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404/시마이부시마] 행복에 이름을 붙이라면,
분명히 지금 제 옆에서 웃으며 잠든 이 얼굴이 답일 것이다.
17회 디페스타(220115)에 가필수정해 책으로 나왔습니다. 웹재록 샘플 겸해서 투비로그에서 이쪽으로 원문 그대로 옮겨둡니다.
* 시점은 본편 종료 후 어드메 쯤에서, 404가 사귄지도 조금 시간이 흘렀을 무렵 정도.
* 시마이부 혹은 이부시마 어느 쪽으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 이부키의 감각 / 시마의 맨션에 대해 개인적 해석을 덧대었습니다.
* 이렇게까지,,,길게,,,쓰려고,,,한게,,,아니었는데,,,,
기수의 시프트는 4일 근무 2일 휴일로 굴러간다. 휴일이라도 비상 사태라면 출동해야하지만 그런 사태는 생각보다 드물다. 이번 나흘 간 있었던 중점밀행도 당번근무도 유독 입전도 사건사고도 많아 마지막 근무일의 밀행이 끝났을 때에는 시마는 물론이요 체력 하면 시바우라 서를 통틀어 일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부키조차 말 한 마디 할 기력이 없이 분주소에 들어섰다.
404와 같이 시프트를 돌았던 401도 비슷한 몰골로 먼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보아 서로 바삐 뛴 것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우렁찬 목소리로 맞이해주곤 하는 진바마저 오늘은 손을 흔들어준 게 다였다.
"왔냐."
"신입은요?"
"나가리돼서 수면실에 보냈다. 너희 보고서 쓰면 깨우고 집 보내줘. 잘 쉬고 보자고, 시마, 이부키."
코코노에의 뒤를 이어 들어온 순경은 올해가 겨우 3년 차에다 기수는 처음이라 이런 강행 스케줄에 아주 나가떨어진 듯 했다. 파트너 몫까지의 보고서를 팔랑이며 진바가 분주소를 나갔다. 평소라면 그 인사에 몇 마디라도 떠들었을 이부키도 지금은 보고서를 빨리 해치우고 침대에 다이빙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한참동안 분주소에는 연필 끄적이는 소리, 타자 치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시마가 먼저 보고서 작성을 끝냈고 옆을 보니 이부키도 2/3 쯤 끝냈다. 제 파트너는 서류작업이 약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오늘은 다행인 쪽이다) 작성속도는 남은 체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타입이므로 제가 늦게 쓴 걸 테다. 이부키는 있는 집중력 없는 집중력 다 끌어다 쓰는 건지, 선글라스 브릿지 아래 콧잔등이 계속 찌그러져 있었다. 그 모양새를 몇 초간 구경하던 시마는 조용히 의자를 밀고 수면실로 향했다.
수면실 입구 쪽에 뻗어있는 막내는 이불도 반쯤 내찬 채 코까지 굴며 잠들어 있었다. 수사1과에 처음 온 새내기 형사가 일주일 집에 못 가고 일하고 있다보면 꼭 저런 식으로 형사과 한쪽에 찌그러져 저렇게 잠들어버리곤 했다. 기수의 업무 강도와 수사1과의 업무 강도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래저래 출퇴근 시간이 딱딱 정해져 있던 파출소 순경이 기수에 넘어오면 저렇게 지칠 수밖엔 없겠지. 그리고 보면 현장은 처음이랬던 코코노에는 체력이 있는 축이었네. 얕보이지 않으려고 걔도 필사적이긴 했었군. 시마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막내 녀석을 흔들었다.
"으음..."
"일어나. 진바 씨가 네 보고서 내고 갔어. 집 가서 자."
"좀, 만..."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게 반사적으로 말을 하는거지 아직도 꿈나라 속이다. 아니 아무리 지쳐있어도 이부키는 손만 대도 벌떡 일어나곤 하는데, 신입이라 이 피로감을 못 이기나? 깨우던 시도가 열 번을 넘고 오 분을 넘자 가뜩이나 피로가 쌓여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던 시마의 인내심이 뚝 끊어졌다. 마침 수면실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도 한몫했을 거다.
"일어나라고, 이 자식아!"
"흐에엑!?"
"-시마!?"
신입이 괴성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노호성이 들린 탓에 깜짝 놀란 이부키까지 허옇게 놀란 얼굴로 수면실 문을 박차고 뛰어왔다. 그제서야 시마는 자기가 소리 지른 걸 깨닫고 뒷목을 문질렀다.
"소리지른 건 미안한데, 좀 잤으니까 그만 집 돌아가. 이부키, 너 보고서는?"
"쪼끔만 더 쓰면 돼."
그 사이에 막내 녀석은 비척비척 정신을 차렸다. 이부자리를 개려고 하는 폼이 몸 굽히면 다시 잠들겠다 싶어 시마도 이부키도 손을 내저으며 그냥 퇴근하라고 등을 밀었다. 이부키. 응. 그냥 보고서 끝내러 가, 우리도 빨리 퇴근하게. 으응. 느릿느릿 수면실을 나서는 막내를 배웅하며 404는 말없이 각자의 퇴근을 위해 마무리를 서둘렀다.
막판 스퍼트를 하듯 연필심이 종이 위를 내달리는 소리가 뚝 끊기면서,
"끝!"
이부키가 외쳤다.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시마는 그 명랑한 목소리에 퍼득 고개를 올리고 입을 열었다.
"보고서 내고, 같이 가자. 너네 집이든 내 집이든."
"아, 시마쨩. 그러려고 남았어? 미안, 나 오늘 돌아가면 계속 잘 거야."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난 좋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눈도 귀도 다 한계! 정말 무리!"
졸음으로 누덕누덕해진 말에 돌아온 건 예상치 못한 거절이라 시마는 눈을 끔뻑였다. 그야 연인의 찐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지쳤다고 거절할 수 있지만, 사적인 순간을 안온하게 함께 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체온을 맞대고 있는 걸 무척이나 즐기는 애가? 그렇지만 그 뒤에 따라붙은 이유를 들은 우수한 두뇌는 평소보다는 느리더라도 착실하게 답을 추론했다.
"감각과민 때문에?"
"아, 응응, 그거! 지금도 쫌 많이 아니야~. 아슬아슬해. 이제 안 자면 절대로 큰 일 나."
하기사 이부키는 아까 분주소에 돌아오자마자 사물함에서 더 새까만 선글라스를 꺼내다 썼더랬다. 그래서 아까 신입녀석 깨우느라 소리치니까 그렇게 당황해서 달려온 거였고. 시마는 목청을 키운 제 성량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 편이었고, 그건 지금의 파트너에게 있어서 바로 옆 건물에 벼락이 내리친 정도의 소음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거기에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부키는 원래 분주소에서는 제대로 자지도 못하니까 손만 대면 일어나는 거였다. 이부키라면 잘 일어난다고? 바보는 나였군. 아니 근데 잠깐만,
"관사에서 푹 쉴 수 있겠어? 그럴 바에야 우리 집이 나을 걸?"
이부키가 살고 있는 관사는 문자 그대로 값싼 기숙시설이나 다름이 없어서 양 옆 방은 물론이요 윗집 아랫집의 생활소음도 들리곤 했다. 저 자신에게도 들리는 생활소음일진대 전원주택 뒷마당 깊숙이 있는 우물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고, 공정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사소한 오차범위 내의 엔진음을 정확하게 구분하며, 때때로 무전이 들리는 것보다 빠르게 입전을 확인하곤 하는 이부키의 청력이 그 사이에서 편히 쉴 수 있나. 시마는 이왕 내친 김에 말을 더 쏟았다.
"우리 집에 방음실 있는 거 알잖아. 거기서 자는 건 어때?"
관사보단 조용할 거야. 매트리스도 깔아줄게. 네 담요 챙겨가도 좋고. 이유를 덕지덕지 붙이긴 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애인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부키 아이는 그걸 꿰뚫어보지 못할 위인이 아니라서, 피로로 꺼멓게 죽었던 표정 위로 벌써부터 하얀 미소를 퐁퐁 띄우고 있다.
"오늘의 시마쨩은 다정마인이네~. 아닌가, 일 모드를 끈 건가?"
"난 항상 널 걱정해. 너도 비슷하잖아."
"우와, 시마, 피곤하면 그냥 떠오르는 생각 다 뱉는 타입? 평소처럼 어렵게 말 안 하네!"
"그래서 올 거야, 안 올 거야?"
"앗, 갑니다, 가요! 히히."
180cm짜리가 등 뒤에 다가와 어깨 위에 턱을 얹었다. 무겁다, 떨어져라, 나도 힘들다 하고 타박은 줬지만 시마도 진심을 다해 떨쳐내려 든 것도 아니었다. 한쪽 귀만이라도 제 목이며 어깨에 대고 막은 티가 나는데 이걸 어떻게 떼어놓나. 오히려 속이 쓰리기도 했다. 지금 이건 404의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약점을 감추는 거니까.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지낸 세월이 길다보니 그렇게 안 보여도 이부키 아이는 경계심이 많은 편이다. 차라리 바보같아 보일지언정 약점은 죽어도 들키지 않으려 드는 야생 들개. 얼른 재워서 컨디션을 돌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걸음이 괜히 조급해졌다.
맨션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이부키는 흐읍, 숨을 들이키고서는 헤죽 웃었다. 그리고는 안심되는 냄새가 가득해서 좋다며 중얼거리더니 DVD감상실로 휘청휘청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현관 바로 옆의 다용도실에서 접이식 매트리스를 꺼내던 시마가 그 불안한 걸음걸이에 다급하게 쫓았고, 다행스럽게 걷는 중에 골아떨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매트리스 깔아준다고 했잖아. 맨 바닥에 요 깔고 자는 건 몸이 배겨서 별로라며."
"그-치만, 지금 내 상태로도 정말 조용할까 궁금했단 말야."
"그래서, 어때?"
피로감으로 아무 소리나 마구잡이로 주워담기 시작한 이부키의 청각도 쉴 수 있을만큼이냐고 묻는다면, 시마는 솔직히 말해 자신이 있었다. 형사 드라마 보기를 취미로 삼고 있는만큼 음향과 환경조성에는 엄청나게 공을 들였으니까. 안 그러면 처음부터 이부키를 부르지도 않았다.
이부키는 잠시 방을 한 바퀴 돌고서는 눈을 깜빡였다. 거의 안 들리네. 작게 중얼거린 말은 벽의 흡음제에 묻혀 거의 스러졌다. 거의, 라는 건 OK라고 봐도 되겠지. 시마는 그대로 방문을 닫았다. 이 방의 진가는 문을 닫고서부터다.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이번엔 이부키가 "응?" 하면서 시마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놀란 눈치여서 절로 웃음이 샜다.
"우와, 우와! 이게 뭐야? 이렇게 안 들리는 공간은 진짜로 처음이야! 맨날 영화본다고 뭐 틀어놔서 신경 안 썼는데, 이렇게 하니까 엄청 조용해!"
"감상실에는 돈 좀 발랐으니까. 베개 가져올게. 잠깐만 있어."
"응! 이정도면 딱 붙어있는 방들 발소리 정도만 들릴 거 같아. 완전 좋아~. 아, 멀티탭 꺼도 돼?"
"맘대로 해. 지금 쓸 것도 아니니까."
아주 안 들리는 건 아니구만. 그래도 저 정도 반응이면 선방하고도 남는다. 베개 건네고 나면 나도 얼른 자야지. 큰 건을 해치우자 머릿속이 푹신푹신하게 녹아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 순간에,
"시마, 베개는 두 개~."
"응? 왜?"
"여기 너무 조용해서 장기 움직이는 소리까지 다 들려."
"하?"
"그러니까 여기 있어. 시마쨩 어차피 자기 전에 조금은 책 읽을 거지?"
상상하지도 못한 이유가 튀어나왔다. 겪지 않으면 모른다는 격언을 이렇게까지 실감하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 원래 장기는 계속 움직이긴 하는데 그것도 지금은 선명하게 들린다 이 말이지. 수사하면서 혹은 검시참관 중에 봤던 장면이 청각과 뒤섞여 떠오르는 건 끔찍하다. 오감이 선명하다면 더더욱 심하겠지. 잘 들린다는 거, 진짜 무지막지하네. 덕에 한 숟갈쯤 잠도 달아났다. 여전히 졸려서 죽을 지경이긴 하지만 짬짬이 보고 있던 추리소설의 해설 편은 끝낼 수 있을 수준으로.
이부키가 이 일련의 사태를 예상하고 꺼낸 말은 아닐 것이고 그냥 직감 따라 툭 내뱉은 거겠지만, 이정도면 어디 돗자리 깔아야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404의 시마 카즈미처럼 저 말을 거칠게 받아쳐야할 의무 같은 건 없다. 시마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섰다.
제 몫의 침구와 소설책까지 챙겨서 돌아온 시마는 이부키의 바로 옆에 대충 기대 앉으며 물었다. 머리회전수가 낮아져 뒤늦게 떠오른 질문이었다.
"근데 내가 있으면 그, 움직이는 소리 두 배 아냐?"
"시마는 괜찮아. 안심되니까."
대답은 단칼에, 선명하게 그어졌다. 생명선처럼.
"...그러냐. 신뢰받고 있네, 나."
"아이쨩의 사랑도 받고 있습니다~."
"그래그래. ...잘 자, 아이."
"응, 카즈미도."
잠깐 멈칫해버릴 정도의 단호한 신뢰에 잠시 말문을 잃었으나 시마는 예전처럼 그것을 회색빛 안개 속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 저 따위에게 주어지긴 너무 귀한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낮추어버리면 파트너가 건넨 이 반짝이는 것들의 가치를 부정하게 되는 것을 아는 탓이다. 그렇게, 더는 마냥 죽고 싶어하지는 않게 된 시마 카즈미에게 이부키 아이는 제 이름 같이 싱그러운 애정을 더더욱 듬뿍 얹어준다. 이래도 괜찮나, 싶다가도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잠에 드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어떠냐 싶어지는 거다.
그럴 수밖엔. 변한 것은 시마 카즈미만은 아니었으므로. 상처를 입은 야생동물은 제 부진을 숨기고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기 마련이다. 이부키 아이가 제 앞에서 감각과민증을 호소한 것도, 먼저 푹 잠들게 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힘입어 앞으로도 차근차근 살아내겠지.
행복에 이름을 붙이라면, 분명히 지금 제 옆에서 웃으며 잠든 이 얼굴이 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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