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 / 24
생존일기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신기하죠, 인간한테 질리고 나한테도 실망하고 좌절하고 그럼에도 살아있음이...
늘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고있습니다. 간절하지 않고, 언제 어떻게 사고를 당해도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요.
또 언제는 이것조차 지겹더라고요.
이렇게 벌레처럼, 기생충처럼 누군가에게 빌어먹고 사느니 차라리 모두에게 없는 희망 주지말고 내 삶을 끝낼 때가 온 것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끔씩 저한테도 행복이란게 찾아오더라고요.
원하지 않는데 부러 나를 생각해서 사오는 물건들, 겨울이라 추운데 따뜻한 바지 하나 없다며 주문해주신 기모 바지들.
또 제 주변 사람들도요. 제가 돌려주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늘 아낌없이 무언가를 건네줍니다.
너무 미안하고 그 친구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렇게 간신히 숨 쉬는게 버겁습니다.
사실 이 생활도 힘들어요.
남들은 막노동하고 ㅋㅍ이나 상하차를 뛰는데 집에 틀어박혀서 머리만 박고 있는 네가 뭐 그리 힘드냐 합니다.
공감을 바란 것도 아니고 그냥 나도 힘드니까 힘들다. 한 마디 했더니 백마디 공격이 돌아옵니다.
그럴때마다 절 도닥여주는건 흘긋흘긋 날선 시선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이 아닌 늘 저를 생각해주는 주변 친구들이었습니다.
이제 죽을 때 됐지...정말 때가 됐지. 몇 번을 고민했는지 몰라요. 사실 방법도 자세하게 생각해뒀습니다.
최대한 주변에 민폐없이 깔끔하고 한 방에 끝내고 싶었거든요.
죽기 전 몇 분은 괴롭겠지만, 저도 살고싶다고 발버둥칠지 모르지만 그래도 저도 모르게 늘 머리 한 구석에서 나를 죽이는 생각을 합니다.
시뮬레이션을 얼마나 돌렸는지조차 세기 귀찮고...방법은 같되 장소만 다른 제 무덤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제 친구들이 저를 포기하지 않아요...저조차 저를 포기하고 이제 다 그만두고 싶다. 정말 버겁다. 묵직하게 내려놓는 말들을 묵묵히 들어줍니다.
금전적으로 많이 힘들 때 먹고싶은게 있으면 한 번씩 사주기도 하고, 같이 재미있게 수다도 떨어주고, 게임도 해주고요...
마지막을 생각할 때마다 자꾸 그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나를 정말 아껴주고 제게 뭘 줘도 아까워하지 않던 그 친구들이 자꾸 생각나요.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저의 무너짐을 지켜보고있는 가족들도요. 많이 지쳤겠죠. 저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없어졌을 때...과연 지금보다 마음이 가벼울까 가끔 생각해요.
보기보다 마음이 여리시고 심약하신데 제가 남기고 간 물건 하나 보며 눈물 지으실 것 같거든요.
그리고 가끔은...제 마음에 내려앉은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치우고 일어나 끝맺음을 하러 갈 것 같은 제가 가장 지겹더라고요.
삶이 뭘까...나는 대체 왜 사는가를 수없이 고민하고 질문했습니다.
답은 다들 그냥 살아있으니 사는거다. 명확한 이유가 없었어요. 저는 하고픈 것도 없었고요.
그냥 살아있으니까 사는 거라는 그 답이 제 목을 죄었습니다.
뭐라도 취미를 붙이면 괜찮을까, 현실도피라도 하면 좋을까 게임 중독처럼 종일 게임만 하던 나날도 있었습니다.
제가 씻는 물 한 방울도 아까워 점점 오래 안 씻게 되고, 제가 먹는 것도 아까워 물만 마시다가 3일에 한 번 간신히 조금 먹었던 날도 있습니다.
그냥 제가 벌레같았어요. 뭐든지 제가 쓰는건 다 아까워서 집에만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불에 웅크리고 있었죠.
돈 때문에 이런가 싶어서 생각도 많이 고치고 우울감도 많이 털었을 때였을까요.
점점 나아져서 여기저기 면접도 보러다니고 돈도 벌게 될 때, 일하느라 병원을 가지 못하니 병이 다시 제 머리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황이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고 병원도 못가고, 다시 집에서 웅크려 이제 정말 다 지겹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고, 친구들에게 빚진 걸 다 갚으면 정말 가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또 가장 친한 친우가 제게...본인도 일하느라 삶을 못 챙기는 와중에, 제 병원비를 대주고 싶다 조심스레 의견을 밝히더군요.
사색이 돼서 내가 어떻게 그걸 받냐 너가 힘든걸 뻔히 아는데, 난 그럴 수 없다.
예전에도 본인이 병원비를 줄 테니 다니라고, 다녀와서 돈을 달라 하라했던 친구였어서 진심인걸 알았습니다.
정말 안 된다고 아니다, 괜찮다 이건 아닌 거 같다고 몇 차례 말렸지만 본인도 1년 넘게 고민만 하다 제게 말을 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기회를 달라 말을 꺼내는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그 날 하루는 습지에 잠긴 종이처럼 그저 먹먹한 마음을 말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뭐라고 제 주변엔 이렇게 저를 살리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까요...전 그 모두를 기꺼이 등질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걸까요...
결국 이번에 다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저는 남들보다 많이 느린 걸음을 떼고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제 삶의 속도겠죠...
이렇게 저는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저는 예언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숨 쉬며 살아가는 하루살이니까요.
모든 우울증 환자분들, 오늘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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