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문태준 시 - [가재미]
감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었다. 떠나는 날이 얼마 안 남은 사람에 대한 배려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자리는 창가 자리였고 낮이면 포근한 햇살이, 밤이면 찬란한 달빛이 머물다 떠나갔다. 그녀가 중병만 아니었다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소리나 하며 편한 마음으로 휴식을 만끽했을 만한 그런 병실이었다. 편안하고 포근한 분위기, 이 병실에서 유일하게 죽어가는 그녀를 바라본다. 다가오는 죽음이 그녀에게서 떠나갔으면 좋겠다고 계속해서 바랬다.
나는 누워있는 그녀의 곁에서 한참을 지내고, 그녀는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날이 이어진다. 이제는 마음에서 아예 놓아버리는 편이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좋지 않을까 늘 생각했지만 미약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떠나면 그녀는 오롯이 혼자가 되고 말겠지. 나는 그녀가 혼자 훌쩍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가슴이 칼로 에는 듯 아려왔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나 사랑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기적을 바라고, 평생 찾지도 않았던 신을 찾고, 그녀가 고통스러워 할 때마다 절망에 휩싸였다.
천천히 뺨을 쓰다듬었다. 이 체온은 아직 그녀가 살아있다는 증표였다. 따뜻한 체온과 규칙적인 고동소리에 나는 오늘도 잠시 안심했다. 그녀는 마치 횟집 어항 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가재미를 닮았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무력히 누워 있는 것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손을 뻗어 돕지 않으면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어서, 시선은 늘 옆으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고 시선은 한 데 몰려 있었다. 아픈 와중에도 늘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를 두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린 그렇게나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유일과 마지막을 꿰찬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욕심을 부린다 한들 그녀의 삶이 길어지는 일은 없을테고, 그렇다면 내가 줄곧 함께 해주다 마지막 가는 길에 사근히 미소지어주는 것이 좋겠거니 싶었을 뿐이다. 우리 둘이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서로에게 서로 뿐인 시간이었다. 내 삶의 전부는 그녀였다. 약지에 끼워진 반지는 영원의 서약과 서로의 마음에 대한 방증이기도 했지만, 이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했다. 서글픈 마음에 그녀의 곁으로 몸을 뉘였다. 차라리 나도 그녀와 함께 숨을 멎는다면 참 좋을 텐데. 우리 둘 다 같이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침대는 좁았고 그녀와의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웠다. 서로가 서를 바라보고 있으니 가재미 두 마리가 나린히 누워 있는 모양새와도 비슷했다. 그렇게 날 빤히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머리카락을 잠시 쓰다듬어 주다가, 헝클어진 몇 가닥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희미한 손길이 스치고 사랑 담긴 시선이 향하면 그녀는 눈물을 울컥 쏟아내었다. 투명한 보석 같다. 찰나 빛을 삼켜 반짝이는 눈물을 가만 바라보다 말았다. 날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나 안쓰러워 손을 내뻗어 눈가를 훑어주고, 잠시 감은 눈꺼풀 위로 짧게 입술을 얹었다 떨어졌다. 이렇게나 두려워 하면서도 손은 내 옷자락을 슬쩍 붙잡고 있었다. 죽어가는 덩쿨이 힘없이 뻗은 손 같아 안쓰러웠다.
나는 네가 웃었음 했다. 사람은 상대방의 마지막 표정과 얼굴을 기억한다던데, 떠올린 네 낯이 우는 모습이라면 내가 평생 괴로울 것만 같았다. 이기심에서 비롯된 마음이었으나, 그건 네게도 마찬가지일 것이 분명하여 슬픈 마음을 억누르고 애써 미소짓는 날이 이어졌다. 이렇게 엷은 미소를 짓고 늘 네 앞에 선다면 네가 기억하는 내 얼굴도 슬픔과 절망이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곧 심장을 멈춰버릴 듯한 불안도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산소마스크 때문에 뺨을 쓰다듬어줄 수 없는 것이 서러웠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손끝을 꼭 붙잡고서 몇 번이고 사랑한다 말했다. 불안감에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고, 내 불안을 애써 재워두려는 얕은 수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행복한 듯 눈웃음을 지었다. 눈을 마주치자 조금 괜찮아지는 것도 같았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서 늘 행복했을까, 그런 의문은 내게 늘 공포였다. 네가 혹여 불행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짓눌리는 것 같다.
그녀는 처음 병을 앓을 적부터 제발 자신 말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 부탁했다. 다만, 내게는 그녀만이 전부였으므로 지금까지 이 관계가 이어진 것이다. 사실은 꽤나 억지를 부렸다. 애써 밀어내는 그녀에게로 몇 발짝이나 더 다가갔다. 그녀 또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 해놓고선 병에 걸리자마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도망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는 애써 미워하는 척 하면서도 잠 못 드는 깊은 밤에는 한참 나를 바라보고, 혼자 흐느끼는 것을 알았기에, 이미 그녀에게 나는 삶의 전부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것들을 알면서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밉다 말을 뱉으면서도 결혼반지는 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 괴로움도 찰나 시간일 것이다. 마지막 찰나라도 좋으니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설령 내가 평생 괴로워하며 살게 된다 하더라도 괜찮았다. 나는 마지막 웃으며 떠난 그녀를 떠올리며 하루 분의 숨을 더 쉴 테니.
파랑 같은 삶을 살았다. 굴곡 많은 인생의 마지막 안식은 내가 될 테고, 나는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어야만 한다. 청혼할 적에 인생의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한 약속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과 한 약속이기도 했다. 봄꽃 아래에서 화사하게 미소짓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 이 사람을 평생 사랑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러니 나는 그녀에게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줄 것이다. 나름대로 놓아줄 준비였다. 나는 그녀의 삶과 우리가 함께하던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지금도 그녀는 내 품에 담겨 희미한 숨을 쉬고 있다. 조심스레 등을 토닥여주며 생각을 이었다.
오솔길이며 그 길에 어렴풋 들려오던 뻐꾸기 소리, 그리고 그 길 끝에 있던 우리집. 둘이서 행복했던 나날. 가늘은 국수를 삶아 먹으며 시답잖은 농에 웃음을 터트리던 평범한 저녁이나, 흙담조차 없었던 낡은 집을 떠올렸다. 나는 봄꽃 만개한 어느 봄날에 그 집 마당에서 그녀에게 청혼했다. 우리는 봄에 청혼하여 여름에 결혼하고, 풋풋한 가을을 보냈다.
나는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 가랑이지고 눈이 나려 쌓이던 어느 겨울날을 마지막으로 떠올린다. 몸을 잔뜩 웅크려 기침을 하면 추위에 감기라도 들었나 생각했다. 그녀는 폭설에 구부러진 나무처럼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봄이 오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봄이 오는 일은 앞으로도 영영 없겠지만 우리 둘이 꼭 끌어안은 채 허락된 시간이 끝나버린다면, 식어가는 미약한 체온에 나는 평생의 숨을 이을 테니 나름대로 봄이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찰나 찾아왔다 금세 떠나버릴 봄이겠지만. 그녀의 존재가 내게는 봄이었다.
나는 이제 그녀가 죽음 밖의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시선 바로 앞에 다가온 죽음을 이젠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도. 다가오는 죽음 때문에 눈이 쏠려 그 방향밖에 바라볼 수 없다면 시선의 끝에는 나만이 서 있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긴긴 여행을 떠나는 느낌으로 내게서 편히 떠나갈 수 있도록 몸을 움직여 네 물속으로 다가가 나란히 몸을 뉘였다. 우리에게 얼마 정도의 시간이 허락되어 있을지는 늘 모르는 일이었지만, 나는 매일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왔다. 아쉬움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겠지만 다가오는 죽음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모든 시간이 소중해졌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고 날 바라보며 살풋 눈웃음짓는 찰나, 품에 포근히 다가오는 체온. 거칠어지는 숨결에 익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만, 열병이라 생각하면 괜찮아지는 것도 같았다. 그녀의 존재가 내 영혼에 짙게 남긴 화상인 것도 같았다.
그녀는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숨을 마른 내 몸 위로 가만 적셔주었다. 평화로운 순간들이었고, 나는 애써 붙잡은 체온과 숨으로 천천히 숨을 잇는다.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녀의 숨이 점점 느려진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로 느린 숨을 내뱉었다. 해줄 말은 단 하나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 자, 사랑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끝내 눈을 감은 그녀를 잠시 바라만 보다 이마에 입술을 얹어주었다. 그녀는 마치 좋은 꿈을 꾸는 소녀 같았다. 편안한 잠에 든 것 같아 다행이다, 눈가를 쓸어주고, 산소마스크를 벗겨내어 아직 체온이 떠나가지 않은 뺨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죽음은 이렇게나 무겁고, 아름답고, 슬픈 것이구나. 숨이 멎은 입술 위로 체온을 나누었다. 그제야 애써 참았던 눈물이 새었다. 끌어안고 있으면 체온이 비슷해진다 하던가. 이러고 있으면 내가 식어버릴까, 그녀가 따뜻해질까 궁금해서 되려 꼭 끌어안은 채였다. 이 품에서 놓아버리면 그녀가 내게서 완전히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완전히 실감날 것 같아서 고통스러웠다. 식어가는 체온이 이렇게나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단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그녀가 떠올릴 내 얼굴이 미소짓는 낯일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에게 내 품은 안식처였을까. 내겐 그녀만이 유일한 쉼터였는데, 이 곳이 아니면 편히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는데.
달 밝은 아름다운 밤에 너는 죽었다. 앞으로 나는 평생 낫지 않을 열병에 시달릴 것이다. 달 밝은 밤이 돌아올 때마다, 문득 침대 빈자리가 신경쓰이는 날이 올 때마다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바보같이 사랑한 사람의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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