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息


부드럽게 흩날리는 바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불어오는 꽃향기에 정신을 집중하길 여러 차례. 이곳에서는 구름 한 점, 생명체의 그림자 또한 드리우지 않는 공간. 이곳은 지나갈 꿈에 불과한 곳. 나는 항상 이런걸 바랐어.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바랄 평화.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하지. 한번 평화에 몸담게 되면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안온한 평화에서 몸을 뉘면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 알고 있어. 이것이 곧 뒤처지는 길이라는 사실쯤은. 그래도 평화를 바라는 것이 죄는 아니잖아. 안 그러니? 그래, 맞아. 죄는 아니지. 다른 이가 이걸 본다면... 좋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이곳은 꽤 아늑하거든. 테이블도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의자도 있지. 나는 이곳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준비된 다과를 먹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니까 말이야.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 이런 잔잔함은 때로 복잡한 심경을 정리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하지. 그래, 적어도 이곳은 평화로워. 정말 마음에 들어.

누군가가 불안에 떠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그건 곧 평화를 깨는 일이니까. 그래서인지 이곳은 정말 아늑한 곳이야. 돌아가기 싫다 여길 만큼.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걱정할 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하다 만 이야기도 있고. 이쪽을 기다릴 자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만일 있다면 지금 이 말이 슬프게 들릴 테니까 돌아가고 싶다, 이 생각을 해보려고 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분명 운이 따라준다면 돌아갈 수 있을 테지. 하지만 단점은 내가 그리 운이 좋은 편은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 변화를 피하고 평화 속에 숨어 살던 것 아니겠니.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괜찮아. 그저 받아들일 뿐이야. 거짓으로 지어낸 꿈속에 몸을 뉘고, 잠을 청하는 거지. 꿈속에서 햇빛을 받으며 따스함을 느끼고, 바람과 꽃을 바라보며 평화를 누리는 거야. 그러다 가끔 질릴 때면... 그토록 보고 싶던 나무를 상상해 보는 거지. 꿈속에서는 무어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들 하잖니. 이왕이면... 그래. 등나무가 좋겠다. 얼추 그 근방에는 월계화도 있으면 좋겠고, 그 옆에는 보랏빛을 띄는 꽃들이 가득 피어있으면 좋겠네. 그 풍경을 추억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돌아가게 되면 원래부터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덤덤하게 다른 이들 사이에 껴서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고, 풍경을 구경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사는 것처럼 연기하는 거지. 분명 재밌을 거야. 내가 사라진 지도 몰랐던 자들은 분명 평소처럼 대해주겠지. 그렇다면 다행이야. 적어도 그들의 기억에 내가 남지 않았다는 거니까. 모두가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평화 뒤에 숨어 풍경이나 바라보던 시골 촌뜨기에 불과해. 그런 녀석이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건 사치라고 생각하거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참, 그리고 돌아가면 가장 먼저 무슨 꽃을 좋아하냐 물어볼 테니까 이에 대한 답을 준비해둬. 그러면 나는 그 답을 기억해두었다가 먼 이후에 그 꽃의 모종을 살게. 그리고, 작은 정원을 키워나갈게. 단순한 취미니까... 크기는 적당하게, 마당 한 편을 장식할 정도로만. 아니, 조금 규모를 키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좋다고 하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뭐가 되었든... 아름답게 가꾼 정원을 보게 된다면 정말 감동적일 거야. 아니, 그걸 볼 때쯤이면 나는 늙어 쓰러지기 전이려나? 하하... 그래도 좋을 것 같네. 원하던 일을 늙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니까.

아, 원래 이 정도로 말을 길게 하는 편은 아닌데. 다과도 마음에 들고... 풍경도 마음에 들어선 지 말이 많아지는 것 같아. 게다가 혼자 있잖아. 아니, 혼자가 아닌가? 여하튼 그래. 이정도 떠들었으면 이제 쉴 때도 되었지. 눈 붙이고 있을게. 너의 운이 나의 불운보다 높길 바라. 그러면 내 인생 처음으로 행운을 겪어볼 수 있을 테니까. 살아 돌아가는 기적, 뭐 그런 것 말이야. 하하, 농담이야. 아무 생각 말고 기다려줘. 금방 돌아갈게. 날 찾겠다고 고생하지 말고 푹 쉬어. 내가 불운을 이겨내 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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