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쓰레기통, 손수건

 교통 사고였다. 아내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병원으로 이송 중에 사망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마지막 말을 남기지도 못한 채로, 평화로운 어느 저녁에 예정에 없는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을 그녀가 불쌍했다. 바빠서 그녀에게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온갖 종류의 후회가 머릿속을 헤집고 일상을 망가트려 놓았다. 후회는 얼마나 이르건 늦은 것이라 하지만 나는 아직 갑작스러운 이별에 적응하지 못한 채였다. 차라리 그녀 대신 내가 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그녀를 따라 죽고 싶었지만, 그녀의 이름으로 내게 온 유산과 보험금을 보았을 때 가까스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건 그녀는 나 몰래 이런 돈을 모아 내 앞으로 오게 만들었고, 그만큼 내가 살기를 바랬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속이 뒤틀렸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야만 했다. 

 그녀의 책상에 앉아 멍하니 생각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셰익스피어 5대 희극에 들어가는데, 이별보다는 사별이 그나마 더 나은 이유는 이르게 끝나버렸기에 감정의 유통기간이 영원하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이별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행복을 바랬을 뿐, 내 곁에 있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내 곁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나는 계속해서 후회와 연민에 사로잡혀 있었고, 집 구석구석 남아있는 그녀의 손길에 신음하며 채 하루도 온전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만큼 흐느낀 적도 며칠이나 있었고, 그녀를 따라 죽어버릴까 하는 고민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운명적인 죽음이 내게로 다가와서 이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기를 바랐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멎어버려서 그녀에게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곧 결혼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는 무렵이라 슬픔은 배가 되고, 난 몇 번이고 그녀를 떠올리는 채 하루에 몇 번이고 이 자리에 앉아 상념에 빠졌다. 우리의 처음부터 끝을 몇 번이고 회상했다. 잊고 살았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라 감회가 남달랐다. 그녀는 동화를 쓰는 일을 했고, 꽃을 좋아하던 귀여운 사람이었다. 자신이 제일 귀여운 줄도 모르고 내게 다가와 이것 참 귀엽지 않느냐며 말하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했다. 뒤돌아보면 그녀가 문 사이에 서서 날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는 많이 기다렸냐며 품에 끌어안고 우는 나를 달래줄 것만 같다. 견딜 수 없을 상실감에 한참을 신음하고 있었다. 인생의 전부가 순간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겐 그녀만이 구원이었는데, 역시 인간의 삶은 덧없구나. 차라리 나도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녀의 책상에 앉아 그런 생각을 멍하니 이었다. 유서조차 남기지 못한 죽음이었지만, 그녀가 내 행복을 바랄 것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죽고 싶었다.  

 그녀의 책상을 멍하니 눈으로 훑었다. 책상 한켠에는 여러가지 노트와 동화들이 꽂혀 있고, 눈에 잘 띄는 자리엔 우리 둘이 찍은 사진이 예쁜 액자에 담겨 놓여 있었다. 품에 안겨 빙긋 미소짓는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서 천천히 액자를 훑었다. 이런 사진을 몇 개는 더 찍었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나 허망하게. 

 책상 위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노트들 중 하나는 일기장이었다. 일기를 처음부터 하루에 하나씩 읽고 그녀를 기억으로 되새겼다. 얼마 전부터 일기에는 지속적으로 선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었다. 마지막 일기까지도. 

 그녀가 나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만들었을 선물을 보고 싶었다. 그녀의 손길이 짙게 닿았을 그 물건이 무엇일까 궁금해져서, 처음으로 그녀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나무로 된 세 칸 짜리 서랍. 

 첫 번째 칸에는 여러 종류의 학용품들이며 향수 같은 것들이 있었고, 두 번째는 다 쓴 일기장이며 노트들이 있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이 꼼꼼하고 깔끔한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사랑스러웠고, 잊고 있었던 그녀의 체향이 훅 끼쳐 들어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어떻게 하면 찰나의 향기조차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그녀의 몸에서는 봄날 햇살 같은 향기가 났다. 끌어안으면 따뜻한 체향이 다가왔고, 포근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러고 있자면 깃털마냥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체향만 느꼈다. 그런 날들이었다. 품에 얌전히 안겨서 어디 가지 않는다며 빙긋 미소짓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거 알아? 사람이 사람을 기억할 때 떠올리는 모습은 마지막으로 지은 표정이래. 네게 내 마지막이 웃는 표정일 것만 같아 다행이다. 네가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선 품에 끌어안은 것이 마지막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마지막 서랍을 열었다. 마지막 선물이 보였다. 

 안개꽃 자수가 새겨진 옅은 푸른색 손수건이었다. 비록 자수를 다 새기진 못하여 한귀퉁이만 온전한 모습이었지만, 부드러운 촉감에 그녀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옅은 푸른색이 마치 강물을 담은 액자처럼 보였다. 완성하지 못한 자수는 깨어진 액자를 나타내는 것인가. 영영 완성될 리 없는 액자는 끝내 완성되지 못한 우리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것만 같아 뼈에 사무치게 슬프다. 죽어버릴 것 같이 선명한 통증이었다. 

 푸른색 안개꽃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뜻이라던가. 어느 겨울날에 강변에서 나는 그녀에게 푸른색 안개꽃과 약혼반지를 내밀며 청혼했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영원을 고백하고, 그녀는 기쁜 듯 반지를 약지에 끼고,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그 때부터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안개꽃이 되었다. 정말 동화같은 날이었다. 

 꽃의 의미도 중요했지만, 나는 사실은 그녀가 안개꽃을 닮았다고도 생각했다. 작고 사랑스러워서, 품에 끌어안으면 향기로워서 정말이지 그랬다. 손 닿을 때마다 혹여 체온에 시들어버릴까 두려워하며 품에 끌어안던 순간들이었다. 

 손수건에 한 땀 한 땀 손수 수놓았을 자수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나왔다. 온 집안 몇 남지 않은 그녀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아 더욱 소중했다. 매 순간 나를 떠올리며 바느질을 했을 모습이 눈에 선해서 눈물이 났다. 이 손수건을 받고서 기뻐하는 나를 보고 싶었겠지. 영영 내게 줄 수 없을 것이란 사실도 모르고 기뻐서 열심히 준비했겠지. 

 손수건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물빛이 잠시 짙어졌다. 그녀가 뺨을 쓸어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느 물건들보다 더 짙은 손길이 남았을 물건. 그녀가 내게 영영 전하지 못한, 나를 위한 선물. 

 이 네모난 액자에는 그녀와 나의 추억이 담겨 있고, 그녀가 나를 생각한 마음과 정성들인 손길이 남아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손으로 평생 해보지도 않던 일을 하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손끝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무엇 때문에 다쳤느냐 물어보아도 수줍게 미소지으며 비밀이라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떠올린 순간들이 자세해질수록 폐에 물이 찬 듯 숨을 쉬기 갑갑해지고 가슴팍에 격통이 느껴진다. 마치 익사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스러움에도 숨이 멎는 일은 없었고, 나는 매일 아침마다 멀쩡하게 숨을 쉬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살아야 하는 것은 고통이었고, 비극이었다.  

 한참을 울었다. 여태 눈물이란 것은 계속해서 흘려왔는데도 그랬다. 신기하게도 계속해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마치 쓰레기통에 무언가를 버리듯, 슬픔과 그리움을 허공으로 토했다. 

 시야는 울렁거리고, 숨은 그대로 거칠어져서, 그대로 익사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발 이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가 내 옆에서 새근거리며 자고 있고, 나는 그런 그녀를 품에 끌어안은 채로 안 좋은 꿈을 꾸었다며 속삭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악몽에서 깨어나는 일은 없었고, 나는 이제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통증의 이름은 사랑이구나. 내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죽고 싶은 것이구나. 

 손수건은 마지막 남은 그녀의 손길이었고, 나를 향한 마음과 사랑이었다.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들어졌을 물건, 그리고 그녀의 손길과 체향이 짙게 남은 유일한 물건.  

 나는 그녀의 손길이 희미해질까 두려워하며 꼭 붙잡지도 못한 채로,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로 한참을 흐느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격통에도 숨이 멎는 일은 없었다. 그녀가 보고 싶다. 손수건에 남은 희미한 체향은 달큰하고 사랑스러워서 계속해서 그녀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녀는 내 삶의 전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한 사람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손수건을 곱게 개어 그녀의 서랍에 넣었다. 저 책상과 서랍들에는 그녀의 손길이 짙게 남은 물건들이 있고, 나를 향한 사랑이 있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리움과, 그것에서 오는 통증이 있다. 타박을 맞더라도 괜찮으니 다시 그녀를 만나고 싶다. 눈물로 발갛게 짓무른 눈가를 옷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그녀는 내게 온 세상이었고, 온 우주였다.  

 죽을 만큼 아프다. 그럼에도 너는 내가 살기를, 행복하길 바랬을 것이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칼로 에는 듯 했다. 그렇게나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한다.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말을 몇 번이나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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