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4 / 24
생존일기
안녕하세요,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사실 일기를 쓰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매일매일 꾸준히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제가 저를 잘 알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살고 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숨이 턱턱 막혀도 그저 물고기가 물 밖에서 아가미를 뻐끔거리듯이 열심히 호흡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착각하고 오해하고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죠.
딱히 그걸 정정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겐 너무 큰 절망이고, 한평생 지구를 등에 지고 있는 벌을 받아야했던 그리스 로마 속의 한 인물처럼 버거워도요.
원래 뭐든 본인이 겪어보기 전까진 작은 부스러기고 매우 작은 티끌에, 방 구석에 조금 뭉쳐있는 먼지같은 거니까요.
그 어떤 신도 믿지 않고 그 어떤 종교에 믿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저는, 대신 인과는 믿습니다.
어찌보면 불교 쪽일 수도 있겠네요.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본인에게 되돌아간다. 내가 행한 일은 어떻게든 내게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고 저를 정돈하고 싶었던 걸지도요.
어린 시절 남을 함부로 재단하고 생각없이 뱉었던 말이 제게 되돌아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멍합니다.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지 않더라도 미래의 나는 모르는 일인데 사람들은 참 편하게 생각하고 말합니다.
실제로 뇌가 망가지는 느낌을 받았고 인지능력도 현저히 떨어진 적도 있었는데 모두가 그게 제 마음이 나약해서, 극복하지 못해서라고 해요.
그런데 또 의료계에선 말이 다릅니다. 호르몬적인 문제고 확실히 병의 일종이니 치료를 받아야 나을 수 있다고 확언해줍니다.
약을 한 알, 두 알 그러다 늘어나는 알약들을 삼키면서 그냥 이대로 목구멍이 막혔으면...하고 기도했던 적도 있었고요.
하루 온종일 일하며 잠들기 전 밤마다 목에 걸릴만큼 많은 약을 삼키면서 이게 삶인가 싶었습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시간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흐르며 결국 약 기운에 미친듯이 잠이 쏟아져 결국 쓰러지듯 누워서 잠들게 되더군요.
그러다 눈을 뜨면 다시 출근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끔찍했죠.
너무 무료했고 단조로운데다, 내가 마치 로봇마냥 해야할 일만 딱딱 해치우는 모습이 징그러웠습니다.
삶에 기쁨 한움큼 느끼지 못하고 해야하니까...해야하니까...좋아하는 것 하나 없이, 취미 하나, 꿈 한 조각 붙잡지 못하고 그저 숨쉬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살아있는다는건 뭘까, 삶의 이유는 대체 뭘까? 제 속을 가득 채운 질문의 답이 너무 궁금해서 가족들을 붙잡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하다못해 인터넷에도 여러 문장으로 검색해봤죠.
한 스님께서 답이 없는 것에 답을 찾으려하면 결국 망가지는 건 스스로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신 걸 보고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가족이 제게 말했던 살아있으니까 그냥 산다는게 정답이었던 겁니다.
굳이 의미를 찾지말고 해야하는 것을 하며 늘 슬픔, 절망, 비통함에 잠기지 않게 내 삶의 기쁨을 만들어나가며 살아야 그게 삶이다, 라는 분들도 계셨고요.
정신과 선생님께서도 원래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냥 다들 그렇다고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많이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아직 많이 망가져있어서 한 사람의 일을 못하고 있지만 제 친구들은 잘하고 있다 격려해줍니다.
너는 한 번도 잘못된 적이 없었다는 따뜻한 위로도 건네주고요. 늘 기운을 잃을 때 도닥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인 것 같네요.
그러다보니 철없던 20대 초, 부산으로 놀러갔을 때 길거리에서 사주팔자를 장난삼아 봤었는데 그 중 한 분께서 제 인생의 초반 부분을 정말 잘 맞추셨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 복이 없는 대신 인복이 많다, 나중 가면 돈을 많이 벌 팔자다.
미래는 확실치 않은 일이니 돈을 많이 번다느니 그런 소리는 듣고 흘려넘겼지만 앞부분의 부모 복이 없는 대신 인복이 많다는 말에 가장 큰 공감을 했었죠.
가끔 전생이 있었다면 나는 나라를 팔아넘겼을까,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무간지옥에 떨어진걸까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또 마냥 죄인은 아니었나 봅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삶은 고통이라는 말을 믿습니다.
모든 것이 죽어있는 우주에서 살아있다는게 변칙적인 우연 속에 만난 제 인연들이 감사하고 또 소중하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스럽습니다.
요즘은 약을 먹다보니 다시 현실이 저를 짓누르네요.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무언가...
그게 저를 더 비참하게 누르는 걸 수도 있고, 제 뇌를 망가뜨리는 걸 수도 있지만 제가 저를 멈추는 일이 가장 힘드네요.
호르몬 하나에 인간이 이렇게 휘둘린다니 참 비웃기고 어이없고...인간은 뭘까 싶더라고요.
아직도 행복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회색이고 가끔 검은색이었다가 다시 회색으로 돌아옵니다.
이러다 정말 제가 끝으로 달릴 것 같아서 얼마 전엔 취미 생활을 하나, 둘 시작했습니다.
전 인내심도 없고 끈질긴 타입도 아니라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작은 해봤어요.
모르겠습니다...정말 모르겠어요...아무것도...
그냥 오늘도 하루살이처럼 살았습니다. 어느 공간 한 구석을 굴러다니는 먼지였을 수도 있겠어요.
누군가에는 별 것 아닌 일이 제게는 이렇게 벅찬 일일 줄도 몰랐죠...
제가 내뱉는 숨이 저를 누르는데 마치 초능력자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네요...네, 살아있습니다.
그걸로 된 거겠죠, 저는 아직 살아있으니까요.
오늘도 저와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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