, 전보다 나쁘진 않군. 기껏해야 뺨에서 피가 흐를까. 판단은 간단히 끝난다. 경사는 이런 일을 숱하게 겪은 사람답게 침착하다. 모든 점검을 마쳤다. 그는 특유의 뒷짐 진 자세를 고치지 않고 서서히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본다. 그가 세상을 대하는 준비 자세.

경감의 표정은 확실치 않다. 그는 그저 건장한 남성 기준으로 세 걸음을 나아가 허리를 숙이고 안경을 낚아챈다. 돌아와 안경을 건네는 경감의 목소리가 흥분한 기색 없이 차분하다.

경사, 입을 다물어야 하는 때를 구분했으면 좋겠군. 경찰은 중재자야. 레바숄 시민 킴 키츠라기가 열렬히 권리 운동을 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네. 하지만 자네가 레바숄 시민 민병대원일 때엔 달라. 조직에 속했단 의미지.

경감의 수백 번도 더 읊은 지론이었다. 고저 없는 목소리는 고유한 사상 아닌 일상적 법칙을 논하는 것 같다. 경사는 남자가 경위이고 자신이 순경이던 시절을 생각한다. 직급은 과연 사람을 바꾸기에 탁월한 수단이다. 그는 안경을 받아 든다. 균형이 맞지 않는다. 부딪히며 한쪽 안경알이 튕겨 나간 모양이다. 그것까지 챙겨줄 인물은 아닌 것뿐이다. 반쪽짜리 안경을 고쳐 쓰는 동안 동료 경관들이 비웃지 않는 건 순전히 눈앞의 남자 때문이다. 그가 나가면 다시 모든 게 시작되겠지. 그는 자신에게 허락된 몇 초의 적막을 누린다. 57 관할서의 낡은 조명등이 껌뻑대며 내는 기이한 조소가 공백을 채우는 전부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비로소 전등도 입을 닫는다.

감사합니다, 경감님. 말씀하셨더라면 안경을 미리 벗어드렸을 텐데요.

자네에게 직무에 대한 충고를 두 번 하게 만들지 말게.

그는 충고를 모종의 업무로 여기는 듯, 그리고 그건 제게도 썩 달갑잖은 책무란 듯 유감스러운 기색을 표한다. 경사는 단념을 배워가는 차였다. 그는 묵례하길 택한다. 어깨에 놓였다 떨어지는 묵직한 손바닥은 붉어지지도 않았다.

경사는 반들거리는 구두가 닳고 무딘 부츠 앞을 떠나가는 걸 본다. 정갈한 발걸음이 복도를 묵직하게 울린다. 철제문이 삐그덩대며 닫힐 때까지도 부서는 간신히 침묵을 유지한다. 그는 동료들이 웃음을 터트리기까지 남은 시간을 살갗으로 헤아린다. 무엇보다 능숙한 일이다.

난기류까진 얼마나 남았지? 5초. 공격이 시작되기까지는? 이런 분위기에서 직접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저열함은 언제나 측정할 수 없는 힘이다. 따라서 15초. 그럼 당장 움직이는 편이 좋지. 4. 3. 2. 1. 경사는 네 걸음을 걷는다. 이곳저곳에서 비어지는 웃음은 그가 허리를 숙이고 안경알을 더듬어 짚을 때 노골적으로 변한다. 경사는 비물질의 폭력으로 시끄러운 공간에 섰다. 텅 빈 검은 테두리에 흠집을 따라 번들거리는 유리알을 끼워 넣는다. 안정적인 달칵 소리. 그가 회의를 느끼고 감상에 젖으며 십여 초를 더 낭비했다면 저기 웃는 경관의 장화 뒷굽에 밟혀 유리가루가 됐겠지. 그럼 지금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이다. 보상은 없다. 환호 아닌 웃음이 울려 퍼진다.

공군은 죽었지만 전쟁은 영원하다.

실상 청소년 범죄 수사반은 좌천의 동의어다. 그들은 모든 곳에서 백안시당한다. ‘진짜’ 범죄 부서 언저리라도 간 경관들은 뻐기듯 말한다. 출결부대 놈들이 보는 사건은 대단해봤자 철없는 십 대 무리가 모종의 파티를 벌이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는 것뿐일 거라고, 자기들은 그들 콧속에 들어간 마약을 뿌리까지 찾아내곤 스컬 일당 한복판에 맨몸을 던져야 한다고. 더 많은 살인, 더 많은 총격, 더 많은 칼부림은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다. 하얀 휘장 속의 점은 천 분의 일 초 차이로 중요치 못한 시대의 훈장이다. 혁명기를 보지 못한 이들은 붉은 피를 휘두르며 라 레바숄리에르를 엉터리로 흥얼거린다.

경사는 그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청소년 범죄 수사반은 더욱 심오하고 버거운 사건을 본다. 스컬 일당의 원치 않게 태어난 아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다 맞아 싸움을 벌이는 것. 꽃무늬 책가방 속에 부모의 마약 자금을 전달하다 소년원에 가는 것. 천분의 일 초 차이로 바뀔 수 있었던 어린애가 모든 시간을 박탈당하는 것. 살인. 총격. 칼부림. 그것의 본질은 소멸이다. 눈이 없는 두 개의 주사위를 바라보며 가능세계를 전부 망각하기. 청소년 부서 경찰이란 주사위를 던질 기회가 차고 넘치도록 많았던 이들의 게임 오버를 보는 일이다. 그들의 세계는 선형적이지 않았다.

경사는 기어코 휴일날 동네 패거리에 시달리던 소년의 조촐한 장례에 참여했다. 그는 소년의 수많은 미래가 살해당하고 총격당하고 칼부림당한 걸 알기 때문이다.

땅 위로 눈이 얇게 쌓였다. 묫자리를 파낼 흙 속은 나무뿌리마저 죽이며 얼어붙었으리라. 경사는 검정 순찰 코트를 걸치고 현장을 대하듯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검은색 발자국이 흰 눈 위로 곧게 남는다. 향한 곳은 장례식장이 아닌 두 걸음마다 빽빽이 문이 달린 아파트 복도다. 마룻바닥은 밟힐 때마다 애도의 신음을 흘린다. 소년의 어머니는 문을 열고 울며 조문객을 기다리지만 다른 문이 열리는 일은 없다. 친절한 이웃들이 보인 최선의 배려는 닥치고 문을 닫으라 소리치지 않는 것이다.

경사는 헛기침 소리를 내는 대신 무게중심을 바꾸어 삐걱이는 발소리를 낸다. 부인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겨우 고개를 들곤 손수건으로 급히 눈을 훔친다. 손님을 맞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사람처럼. 그저 고통의 배출구로서 열려 있던 문에 역으로 침투한 것을 경계하듯이. 경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57 관할서의 킴 키츠라기 경사입니다.

와주실 줄 몰랐는데요. 내드릴 건 없지만 앉으세요.

부인은 황망히 눈을 돌리며 앉을 곳을 찾는다. 그는 굽어 마른 허리를 펴 나무 의자를 끌어내려 한다. 경사는 겨울 가지처럼 마른 그가 혹여 쓰러질까 두 손을 내밀며 앉아 있으란 뜻을 전한다. 그 의자는 마른 어린아이들과 더욱 마른 그의 어머니와 체구가 작은 남자 경관까지만을 허용하는 유약한 구조물이었다. 테이프로 막은 창이 추위에 떨며 우는 소리. 부인은 찬 햇살이 사선으로 드는 자리의 끝에 앉아 있었다. 매트리스는 거의 패지 않고서 그의 무게를 견뎠다. 좁은 단칸방은 문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어 그들은 창 하나를 두고 마주 앉는다. 그들 사이에 소년의 작은 얼굴 사진이 창 아래서 이따금 팔랑거린다. 경관은 십 년 차가 됐는데도 이런 일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떤 말이 단장의 고통을 다루겠는가. 침묵은 중압감에 대한 시인是認이다. 마땅한 고요 뒤에 결국 부인이 먼저 입을 연다.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죠?

경사는 그의 냉정한 질문에 다소 놀라는 한편 부적절하게도 감사한다.

저희는 주동자들을 심문해 증거를 모으는 중입니다. 제공해주신 자료들도 좋은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우두머리인 에단 뮐러는 16세를 넘겼기 때문에 소년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일반적인 형법에 따라 인도될 예정입니다. 아드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부인.

그놈들도 죽나요?

형량의 문제는 연합 정부 법정에서 결정돼 단정 지어 말씀드릴 순 없지만…… 희박합니다.

왜 내 아들은 죽었는데 죽인 사람들은 멀쩡히 살죠.

경사가 잠시 입을 다문다. 그는 이유를 안다. 살인자를 살인하는 건 죽음의 총량을 늘리는 일이다. 표면적으로 RCM 그리고 모럴린테른이 지향하는 건 죽음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다. 설령 매년 전기의자에 앉은 시체가 쌓여나간대도 그렇다. 설령 길거리에 널린 스피드를 주워 든 메스크인이 총을 맞아 죽는대도 그렇다. 그것은 도덕주의니까. 하지만 그는 말을 아낀다. 도덕주의자이기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잖아. 기저에 깔린 사상을 지키고 고치는 일은 추상적이며 경사는 현실에 사는 자다. 지금은 질서와 균형이 그의 신념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감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조문객은 더 오지 않았다. 어스름이 지고 땅이 침묵하는 동안 얼음이 단단해질 시간을 주는 것밖엔 되지 않았다. 경사는 마땅히 떠나야 할 때를 몰랐기에 매장 때까지 그들 가족의 곁을 지켰다. 뒷마당에는 죽은 나무의 검은 가지가 서로에게 엉겨 있었다. 하늘의 들러리가 꽃잎 대신 눈발을 뿌린다. 산 사람은 불청객 같다. 인부들이 눈과 섞여 더러운 잿빛이 된 흙을 파내는 걸 바라보던 중 소년의 여동생이 뺨이 발개진 채 슬그머니 곁으로 섰다. 경사가 순찰 코트를 걸쳐주자 옷자락의 절반이 땅바닥 위로 덮였다. 추운데 들어와 있지 그랬니. 아이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을 때마다 옷깃에 붉은색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들어가기 싫어서요. 어차피 오빠는 거기 없잖아요. 아이는 작은 군용 비행기 장난감의 프로펠러를 꾸물거리며 돌렸다. 이미 떠난 사람을 끌어내려 눈물에 가두는 그곳에……. 그는 형제의 묘비명이 눈물자국으로 남길 원치 않았다. 장난감의 날개는 접합부가 녹슬어 태엽 감기듯 삐걱거렸다. 그는 천천히 회전익을 돌리며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미래를 가늠하고 있었다. 고유의 미래이자 모두의 전쟁. 시선이 소년의 이름이 적힌 팻말에 수평으로 닿았다. 칼로 새긴 글자. 퍼시 오티에르. 우리는 여기 살아야 돼요.

경사는 더 묻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우는 여자, 울지 않는 아이, 그가 서서 땅속에 잠기는 소년을 본다. 장정들은 손에 땀을 흘리고 더운 입김을 토하며 죽은 자를 위해 자리를 낸다. 그들의 검은 옷 위로 굵은 눈이 소복이 쌓인다. 하늘 아래 모든 게 검고 하얗고 잿빛으로 얼룩진 장례. 삽이 몇 번이고 언 땅을 때리고 흙을 뿌린다. 경사가 장갑을 벗고 손을 뻗는다. 소년의 몸이 수평으로 든 손바닥 아래 가려진다. 아이가 숨결의 작별을 따라 한다. 그의 시야에서 작은 손이 뿌려지는 흙 위로 덮인다. 안녕.

총알이 날카로운 소리를 터트리며 과녁판 중앙에 쐐기를 박았다. 어깨까지 뻐근히 떨리는 감각과 함께 경사는 한숨을 내쉰다. 겹겹의 동심원 속 7이 적혀 있던 자리가 동그랗게 뚫렸다. 가운데 검은 원의 맨 마지막 자리다. 총구에 다시 한번 종이 카트리지를 밀어 넣는 경사의 어깨에 툭 손이 닿고 지나간다. 그 목소리는 노상 진중하지만 스치듯 가볍다.

오랜만이다.

저번 주 목요일이 마지막이었지만 말입니다. 좋은 오후입니다, 형사님.

경사는 파트너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꽂을대로 총구 속 카트리지를 다진다. 경위가 자연스레 옆자리를 차지하고 벨트에서 페퍼박스 권총을 꺼낸다. 실린더를 열어 장전하는 그도 파트너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키츠라기 경사의 눈깔이라고 불리는 그는 몸의 일부를 다루듯 손가락 안에 무기를 쥔다. 눈은 정확히 과녁의 중앙을 향하고 이어지는 총성은 매끄럽다. 탕. 종잇장 속 인간이 명치에서 흰 연기를 흘리며 죽었다. 총알이 제자리에 꽂힌 걸 확인하며 경위가 중얼거린다.

좋지 못해. 에단 패거리 때문에 주말 내내 찜찜해 죽겠더군.

경사는 사격 과정을 10점 만점에 7점으로 통과했지만 여전히 본인의 시력을 믿지 못한다. 그가 방아쇠를 당길 때엔 경위와 달리 주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장갑 낀 손가락이 그 아래 육중하게 버티고 선 방아쇠를 조심스레 끌어당긴다. 경위는 굳이 경사의 과녁판을 들여다보지 않지만 파트너가 뜸을 들이는 시간을 재는 데 어려움이 없다.

금요일에 가신 현장 일은 잘 마무리하셨습니까?

6점. 동심원에 뚫린 구멍을 바라보며 경사가 차분히 말을 건넨다. 경위가 자리를 비웠던 그날에 안경이 부서졌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놀랄 것도 없었다. 모멸은 언제고 죽지 않는 감정이지만.

음. 사실 별것도 없었어. 수습팀 이어주고 끝냈지.

경위는 삼연발 리볼버를 사용하므로 경사가 단발 총에 카트리지를 채워 넣을 시간에 다시 과녁을 똑바로 겨누고 있다. 그의 총이 빗나가는 경우는 드무니 총성이 자신의 말을 끊지 않게 기다리는 데 가깝다. 그가 마지막 단어를 내뱉자마자 즉시 총성이 내달려 과녁 뒤로 널빤지를 찢어낸다. 멀건 포연이 흩어지는 걸 바라보다가 그가 묻는다. 경사는?

아무 일 없었습니다.

경사의 발포와 동시에 답변이 떨어진다. 다 들었으면서 내 입으로 듣기 전까진 아는 체하지 않으려는군. 경사는 그의 적절한 무관심에 만족했다.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파트너는 동료들의 업무 중 행실만을 꾸짖었을 거다. 만일 경감 앞이었다면 경사에게도 한 마디 일갈했을 법한, 바람직한 도덕주의자. 짧은 침음과 함께 도덕주의자는 암묵의 사건을 넘기기로 한 모양이다. 그걸로 그만이었다. 대신 죽을 순 있지만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경위는 대화의 끝과 새 시작을 알리며 신호탄을 쏘았다. 산뜻한 총소리다. 각자 살상 무기에 장전을 하는 시간은 평화롭다.

월요일부터 사격 연습장에서 뭐 해. 화풀이?

사격 연습합니다.

강력반에 건수 넘어가서 짜증나는 건 아니고?

형사님, 전 실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자료까지 확실히 넘겨주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하겠죠.

밑창 닳도록 뛰어다니는 건 우리고 앉아서 윽박지르는 일은 자기들이 한다 이거지.

글쎄요, 티플러 웨이 건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경위는 그 이름이 나오자 허를 찔렸단 얼굴을 한다. 티플러 웨이는 동레바숄의 스텔라 마리스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던 사람들이 헤매다 곧잘 잘못 타고 들어가는 길이다. 전쟁 이후 보수 및 재건의 일환으로 생겨난 길이지만, 그 좁은 도로는 예산을 가로채려는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확실했다. 들어간 이상 빠져나가기도 녹록지 않아 그대로 8/81 고가도로를 타고 서레바숄까지 건너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맨정신으로 진입하는 사람보다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리는 주행자가 많은 티플러Tippler. 적어도 당분간은 실수로 그 길을 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위가 씨근대며 변명한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망할. 다른 놈들 잡느라 작은 도로 하나 막은 걸로 수사까지 다 한 사건을 넘기다니. 굵은 엄지로 권총의 실린더를 돌리는 소리가 신경질적이다.

그냥 막아놓은 게 아니잖습니까. 잔해로 완전히 뭉개놓은 거죠. 그것뿐 아니라 라 푸타 마드레 쪽을 제대로 수사하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패거리가 그쪽의 마약을 유통하고 무력으로 돈을 뜯어내다 살인했단 설을 설득력 있게 들었단 뜻이겠죠.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마세요.

마드레를 제대로 수사하긴, 사람 몇 명 죽이려고. 그때가 되면 또 41 관할서로 떠넘기겠지. 돌고 돌고 구멍 난 시체는 쌓이고.

경위는 무심히 한 발을 더 쏜다. 날파리를 잡는 비상 데스크의 순경이나 타성에 젖은 도축업자처럼. 구멍에서 새어 나온 연기가 형상을 흐려 종적을 감추는 동안에도 그의 얼굴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흠집에 부예진 아크릴판 너머로 흘깃 잘못 말린 카트리지를 골라내는 경사를 바라본다. 섬세한 손길이 수를 두기라도 하는 듯 정갈하다. 붙박인 시선을 돌리며 경위가 물었다. 식사 여부를 묻는 듯한 목소리다.

살인해 봤나?

총성.

아직입니다.

언젠가는 하게 될 거란 거지. 그럼 단발식을 고집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주저하는 것도 관두고.

전 주저한 적 없습니다.

경위가 말없이 안전장치를 걸고 총을 벨트에 꽂는다. 그는 진동에 벌벌 떨리는 아크릴판을 지나쳐 경사의 어깨 위로 두 손을 얹는다. 경사의 머리 옆에 머리를 두고 선다. 네 개의 눈동자가 지름 이 센티미터의 10점에 붙박인다. 같은 표적을 노리며 선 그들은 한 무리가 된다. 사냥을 가르치는 목소리에 적확한 무게가 실린다. 어깨가 올라가 있어. 긴장하지 마. 언젠가는 네 손과 어깨가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 심장을 쏘겠지. 그때쯤엔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니게 될 거야. 그전까진 상대의 눈을 보기 전에 끝을 내. 인간을 쏠 수는 없거든……. 경사가 어깨를 조금 내리고 턱을 당긴다. 표적은 흐려지고 가늠쇠가 또렷하게 시야에 점을 찍는다. 절대적인 검정이다. 판단하지 마. 너는 그저 한 점을 바라보고, 총을 쥐고, 동작하는 거야. 돌로레스 이래 가장 평화로운 살상 도구가 주어진 이상 최선을 다해. 그 여자마저 칼도 의자도 아닌 총으로 끝났지. 심호흡하고. 두 명의 폐가 산소를 머금으며 동시에 부푼다. 옷과 살갗 아래서 그것들은 빛나지 않는다. 그리고.

쏴. 한 마디에 탄환이 일격을 가한다. 추상화된 흑백의 인간이 명치를 꿰뚫렸다. 경사가 길게 숨을 내쉬며 총을 내린다. 주변을 듬성듬성 둘러싼 여러 구멍 가운데에 새 탄흔이 중심을 차지하고 났다. 과녁 종이의 저편에서도 10점 구멍 너머로 경사의 피로한 얼굴이 선명히 보일 듯하다. 경위가 그의 위팔을 가볍게 붙잡다가 놓는다. 수고했어. 퇴근하고 한잔하러 가자. 그가 자신의 과녁 종이를 떼어내려 걸음을 옮긴다. 언제나 발자국에 소리가 없다.

오늘은 금요일이 아닙니다, 형사님. 심지어 월요일이죠.

그럼 더욱이 가야지. 내가 살게.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일이 쌓일 것 같아서요.

내가 쿠프리 키니마 드디어 지급받았다고 했던가? 그 녀석이랑 같이 갈 예정인데, 싫으면 말고.

……정말입니까?

V12 엔진 소리가 거슬린다는 사람도 많으니까 존중할게. KR18GU랑은 차원이 다르거든.

가죠. 한 잔만입니다.

경사는 설렘을 숨기는 데 서투르다. 총을 집어넣는 와중에도 조급하게 발을 구르는 모습을 보며 경위가 웃는다. 경위의 과녁판은 정중앙에 오차 없이 집중 사격을 당해 큰 구멍 하나가 너덜하게 뚫린 것 같다. 경사는 아직도 그가 사격 과정 만점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시기한다.

쿠프리 키니마에 시동이 들며 잔잔한 주황색 불빛이 켜지는 순간 경사는 탄성을 금하지 못했다. 그는 체면을 잊고 깔끔한 파란색과 흰색으로 빛나는 키니마의 자태에 넋을 놓고 있었다. 경위가 티플러 웨이를 부숴놓기 직전에 키니마의 지급을 약속받은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경위는 투명한 창문 너머로 그 얼굴을 바라보다 동력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경사는 그가 나섰다는 것조차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당분간 운전대 좀 잡지 말라’는 말을 격식 있게 전달받았다며, 동승자가 있다면 그쪽에게 운전을 맡기는 게 좋겠다고 태연히 말했다. 경사는 예의상 거절하지도 않고 길게 뻗은 두 개의 조종 레버를 잡았다. 손에 빠듯하게 들어오는 레버는 그를 탑승자보다는 만군의 수뇌처럼 느끼게 했다. 경위는 불빛에 가려 검은 조종사의 그림자가 더없이 밝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가릉대는 쿠프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LUM의 경주용 차량에 대해 이야기했다. 곧 그들은 튜닝에 대해 이견을 보이며 경위는 그 운전석을 누가 건넸는지 물었고 경사는 지금 운전석에 앉은 게 누군지 상기하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경위는 그가 운전의 시간을 만끽하려 더 먼 술집을 찾아가는 걸 눈감아주었다.

눈이 천천히 도로 위로 스몄다. 전조등에 눈발이 반짝이며 부서졌다. 안쪽으로 굽어 경사진 차창에도 간간이 힘없이 눈꽃이 날아들었다. 도로의 양옆으로는 드문드문 동력 마차 몇 대와 색색의 조명이 흘러갔다. 머리 위로 지나치는 가로등이 깜부기불처럼 불씨를 튀기고 끔뻑였다. 스텔라 마리스의 외곽에서 하늘로 솟아 광채를 내는 고층 상업 건물이 늠연한 자태를 비춘다. 왕도 혁명군도 사라져 죽은 시대, 자본의 성상聖像. 창밖을 내다보는 경위의 얼굴 위로 노란빛이 스치며 머리칼을 빛내다 사라진다. 그의 눈동자는 시야에서 한 건물이 사라질 때마다 다른 건물을 찾아 쫓아간다. 높은 건물 뒤에 더 높은 건물. 그가 중얼거린다. 우리는 그래도 세상의 좋은 면을 보고 있는 거야. 작은 눈송이 사이를 헤가르며 미끄러지듯 운전하던 경사가 한쪽 눈썹을 치켰다. 그는 여전히 흙 속에 누워 있을 소년을 생각한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좋은 쪽 맞아. 저쪽이 진짜로 나쁜 쪽이지.

경위가 왼편을 턱짓으로 가리킨다. 푸르게 저무는 하늘 아래 에스페랑스 강이 검은 수면을 드리운다. 그 짙은 강 너머에 잼록이 있다. 낮은 건물이 가까이 붙은 모습은 채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 죽은 풀밭처럼 보인다. 오른편의 찬란한 휘광에 비하면 그곳의 빛은 창고에서 해묵은 미러볼 같다. 갈 곳 없는 디스코의 잔재가 머무르는 곳. 경사는 잠시 시선을 두다가 운전에 집중한다.

잼록의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인정합니다만…… 동레바숄의 에스페랑스 인접 지역도 비슷합니다. 특히 저희는 그곳에서 일어난 온갖 범죄를 수사하죠.

마르티네즈에선 아이들이 시체를 가지고 놀지. 비야로보스엔 나무마다 시체가 달려. 경찰이 포기했으니까. 우리가 본 곳이라는 건 최악을 면한 곳이라는 뜻이야.

그럼 저희가 그곳에 가야겠군요.

그래.

경위는 어느새 잼록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선 금융 지구는커녕 강가의 빛무리도 흐리게 보인다. 사람들은 저곳에서 울고 죽고 죽이고 이따금 웃는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경위는 도시의 불빛을 등지고 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최악은 아니야. 그가 되풀이한다. 경사는 잠시 할 말을 찾으며 입을 다문다. 그가 본 경위는 포기한 사람 쪽에 가까웠다. 맡은 바 책무를 다하지만 그 이상은 할 이유가 없고 이따금의 분노는 사소한 사건에 불과하다. 서의 분위기를 바꿀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파트너에게 술 한 잔을 건네는 것으로 하루를 끝낸다. 경위는 그 나름의 혁명 공군을 저버린 사람이다. 파란색과 흰색으로 도색한 쿠프리 안의 흠 없는 경찰정복을 입은 사람들. 캄캄한 터널 속을 지나며 경사는 막연히 창백을 달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진공의 창백에 중독된 사람처럼 무심코 내뱉는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은 건 뭐죠?

동시에 녹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경사의 말을 거칠게 지워버린다. 경사는 순간 고개를 틀어 뒤를 돌아볼 뻔한다. 경위는 뒷좌석에서 퍼뜩 놀라며 잽싸게 무전을 낚아챈다.

10-2수신 양호. 응답하라 오버.

10-4수신 확인, 10-18긴급 상황. 에단 뮐러를 포함한 네 명의 용의자 탈출. 클로브 로드를 따라 서부로 가는 중. 차량은 FALN A-8. 수사과의담당 팀에 조력해주길 바람.

뭐라고요? 경사가 불안하게 레버를 잡던 중 눈살을 찌푸린다. 경위의 손이 신형 쿠프리의 문을 치지 못하고 허공에서 마구 흔들린다. 야, 이런 썩을! 뺏어갔으면 똑바로라도 하든지. 서는 무사해?

드아오 순경 외 두 명 부상. 그 외 이상 무.

경위가 욕설을 뇌까렸다. 10-4. 곧 다시 보고하겠다.

10-4. 10-10교신 끝.

경위는 던지듯 무전을 내려놓고 운전석의 등받이를 붙잡아 몸을 가까이 기울인다. 감상에 젖은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그는 지휘관이 된다. 어둠 속에서 그의 음성이 선명하다. 마드레에게 가면 지켜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군, 멍청하게도. 8/81 진입하기 전에 따라잡아야 해. 터널 나가자마자 왼쪽으로 꺾어서 쫓아간다. 술은 다음번에 최고급으로 사 주지. 경사가 백미러로 눈을 마주치고 결연히 끄덕인다. 경위가 곧 코웃음 친다.

이쪽이 손해 보는 장사로군. 행운이라 생각하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예. 물론입니다.

그는 일평생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경위의 손바닥 안에 하얀 스웨이드 재질이 선연하다. 손가락 아래의 금속 클러치는 눈 오는 겨울 날카로운 차가움을 고스란히 발하고 있다. 지금의 그들은 조금 다른 옷이 어울린다. 이따금 다른 사람이 될 기회가 온다. 그런 일은 스포츠형 경찰차 안이라는 우연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경사가 작게 숨을 내쉬고 읊조린다. 꽉 잡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말과 동시에 경사가 클러치를 끌어 쥐고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경위의 몸이 내팽개치듯 뒷좌석에 밀착된다. 엔진에서 요란하게 들끓는 소리가 나고 차창에 타다닥거리며 날아드는 얼음조각이 불티를 피운다. 경위가 눈을 크게 뜨고 백미러를 바라봤지만 경사는 눈빛을 명료히 빛내며 나직이 속삭일 따름이었다. 조져보자고요.

수 개의 계기판 속 바늘이 일제히 둥근 호를 그리며 치솟는다. 클러치를 붙든 채 오른쪽 레버를 내뻗자 키니마가 으르렁대며 한발에 무게를 싣고 매끄럽게 왼편으로 꺾어 든다. 속도가 받쳐줄 테니 클로브 로드까지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 그 사이로 악명 높은 경사의 구불진 도로가 자리하지만. 몇 번이고 꺾인 경사로는 해괴한 방정식의 곡선을 연상시킨다. 야, 벌써부터 속도 내지 마! 경위가 다급하게 안전벨트 버클을 채우고 놀이기구를 타듯 질린 낯으로 저 아래를 내려다본다. 곡면에 가려진 중앙선은 일정한 간격으로 끊긴 것처럼 보인다. 경사는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지 않고 거세게 양 레버를 밀어낸다. 전차를 몰고 진군하는 것처럼. 키니마는 아래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중력을 거부하고 승냥이처럼 뛰어 육중한 몸으로 착지한다. 차체는 네 개 바퀴 위에서 유연히 몸을 흔들며 탑승객을 부드럽게 앉힌다. 두 탑승객은 그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십 센티미터 상공으로 몇 번이고 성큼 뛰어든 키니마는 낮은 곳에 내려앉을 때쯤 모든 차를 앞질러가 있었다. 경사는 터질 듯 뛰는 심장을 가라앉힌다. V12 엔진보다 그의 심장 박동이 더욱 세차다. 분명 혈류는 차체를 한 바퀴 돌아 심장으로 수렴하고 있으리라. 경위는 모르는 사이 온 힘을 다해 운전석 헤드레스트의 금속 다리를 붙들고 있다가 겨우 숨을 내뱉었다. 격노할 시간이었지만 솔직하게는 감동이 앞섰기에 핀잔은 한 마디로 그쳤다.

미친놈. 비행기야?

그랬으면 좋겠네요.

평탄한 도로를 질러나가자 기다란 트럭들이 역으로 쏘아지는 활시위마냥 재빠르게 얼굴 옆을 지나쳤다. 눈발은 거세지며 사선으로 내리기 시작했고 길은 점차 미끄러워졌다. 양옆으로 둘러친 가드레일은 성나게 달리는 증기기관차 위에서 바라보는 철로 같다. 키니마는 사차선 도로 위를 누비며 바큇자국을 긋는다. 연이어 몇 개의 동력 마차를 제치던 키니마의 창에 저 멀리 커다란 방수포를 씌우고 달리는 화물차 한 대가 들어온다. 눈깔이라 불리는 경위가 몸을 기울여 등받이를 붙잡고 가느스름한 시야로 차량을 확인했다. 방수포 위로 드러나는 각진 끄트머리와 두툼한 타이어 여섯 개. 저 배기관은 몰라볼 수 없지. 경위가 운전자 곁에 몸을 바짝 붙이며 FALN A-8을 가리킨다. 쟤네야. 경사가 눈을 찌푸리며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경사의 주행이 섬세하게 뻗은 거미줄 위를 노련하게 질주하는 모습이라면 FALN A-8은 투우사의 칼을 피하려 길길이 날뛰는 황소 같다. 엉터리로 배운 운전실력으로는 무작정 오른발을 내지르고 레버를 휘젓는 게 고작일 것이다. 꾸벅 졸듯 중앙선을 벗어나고 성급하게 제 길을 찾아가길 반복하던 화물차가 기어이 맞은편에서 달리던 동력 마차의 범퍼를 박살낸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범퍼가 땅 위를 뛰고 구른다.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거대한 차량에 들이받지 않으려 기다란 트럭이 몸을 비틀다 차선에 길게 누우려 들며 키니마의 눈앞으로 짐칸을 들이댄다. 경위의 외마디 비명을 들으며 경사는 주판을 다루듯 손아래 4단 변속기어를 재빠르게 뒤섞곤 양 레버를 교차해 최대로 꺾는다. 연결부에서 나는 새된 신음이 울리는 충돌음과 마찰음 속에서도 선명하다. 키니마의 육중한 배터리가 중심을 잡고 꼬리를 내빼어 몸을 한 바퀴 크게 휘돌린다. 아스팔트 도로와 질척해진 흙바닥에 반씩 걸친 키니마가 바퀴의 바깥으로 눈을 튀기고 흙먼지를 불꽃처럼 피워 올린다. 길 위 온갖 색채가 차창 위로 투과하며 뇌리를 쑤신다. 창에 맺힌 물방울이 수평으로 기다랗게 늘어진다. 너끈히 정상궤도로 진입한 차체는 제 꼬리를 잡으려는 개처럼 휘돌아 정면을 본다.

경위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신음하면서도 허리를 숙여 경사의 코트 안에서 키엘 A9 ‘휴전 협정’을 빼낸다. 경사는 레버를 잡은 채로 팔을 들어 권총집을 내준다. 경위가 자신의 벨트에서 빌리에 페퍼박스를 꺼내 들고 곧게 달리는 동력 마차 안에서 장전을 시작한다. 휴전 협정에 종이 카트리지가 들어가고 페퍼박스의 실린더에 총알 셋이 들어간다. 그 사이 경사가 큰 소리로 말한다. 미리 양해 구하겠습니다. 경위가 꽂을대를 쑤시다가 마주 외친다. 뭐라고? 어느새 키니마는 화물차의 옆을 달리며 속도를 맞춘다. 짙게 선팅된 화물차의 창에 경사의 안경이 반짝이며 비쳤다. 바퀴 빠진 장난감처럼 후들거리며 달리는 화물차와 키니마가 한 뼘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경사가 느슨히 레버를 반대편으로 이끈다. 키니마는 우아하게 틈을 벌렸고, 경위는 눈앞에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키니마의 섬세한 굴곡이 거대한 화물차와 격돌해 으크러지는 걸 봤다. 그는 거의 앞좌석에 달라붙어 소리를 질렀다. 경사가 화물차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레버를 당겼다. 위험합니다, 앉으세요! 굉음을 내며 두 기계의 몸체가 서로에게 처박혔다. 누가 격추되는지 보자. 쿠프리 사의 역작인 쿠프리 키니마는 왜소한 몸으로 용맹하게 맞섰고 FALN 시리즈의 퇴물 노병은 아픈 허리를 웅크리며 얼굴을 구겼다.

킴, 넌 진짜 또라이야. 경위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지면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경사가 말한다. 형사님도 여기 앉으면 그렇게 될 겁니다. 화물차의 검은 차창이 위로 열린다. 패거리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열여섯 살 소녀다. 약으로 시뻘게진 눈이 경사의 검은 눈과 마주치기도 전에 리볼버가 빠져나온다. 숙여요! 두 경관이 몸을 수그림과 동시에 권총이 방탄유리에 붙어 두 번을 가격한다. 대도시의 불빛을 비추며 반짝거리던 유리창에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진다. 바깥쪽 유리가 터져나가며 싸구려 권총에 파편을 박는다. 무음의 창밖에서 총은 머뭇거리며 딸깍댄다. 경사가 급감속하는 것이 경위가 물러나라고 외치는 것보다 한 찰나 빠르고 한 찰나 늦게 시원찮은 격발이 토해진다. 탄환이 중앙선 건너편의 동력 마차 엔진을 때리는 모습을 보며 키니마가 서서히 거리를 벌린다. 사이에 차 한 대가 들어갈 거리가 확보된다.

후미장전식 총을 구했군요.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선물regalo de Madre이로군.

경위가 선글라스와 페퍼박스를 꺼내 든다. 기다려. 경사는 파트너의 모호한 명령을 알아듣는 데 어려움이 없다. 페달이 적당한 깊이로 밟히며 차가 흐르듯 나아간다. 일정한 속력을 유지하던 두 차는 어둑한 터널로 날아들 때 점점 거리를 좁힌다. 조도에 적응하지 못한 화물차의 운전자가 비칠대며 속도를 늦춘다. 경위가 창문을 열어젖히자 케케묵고 선득한 터널의 공기가 후끈한 공기 속으로 밀려든다. 경위가 창 바깥에서 화물차의 타이어를 조준하고 곁눈질로 키니마 계기판의 시계를 주시한다. 6시 59분 57초. 58초. 59초. 선글라스가 경위의 코 위로 걸쳐지고, 정각. 등 뒤에서부터 맹렬하게 터널의 조명이 켜지며 저 멀리까지 환한 주황빛이 날아들 때 빌리에 9mm 페퍼박스의 총알이 번쩍이며 화물차 적재함 하단에 하나 방향지시등에 하나 아스팔트에 하나 차례로 날아든다. 방수포의 뚫린 구멍으로 하얀 가루가 폴폴 날린다. 제기랄! 경위가 거칠게 선글라스를 벗어 던진다. 경사가 이를 악물며 검은 차창 바깥으로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키니마를 한쪽으로 몬다.

야, 운전 똑바로 안 해?

사격이나 똑바로 하세요!

화물차의 총이 타겟을 바꾸어 곁으로 달리는 페브르의 타이어를 쏜다. 페브르의 두꺼운 타이어에 실없이 구멍이 나 발을 접질린 차체가 터널 안쪽으로 밀려든다. 명중률은 형편없지만 후미장전식 권총은 수 발을 연이어 쏘며 타이어를 터트려댄다. 사냥감이 되지 않으려는 터널 속 차들이 요동치며 뛰어다닌다. 경위가 무릎을 뻗어 등받이와 등받이 사이에 몸을 고정하고 빠르게 실린더에 총알을 주워 담는다. 개같은 전장식 총……. 경사가 레버를 휘감으며 변속기와 오르간 페달을 밟아 키니마를 몰아가지만 미로처럼 얽힌 고철덩어리들을 피해가는 것만으로 기적이다. 기나긴 터널의 끝을 한참 먼저 주파하는 건 옆이 찌그러진 화물차다. 경위가 창문을 다시 열어젖혔지만 타이어를 터뜨리기에도 늦은 때다. 경사가 느리게 숨을 토하자 차게 들어찬 공기 속에 새하얀 훈김이 그려진다. 장갑이 땀에 절어 축축하다. 경위는 초조하게 한눈을 가리고 키니마가 터널 바깥으로 솟구치길 기다렸다.

파랗게 젖은 언덕이 드러나며 시야가 넓게 트인다. 경위가 손을 치우자 어둠 속이 훤하다. 8/81 고속도로는 고작 수백 미터를 남기고 있다. FALN A-8이 없다. 놓쳤나? 눈을 찡그리고 도로 위 모든 차량을 훑는다. FALN A-8, FALN……. 그렇게 속도가 빠른 기종이 아닌데. 지나는 마차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호명이 스쳐 간다. 안 보이십니까? 경사가 초조하게 물으며 주행한다. 도로를 끈질긴 시선으로 샅샅이 더듬던 경위가 형광 도료로 칠해진 화살표를 본다. 그의 돌연한 탄성에 경사가 소스라친다.

뭡니까? 찾으셨나요?

오른쪽 샛길 타, 경사. 이제 서행해라. 머리가 울릴 지경이군.

경사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오른편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바라본다. 이내 그의 뜻을 알아채고 그가 오른발에서 긴장을 푼다. 분부대로. 흐린 하늘에서는 잔잔히 설풍이 불어온다. 운전사가 드디어 일반적인 속도로 부드러운 커브를 돌아 길을 빠져나간다. 경위는 발치로 굴러다니던 휴전 협정을 한 손으로 집어 경사의 코트 안에 쑤셔 넣고 다른 손으로 무전을 연결한다.

57번 서, 청소년 범죄 수사반이다.

10-2. 여기는 57번 서. 응답하라 오버.

10-4, 탈주자들 클로브 로드에서 8/81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길을 우회했다. 추적을 따돌려 진입하려는 모양이지. 위치 확인했고, 다수의 총기 소지도 확인됨. 지원 바란다.

10-20위치는?

티플러 웨이. 5분 내로 접선해 발 묶어두겠다.

아, 거기…….

그래. 우리가 조져 놓은 곳이지.

경사가 우측 레버를 잡고 있던 네 손가락을 살짝 펼쳤다. 경위가 나직이 말하며 손바닥을 마주친다. 고공의 에이스.

10-4. 수사과에 10-22전달한다. 다른 건?

잡은 놈들 다시 단단히 처넣을 준비 해놓으라 그래.

10-4. 10-10. 교신 끝.

경위가 무전기를 내려두고 얼굴을 쓸어내린다. 열린 창틈으로 불어오는 겨울의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트린다. 어깨에서 긴장을 풀었지만 권총집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그들이 언덕에 포위된 길 속으로 들어간다. 충돌이 있을 것이다. 경사가 백미러로 끈질기게 침묵하는 경위에게 눈길을 준다.

‘다수의’?

불 보듯 뻔해. 그리고 이런 말 없으면 알아서 하라며 내던질 수도 있어. 출결부대 애들 장난 취급하면서. 그쪽 인력이 필요해.

미리 말하지만 전 과잉 진압은 싫습니다. 에단을 제외하면 전부 청소년이에요. 강력반이 올 때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 시간만 끌면 됩니다.

청소년이지, 총을 들고 있는. 시간 끌다 죽기 싫으면 처신 잘해.

그래도 저는…… 말이 끝나기 전에 전조등 불빛 끝으로 새하얀 실루엣이 비춘다. 언덕은 쓸린 것처럼 도로 위로 나무를 뻗고 판자와 콘크리트를 늘어놓았다. 경사가 거대한 화물차를 멈추게 한 광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다시 봐도 굉장하네. 우그러진 화물차의 파란 문을 열고 지저분한 금발 머리의 청년과 검은 머리 소년과 긴 곱슬머리의 소년 그리고 연갈색 머리의 키가 큰 소녀가 차례로 내린다. 에단이 총을 빼들자 나머지 셋도 어설프게 권총을 집어 든다. 한숨을 내쉬며 경사가 마차에서 내린다. 코트에서 휴전 협정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됐습니다. 형사님 말이 맞네요.

그럼.

경위가 키니마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려 애쓰며 문을 닫는다. 머리칼 위로 눈송이가 하나씩 엉겨든다. 사람이 들지 않는 도로 위에 바람마저 침묵한다. 전조등의 불빛으로 네 사람이 시퍼렇게 빛난다. 키가 작은 두 소년은 동공에 꽂혀오는 빛을 감당하지 못해 애써 한 손으로 눈을 가린다. 쏘지 않을 거야, 너희도 쏠 수 없을 거야. 곧게 총을 겨눈 채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먼저 입을 여는 건 경위다. 그의 조용한 목소리가 고요 속에 선명하다. 형량을 더 늘리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작별 인사 하러 가는 거야. 걔네가 파이롤리돈이라도 쥐어 줄 것 같았니?

금발의 청년은 총을 흔들며 소리친다. 좆까, 라 푸타 마드레는 날 믿고 있어. 건드리면 경찰도 개박살이야. 이 총을 누가 준 건지나 알아?

그래, 마드레 놈 중 하나가 줬겠지. 그리고 또 뭐라고 했는지 맞춰볼까? 이런 건 애들도 장난감으로 쓴다고 했겠지. 네가 그 수많은 애들 중 하난가 보군.

우리는 달라. 중요한 일을 맡았어.

그럼 지금쯤 너희를 잊고도 남았겠는데. 한번 실수한 놈들을 믿어주는 멍청한 조직이 어딨어. 가지 하나 상했다고 밑동을 찍어낼 놈들이었으면 너희 귀에 들어갈 만큼 이름있지도 않았을 거다. 이제 도주에 마약 유통에 도로주행법 위반까지 현행범으로 달았군.

셋은 이미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손끝이 벌벌 떨려 총을 붙든 모습은 차라리 애절해 보인다. 평생 뛸 심박을 끌어 쓰고서 경찰과 총구를 맞대고 있는 아이들. 가장 체구가 작은 곱슬머리 소년은 작은 몸의 모든 근육을 수축하고 있는 듯하다. 두 발로 서있는 것이 고작이다. 경사가 눈짓으로 전한다. 그만하시죠. 경위는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눈이 정면을 향한 채로 수갑을 꺼내고 다른 팔에 들린 총을 천천히 내린다. 불규칙하게 쌕쌕거리는 소년들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그들이 청년의 심기를 살피며 땀이 흥건한 손으로 총을 다잡을 때 경위는 신뢰받는 경관의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여기까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닌 거 알아. 너희를 보호해줄게. 저 녀석과 얼굴 마주칠 일 없게 할 거야. 자백하면 형량이 훨씬 줄어. 오늘 일 정도는 눈감아줄 수도 있어. 등 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위의 모습이 경건하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팔 아래로 새는 빛줄기가 수갑의 금속을 영롱히 빛낸다. 손끝에서 떨어지는 철제 수갑은 저울 같다.

경사는 네 명의 도주자 중 가장 완고한 청년에게로 총구를 치우치며 경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순간에 문득 치미는 거부감의 근원은 어딜까? 경위가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경사는 총을 들고 있다. 그의 입술에서 내어지는 권위 없는 절대적 진술. 허상의 선택지. 경사는 생각을 파고드는 대신 사냥꾼의 자세를 한다. 판단하지 마. 나는 그저 한 점을 바라보고 총을 쥐고. 작은 소년이 천천히 빛을 향해 걷는다. 소년의 이마에 눈꽃이 닿아 녹는다. 소년의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는 일련의 행위는 가지런하다.

차가운 금속이 소년의 손목을 가두고 팔연발 권총 끝에서 탄환이 튀어 나가는 순간의 결합음이 울린다. 경위가 아이를 감싸며 빠르게 등을 돌렸고 경사는 손가락의 살집이 격발의 기로에 놓일 때까지만 방아쇠를 끌어당겼다. 강가로 부는 바람이 그들을 쓸고 지나친다. 키니마 앞유리창의 탄흔에서 불어오는 연기가 매운 향을 풍긴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 씨발. 한 발짝도 못 가. 금발 청년의 부르짖는 목소리는 남은 일당 둘에게 놓는 으름장이었다. 경위가 품 안의 소년에게 속삭인다. 차에 올라타 있어. 안전할 거야. 소년을 가리고 키니마로 밀어내는 손과 권총집을 향하는 손이 엇갈린다. 손끝으로 권총집을 열고 손잡이를 쥐고 몸을 돌리고 팔을 뻗는 행위는 지당하고 의문이 없고 제동이 없어 신속하고 그렇기에 멈추려면 웬만한 소음이 아니고서야 될 리가 없었다. 한 사람이 흐느끼듯 고함을 지르는 소리에 모든 사격이 유예된다. 그는 머리카락이 연갈색이고, 키가 가장 크고, 열여섯 살이다. 그가 유리 파편이 박혀 망가진 총을 내던진다. 그만해. 다 끝났어. 마드레가 되진 말자면서.

우리 다 부자가 되면 그만하자며. 그럼 나도 집을 나갈 수 있고 랭글리도 엄마를 챙겨주지 않아도 된댔잖아. 벨라미도. 그리고 퍼시도……. 우린 전부 실패한 거야. 적어도 이제 거기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난 스텔라 마리스에도 비야로보스에도 가지 않을 거야. 난 그만둘 거야. 적어도 소년원에선 굶을 일이 없겠지.

닥쳐. 네 우는 소리 들어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넌 퍼시를 욕보이는 나약한 새끼야.

고집 피우지 마. 너는 동창회관에 가겠지만 우리가 곧 따라갈 거야. 그냥 거기서 다시 만나자. 에단 너도 원래는 동생을…….

닥치라고 했잖아!

빛을 받지 않는 곳으로 흩날리는 피는 새까맣다. 연갈색 머리에 핏방울이 묻었다. 소녀는 한 마디 항변도 남기지 않고 무릎을 꿇는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인문주의의 여신이 죽고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하고 무결자 아닌 아이가 붉게 기름부음받는다. 그의 무릎이 눈송이가 쌓인 지면에 닿기 전 검은 머리칼의 소년이 밑창이 닳은 운동화를 내디디며 경위를 들이받는다. 경사가 바라본다. 경위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헛숨을 들이키자 경사가 소년을 막아선다. 경사의 손마디가 소년의 팔을 붙들 때 청년의 손가락도 방아쇠를 당긴다. 경사는 어깨에서 새파랗게 불이 피어오르는 작열감을 느낀다. 청년은 여섯 발이 남았고 경사에게 다음은 없다. 오로지 지금뿐이다. 단 한 발이다. 그의 오른손은 뜨거운 피를 막지 않는다. 총을 놓지 않는다. 조준한다. 버튼 하나면 된다. 헌데 절대적인 검정 뒤에 사람이 있다. 선 하나로 그려진 인간의 형상이 아니다. 그자의 금발이 흔들리며 머리에 쌓인 하얀 눈을 털어냈다.

그의 머리칼은 씻지 않아 엉켜 있다. 염색을 잘못한 모양인지 얼룩덜룩한 금발이다. 아무렇게나 짧게 잘린 머리카락 끝. 극히 흥분한 얼굴이 타오르듯 빨갛다. 사춘기를 다 지낸 그의 뺨 위로 얽은자국이 무수하다. 광대가 도드라지고 뺨은 홀쭉하다. 악물어 드러난 송곳니가 유독 뾰족하다. 터질 듯 맥동하는 경동맥을 덮은 후드집업은 한때 파랬겠지만 지금은 물이 죄 빠져 잿빛을 띤다. 그가 어린 시절 좋아했을 법한 그리고 지금도 고집하고 있을 철 지난 밴드의 티셔츠가 목이 늘어져 있다. 눈은 옅은 푸른색이다. 약에 탁해졌지만 여전히 푸르다. 그리고 푸르게 운다. 에단 뮐러가 울고 있다. 뺨 위로 눈물이 흐른다. 눈이 많이 온다. 누구도 인간을 쏠 수는 없다. 경사는 손에 힘을 놓았다. 조종간이 떠났다. 눈물로 시야를 가린 에단이 발포한다.

두 번의 총성 이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경사는 격통이나 완전한 어둠이나 혹은 저 먼 옛날의 과거를 예비하고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단 하나의 명징한 명제로 명명되는 이상의 나날 같은 것. 사후를 기다린 적이 없었기에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영원한 전쟁의 끝을 어림할 수 있을까. 모든 게 생소했다. 막연했다. 그가 눈을 뜬 건 겸연함 탓이었다.

정신 안 차려?

뒤편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세상이 느릿느릿 재구성된다. 한 쌍의 전조등이 다가오며 그림자가 앞으로 점점 늘어진다. 쿠프리 40의 엔진음. 강력반이 온다. 멱살을 쥔 손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경위다. 에단 뮐러는 쓰러졌다. 눈 위로 붉은 피가 쏟아져 있다. 경사가 경위를 밀치려고 할 때 손에 기분 나쁜 축축함이 느껴진다. 피는 에단의 것도 경사의 것도 아니다. 가슴에 총알이 박힌 사람답지 않은 악력으로 경위가 경사의 손목을 붙든다. 현장에서 다신 그런 짓 하지 마. 용서하지 않을 거야. 형사님 피가 많이 납니다. 넌 살아있잖아. 살아있는 사람이면 최선을 다해. 피하지 마. 형사님, 정신 차리세요. 뭐라도 해야 해. 넌 이 일을 하잖아. 형사님. 거기에 가야 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마르티네즈. 비야로보스. 르루와이욤. 탄광시. 초토화 지구. 경사가 경위의 이름을 불렀다. 뒤편에서 무어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치던 소년과 몸싸움을 하는 소리도 들린다. 경위는 눈동자를 돌려 경사의 어깨 뒤를 흘깃 본다. 그리고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었다. 봤지? 내가 포기하지 않기로 한 건 이런 거야.

킴 키츠라기는 그 말을 영원히 기억한다.

경사가 일어난 건 늦은 때였다. 꼬박 이틀이 지나 한밤중에 눈을 떴다. 의사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착실히 재활을 받는다면 어깨도 무사히 나을 거라 말했다. 경사는 같이 입원한 사람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앰버 라론드는 총알에 스쳤을 뿐 과도한 긴장 상태에서 기절한 것뿐이라 일찌감치 퇴원했다는 답을 들었다. 연갈색 머리 소녀. 경사가 경위의 이름을 댔다. 그리고 금발 청년의 이름도. 의사는 전문가였기 때문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꺼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끝내 그의 고집을 못 이긴 병원 측은 영안실을 안내해 주었다. 경사는 두 번의 숨결의 작별을 했다. 경사의 손이 파트너의 가슴 위로 새겨진 총상을 덮었다. 차가웠다. 간호사는 그의 탈수를 염려했다. 그날 이루어진 레바숄의 백예순두 번째 숨결의 작별이었다.

서에서 병원에 구비된 전화기로 연락이 왔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경사는 답하지 않고 상황을 물었다. 취약해진 상태의 용의자들은 진실을 말했다. 피해자인 퍼시 오티에르는 에단 패거리의 일원이었다. 마약 거래가 수틀리자 고객과 싸움이 벌어졌고 퍼시의 마른 몸은 버티지 못했다. 에단과 앰버와 랭글리와 벨라미는 퍼시의 남은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알렸습니까? 아직이요. 그럼 알리지 마세요. 끝까지.

모든 일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침상으로 돌아왔다. 창가에서 바람이 새어 나온다. 성한 쪽 팔을 뻗어 창문을 닫으려 할 때 바람에 잘게 떨리는 종이비행기를 본다. 날개의 한쪽 끄트머리에 도로시 오티에르라는 이름이 삐뚤거리는 글씨로 쓰여 있다. 다른 쪽 날개에 거꾸로 된 글씨로 두 문장이 쓰여 있다. 고마워요. 그 아래에 해묵은 실패의 슬로건이 적혀 있다. 모두가 이 문장을 안다. 그가 소리 내어 발음한다. 선라이즈, 파라벨룸.

들어오는 찬바람에 종이비행기를 띄운다. 비행기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에서 비틀거린다. 마땅한 착륙지도 항로도 없다. 하지만 추락하지 않는다. 그저 미지의 창백한 하늘 너머로 날아오른다.* 공군이 몇이나 죽은들 전쟁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누군가는 살아서 공군을 꿈꾼다.

눈이 시릴 만큼 푸르게 새벽빛이 움튼다. 창문 너머로 핀 성에꽃이 여린 이파리마다 여명을 굳게 새긴다. 에스페랑스 강은 그 너머로 떠받친 레바숄의 모습을 수면 위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에스페랑스가 그린 고향을 들여다본다. 검고 이지러지고 푸르고 모든 사상과 체제가 실패한 도시. 그곳의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눈을 뜬다. 그들은 오늘도 미워하고 죽이고 아주 가끔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오랫동안. 마지막 숨이 다하는 날까지.

종이비행기의 모서리가 하얀 벽에 부딪는 소리가 났다.

동이 텄다. 그러니 전쟁을 준비하라.


*‘Off we go into the wild blue yonder’는 미 공군 군가의 첫 소절이며, 디스코 엘리시움 엔딩 OST 제목 <Off We Go Into The Wild Pale Yonder>의 모티브가 된 구절이다. ‘우리는 미지의 푸른 하늘 너머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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