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404+UDI lab.

[MIU404/시마이부] 술잔이 비워졌다

남藍색의 탄식으로 차오른 잔

* 같은 문장으로 500자 쓰기에서 덧붙임->원 썰은 구 틭타에 있습니다,,,만 이쪽으론 붙임하지 않음.

* 흑점과 인력의 균형점에 의거해서 시마이부.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이부시마로 읽겠다 해도 문제는 없겠지만 읽히는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220207 포스타입에 첫 게시->230226 투비로그로 이전->짜잔 글리프로 옮겨옴

220208 일부 문단 수정


술잔이 비워졌다. 위스키는 당연히 없고, 평소처럼 가볍게 걸치는 맥주가 아니다. 청주. 차게 식힌 병이 몇 개 굴러다닌다. 4기수 회식도 아니고, 쉬는 날은 만나지 않습니다를 치워낸 404의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회도 아니다. 대작對酌보다는 대전對戰. 달을 걸쳐 오래도록 팽팽했던 긴장감은 오늘 근무가 마무리될 무렵에 최고조가 되었고, 기어코 총을 뽑지 않겠다는 파트너를 대신해 시마 카즈미가 개전신호를 쏘았다.

― 이따가 퇴근하면, 마시자.

다짐하듯이 꾹꾹 눌러말한 언외에는 꼬리말고 도망치기만 해봐, 라는 도발이 짙게 담겨있어서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 이부키가 털을 잔뜩 곤두세운 짐승마냥 입가를 비뚜름하게 올려 웃었다.

그렇게 말 없이 청주만 마셔제끼기를 한참. 둘 다 맨정신인 건 뻔히 안다. 원래 위스키 파였던 시마는 물론이요, 신진대사가 좋아 알코올을 마시는 족족들이 분해시키는 이부키다. 내일 업무에 차질이 있을까 저어해서 맥주를 주로 마시는 것 뿐이지 사실 저희 둘 다 주량은 만만찮다. 내일은 비번이고 장담은 못해도 요 근래 평화로웠기 때문에 긴급호출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방금의 잔을 비운 것으로 네 병 째다. 브레이크 따위는 없다. 그럴 각오로 부딪히러 왔으니까.

저와 그 사이에는 여전히 빈 잔이 있다. 그 잔을 사이에 두고 눈길이 오간다. 힘겨루기를 하듯이 지긋하게 이어지는 눈싸움은 시마가 짧게 숨을 들이켜는 순간 끝이 났고, 그것보다 반 박자 빠르게 이부키가 말을 끊어먹는다.

"안 돼. 시마."

경쾌하게 통통 튀어다니곤 하는 이부키의 목소리는 긁히듯이 바닥을 덮었다. 시마는 곧 미간 새를 찌푸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지 않고 거친면 그대로 내뱉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내 직감은 들어맞아."

그렇겠지, 너라면. 시마는 속으로만 웃었다. 공기가 성대를 통과하기 전의 진동마저 감지했을 이부키의 색 엷은 눈동자가 가느다란 경계와 두려움을 품은 채 저를 똑바로 본다. 직선으로 덤벼오는 너는, 그럼에도 의외로 겁쟁이여서. 더 기다려보려고 했지만 안 되겠다. 형사의 경험치이기도 하고 파트너의 직감이 옮아온 자리는 야생의 들개가 이대로 내빼리라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 그런데 그걸 그냥 두라고? 아니, 시마 카즈미는 더 이상 중요한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

"겁쟁이."

"상관없어. 난 더 무서운 걸 아니까."

가벼운 잽에도 이부키는 거세게 저항한다. 단호하게 베어낸 문장과 문장 사이는 아직 저를 딛게 하지 않은 영역이다. 미지未知. 시마 카즈미는 그 하얀 공백을 흘긋 바라보곤, 발을 뗀다. 미지는 무지無知다. 흰 눈밭을 가만히 두는 것은 다정함이고, 파고드는 것은 전력이다. 둘 다 중요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네 곁을 달리기 위한 전력. 그대로 온몸으로 달려가 깨부수고 빈 공간을 밝히고 채우게 하는 것은 무모이자 용기이며, 그건 네가 알려준 거야. 파트너. 그러니까,

"그것도 바이어스."

"도발이 엉성하네, 시-마쨩."

또다시 장난스럽게 빠져나가려는 이부키에게 시마는 급작스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404호를 폐차시킬 각오와 마찬가지로.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게 그렇게까지 겁내야할 일이야?"

쾅, 우당탕. 그날의 굉음이 기습처럼 내달린다. 빗장뼈 사이에 찔러넣은 말에 조명 아래 호박석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홉뜨인다. 입가 근육이 뻣뻣하게 굳고 입이 한 일자로 다물린다. 이 와중에도 눈치 못 챙기는 직업병은 슬그머니 칼에 찔린 사체를 떠올리고 만다. 정말 무드없네. 머릿속의 파트너가 낄낄거린다. 인정하자. 용기는 무모함을 닮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시마 카즈미에게는 낯선 일이다. 폐차까지는 예상해도 제가 굴린 쇠구슬이 정확히 어디에 떨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부키 아이의 모든 변화를 지켜보는 제 심장은 두방망이질친다.

그렇지만 스며드는 두려움 앞에서, 시마 카즈미는 얇은 벽을 인내한다. 더 큰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파트너의 말대로 잃는 것은 지독한 공포다. 지금을 견디는 힘은 오로지 벽 너머로 포착한 윤곽에서 온다. 저 스스로를 믿지 않는 시마 카즈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오감으로 관찰되고 논리로 꿰여진 사실이므로.

결말은, 무너지며 찾아온다.

...이렇게 동화처럼 잘 풀릴 리가 없어.

남藍색의 탄식으로 빈 잔이 차오른다. 벽 너머에서 쓰러지듯 튀어나온 답을 시마 카즈미는 기꺼이 마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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