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404] 트위터 조각글 백업

논커플링 / 시마 카즈미, 이부키 아이, 이부시마 조각글 백업

MIU404 by 시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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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 업로드한 조각글들 백업입니다.

  1. 칼에 찔린 시마

  2. 머리깨진 시마

  3. 루프하는 이부키

  4. 여름청춘AU 이부시마 논컾

  5. 이부시마 논로맨스 단문


21.10.30 칼에 찔린 시마

https://twitter.com/Gopsl_Hoshino/status/1454262709856309255

주의 : 유혈, 상해

범인과 대치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흉기를 든 범인과 대치하는 건 더더욱 그랬다.
다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경찰은 그런 위험한 범인을 제압하고 체포하는 것이 일이다.

그러니 이 순간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다. 위험한 임무를 나설 때마다 빼먹지 않고 머릿속으로 그려본 일이다. 그렇기에 시마 카즈미는 어렵지 않게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러면 다음, 이 상황에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가장 이상적인 행동은?

'여기서 잡는다.'

옆구리를 찌른 칼, 빠져나가기 전에 이어진 손목을 재빨리 움켜쥐었다. 뜨끔한 자리에 확 열기가 올라온다. 동시에 손아귀에 힘이 실린다. 찌르는 듯한 통증. 이를 악문다. 상대가 당황한 틈에 반대쪽 어깨로 밀쳐 바닥에 메쳐버린다. 몸속에 파고든 칼이 틀어지며 살갗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다. 체중으로 짓누르고, 허우적거리는 틈을 타 수갑을 꺼낸다. 그 새 범인은 정신을 차린다. 쩔그렁, 쇠붙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 그 위를 새빨간 피가 후두둑 적셔버리며 쇠 냄새를더한다. 칼을 뽑았군. 장기 속으로 공기가 직접 통하는 감각, 눈앞이 아찔해진다. 흉기가 빠지면 출혈량이 늘어난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봐줄 일은 아니다. 이 또한 사실이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입 안을 세게 깨물었다. 힘 조절을 잘못한 건지, 피 맛이 났다.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지원이다. 범인 또한 저항이 심해지고 있다. 끝내야 한다. 시마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오후 7시 33분." 묘하게 발음이 새는 듯했다.
"강도, 상해 및 무기 단속법 위반 용의로 체포한다."

이윽고 수갑이 채워진다. 동시에, 낯익은 남자가 시마의 옆에 선다. 따라오는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잡았... 시마?"

파트너는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아직 경계를 놓을 순 없으니 이쪽은 나중에.
형사들이 다가온 것을 흐릿한 시야로나마 확인하고서야, 범인을 끌고 일어나 넘겨주었다. 부탁합니다. 입가로 뭔가 줄줄 새어나온다. 뭔가라니? 당연히 피겠지. 멍청해지는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자세를 낮추고 환부에 지혈을 시도한다. 금세 손이 흥건해졌다.

"어이, 시마!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별 거 아니... 윽."
"이 자식...!!"
"이부키, 됐어. 끝났어."

당장이라도 범인에게 튀어나가려는 파트너를 붙잡는다.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돼서 죽겠다는 표정인 저 녀석을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겠지. 어깨를 툭툭 쳐주면서 몸을 일으켰다. 삐걱거리는 몸이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조각난 도자기를 어거지로 맞춰 놓은 느낌. 그대로 찻물을 우리면 틈새로 줄줄 새어나오겠지. 이것 봐, 비슷한 게 흘러나오잖아. 조금 색이 짙은 것 같지만.

'우와. 어지러워.'
"시마!! 그대로 가만히 있어!!"

조금 비틀거렸던가? 걸었다간 역효과일 것 같아서 결국에는 멈춰섰다. 손사래를 쳤던 것도 같다.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마도 구급차에 신고하는 거겠지. 그래도 출혈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걸 보면 큰 상처는 아닐 것 같고. 다행히 팔다리를 다친 게 아니니 회복 후에도 문제는 없겠고. 아, 조금 꿰매려나. 보고서에 부상 정도를 기입해야 할테니 의사에게는 따로 말해둬야겠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며, 시마 카즈미는 병원에 도착해서야 눈을 감았다. 

21.10.31 머리깨진 시마

https://twitter.com/Goso_Hosino/status/1454472478009356288

주의 : 유혈

뜨끈한 액체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시야가 붉다. 10년쯤 된 공포영화의 조잡한 필터를 빌려온 것만 같았다. 하지만 느긋하게 감상할 때는 아니었다.
점차 멀어지는 다급한 발소리. 시마는 휘청이던 몸을 가누고 그 소리를 쫓았다. 머릿속의 내용물은 작은 움직임에도 격렬하게 흔들렸다. 뇌를 감싸고 있는 것은 유체. 굳이 체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시마는 속도를 올린다. 뚜껑이 깨졌다면 내용물이 흘러 넘치기에는 충분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시마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만이 사실이었다.

물 먹은 휴대폰처럼 시야가 침식되어갔다. 가물가물하더니 점차 변색되기 시작한다.
아니, 휴대폰이 아니라 노트북인가? 비프음에 버금가는 요란한 소음이 고막을 침범했다. 눈에서, 그리고 귀에서 이어진 신경들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머릿속을 찔러댔다. 시끄러워, 눈 아파, 조용히 해, 꺼, 끄라고, 순식간에 떠오른 말들은 한 글자도 입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깨진 이마 틈새로 줄줄 흘러내린다.
잠깐 전원이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벽을 짚고 주저앉아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머리가 울린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젠장... 제대로 맞았네.
자신이 판단을 잘못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뒤에서 덮쳐오는 용의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 용의자의 매복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장소에서 충분히 경계하지 않은 것? 신고받은 장소를 의심하지 않은 것? 신고자의 목소리에서 수상한 기색을 눈치채지 않은 것? 범인에 패턴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지 않은 것? 전달받은 서류를 한 문장 한 문장 면밀히 분석하지 않은 것? 제기랄... 머리가 안 돌아가. 그딴 거 말고 지금 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는 거더라? 이럴 때 나는 뭘 했지. 할 수 있는 게 있나? 정신이 멍하다. 누군가 뇌를 먹어치우고 있다. 내 머리에서 나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대답한다. 나가야 할 건 너야.
웃기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시마는 찌끄러기같은 뇌세포를 긁어모아 다시 전원을 켠다. 시간이 없다. 또 주도권을 뺏기기 전에 끝내야 한다. 가까스로 손을 움직였다. 허용된 행동은 단 한 번. 착신음이 끊기면,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낸다. 

22.09.01 루프하는 이부키

https://twitter.com/Gopsl_Hoshino/status/1565350677924450305

여느 때처럼 가마 씨의 면회를 거절당한 날 밤, 맥주를 들이키다 잠들었던 이부키는 4월 5일 아침에 눈을 떴다. 그날은 자신의 4기수 첫 출근 날이기도 하고, 은사의 가족이 붕괴된 날이기도 했다. 

진짜냐.. 
메일함도 메시지함도 그 날의 그 시간이었다. 눈을 깜빡이던 이부키의 몸이 침대에서 튀어올랐다. 신발에 발도 제대로 꿰차지 못한 채 이부키는 달렸다. 반년의 시간동안, 매일은 아니더라도 몇 번씩이나 내달린 길.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이제는 몸이 기억하는 길. 

가마 씨, 레이코 씨. 뭐야, 이부키. 아침부터 이렇게 뛰어오고. 기수 첫 출근 날 아니니? 
그야 그렇지. 발이 빠르니까 지금 당장 뛰어가면 제시간에 맞출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부키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속좋게 웃으면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내일이에요, 내일. 저, 부탁할 게 있어서. 

어떻게인지 모르겠으나, 시간을 거스른 이부키는 레이코 씨를 지키는 데 성공했고, 그것은 곧 은사를 지키는 데 성공한 것이기도 했다. 이부키의 은사는 적어도 이부키의 기억에서만큼 처참하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그 무렵 시마 카즈미는 범인을 뒤쫓고 있었다. 그는 범인이 던진 스패너를 피하지 못했다. 
이부키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4월 6일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부키는 다시 4월 5일의 아침을 맞이했다. 

이부키는 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마 씨, 레이코 씨 옆에 계시죠. 오늘은 절대 밖으로 나가시면 안 돼요. 아시겠죠. 나가시면 안 돼요. 신신당부한 채 이부키는 신발을 마저 신지도 못하고 다시 내달렸다. 익숙한 곳. 익숙한 목소리.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을 보기 위해. 
그 날 내가 어땠더라, 차 앞에 앉아서 기다렸던가, 모르겠다. 다 상관없었다. 살아있는 파트너를 봐야 했다. 저멀리 아는 얼굴이 보이자마자 반가움에 달려들었다. 시마! 제대로 신지도 못한 신발이 저 멀리 날아갔다. 
잠, 잠깐, 절 아십니까? 시마, 아는 사이야? 오늘 처음보는데요! 약간의 소란. 기이할 정도로 반가워하는 파트너. 퍽 당황스러워하는 얼굴, 반가운 얼굴, 안심한 얼굴. 이부키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날아오는 스패너를 피한다. 범인을 잡았다. 총 대신 장난감을 겨눈다. 시마와 대치한다. 
엄숙한 선언을 하고 나면, 시마가 달려들고, 체인지 앤드 소울ㅡ! 

그 무렵, 어느 남자가 가마 씨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갔다. 이부키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4월 6일이 저물어갈 때였다. 
이부키는 다시 4월 5일의 아침을 맞이했다. 

그 무렵, 시마 카즈미는 난폭운전자를 막아서다 뒤집힌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부키는 다시 4월 5일의 아침을 맞이했다. 
그 무렵, 가마 씨가 자리를 비운 틈에 괴한이 침입했다. 
이부키는 다시 4월 5일의 아침을 맞이했다. 
그 무렵, 시마 카즈미는 

이부키. 하고 파트너의 이름을 불렀다. 발 빠른 기수대원이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제시간에 맞추지 못한 것보다 제시간에 맞출 것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야. 충분히 알고 있잖아?

이내 턱짓으로 아래를 가리킨다. 그의 파트너는 고개를 숙여 엉망이 된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신발, 그렇게 신으면 넘어질 거 아냐. 네 몇 없는 장기가 속도인데, 그것도 못 챙기면 어떡해? 
그렇네. 이부키는 신발 뒤꿈치를 당기고 발을 꼭꼭 우겨넣었다. 운동화끈을 풀고 다시 매었다. 

다시 달릴 준비 됐어? 
응. 


이부키는 4월 5일의 아침을 맞이했다. 
1년이 지난 날이다. 

22.09.20 여름청춘AU 이부시마 논컾

https://twitter.com/Gopsl_Hoshino/status/1571877989947961346

로맨스여부: 이부키O 시마X / 연애여부: △ / 성적접촉여부: O

※※※※이쪽 시마는 에이로맨틱입니다 쌍방로맨스로 먹지말아주세요!!!!!!※※※※
쌍방로맨스가 아니어도 CP다! = CP로 드셔도 됩니다
쌍방로맨스여야 CP다! = CP로 드시지 말아주세요
아무튼 가져가서 '이러다 시마도 제대로 감겨서 이부키랑 같은마음이 되고 어쩌고 이게연심이 아닐수없고 어쩌고' 만 안 하시면 됩니다 

여름, 햇빛 아래. 시마와 이부키는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물고 질겅거리며 시마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곧잘 놀러가곤 했다. 시마의 집에서 많은 일이 있기도 했다.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도 하고.
이부키는 시마를 사랑한다고 했다. 시마도 이부키를 사랑한다고 했다. 이부키는 무척 기뻐했고, 시마는 그럴 일인가, 하면서도 덤덤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뒤로 뭔가 특별히 달라지진 않았다. 두 사람은 늘 그렇듯이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읽고, 공부도 했다.
그러니까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오늘도.

"시마, 우리 그거... 해볼래?"
"뭘?"

고작해야 밴드 동아리 가입, 스케이트보드 타보기, 아이스링크 가기 따위의 평상시 이부키가 제안했던 것들을 떠올린 시마는 무슨 대답이 나올지 상상도 못한 채 대수롭잖게 되물었다.

"그거~ 있잖아."
"그러니까 뭐."
"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 말야!"

그 말에 시마는 여전히 예상조차 못하고 '이 자식 또 장난치려고 이러나?' 따위의 생각을 한다. 내가 섹스라고 생각할 거라 여기겠지. 그러면 뭐 그런 말을 하냐면서 낯뜨거워 할 거라고, 거기다가 낄낄 웃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시마, 응큼해! 에로마인!' 같은 농담이나 하면서 본론을 꺼내려는 거겠지. 다 예상이 갔다. 그럼 자기가 선수치면 되지. 시마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다.

"뭐, 섹스?"
"시마!! 난 거기까지 생각도 못 했는데!!"

능글거리며 이죽일 생각을 하던 시마는 예상과 조금 어긋난 대답에 의아한 눈치를 띈다. 무슨 의미야, 저건?

"그럼 뭐?"
"....키. 키스."

우뚝.

"...."
"...."
"...."
"....시마?"

이부키는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 그런 냄새가 났다. 섹스를 언급했던 것치고 키스에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건 아닐테다. 적어도 저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키스가 낯뜨꺼워서 지은 것은 아닐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부키가 한 발짝 다가간 순간 시마가 뒤로 물러났다.

"시마?"
"이부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거 같은데."

이부키는 미간을 좁힌다. 시마가 하려는 얘기가 뭐지?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나는, 네가 생각하는 분류의 사랑을 말한 게 아니라... 나는, 그러니까."
"...."
"....미안."

이부키는 시마를 뒤쫓아 한 발짝, 옮겨간다.

"나는 상관없어, 시마."
"내가 상관이있어, 네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단 얘기야."
"어째서?"
"난..."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네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하지만 이 '사랑'은 네가 기대하는 사랑이 아니야. 그러니까 이건,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야.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어"

이런식으로 포기하고 다시 한 번 뒷걸음치는 시마, 그걸 따라잡으면서 또 입을 여는 이부키.

"뭐를? 제대로 설명해줘, 혼자 판단하지 말고. 나는 다 들어줄 수 있어. 그건 어렵지 않잖아. 감정이 같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시마는 난감하다. 감정이 같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듣는 것만은 그럴지 몰라도, 그 말을 듣고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기대를 배신당하고, 그 마음을 추스리는 건 감정이 같지 않아서 생기는 '불상사'잖아. 그런 일은 원하지 않아.
진작 눈치채야 했는데. 그날 알아차려야 했는데. 없었던 일이어야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 관계는 안전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의 불안해진 관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시마는.

"시마."

그러고 있으면 자신의 손을 잡는 이부키가 있다. 자신을 '지금' '이 장소'로 끌어서 데려오는 이부키가 있다. 시마는 이부키의 이런 점을 사랑했다. 언제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살고 있고, 넘어졌다가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고,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흔쾌히 건네어줄 수 있다는 점을. 그런 빛나는 점들을. 시마는 마음이 아리다. 시마에게도 욕심은 있다. 이부키를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은.

"...이부키. 나는 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
"상처 안 받았어."
"모르는 일이잖아. 내가 무슨 얘길 할지, 네가 무슨 얘길 들을지 어떻게 아는데?"

시마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거부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거절당한 사람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와 어긋났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미 파악했다고 시마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부키에게도 솔직할 수 없었다. 이부키가 떠날 것 같았다.

"무슨 얘기 하려는 건지 알아. 날 사랑한다는 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는 거잖아?"
"...."
"그래도 상관없다는 거야, 나는. 시마랑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도망가지 마."
"...."

시마는 머릿속이 하얘진다. 같이 있고 싶다고. 감정이 어긋난 채로. 너를 영원히 실망시키는 채로. 그게 가능할까?
그렇게 해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시마의 흔들리는 시선이 이부키를 향한다.
고개를 숙인 채 시선만이 올라가 이부키를 바라본다.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두 눈과 마주친다.
시마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다시 입을 연다.
그리고 발뒤꿈치를 들어 이부키의 입과 겹쳐버린다. 시마의 눈이 감기고, 이부키의 눈이 커진다.

첫 키스. 처음으로 해보는 행위. 누군가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것. 누군가는 매일 상상했던 것.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자리에서, 엉거주춤 벌린 입에 혀가 침투하고, 어렵사리 안을 헤쳐나가려 한다. 어느샌가 이부키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시마의 손에 힘이 실린다. 다짐이라도 한 듯. 주먹이라도 쥘 듯.
이부키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뻔하다가, ...
힘을 실어 시마를 밀어낸다. 어깨를 꽉 붙잡고 저항하는 시마를 억지로 떼어낸다.

둘 모두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숨이 거칠었다. 이부키는 여전히 시마를 바라본다. 시마는 여전히 아래를 향해있다.

"뭐 하는 거야, 시마."
"...하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을 생각도 못 했다. 입술을 겹친 순간 시마는 자각했다. 이건 무리라고. 자신에게 불가능하다고. 그럼에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부키를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시마가 헛웃음 아닌 웃음을 지으며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할만하네."
"뭐?"
"키스, 할만하다고."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건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시마는 그렇게 말하려 했으나. 이부키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그제서야 발견한 뒤였다. 이부키는 뭐랄까. 화가 난 것 같았다. 키스하자고, 거기에 응했는데도.

"이건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 거야."
"아무튼 아니야."

뭐 이런 어려운 녀석이 다 있냐고. 기껏 그런짓까지 했는데.
억지로 하는 티가 너무 많이 났던 걸까. 능숙하지 못해서였던 걸까. 숨겨야 했던 걸까. 이미 늦은 걸까.

"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시마랑 키스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아까 키스하자며."
"아까는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거보다 얘기가 하고 싶어."

시마는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다 되물었다. 이 녀석의 고집은 사랑스럽고 끈질기다. 슬슬 화가 난다.

"무슨 얘기가 하고싶은데."

이부키는 제자리서 서성거리기 시작한다. 뭐 하는 거야.

"시마는 나를 사랑한댔지."
"그래."
"그런데, 내가 가진 사랑이랑.. 다르다? 고 생각하는 거지?"
"...."
"꺄꺄도 우후후도 아닌 거잖아? 맞지?"

시마는 한숨을 쉰다. 없었던 일로 만드는 길이 생겼다. 곧바로 대답한다.

"꺄꺄도 우후후도 할 수 있어."
"아니아니, 할 수 있는 거랑은 달라. 꺄꺄~~랑 꺄꺄. 의 차이랄까. 응. 달라."
"무슨 소리야... 아까 키스도 했잖아."
"그러니까, 그것도 우후후하기보단 음. 에 가까운 느낌이었다고. 시마, 사실은 하기 싫었던 거 아냐?"

빌어먹을 감은 무슨 말을 해도 자기가 알아듣는 대로 듣는다. 문제는 그게 꽤나 핵심에 근접한다는 거였고, 자기 의도대로 전달시키기가 어려운 건 시마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시마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한다.
솔직하게 집어 던져 버리면, 조금만 더 가볍게, 다른 말은 덜고서. 그렇게 던지면 오히려 핵심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오독해주지 않을까. 그럼 안될까.

"너니까 괜찮았어."

이부키는 걸음을 멈췄다. 시마를 다시 바라본다.

"너니까 키스도 섹스도 할 수 있어. 뭐.. 너를 사랑하니까. 그건 사실이야. 그러니까 네가 원한다면, 의 이야기지만."
"그래서?"
"뭐가?"
"아니아니, 이상하다니까. 난점이 안맞잖아. 내가 말하는 건."
"난점이 아니라 논점이겠지. 뭐가 안 맞는다는 건데?"
"그러니까 들어봐. 내가 말하는 건, 시마가 하기 싫었던 거 아니냐고 물었잖아?"
"그래서 괜찮다고 했잖아."
"아니! 아니지! 시마는 바보야?"
"하?"
"괜찮다랑 싫다 좋다랑 다른 얘기잖아! 괜찮다는 괜찮다고 싫다와 좋다는 싫다와 좋다잖아!"

강은 강이고 물고기는 물고기고.. 같은 소리에 황당해진 시마는 미처 대답을 못했고, 그 사이 이부키는 제가 할 말을 해버린다. 늘 이런 식이다.

"시마가 날 사랑하는 것과 내가 시마를 사랑하는 건 다르다는 거잖아! 근데 봐봐, 꺄꺄 우후후를 하고 싶은 건 달라도 호근호근을 하고싶은 건 같지 않아?" "호근호근은 또 뭐야?" "그러니까 서로 원하는 걸 하고 싶어한다는 거잖아! 시마도 내가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고 나도 시마가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는 거잖아! 그건 같잖아? 그럼 상관없는 거잖아? 내 말이 맞잖아?"

늘 이런 식이다. 시마와 이부키의 대화는. 시마가 숲을 보고 있으면 이부키는 나무를 본다. 시마가 나무를 보고 있으면 이부키는 나뭇잎을 본다.
어린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언제나 시마는 전체를 보려 하고, 이부키는 일부를 보려 한다.
그렇기에 본질에 근접한 건 이부키다.

"나는 시마를 사랑해. 그리고 시마도 나를 사랑해. 그럼 뭐야? 그럼 된 거 아냐?"

그리고 이부키의 그런 점을 시마는 사랑했다.

"뭐가 됐다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웃어버리고 마는 거였다. 결국 그에게 같은 마음을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주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사랑스러운 상대에게. 

22.12.24 이부시마 논로맨스 단문

 https://twitter.com/Gopsl_Hoshino/status/1602717313395875840

주의 : 창작 외관 묘사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은 아무리 봐도 사납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풀어진 분위기와 심각하지 않은 상황 덕분에 그런 거겠지만. 그런 형태의 얼굴을 시마는 기억했다. 쌍꺼풀 없이 두꺼운 눈매, 짙은 눈썹, 처진 눈꼬리. 홍조 띤 웃음과 섞이면 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지는 얼굴. 이부키 아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너 얕보는 거야?'

그 얼굴이 일그러질 때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시선이 가라앉고, 그늘이 짙게 내린 채, 턱근육에 힘이 실린 투박한 형태를. 길게 내린 앞머리가 시야를 가리면 더더욱 어두운 낯빛이 된다. 그럼에도 서늘할 정도로 희번득하게 뜨고 있는 눈은, 순진한 얼굴과 동일한 모양인데도, 아이의 것보다는 야생동물의 것에 더욱 가까운 느낌이었다. 물어뜯기 직전의 들개 같은 눈.

'그럼 되받아쳐.'

그 눈이 시마를 똑바로 향한 것은 두 번이었다. 아오이케 토코를 뒤쫓아 버스에 숨어든 야쿠자들을 제압했을 때에 한 번, 오쿠타마로 돌려보내자는 진언을 했다고 말했을 때 한 번. 반년 새 두 번 정도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앞으로도 드물면 드물었지, 자주 일어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그런 짓,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했잖아."

5분 전, 난간을 등진 범인은 시마와 이부키에게 식칼을 겨누고 있었다. 범인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요청한 지원 인력과 함께 무리 없이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마는 범인에게 다가갔다. 날붙이에 서슴없이 맞선 채 범인을 붙잡으려 했다. 무리한 시도였다. 시마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어."
"왜?"

시마는 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 없이 다물었다.
-범인이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뒤로 갔으면, 추락하고 말았을 테니까.
그런 대답을 입밖으로 내지 않은 채 목구멍 안쪽 깊이 삼켜버렸다. 미미한 위스키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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