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달린다 4
언내MIU. 크로스오버 수사물.
** 포스타입에 있던 글을 일단 고스란히 들고 옴(21.11.22~)
* 언내추럴 UDI 랩과 현구 4기수의 크로스오버 수사물, 을 목표로.
* 배경은 MIU404 엔딩 후 약 2년 뒤. 편의 상 역병이 물러난 세계를 가정합니다.
* 공식 및 메모리얼 북 등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은 전부 개인의 상상이며, 원작과 무관합니다.
* 실존하는 지명이 사용되었으나 실재와는 무관하며, 수사나 열차 관련에 대한 지식도 조예가 있지 않으니 적당히 픽션으로 넘겨주시면 감사합니다.
* 논CP라고는 생각하는데, 제가 smibsm를 먹다보니 그런 낌새가 있을지도- 싶습니다.
시마는 이부키의 어마무지한 친화력을 꽤 오래 보아왔다고 자부했다. 만난 지 겨우 삼십 분도 안 된 참고인과도 금방 친해져서 까르륵 웃고 있지 않나, 언젠가는 증인 몇과 안면을 트고 동네의 숨겨진 맛집 리스트를 받아와 저와 도장깨기를 했을 정도다. 살면서 얘 같이 붙임성 좋은 애를 어디서 또 보겠어, 라고 내심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래, 분명 그랬는데.
아키하바라 역에서의 목격증언을 검증하기 위해 출발한 지 겨우 20분. 옆자리의 파트너와 뒷자리의 쇼지가 무슨 20년지기인 것처럼 웃고 떠들고 아주 난리난 모습을 룸미러로 바라보던 시마는 괜히 두통이 오는 걸 느꼈다. 까르륵 깔깔. 쇼지의 옆에 앉아있는 미스미가 평온한 표정인 것으로 보아, 이게 그의 통상운전일 거다.
이부키가 평소보다 더 오두방정을 떠는 까닭도 분명했다. 그야 그럴 것이, 관심사가 통하는 말상대가 있으면 들뜨지 않는가. 이부키는 러닝화와 양말마저 깔맞춤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지만 4기수 내에서 이 화제를 받아줄 사람은 없다. 현 대장과 이런 걸 떠들 수 있을 리 없고, 진바 씨나 이토마키 씨야 애초에 논외다. 401의 신입도 그냥 수수하게 입고 다니는 청년에 불과하며, 저 역시 옷에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부키의 텐션에 맞출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어라, 근데 이부키 형사님. 그 쟈켓, 혹시?”
조수석 방향 뒷문을 열려던 쇼지가 꺼낸 그 한 마디에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멍멍이 귀가 번쩍 솟았다. 이거 꽤 마이너한 브랜드 신상인데 알아봐주는 거야? 와, 이 브랜드 아는 사람 처음 봤어요. 앗, 쇼지 선생님. 말 편하게 해요. 그럼 이부키 씨도 편하게 하는 걸로. 오케이~. 그리고서는 패션을 주제로 한 기관총 토크가 시작됐다. 조수석과 그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고는 생각도 못할 거리감에, 시마는 도중에 갓길에다 차를 세우고 너 그냥 뒷좌석 넘어가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몇 번씩 삼켰다.
갈 길은 아직 멀었으므로 시마는 목울대를 울렁이는 악다구를 삼키고 편의점 옆에다 차를 댔다. 간식을 사온다는 핑계를 대자 슬그머니 미스미도 차문을 열고 나왔다. 그냥 있으시란 말을 꺼내려 했던 시마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저분은 조용한 사람 같았으니 저 토킹머신들 사이에 있는 건 곤란했던 걸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UDI 두 사람을 잘 모르는 제가 멋대로 주전부리를 샀다간 입맛에 어긋난 것을 사거나 최악은 알러지가 있는 것을 고르는 수도 있었다. 여기서는 얌전히 과자며 음료수 선택을 도와달라고 하는 편이 맞을 거다.
원래는 주전부리를 사려고 했지만, 시간을 보니 이대로는 점심시간이 어정쩡하게 뜰 것 같아 샌드위치라거나 도시락 같은 것도 고르는 편이 나아보였다. 이부키와 제 몫을 고르고 고개를 드니, 미스미가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야 애진작에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무심하게 관찰하는 눈일 줄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그럼 아까 주차장에서 말인데요.”
와, 편하게 하라니까 진짜 확 치고 오시네. 어딘가의 서장님을 연상하게 하는 꽉찬 직구에 시마는 속으로 혀를 빼물었다가 가로채가듯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제가 예민하게 군 건 맞으니까요.”
“아뇨, 저희가 먼저 실수한 걸요. 그것보다 제가 묻고 싶은 건―파트너를 꽤 과보호하시는 것 같아서요. UDI에서 뵀을 때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미스미의 담담한 어조에 시마는 눈가를 일그러뜨렸다가 빈손을 들어 눈두덩을 문질렀다.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는 성질이긴 한데, 이놈의 동생 돌보미 기질이란. 동갑내기 파트너를 대상으로 이렇게 된 연유를 털어놓으라면 404 결성 1년 차를 설명해야하는데, 그 해를 한 마디로 묶어서 설명하기는 어렵고 수비의무가 엮이니 제대로 이야기할 수도 없다. 결론은 3초 만에 나왔다. 대충 뭉개자. 시마는 말을 뱉었다.
“제가 아래로 동생이 많아서 그만.”
“사선을 넘었던 적이 있는 건 아니고요?”
시마는 숨을 삼켰다. 완전히 꾸며내냐 마냐는 곧, 이들이 키쿄 씨에게서 한 번 검증받았고 이부키의 레이더에도 별 이상반응이 없었다는 이유로 가볍게 기울었다.
“...법의학자면 뭐, 그런 것도 보이나요. 점쟁이처럼?”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 특유의 느낌이라면 잘 알아서요.”
정말이지 만만치가 않은 사람이다. 시마는 미스미의 말을 속으로 되씹어 읽고선 생각했다. 이쪽도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시마는 빈손으로 머리를 헤집으며 우물거렸다.
“그렇지만, 제가 언제까지 계속 돌볼 수는 없잖아요.”
은근하게 잘라먹었어도 나름 충분히 결론으로 여겨질 대답이건만 미스미는 여전히 평탄한 눈으로 나머지 말을 기다렸다. 제가 전부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릴 눈이라 시마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결국 각오를 다졌다. 조금쯤은 직감을 따라도 괜찮을 테니까.
“저 들개, 아니, 이부키는 꽤 오랫동안 남들한테 경원시되어왔거든요. 사람의 장점을 볼 노력도 없이 그냥 겉보기로 판단해버린 거죠. 그래서 잠깐 화가 났긴 했는데, 쇼지 씨가 바로 사과해주셔서 오히려 놀랐습니다. ...사실 경찰관 주제에 일반인을 그렇게 대해선 안 됐는데요. 죄송했습니다. 쇼지 씨에게도 나중에 제가 사과해둘 테니까요.”
“확실하게, 부탁드립니다. 쇼지는 제 좋은 동료니까요. 그나저나 형사님 두 분 다 상냥하신 분이네요-.”
어깨 힘이 빠졌다. 여하튼 파트너의 장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글쎄요. 저는 몰라도 쟤는 그렇죠.”
“나중에 이부키 형사님한테 물어봐야겠네요.”
“아, 그건 좀.”
지금까지 별 다른 표정이 없다시피 했던 미스미가 시마의 대답에 장난스럽게 웃었다.
404 차량에 돌아오니 아무래도 이부키는 한창 엔진 소리로 지나가는 차 기종 맞추기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쇼지가 눈가를 덮어 누른 상태로 몇 번이고 탄성을 울리고 있다. 미스미는 뒷자리 창문을 똑똑 두드렸고, 그의 동료는 해맑게 웃으며 문을 열어줬다.
“미코토, 들어봐! 이부키 군, 엄청나! 내가 분명 눈을 제대로 가렸거든? 근데도 지나가는 차가 뭔지 바로 맞추는 거야!”
차에 조금 정통하다면 엔진음으로 차종을 맞추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쇼지도 그건 알텐데. 잠깐이나마 그런 생각을 했던 미스미는 곧 이어진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아까 지나갔던 차가, 아무래도 주차할 데 못 찾고 한 바퀴 돈 것 같은데, 그걸 이부키 군이 듣더니 일곱 번째에 맞췄던 그 차가 다시 왔다고 하는 거 있지!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처음에는 차 좋아하는 사람들이 엔진소리만 듣고 무슨 차인지 맞춘다는 게 진짜인가 싶어서 물어본 거였는데 말이지-.”
“뭐?”
“얘가 워낙에 오감이 예민한 편이라서요.”
“그으럼. 시마쨩하고 처음 일한 날에도 결국 내가 맞았잖아?”
“네네, 암만요. 전~부 이부키 아이 순사부장님 공이셨습죠.”
“와, 너무하네! 마음이 하~나도 안 담겨 있어!”
아까 편의점에서는 형 같은 분위기였던 시마가 이부키와 투닥거리는 모양새를 한참 바라보던 미스미는 기억의 어느 단락에 묻혀있던 문장을 끄집어냈다.
“있죠, 이부키 형사님. 쿠구노 씨의 부검할 때 말씀하셨던 아는 사람이 했다는 건 무슨 뜻이었나요?”
저의 물음에 아까까지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던 이부키의 얼굴에서 표정이 싹 빠져나갔다. 무엇을 떠올린 건지 굳어버린 표정근. 가볍게 말을 던지던 그는 선글라스 아래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드디어 답을 했다.
“봤던 표정이라서.”
이부키의 지금 그 말은 만지면 마른 뼈처럼 딱딱할 것 같았다. 미스미는 돌연 룸미러에 비친 시마 형사의 표정을 발견한다. 짓으깨지듯 괴로운 표정이다. 삼켜내는 데에 능숙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이부키는 다시 말을 이어 붙인다.
“자기가 죽을 걸 아는, 천벌이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올 게 왔다는 그 표정이었어.”
나는 기억해. 호리우치의 그 표정. 그 말을 끝으로 이제는 꽤 오래 전에 부검대에 올랐던 어느 시신이 모두의 뇌리에 떠올랐다.
쿠구노의 자택은 치바현 치바시 이나게구에 위치한 이나게다이초에 있다고 했다. 니시무사시노 서에서 출발하면 대략 2시간 거리이다. 지금 서에서 출발하면 점심이 어정쩡해지니, 401은 이르게 식사를 하고서 그곳으로 향했다.
쿠구노의 사망소식은 시신 발견 후 관할서에서 유가족에게 전달했었고 그 길에 해부허가를 받았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아내는 오늘 방문하겠다는 진바의 전화에 오신다면 이것저것 설명 부탁드린다고 물 먹은 목소리로 답했었다. 스피커폰이었기 때문에 401호 안에는 유가족의 실의가 시퍼렇게 채워졌고, 신입과 쿠베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내내도록 말이 없었다.
주택가 근처에 적당히 차를 대놓고 내린 진바는 곧장 경찰수첩을 꺼내들고 쿠구노 가의 초인종을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아까 전화 드렸던 경찰입니다.”
―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쿠구노의 아내, 미치에였다. 쿠구노보다 네 살 어린 마흔 셋. 마흔 중반으로 접어드는 그는 충격적인 소식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탓에 훨씬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어깨선에 닿는 굵은 웨이브 진 머리칼도 꽤 부산스럽다. 유족들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다. 진바는 다시 한 번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미치에의 안내에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등 뒤에 서 있던 나카도와 쿠베에게도 눈짓한 것은 덤이다. 구부정한 등으로 발을 내딛는 나카도를 쿠베가 붙들었다.
“잠깐. 나카도 씨.”
습관적으로 욕설을 내뱉을 뻔했던 나카도는 자리에 있지도 않은 임상병리사가 “벌금 천 엔~.”하고 말하는 듯한 착각에 손을 움켰다가, 그 대신에 눈을 부라리며 쿠베를 노려보았다.
“그 키교라는 사람이 동행허가도 냈다는데 뭘 꾸물거려.”
“그게 아니고, 절대로! 절대로 막말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꼭이에요??”
“네가 내 보호자 같은 거라도 되나?”
“소장님도 미코토 씨도 부탁했으면 그 비슷한 거는 되지 않겠어요?”
허, 이 자식이 진짜. 그날 밤 테라스에서 제 의지를 꺾어낸 이래로 쿠베 로쿠로 이 녀석은 꽤나 심지가 굳센 놈이 됐다. 결국 UDI 오피스에 기가 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어서 이놈이나 저놈이나 전부 저를 무슨 동네북마냥 두드리곤 했지만, 뭐, 기가 죽어 피들거리는 것보다는 낫다. 한번 울컥 올라왔던 것이 스르륵 풀렸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 채로, 나카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고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화다닥 따라오는 발소리에 피식 웃음을 흘린 것을 쿠베는 전혀 모를 것이다.
잘 꾸며진 응접실에는 구석마다 조금씩 손이 덜 닿거나 엉성한 데가 있었다. 집안일로 도피했다가 실패했던 흔적 아닐까 싶어 쿠베의 표정이 어둑해지자 미치요가 그의 시선을 읽고선 강잉하게 웃었다.
“뭘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순경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엄마 힘들 거니까 딸아이가 막내하고 집안일 거들어줬거든요.”
“아, 그런가요.”
“그것보다 그이는 어떻게 된 건가요, 형사님.”
4인조 중에서 유독 어려 봬는 쿠베를 순경으로 착각한 듯 했지만 굳이 아무도 정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절박하게 물어오는 그에게 진바가 진정하라는 듯이 손짓하고서 파트너에게 눈짓했다. 너도 실무는 경험해봐야 한다며 유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일은 맡긴 터였다.
“부군께서는―.”
전달할 수 있는 선까지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간 401의 막내가 이야기의 끝에 고개를 숙여 다시금 조의를 표했다. 미치에는 희게 질린 얼굴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가 몇 분 뒤에 고개를 들었다. 젖은 눈 안에는 범인에 대한 분노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후에 쿠구노에 관련된 증언을 들은 건 진바였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받아 확인한 점은 마지막으로 연락됐을 때의 정황과 짐작이 가는 원한관계 그리고 신원미상 A를 혹시 아는지였다.
― 남편하고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건, 6일 전 자정이에요. 그러니까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오는 그 때요. 아뇨, 별로 특별한 건 없었어요. 기차역에 있다고 했었고, 히타치 야키소바 세트를 사가겠다고. 회사 당직실에 들렀다가 아침 전철로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오지 않았고요. 아, 그렇지만 남편은 원래 회사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면 하루이틀 정도는 연락도 다 끊고 일에 골몰하긴 했었어요. 애사심이 깊었거든요. 작년인가부터 인정받기도 했고요.
아, 회사 쪽도 다른 형사님들이 조사 중이라고요? 음, 잠시만요. 그게 언제부터였지. 그래, 8개월 쯤 전인 것 같아요. 결혼기념일이 있던 달이었으니까 틀림없어요. 그때부터 성과급이나 보너스를 현금으로 들고 왔었어요. 회사가 잘 되고 있다고,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다고 웃었는걸요.
...남편의 회사 동료 분들하고는 만나본 적이 없어요. 외국계열 회사는 친목을 도모하는 분위기는 아니라면서요? 그이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서 원한관계는 잘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어디에 해코지하고 다닐 사람도 아니고…. 바람이요? 설마요. 퇴근 후에 바로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하고 보냈는걸요. 출장 가더라도 항상 사진도 연락도 잊지 않았어요.
미치에가 거기까지 증언했을 즘, 갑자기 우당탕하고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성인보다는 가벼운 발소리의 주인공은 여자애와 남자애였다. 미치에의 입매와 쿠구노의 눈썹을 꼭 닮은.
“노리코, 쵸헤이.”
노리코라고 불린 여자애는 물 먹어 부릅뜬 눈을 하고 무서운 기세로 나카도와 쿠베가 있는 데로 향했다. 401은 응접실 탁자에 막혀있어 그런 듯 했다.
“형사님들이죠? 우리 아빠를 죽인 사람, 꼭 잡아주세요!”
“…잡아주세요.”
분노와 설움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누나의 뒤로 얌전하고 순해 보이는 남동생이 슬금슬금 다가와 같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아이들은 방에 있으라고 했는데도. 얘, 형사님들 당황하셨잖아. 돌아가.”
“싫어! 난, 난…. 우리 아빠 죽인 사람을 찾으면, 절대―,”
새까만 두 눈에 들이찬 살의가 빼곡했다. 부조리한 죽음은 결국 분노의 트리거다. 아까까지 난 경찰이 아닌데 하며 허둥대던 쿠베는, 옛날 곁의 동료가 보였던 그 눈을 떠올리며 다급하게 몸을 숙여 노리코의 손을 붙들었다.
“죽이면 안 돼. 그건, 지는 거야. 나는 네가 그렇게 지는 걸 보고 싶지가 않아. 너희 아빠한테 잘못한 사람은 법이 심판하게 해야 하는 거야. 엄마도 동생도 있는데, 너까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면 안 돼. 알았니?”
미코토 씨가 했던 말이지만, 그 절박함은 똑같다. 제발, 이 애가 분노와 절망에 지지 않길. 이 마음이 닿길. 그 일념으로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노리코가 바닥에 무너지듯이 쓰러져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어 쵸헤이도 이끌리듯 주저앉아 훌쩍훌쩍 울었다.
신원미상 A는 쿠구노 일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끝으로 방문은 종료되었다. 401호 차량에 앉기가 무섭게 401의 막내가 긴장으로 굳었던 어깨를 풀며 툭 내뱉었다.
“평범한 가정이었네요.”
“그건 아무도 모르지. 인간의 껍질을 쓰고 야차인 놈은 얼마든지 있어. 당장 저 집 가장은 조폭의 자금을 책임진 놈 아닌가?”
“나카도 씨! 정말이지, 그래도 유족인데요!”
“틀린 말도 아니고, 면대면으로만 안 말했으면 됐지. 형사님들이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도 입 다물었을 뿐이야.”
하긴, 결국 유가족에게 알릴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쿠구노가 다니는 회사가 조폭과 관련이 깊은 곳이고 그 사람이 회사돈이자 B의 돈을 횡령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쌍동회도 애시당초 여기를 털고 이전할 작정이어서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아갔던 건을 트집삼아 적당히 떠나게나 해달라고 할 기색이라고 들었으니, 이 집에 위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았다. 집으로 현금을 가지고 왔다는 시기가 4월, 횡령을 처음 시작한 게 3월이었다는 수확은 조대 측에 보냈고 거기서 알아서 마무리를 해줄 거였다.
축 쳐진 분위기가 오전 중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진바는 시동을 걸며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원래 인간은 복잡하지.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수사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세어야 축나지 않아. 그리고 월권도 안 되지. 유족들의 남은 삶은 그 사람들이 꾸려나가는 거다. 알겠어?”
미약하게 끄덕이는 두 머리통을 흘끔 확인한 진바가 401호를 출발시켰다.
“401에서 본부에게. 쿠구노 일가 청취 후 귀환합니다. 말씀하세요.”
― 본부에서 401에게. 확인했습니다.
404 일행이 청취를 담당하게 된 사람은 토네 아야노였다. 쿠구노가 출장지에서 돌아올 때 츠쿠바 익스프레션을 운행한 차장은 만날 수 있냐는 말에 스케줄을 조정하면 가능하다고 했고, 오후 2시 15분 쯤해서 오면 된다는 답을 남겼다.
마흔 여섯의 베테랑 차장인 토네는 무척이나 온화한 사람이었다. 나이에 비해 빠르게 머리가 세었는지 역장모 아래의 머리칼은 대부분이 은회색이었다. 나긋한 목소리만 듣고서는 좀처럼 츠쿠바 선의 또랑한 전차 내 안내방송을 떠올리긴 어려울 것 같았다.
토네는 이 다음 차례의 운행을 다른 차장에게 맡기고 왔으니 50분가량의 여유는 있다고 웃었다. 역무원들도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된 그를 살갑게 배웅했다. 그렇지만 취조를 위해 빈 사무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토네가 표정을 무너뜨리며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먼저 물어왔다.
“쿠구노가 정말로 죽었나요?”
"...네. 그런데, 지인이신가요?"
“일단 안다고 해야 할까요. 대학 시절 후배였어요. 그쪽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는 체는 안 했지만. 하긴 벌써 이십 년도 전의 일이고, 따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손님 중에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나오면 심란할 텐데 거기에다 짧게나마 면식이 있었으면 더할 테다. 토네는 잠시간 굳어진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다가 심호흡 후에 입을 열었다.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른다면 얼마든지 협조해드려야죠.”
“협력 감사드립니다. 그럼…”
굳센 사람이군. 404는 거의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고 눈을 마주치곤 끄덕였다. 둘이서 한 사람을 취조할 때에 저희는 역할이 정확하게 나뉘었다. 시마가 주로 취조하고 수1 시절 버릇 못 버리고 분위기가 굳어진다 싶으면 이부키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환기한다. 시마의 논리에 어긋나거나 이부키의 직감에 걸리는 게 있다면 각자가 묻는다. 몇 년 단위로 호흡을 맞춰왔으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담당검시의가 함께 왔으니 그에 관한 검토는 일임해도 됐다. 행적을 캐내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는 상황이다. 실제로도 미스미와 쇼지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토네에게 집중하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일처리는 이부키보다 낫다고 생각하니, 신경 끊고 있어도 될 거다. 의문점이 있다면 알아서 질문할 것이고.
시간이 꽤 지난 일이었음에도 토네의 증언은 꽤 명료했다. 이유인즉슨 그 날이 유독 승객이 적은 밤이었고 아는 사람이 있었기에 놀라워서 기억하고 있다 했다. 정확한 일자는 모르겠지만 CCTV가 있을테니 아키하바라 역 스태프에게 부탁해 받아가라고도 했고.
“아마 그날은 나가레야마 오오타카노모리 역의 역무원이 잠깐 배탈이 났나 그래서 여하튼 의무실로 자리를 비우게 되어서 제가 대신 검표를 했어요. 무인역에서는 원래 차장인 제가 검표를 하니까 문제될 건 없었고요. 그 객차에 승객이 일곱 있었는데 그 중 셋이 내렸고, 검표 중에 쿠구노 군을 봤었네요.”
“얼굴로 알아본 겁니까?”
“제가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기도 하고, 실은 가방에 붙어있는 네임택을 봤어요. 그래서 걔가 맞구나 했고요.”
그 이후는 도쿄까지 쭉 달렸습니다. 아키하바라 역에서 내렸을 때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CCTV에는 찍혀있을 거예요. 열차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저도 그날 밤 업무를 마쳤습니다.
또렷한 발성으로 긴 증언을 쉴 새 없이 읊은 토네가 마침표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한참 그걸 듣고 있던 이부키가 히죽 웃으면서 끼어든다.
“토네 씨, 발음 정말 좋네. 차장 오래 했어요?”
“아, 네. 대학 졸업하고서 바로 역에서 근무했어요. 이제 근속 이십 년 조금 넘겠네요. 사실 이제 곧 은퇴한답니다.”
“우와, 그럼 이제 남편 분하고 은퇴 후 단란하게 지낼 예정이겠네요?”
지금까지 묻던 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청취 질문에서 완전히 탈선해버렸지만 시마는 조용히 보이스레코더의 파일을 나눠 다시 녹음을 시작했다. 정말 헛짓일수도 있지만 파트너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느낀 거라면 기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진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가는 저의 논리와는 달리 이부키의 것은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정돈이 안 되니, 이렇게 샅샅하게 모아두어야 나중에 고생을 안 하지. 따깍하고 버튼이 눌리는 소리는 잡담에 묻혔다.
“그게, 제 남편은 사 년 전에 병으로 먼저 먼길을 떠났거든요. 자녀도 없었던 터라.”
“!”
토네의 대답에 이부키가 길쭉한 팔을 마구 저어가며 발을 굴러댔다. 가뜩이나 남한테 상냥한 녀석이라 제가 상처를 헤집었다고 당황한 모양새였다. 죄송해요를 연발하는 그에게 토네는 가볍게 웃어보이며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요, 형사님. 할 일도 없이 도심에 있는 게 적적할 것 같아서, 시골로 내려가볼까 하고 있거든요. 지금 여기 역 너머 주택가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서요.”
“그런데, 은퇴가 좀 이르시네요. 정년까진 아직 좀 더 있지 않나요?”
“건강 문제가 생겨서요. 하지정맥류가 요 근래에 심해져서, 수술 받더라도 나이가 있으니 재활도 늦을 거고요.”
시마가 돌연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와 질문을 던졌지만 토네는 잔잔한 호수처럼 흔들림 없이 답했다. 슬쩍 보여준 종아리에는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퍼져있고 군데군데 툭 불거진 정맥이 보였다.
신원미상 A의 사진을 보여주고서도 이쪽은 잘 모르겠다고 토네가 고개를 갸웃했고, 이다음은 UDI의 두 사람이 당시 목격했던 쿠구노의 상태에 대해서 몇 가지를 묻고서 청취를 끝냈다.
404호 차량에 돌아와서도 별 다른 모순점을 찾지 못했다는 데에 합의를 본 후에 조수석에 앉은 시마가 무선을 잡았다.
“404부터 본부에게. 관계자 청취 후 CCTV 등을 받고 복귀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 본부에서 404에게.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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