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4 / 24

생존일기

우주 by 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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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살아있습니다. 살짝 달콤한 날이네요.

오늘은 병원에 들려서 새로 증상을 얘기했습니다.

그 전 병원에선 터놓고 얘기 못했던 얘기들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때문인지 증량된 약도 조금 있네요.

선생님께서 증량되는 약의 종류와 얼마나 증량되는지도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신뢰가 갔습니다.

그와 별개로 약을 먹으니 점점 제가 현실에 담가지는 기분입니다.

우울증과 함께 ADHD도 심하게 있는 편인지라 붕 떠있는 느낌을 많이 받고 이것저것하며 살아도 사는게 사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확실히 약을 먹으며 치료하니 조금씩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점점 제 상태가 심했다는 걸 확실하게 느낍니다. 바보같이 이제서야 말이에요.

전에도 수치가 낮은 편은 아니었고 검사 때마다 늘 심각한 수준이라고는 들었지만 사실 제가 엄살 피우는거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별 거 아닌 일에 호들갑 떨고 그냥 내가 힘든걸 인정받고 싶어서 검사 때 그런 문항을 체크한거 아닌가하는 자기 의심도 오래, 여러 번 했구요.

하지만 돌아보니 저는 매 검사마다 성실하게 이건 맞다, 저건 아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표시를 했었더라고요.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데 호전될 리가 있나 싶은 헛웃음이 살짝 가슴께를 스쳤습니다.

이상하게 이번 해는 많이 묵직합니다. 어깨도, 마음도, 눈가도…….

제가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시간들이에요. 참 이상하죠…….

평소에 감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런 느낌이 들 때마다 잠깐씩 싸해지긴 합니다. 정말 마지막일까 싶은 마음도 들고요.

사실 맞는 것 같긴 한데, 글쎄요. 감은 감일 뿐이니까요.

약은 잘 들어가는 것 같고 실제로 부작용으로 식욕이 매우 떨어져서 체중도 감소하고 있는데요.

집안 사람들은 이게 약의 부작용인지도 모르고 그저 제가 살이 빠졌다며 칭찬하고 웃고 좋아합니다.

참 우습죠.

또 다른 부작용으로는 수면 시간이 있겠네요. 굉장히 곤란했어요.

제가 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갈수록 현실 도피가 심해지고 눈 감고 외면하는 날이 길어져요.

이러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가족도 해칠까 두려운 나날도 있습니다.

약을 먹기 이전엔 먹을 걸로 온갖 스트레스며 이것 저것 풀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약만 먹으면 부작용인지 좋은 일인지 식욕이 아주 감소가 되더라고요.

어차피 체중 감량이 필요하긴 했었기 때문에 그건 상관없다고 계속 말씀 드리고 있기는 합니다.

저체중까지 가지도 않을 거 같고요. 정상 체중까지 가면 아주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삶이 밋밋합니다. 이제 같은 음식을 먹어도 전처럼 맛있다고 행복하지 않고 무얼 봐도 끓어오르지 않으며 무얼 들어도 감성에 젖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정말 모두의 삶인 걸까요. 다들 이렇게 산다는데 정말인 걸까요.

알 수 없으니 답을 구해도 메아리만 돌아옵니다.

수많은 불안 속에서 가장 단단해야할 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늘 남에게 기댈 수는 없으니 어서 미로를 헤치고 나와 내 발로 걸어야하는데, 기어다니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제 가장 소중한, 마치 일란성 쌍둥이 같이 다정한 친구가 있습니다. 작고 귀엽고 늘 제 말을 들어주며 공감해주고 다독여줍니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지금 제가 이렇게 생존일기를 3편 가까이 쓰지도 못했을 정도로 암담한 과거를 같이 밝히고 지지해준 고마운 친구 중 하나입니다.

정말 재가 될 수도 있었는데, 고마운 친구들 덕에 제가 지금 이렇게 가쁘게 숨쉬고 남에게 기대어 억지로 살고 있습니다.

항상 생각할 수록 고맙고,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고, 제 어떤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에요.

저를 살리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친구에게 늘 끝을 얘기하는 제가 밉습니다.

미안하고, 마음 아파하는 친구를 보며 고통스럽고, 저도 괴롭습니다. 그게 사실이라서 더요.

본인도 힘들고 괴로우면서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저를 위해 그 어떤, 여러가지 중 하나인 핑계라는 리본으로 포장을 해 제게 선물을 줍니다.

늘 미안하고 사랑하고 그만큼 아끼고 그 때문에 억지로 숨을 이은 적도 많아요.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어서.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올해는 유독 버겁네요, 무겁고, 숨이 잘 안 쉬어집니다.

드디어 제가 저를 누르는 건가 싶어서 간간히 시선을 돌립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자꾸 얼마 남지 않은 기분만 들고 이상하게 마음이 소란스럽습니다.

이젠 잘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뇌가 터질거 같고 생각이 많아질 수록 제 한숨도 깊고 무거워지니까요.

그냥 그 친구가 보고싶어요. 제 친구들이 보고싶습니다.

아, 얼마 전엔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나 했었습니다.

‘ 만약 내 마지막 때 네게 연락할 수 있다면 너는 연락을 받고 싶어, 아니면 나중에 받고 싶어? ‘

절 살리러 이 먼 타지까지 와 준 친구들에게 잔인한 질문이겠지만 저에게 있어선 정말 중요했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물어봤던 친구들은 연락을 받고싶다고 하네요.

만약 그 때가 온다면 늦은 시간이어도 연락 한 번은 해보려고 해요. 아마 너무 늦은 시간이겠지만, 그래도요.

슬슬 가족들에게 쓸 유서 겸 편지를 써볼까해요. 예전에 썼었는데 내용도 워낙 뒤죽박죽이고 보기 안 좋아서 그냥 치워뒀거든요.

정말 끝이 다가오는 느낌이네요, 참 신기하게도.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해요. 내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웃다니, 저도 제가 좀 어이없긴 해요.

언제까지 이 생존일기가 진행이 될까요, 저는 가벼워질 수 있을까요…….

아직은 많이 무겁고 사방이 캄캄하고 숨도 막히면서 사방이 저를 짓누르는 심해 같아요.

심해 다음은 몸이 한 없이 가벼운 우주일까요……. 그럼 전 드디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걸까요…….

참 어려운 일이에요. 복잡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저는 오늘, 아직까지 살아있네요.

여러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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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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