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 희망

천원의 행복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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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H, H.

 

당신이 나를 행복이라 부르겠다면, 나는 당신을 행운이라 일컫는 것이 응당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그땐 그랬지. 햇살을 투명하게 비추는 환한 웃음을 머금고 쭈그려 앉아 금발의 소년에게 흙투성이가 된 채로 네 잎 클로버를 내밀며 웃던. 가을을 닮은 밀발 소년은 이내 사내가 되어, 황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금발의 사내 앞에 서 폭풍 전야를 맞이하고 있다. 이것은 전장의 고요함이다. 역설법과도 다름없다. 자아! 그래서, H? H는 어떠한! 선택을, 하셨답니까? 사랑? 정의?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세 번째 선택을! 택하셨습니까~? 부러 극적인 말투로 말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사내로 성장하는 동안 변함없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안도감을 심어주었을는지.

 

 

 

그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언제나, A로서. 친구들의 곁에서, 변치 않는 존재로 남고 싶었던 그는. 미움받고 싶지 않아 하던 것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을 그 아이는. 기어코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절망과 음울로 점철된 사내가 된 채로 결국 소년 시절을 연기하는 것이다. 연기가 아닌 오로지 진의로만 모든 이들을 대하던 그에게, 연기라는 것은 당췌 숨는 것밖에 되지 못했다. 어디로? 그늘 속으로.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그림자 속으로. 이 현실에서, 이 잔혹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으니까…….

 

 

 

이런 나를 보고도, H. H는 나를 행복이라 명하실 건가요?

 

세상에는 아무런 희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한 때는 희망이 실재한다고 믿었었죠. 내 머리 위에, 내 손목에! 분명히 자리를 잡아, 내게 희망이 무엇인지 선사해준 친구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요, H.

 

 

 

희망은 실재하지 않았습니다.

 

 

 

수도 없이 기도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소네트께서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면서요.

 

소네트시여,

 

희망은 실재하는 것입니까?

 

희망이 진정 실재한다면, 희망이 우리에게 존재한다면!

 

어째서 수많은 생명들이, 이리도 허무히 브릴란테 제국에서 떠나가야만 한답니까?

 

소네트시여, 보고 계신다면. 제 목소리가 들리신다면, 부디……

 

대답해 주세요.

 

저는 꽤, 신실한 신도이지 않습니까아…….

 

 

 

이것은 전쟁의 서막을 앞둔 기록되지 않을 이야기. 한때 친구였던 이들의 목숨을 건 혈투가 펼쳐지기 전의 이야기.

 

H, 당신은 A의 말에 무엇으로 대답하였을지는, 오로지 당신만이 알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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